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44화 (244/352)

〈 244화 〉 241. 교단의 위기 13

* * *

“그야 당연히 시트라의 어머니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신다면 대접을 해드려야죠. 저희는 가족이 되는 거니까요.”

“가, 가족입니까?”

“예, 가족.”

가족이라는 의미가 마음에 팍팍 와닿지 않는 것같은 표정.

‘아니 우리 가족 되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나?’

나는 아주 자세히 우리 가족 가입 혜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험 설계사처럼 말이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자애와 순결 교단의 자매들은 모두 저의 처제들이 되는 것이고, 추기경님은 장모님. 교단은 저의 처가가 되겠죠? 그리고 여신님은 당연히 처가의 높은 분이니, 저의 존경을 받으실 것이고요.”

내가 먼저 말한 내용은 그야말로 표면적인 것, 그 속을 들여다보면 좀 더 짜릿한 혜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리 가족 가입 혜택이다.

“거기에 더해서 저희와 가족이 되신다면 당연히 이실리엘의 가족도 되는 거고… 그렇지 이실리엘?”

“당연해요. 러셀. 북부 대수림의 엘프들은 아마 롱 윈드의 가족인 러셀의 또 다른 가족들을 환영하겠죠.”

나는 옆에 있는 이실리엘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은 후. 그 옆에 앉아있는 수리아와 리젤다의 머리도 쓰다듬었다.

“그리고, 북부 다섯 왕국과 귀족 그리고 특히나 에삭스 왕국 왕족의 지지와 호의를 얻으시겠죠.”

내 말에 수리아가 당연하다는 듯 외쳤다.

“그럼요! 결혼 전 모든 처녀를 자애와 순결 교단의 신도가 되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수리아가 좀 너무 나갔네.’ 북부 에삭스 왕국 처녀들 곡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수리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용히 귓속말로 ‘왕국의 처녀들이 연애도 못 한다고 슬퍼하지 않을까? 나쁜 여왕이 될 수도 있어.’라고 속삭여줬다.

수리아가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는 듯 당황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웃음띤 얼굴로 추기경과 성기사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혜택을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제들이나 장모님은 언제라도 제 여관으로 오신다면 남부 최고의 요리를 대접해 드릴 것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성기사 아미쉬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혜택이 제일 마음에 드는군요.”

­­­­­­­­­­­­­­­­­­­­­­­­­­­

시트라는 러셀과 뜨거운 첫날 밤을 보내고 여운에 잠겨 살포시 잠이 들어버렸다가. 영문도 모르고 이곳에 끌려 왔다.

눈을 뜨니 한번 끌려왔던(?) 백색의 공간.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여신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여신께서 하신 말씀은 엉뚱하게도 지참금을 챙겨주신다는 말.

딸이 시집을 가니 지참금을 본인이 챙겨주시겠다는 영문 모를 말이었다.

“예?”

“아니, 딸이 시집가는데, 어머니인 제가 당연히 지참금을 챙겨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위를 위해 두둑이 넣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러셀의 다른 아내들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넣었으니까요. 아 참, 그렇다고 싸우라는 건 아닙니다. 사이좋게 러셀을 잘 모시고 행복하게만 사세요.”

처음에 시트라는 어머니가 지참금으로 무엇을 챙겨주신다는 건지 궁금했으나 금세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신성력!

어머니는 지참금으로 엄청난 신성력을 내려주신 것이었다.

성녀가 되었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정신이 아찔했다.

“하, 하지만 성녀라뇨? 저는 그, 순결도 잃었고….”

자애와 순결 교단의 성녀인데 순결을 잃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순결 잃은 순결의 성녀라니.

“시트라 저를 잘 보세요. 당신이 믿는 교단의 제일 높은 분은 누구죠?”

“그, 그야 어머니?”

“그래요! 제가 된다면 그냥 하는겁니다. 내가 내 성녀를 뽑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한단 말입니까! 시트라는 마족을 잡아 죽일 때는 안 그런데, 평소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 대신 호칭은 자애의 성녀입니다. 위대한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아셨죠?”

그렇게 시트라는 성녀. 정확히 자애의 성녀가 되었다.

몸에 넘쳐흐르는 이질적인 신성력.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신성력이 순결과 자애의 신성력이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다시 받아들인 신성력은 정말 순수한 자애의 신성으로 이루어진 신성력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자신이 마지못해 받아들이자 어머니가 툴툴거리며 말씀하셨다.

“시트라는 적을 앞에 두고는 그렇게나 화끈한데 이럴 때는 왜 이렇게 답답한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깝게 신탁을 내려줘도 의심하는 누구랑 다르게 이렇게나 맡은 임무를 잘 해냈으니까요.”

