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45화 (245/352)

〈 245화 〉 242. 다리 치료 1

* * *

아내들에게는 내색할 수 없어 말은 안 했지만, 아킬레스건이 녹아내린 부상이라는 게 단순히 다리의 불편함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킬레스건이란 종아리 근육을 발꿈치뼈에 연결해 주는 인대, 결국 그것이 끊겨버리니 종아리 근육이 뒤꿈치에 연결되지 못하고 무릎 쪽으로 당겨져 올라가 버리는 것이다.

근육이 무릎 쪽으로 당겨 올라가면 어떻게 되느냐?

발뒤꿈치를 누군가 발로 차는 통증과 함께 종아리를 쥐어뜯는 고통이 찾아온다. 마치 쥐가 난 것같은 그 통증이 계속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종아리 근육이 당겨 올라가지 못하게 붕대로 감아두는 일상.

그 와중에 세계수님에게 받은 부츠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세계수님에게 받은 부츠는 종아리에 압박을 주어 종아리 근육을 말려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인대를 약간 보조해주어 내가 평범히 걸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발을 벗고 붕대를 풀면 찾아오는 종아리의 통증. 이실리엘의 얼굴을 보면 백번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고통과 불편함은 쉽게 적응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처음에 치료 방법을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실리엘과 북부 대수림에서 헤어지고 남으로 내려오면서 성국 근처를 거쳐오며 몇몇 사제들에게 보인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내 상처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 한결같았다.

“녹아내린 다리를 이만큼 회복시켰단 말인가? 엘프에 그런 고위 사제가 있었다니…. 아마 여기서 더 치료받으려면 교황이나 성녀를 찾아가야 할걸세.”

엘프 숲에서는 무릎 아래가 거의 다 녹아내렸었다고 했는데,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살려낸 것은 이실리엘의 할머니가 대단한 것이고, 이 이상은 교황이나 성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는 말.

교황이 일반인을 만나서 치료해줄 리도 만무하고 성녀는 공석. 결국 치료를 못 한다는 말이었다.

결국 그래서 치료는 포기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시트라의 진짜 엄마이며 장모를 자처한 여신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지참금을 보내온 것이다.

호칭에 관한 신탁으로 사람들을 어이없고 황당하게 만든 여신으로 인해. 우리의 소박한 가족 결연 의식은 조금 빨리 끝나버렸고, 시트라를 데리고 방으로 올라와서 지참금 확인하는데 시트라가 부끄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지참금이 뭐라고?”

“저, 저입니다.”

“응?”

두둑하게 챙겨주신 지참금이 뭐냐고 묻자 부끄럼 가득한 얼굴로 자신이라 대답하는 시트라.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당연히 시트라는 선물 같은 존재지. 여신님이 말장난이라도 하신 건가? 그래 뭐 딱히 지참금 같은 것 없어도 당연히 잘 봐 드려야지. 이렇게 예쁜 아내를 주셨으니.”

“그, 그게 아니라….”

시트라는 새빨개진 얼굴로 침대 위에 서더니 나에게 갑자기 이쪽에서는 볼 수 없는 큰절을 해왔다. 그것도 뭐랄까 우리 쪽이 아닌 전생의 일본에서 볼법한?

“부 부족한 몸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러, 러셀님의 개인 성녀 시, 시트라 인사드립니다.”

마치 전생의 인터넷을 떠도는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일본인 아내들이 남편에게 한다는 큰절과 공손한 목소리.

일본 AV에서 나도 몇 번 아니, 몇십 번 아니 몇백 번인가? 본 적 있는 동작과 말투.

“그, 그건 어디서 배웠어?”

개인 성녀 같은 단어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시트라가 배운 동작과 말투만이 궁금한 순간이었다.

내 물음에 어색하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시트라.

“어, 어머니께서 러셀이 살던 곳에서는, 아내들이 다 이렇게 남편을 섬긴다고 연습시키셔서… 아, 아닌가요?”

“아니, 그게… 틀리긴 하는데… 아, 아니! 마, 맞아! 확실하게 맞아! 여, 여신님이니 그, 그런 것도 아시는구나?”

나는 여신이 챙겨준 선물을 내 손으로 땅바닥으로 던져버릴 뻔한 나 자신을 속으로 황급히 꾸짖으며 말을 정정했다.

바보 같은 놈. 줘도 못 먹는 놈이 되어 버릴 뻔한 것이다.

‘이, 이것이 지참금인가?’

나는 여신이 챙겨준 지참금에 참지 못하고 윗옷을 벗었다. 그리고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내가 윗옷을 벗자 화들짝 놀라며 말을 더듬는 시트라.

“러, 러셀님?”

“혹시 여신님께서 다른 걸 가르쳐주시진 않았어?”

