〈 248화 〉 245. 다리 치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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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사냥에 나선 것 치고는 성과가 너무 없었다.
사슴 한 마리와 물새 몇 마리. 부끄럽기 짝이 없는 초라한 성적. 오늘 이상하게 온 사방에 짐승들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이상한 일.
물새들은 이상하게 풀숲이나 바위 그늘에 숨어있다 무슨 소리만 들리면 물속으로 사라지고, 한 마리 발견한 사슴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풀숲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모습.
심지어 그 흔한 늑대들도 조차 한 마리 보이질 않았다.
“정말 오늘 이상하네요. 동물들이 무엇 때문인지 하나도 보이질 않네요.”
리젤다가 답답한 마음으로 이실리엘에게 말했다.
점심때 급하게 나온 사냥인지라 해지기 전 돌아갈 거리를 고려해야 했다. 그렇기에 오늘은 리젤다가 자신 있는 늪지까지는 가지 못하고, 강을 따라 내려가며 물가에 물을 먹으러 오는 동물들이나 물새들을 잡기로 했는데, 이상하게 동물들을 조우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이실리엘과 로리엘도 좀 전부터는 정령까지 풀어 확인하고 있는데도 동물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둘은 답답해하며 정령을 이용해 계속 탐색 범위를 넓혔으나 그런데도 얼마나 꼭꼭 숨은 건지 수색 성과는 거의 없었다.
간신히 한참의 공을 들여 강가 돌 틈에 숨어있던 물새 두어 마리를 더 발견한 것이 고작.
그렇게 셋의 수색에도 아무런 성과 없이 마지막 해가 지평선 끄트머리에 걸리기 직전이 되자. 셋은 곧 돌아가야 할 때가 될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부족한 성과와 얼마 남지 않는 태양의 위치. 셋의 마음은 더욱 타들어 갔다.
이대로라면 이제 곧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셋이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온 사방을 확인하고 있을 때. 혹시 날아가는 새라도 없을까 해서 하늘을 올려다본 리젤다의 눈에 한 마리 검은 새가 들어왔다.
하늘 높이 떠서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받아 천천히 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검은 새 한 마리. 고도가 좀 높은지 어떤 새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덩치가 꽤 커 보이는 새였다.
리젤다는 새를 확인하자마자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반사적으로 이실리엘에게 외쳤다.
“이실리엘님 하늘에 새가 보입니다. 꽤 커 보입니다!”
“네? 어디? 아! 새? 음…”
이실리엘은 리젤다가 사냥감을 확인해 알려주면 바로 쏘아 맞히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왠지 새를 보고 한참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로리엘을 불렀다.
“로리엘 저걸 잡으면 가져갈 수 있을까요?”
“어느? 아! 무, 무조건 가져갈 수 있게 하겠습니다. 저것이 떨어지면 제가 바로 마을에 가서 사람을 좀 더 불러오겠습니다.”
로리엘이 기쁜 얼굴로 새를 살펴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법 큰 사냥감이라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리젤다가 로리엘의 말이 아마 하늘에서 떨어지면 쉬이 찾기 힘이 들 수도 있으니. 마을 사람들을 불러다 수색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
“그럼, 그냥 잡겠습니다.”
로리엘의 말에 사냥하겠다고 선언하는 이실리엘.
이실리엘이 자신의 활을 들고 천천히 하늘의 검은 새를 겨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늘을 향해 자신의 활을 겨누는 이실리엘의 모습이 왠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 리젤다는 그 모습이 지금까지와 무엇이 다른지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실리엘이 당긴 시위는 빈 시위. 화살을 걸지 않고 시위를 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정령력이 담긴 화살이라도 쓰려는 모습. 그렇게 큰 새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거리가 멀어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며, 리젤다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실리엘이 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구경했다.
뿌드드드득
믿을 수 없는 각도로 꺾여지는 가지.
여간해서 소리를 내지 않는 부드러운 세계수의 가지와 이실리엘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시위도 터질 것같은 비명을 질러대며 리젤다의 기대감을 고취했다.
그리고 그런 리젤다의 시대감을 충족시켜주려는지 이실리엘의 활에서 엄청난 모습이 시작되었다.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 사방에서 이실리엘의 활로 빨려 들어가는 초록의 기운.
“어?!”
그 모습에 놀란 리젤다가 탄성을 질렀다.
엘프의 궁술을 신앙하는 리젤다도 처음 보는 엘프의 궁술. 지금까지 여러 번 보았던 정령의 화살과는 뭔가 결이 달랐다.
지금까지 본 것이 갑자기 손에 정령력 가득 담긴 화살이 생겨나는 것이라면, 저것은 뭔가 힘이 모여들어 밀도 높게 압축되는 느낌.
그렇게 모여드는 빛무리 속에서 천천히 이실리엘의 빈손에 화살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살이라기보다는 창에 가까운 거대한 모습.
화살은 희고 투명한 모습이었는데, 화살촉과 화살대 그리고 깃까지 전부 바람으로 만들어진 듯 화살의 투명한 내부에서 뭔가가 소용돌이치는 것같은 모습이었다.
