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 243. 다리 치료 2
* * *
침대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시트라의 몸이 은은한 빛을 내며 번쩍이고,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내 다리 주위에 머물자.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내 다리가 그 빛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빛이 빨려들자 줄어드는 통증.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은 모습. 그렇게 시트라는 한참을 내 다리에 신성력을 흘려 넣었다. 시트라는 자기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모든 신성력을 뽑아내 내 다리를 치료했다. 남편 치료하겠다고 열과 성의를 다하는 모습.
그렇게 한참 후. 모든 치료를 끝내고 땀을 흠뻑 젖은 시트라. 시트라가 치료가 모두 끝났는지 손을 떼고 말했다.
“휴…. 오늘 치료는 끝이에요.”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치료를 끝낸 다리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붕대를 풀었는데도 불구하고 줄어든 통증. 하지만 외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녀는 분명히 치료할 수 있다고 했는데, 기대한 것과 다른 모습에 혹시 치료가 안 된 건가 싶어 시트라를 바라보자. 시트라가 웃으며 말했다.
“후훗… 러셀님 신체 결손 치료는 한 번에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결손 된 지 오래되었기에 시간도 좀 걸릴 겁니다. 원래는 다시 자라나지 못하는 걸 자라나게 하는 것이라. 생명력도 매우 많이 필요하니. 음식도 잘 드셔야 합니다. 아셨죠?”
용병 시절 받았던 사제들의 찢어지고 깨진 부위 치료처럼, 쑥쑥 자라나듯 치료되는 게 아닌 모양. 재생 같은 개념인데 인간은 그런 재생력이 없으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느낌이었다.
“알았어. 고마워. 다 나을 때까지 앞으로 잘 부탁할게.”
담당 간호사가 생긴 느낌. 이게 또 간호사라니까 기분이 묘하네?
시트라를 슬쩍 바라보자 기겁하는 시트라의 목소리.
“러, 러셀님 눈빛이 또?”
“아, 아냐!”
여관의 야심(?)한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내 앞에 차려진 상다리 아니, 테이블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이 차려진 여러 가지 음식을 보고 난감해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내 앞에 많은 음식이 차려진 이유는 시트라 때문이었다.
아침은 시작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아침은 모든 아내가 모여서 돕는다는 묵언의 규칙. 그 규칙으로 인하여. 시집온 첫날의 새댁같이 차려입고 냉엄한 시월드의 첫 아침을 준비하러 내려간 시트라.
그녀는 조금 긴장하는 모습이었으나. 원피스 앞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앞치마를 두른 시트라가 부엌으로 들어서자 다들 그녀를 반기며 환영했다. 분위기도 좋았고 다들 새 식구가 늘어 환영하는 분위기로 인사가 마무리되나 했는데, 시트라의 한마디에 아내들은 갑자기 성난 이리떼가 되었다.
시트라가 아내들에게 떨군 폭탄은 나의 치료 소식.
인사 중에 시트라가 내 다리를 치료할 수 있음을 밝히고, 어제 이미 한번 치료했음을 알린 것이 그녀들을 성난 이리떼로 만들었다.
“이실리엘님 제가 성녀가 되어서 이제 러셀의 다리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어젯밤에 이미 한번 치료했습니다. 한번 살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저, 정말인가요?”
그 소식을 접한 흥분한 아내들은 나를 바로 여관 홀로 끌고 나왔다. 발레리, 플로라에게 양팔을 붙잡히고 리젤다, 이실리엘에게 양다리를 붙잡혀 끌려 나온 나.
“자, 잠깐만 이실리엘? 리, 리젤다 잠깐 놓고! 발레리, 플로라! 내 양팔을 어 어디다 집어넣는 거야! 버, 벗는다고 아니, 잠깐만.”
“러셀, 빨리 앉아봐요! 이건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음식을 하기 위해 재료를 확인하던 나를 테이블 위에 강제로 올리고, 신발과 붕대를 벗긴 후 모여들어 확인하는 모습.
마치 대학병원 인턴들에게 둘러싸인 듯한 광경.
“저, 정말 아주 조금이지만, 근육이 조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트라! 대단해요!”
이실리엘이 내 다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한참을 확인하더니 아내들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시트라를 칭찬하며 아내들은 다 같이 기뻐했다.
‘나는 봐도 모르겠는데 이실리엘은 뭐가 보이나?’
내 다리가 치료받고 있다는 소식에 가장 크게 반색한 것은 역시나 이실리엘이었다. 자신의 목숨과 나의 다리를 맞바꿨다고 생각하는 이실리엘은 다리를 확인하고 나자 시트라의 손을 꼭 잡아주면 고개를 끄덕였다.
시트라가 혹시나 아내들 사이에 녹아들어 가는 게 힘들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
내 다리를 치료할 수 있고 어제 이미 한번 치료했다는 말에, 시트라는 단번에 아내들 사이에서 신뢰받는 인물로 자리를 잡아 버렸다.
원래 판타지에서 힐러가 귀족 직업이긴 한데, 우리 여관과 아내들 사이에서도 대우받는 존재가 되어 버린 시트라.
이실리엘과 시트라가 손을 잡고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훈훈하게 아침의 소란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다리 확인이 끝나자 시트라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 이실리엘을 향해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이실리엘님 러셀님의 치료를 위해서 모두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무, 무엇인가요! 아, 아내 의회를 열까요!?”
나의 치료를 위해 협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자 바로 아내 의회를 언급하는 이실리엘. 시트라의 말에 다른 아내들도 내 다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얼굴이 되었다.
마치 러셀 다리치료 전담반 팀이 차려질 것 같은 상황.