내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내가 조금씩 다가갈 때마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시트라. 두려움에 가득 찬 시트라의 눈빛은 나를 더 자극했다.

“러, 러셀님 누, 눈빛이 마, 마치…”

“내 눈빛이 어떤데?”

“마치, 음마에게 사로잡힌 것처럼…”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 시트라라는 상급 음마에게 사로잡힌 상태니까.

“꺄윽…”

늦은 밤 시트라의 신음이 높이 뜬 하늘의 달을 향해 흘러나가고, 시트라와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던지 달도 어디선가 구름을 가져와 자신을 가려버렸다.

뭔가 내 마음에 흡족 하라고 챙겨준 선물은 약간 방향성이 틀린 긴 했는데 흡족하긴 했다.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불타오르는 한 번의 사랑이 끝나자. 시트라가 다시 절을 해오며 ‘부족한 몸 안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 모습에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한참 후 결국 우리는 둘 다 침대에 축 늘어졌다.

내 팔을 베고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시트라의 귀밑머리를 넘겨주며 물었다.

“후아… 그런데 내가 어디서 살다 왔는지에 대한 건 말씀 안 해주시고?”

“네… 하윽… 하윽… 그건 러셀님이 말씀해 주실 거라고.”

‘내가 직접 이야기할 수 있게 배려해준 건가?’

잠깐 그렇게 둘이 누워있을 때 과격하게(?) 움직여서 붕대가 조금 느슨해졌는지. 근육이 당겨지며 쥐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큭…”

내가 다리를 쥐자 깜짝 놀라는 시트라.

“러, 러셀님. 역시나 다리가?”

“아, 괜찮아 다시 붕대 잘 감으면 되니까. 조금 도와주겠어?”

하지만 시트라는 내 도와달라는 말에 반응도 하지 않고, 갑자기 반대로 다리에 묶은 붕대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러나는 내 앙상한 다리와 말려 올라간 근육.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더니 입을 가리며 울먹였다.

“여, 역시나 어머니 말씀대로… 그동안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내 상처를 어루만지더니. 바로 신성력을 뿜어내며 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시트라에게 웃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내 상처는 시트라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치료한다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다른 사제들 말로 교황이나 성녀만이…

“시트라 괜찮아 어차피 내 상처는 교황이나 성녀가 아니면 못 고친다고…”

시트라에게 건넨 말이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며 말소리가 조금씩 줄어들 때. 시트라가 눈물진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성녀가 아니면 못 고칠 상처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러셀님의 ‘개인 성녀’이지 않습니까?”

나는 시트라의 말에 그제야 아까 그녀가 언급했던 지참금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 받은 포장지가 너무 화려해 진짜 선물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여신이 보낸 진짜 지참금이자 선물은 시트라 그 자체였다.

내 불편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서 성녀로 만들어서 보낸.

­꿀꺽

나는 부담스러운 선물에 침을 꿀꺽 삼켰다.

선물이라는 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신들이 공짜로 줬을 리는 만무한일.

“시트라. 그러니까 장모님 아니, 엄마라고 불러달라 하셨나. 아무튼 뭐 다른 이야기는 없었어? 신전을 세워달라거나 아니면 나한테 무슨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혹시 내려진 긴급 퀘스트라도 있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기에 시트라에게 조심스레 물었는데, 역시나 부탁이 한 가지 있었다.

“그, 있긴 있었습니다.”

왠지 뜸을 들이는 시트라. 그리고 그녀의 볼이 천천히 붉게 물들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그, 그러니까… 저희 아, 아기가 태어나면, 딸 중에 원하는 아이를 교단의 사제로…”

“뭐어? 아니, 사제가 나쁜 직업은 아닌데, 시트라의 교단은 처녀여야만 하잖아?”

‘역시나 바라는 게 있었어!’

무슨 라푼젤도 아니고, 태어난 아이를 교단의 사제로 만들어달라는 부탁이라니. 이쪽에서 사제라는 직업이 나쁘지는 않은데 문제는 시트라의 교단은 처녀로 늙어 죽어야 한다는 것.

아비 된 처지에서 이게 쉽게 허락할 문제가 절대 아니었다.

내 말에 시트라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앞으로는 저로 인해 자애와 순결의 교단이 아니라 자애, 순결의 교단이 되었기 때문에 상관없어요.”

“그게 무슨 차이인데?”

“순결한 분들은 순결 쪽으로 그렇지 않은 분들은 자애 쪽으로 나눠지는 거라고 하셨어요.”

“헐…”

자애롭고 순결한 여신이라더니. 우리 장모님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적인 여신이었다.

교단 운영은 그렇다 치고 신성을 반으로 나누다니.

앞으로 처녀인 ‘엄마’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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