윙윙윙위이잉
바람이 울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이실리엘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칠 때. 시위를 살포시 잡은 이실리엘의 엄지와 중지가 살짝 떨어지자. 이실리엘의 머리카락이 세계수 가지의 탄력을 받아 화살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리젤다의 귓가에 화살이 쏘아졌다고 할 수 없는 엄청난 소리가 휘몰아치며, 이실리엘에서 검은 새까지 한줄기 흰 선이 죽 하고 그어졌다.
슈카아악
마치 누군가 이실리엘의 활부터 새까지 펜을 들어 휙 그으면 저런 모습이 나올까? 그 땅에서 쏘아 올려진 폭력에. 하늘에서 원을 그리며 유유히 날던 새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공중에서 몸을 꺾더니 그대로 하늘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실리엘이 화살을 쏠 때, 그 엄청난 바람에 날아갈 뻔해. 로리엘의 품에 안겨있던 리젤다는, 자신이 크게 다칠뻔 했다는 사실도 잊은채. 그 모습에 감탄에 찬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어! 엄청나요! 이실리엘님 그, 그것이 대체 무, 무엇인가요!?”
리젤다는 처음 본 이실리엘의 엄청난 무력에 열광했다. 활로 저런 엄청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니! 리젤다는 마치 기사에게 열광하는 소녀처럼 열렬히 환호했다.
그러나 이실리엘은 리젤다의 물음에 대답지도 않고 당황한 듯 로리엘을 바라보았다. 로리엘도 이실리엘을 당황한 듯 바라보는 상황. 그렇게 갑자기 둘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화급히 리젤다를 끌어안고는 한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로리엘의 품에 안겨 끌려가던 리젤다가 놀라 소리쳤다.
“무, 무슨 일인가요!”
그리고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지자 둘은 급하게 풀숲에 엎드렸다. 하지만 영문도 모르고 끌려 온 리젤다는 고개를 들고 다시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왜? 왜 그러시죠?”
그리고 그때 갑자기 어두워지는 느낌에 리젤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검은 새가 하늘을 가리며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처음에 주먹만 하던 새는 곧 바위만 하게, 바위만 하던 새는 곧 물소만 하게 그렇게 점점….
‘저 저건. 아니, 새가 아니라….’
멍하니 떨어지는 그것을 올려다보는 리젤다의 머리를 내리누르는 거친 둘의 손길.
꾸우우웅
이실리엘, 리젤다, 로리엘이 처음에 서 있던 장소에 그것이 떨어지며, 엄청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대지가 울부짖고 곧 따라온 큰 진동에 셋이 서로를 의지해 몸을 웅크렸다.
그제야 어디선가 숨어있던 새들이 날아오르고, 숨어있던 짐승들도 멀리서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켈륵…”
평원 엘프들과 수인들이 몰려 나간 후. 해가 완전히 져버렸음에도 아내들과 로리엘 그리고 평원 엘프들은 복귀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성국에서 온 손님들과 여관 식구들에게 저녁을 준비해주고, 여관 앞에 나와 밖을 하염없이 보며 밖에 나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로리엘이 다시 허겁지겁 여관 앞으로 뛰어왔다.
“로리엘!”
“러셀! 안에 수염과 러셀의 부하들 있나?”
로리엘은 대뜸 벨릭과 안톤, 마틴, 처남인 에반의 행방을 물어왔다. 로리엘은 요즘같이 몰려다니는 넷을 내 부하라고 부르는데 넷도 딱히 부인을 안 하니 그냥 내 부하로 굳어지는 느낌.
“아니, 걔들이야 당연히 안에 있지. 그건 그렇고 왜 사람들은 안 오는데?”
“사람이 더 필요하다!”
로리엘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말만 뱉은 채. 여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니, 아까부터 대답은 안 하고 뭐야 대체!’
“야! 로리엘 야!”
나는 로리엘을 부르며 그녀의 뒤를 쫓아 여관으로 따라 들어갔다.
로리엘을 따라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 로리엘이 여관 홀에 앉아서 쉬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 힘써야 할 일이다! 따라 나와라!”
“저희 말입니까. 로리엘님?”
“그래 너희! 빨리 가야 한다!”
로리엘의 재촉에 벨릭을 비롯한 안톤과 에반, 마틴이 영문도 모르고 밥을 먹고 쉬고 있다 밖으로 끌려 나가고, 야간 경계 근무 시작을 알리러 왔던 에밀이 여관 안에 들어서다 그 광경을 보고 로리엘에게 물었다.
“로리엘님 마을 사람들도 다 불러 모을까요?”
마치 전혀 생각 못했다는 듯 깜짝 놀란 얼굴로 에밀을 바라보는 로리엘. 잠깐의 버퍼링 후 로리엘의 고개가 빠르게 끄덕여지자. 에밀이 여관 밖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비상! 비상!”
‘아니! 에밀아 그건 위급할 때 쓰라고 알려준 건데!’
에밀의 외침에 마을 장정들이 목책 문으로 모여들고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로리엘의 인도에 따라 다들 늪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손에는 밧줄을 잔뜩 들고.
‘대체 뭘 잡았길래? 설마 고래 같은 거라도 잡은 건 아니겠지?’
몰려가는 사람들의 손에 든 불빛이 왠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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