그렇게 이실리엘과 아내들이 결의에 찬 모습으로 시트라를 바라보자. 시트라가 내 치료 도중의 주의할 점과 챙겨줘야 할 것을 아내들에게 전달했다.
“결손 부위 치료는 많은 영양가 있는 음식이 필요합니다. 결손 부위 치료는 몸의 모든 힘을 사라진 신체를 복구하는 데 쓰게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당분간 러셀에게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여야 합니다.”
그 후로 여관은 부엌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었다. 한나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내 식탁에 올라오는 갖가지 음식. 아침부터 좀 과한 상황이 내 식탁에 벌어지는 중이었다.
“러셀, 모처럼 장어를 구웠으니. 얼른 드셔보세요.”
“러셀 장어도 먹으면서 이 삼계탕도 같이 드시고요. 북부에서 가져온 삼을 넣었어요.”
“아, 아침부터?”
아내들도 요리가 제법 익숙해졌는지 어느 정도 먹을만하게 만들어진 모습. 정성에 고맙긴 한데 하지만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일단 사람 머리 크기 정도의 물새로 만든 삼계탕에 든 물새는 세 마리. 그리고 그 옆에는 팔뚝만 한 장어 두 마리가 통으로 구워져 있었다. 테이블 한쪽의 치즈와 버터는 덤. 빵과 아침으로 끓인 죽까지.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기쁜 소식을 듣고 부축받아 내려온 수리아가 옆에서는 평원 엘프들이 따온 열매를 그녀의 힘으로 즉석에서 쥐어짜서 주스로 만드는 중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으깨져 천연 과즙이 되는 열매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내들을 향해 말했다.
“다 먹을 순 없고 일단 맛을 볼 게 알았지?”
하지만 음식이 너무 많아 다 먹을 수 없다는 말에 싸늘해지는 분위기.
“러셀, 러셀은 지금 환자예요. 가리지 말고 잘 먹어야죠?”
이실리엘이 매서운 눈초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실리엘 이건 아침부터 양이 너무 많아. 이거 먹으면 배 터져서 죽고 말걸?”
나는 과한 음식의 양을 지적했으나 이실리엘과 아내들의 압박에 최대한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치료되기 전에 위가 고통으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거한 아침을 먹고 소화가 되지 않아. 점심때까지 여관 밖에 의자에 앉아 씩씩대고 있는데 의외의 인물이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 밖으로 나왔다.
의외의 인물은 로리엘.
보통 로리엘은 밤에 마을 내부 경계를 서고, 아침을 먹고 잠들어 저녁때가 돼서야 일어나는 편인데,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 여관 밖에서 말을 꺼내고 있는 것이었다.
‘로리엘이 갈 곳이 있나?’
“로리엘 어디가?”
내가 로리엘을 부르자 로리엘이 무척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러셀, 나한테는 왜 말하지 않았지?”
“뭘?”
대뜸 자신에게 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로리엘. 나는 영문 모를 그녀의 질문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고 로리엘은 나의 물음에 섭섭한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리치료 말이다.”
아마 자신에게는 왜 다리 치료받고 있는 걸 왜 말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아니, 아침에 밥 먹고 자러 들어가서 이야기할 틈이 없었잖아. 로리엘은 이 시간에 자야 하니까.”
“단지 그 이유인가?”
“그럼 뭐 일부로 말하지 않은 건 아니지.”
“그, 그렇군…”
‘싱거운 녀석. 서운할 게 많기도 하네.’
서운한 표정이었다 급하게 다시 바뀌는 로리엘의 반응. 그 반응에 웃으며 왜 말을 꺼내왔나 물으려 할 때 여관에서 갑자기 이실리엘이 급하게 뛰어나왔다.
여관에서 평소에 입던 옷이 아닌 높은 엘프 궁수들이 입는 세계수의 꽃잎으로 만든 옷을 입은 채로 말이다.
“이, 이실리엘? 어디 가려고?”
“아, 러셀 아직 여기 있었군요?”
이실리엘이 웃으며 달려오는데 그녀의 등 뒤를 보니. 화살이 가득 담긴 전통이 그녀의 등에 매여있었고, 달려 나온 이실리엘 뒤로 리젤다가 이실리엘의 활을 가슴에 조심스레 안고 뒤따라 나오는 것이 보였다.
“로리엘이랑 어디 가려고?”
아니, 말까지 끌고 어딜 가려나 싶어 물었는데, 이실리엘의 뒤를 따르는 리젤다도 결혼 전에 입던 가죽 갑옷과 북부에서 가져온 활을 들고 있는 모습.
“셋이 대체 어디가?”
나의 물음에 리젤다와 이실리엘이 동시에 말했다.
“러셀 먹일 고기를 좀 구하려고요.”
“러셀 먹일 고기를 좀 구하려고요.”
뭘 잡으러 가길래 셋이 말까지 끌고 나왔을까? 로리엘 쪽을 돌아보니 로리엘은 말을 끌고 나온 게 아니라, 말 두 마리 뒤에 수레까지 연결해 끌고 나온 상황이었다.
‘대체 뭘 얼마나 잡아 오려고?’
아침의 악몽이 떠올라 나는 셋을 급하게 만류했다.
“아니, 여관에 고기 충분한데 어딜 가서 뭘 잡아 오려고?”
“시트라가 싱싱한 고기가 더 좋다고 했거든요. 조금만 기다려요. 러셀, 저희가 맛있는걸 잡아 올 테니까요!”
셋은 내 만류에도 수레를 끌고 유유히 늪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냥 다리 치료하지 말까?’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