어머니는 처음 뵈었을 때처럼 뭔가 활달한(?) 분이셨다. 자신이 생각했던 순수 고결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뭔가 인간적이라 진짜 어머니 같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것은, 정말로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께서 조언해주는 것 같은 여러 가지 당부의 말.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반복해서 강조하는 어머니셨다.

“제가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했죠?”

“러셀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혹시라도 성녀라는 것이 소문이 나서, 살 뒤룩뒤룩한 귀족 놈들이 찾아와서 치료를 요구하면, 아주 비싼 돈을 받고 해주세요. 저희 놈들을 위한 신성력이 아니니 절대 공짜로 해주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나요?”

“하지만 자애가…”

“어허!”

“예….”

그렇게 한참 어머니께 시집가서 남편을 모시는 몸과 마음가짐을 교육받을 때. 갑자기 어머니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머 제가 나서서 정리 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역시 러셀은 멋진 남자네요. 알아서 다 정리를 해버렸네. 어머, 존경이라니… 그런데 호칭은 좀 정정할 필요가 있겠네요.”

아무래도 아래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러셀이 전부 처리한 것 같은 느낌. 러셀의 품에 안겨있을 때의 따듯함이 생각나 시트라의 볼이 붉게 물들 때. 신이 나서 막 혼잣말하시던 어머니께서 시트라를 보며 말씀하셨다.

“시트라 당신을 통해 제가 러셀에게 몇 가지를 전달할게요. 꼭 전달하셔야 합니다. 아셨습니까?”

“예 어머니.”

시트라는 신탁인가 싶어 귀를 쫑긋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혹시라도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단, 지참금은 두둑하게 넣었으니 잘 좀 봐달라고 해주시고. 추기경은 장모가 아니라 나이 많은 처형이라고 정정해주세요. 그리고 진짜 장모는 저라고 앞으로 편하게 엄마라고 부르셔도 된다고 해주세요.”

“예?”

“아래는 러셀이 전부 정리한 것 같으니. 이제 가세요!”

시트라는 그렇게 침대에서 깨어났다.

알몸의 시트라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머리맡에 놓인 옷 한 벌. 알몸인 자신을 위해서 준비해 둔 것인지 옷 한 벌이 시트라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제복이 아닌 평범한 여자들이 입는 원피스. 시트라가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옷이었다. 그 옷을 보자 이제 자신도 완전히 러셀의 아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그 옷을 입고 러셀의 방문을 열고 나오자. 일 층의 홀 쪽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

천천히 계단으로 일 층에 내려서자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러셀과 그의 다른 아내들 그리고 사제 둘 거기에 추기경과 성기사.

‘추기경님?’

시트라는 추기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결혼하고 싶다는 자기의 말에 여기까지 찾아온 것인가?

추기경의 모습에 시트라는 위에 계신 어머니가 하신 마지막 말씀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계단 아래 추기경의 모습에 놀라 멈춰선 시트라의 모습에, 러셀이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맥주와 안주를 나눠 마시던 사람들이, 모두 우르르 시트라 앞으로 모여들었다.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에 다급히 뒤로 물러나려 할 때. 시트라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아오는 따듯한 손길과 목소리.

“시트라 이제 괜찮아?”

러셀이 시트라의 허리를 감아 안으며 걱정 어린 안부를 물어왔다. 시트라는 놀란 목소리로 러셀에게 추기경이 왜 여기에 있는지 물었다.

“무, 무슨 일이죠? 이게? 추, 추기경님이 어떻게.”

그리고 시트라가 당황해 자신이 추기경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하게 허리를 숙이려는데, 추기경이 달려와 시트라의 손을 잡으며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트라야 괜찮다. 어미에게 무슨 인사를 한다고. 몸은 괜찮은 것이냐?”

무척이나 다정한 목소리. 결혼을 한다는 말을 전했을 때의 그 당황하고 놀란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키워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분인지라 어머니라고 해도 상관없는 분이지만, 진짜 어머니가 호칭을 정리하라 했으니.

호칭은 반드시 정정되어야 했다.

시트라는 한 번쯤 본 적 있는 높은 사제의 신탁 전달 의식의 기억을 되살려 추기경을 향해 말했다. 한 손을 하늘로 높이 들어 그분이 계신 곳을 가리키면서.

“어머니의 신탁이 있으셨습니다.”

시트라의 신탁이라는 말에 사제와 성기사들 그리고 추기경이 깜짝 놀라 마시던 잔을 내던지고 바닥에 처박히듯이 시트라 앞에 조아렸다. 그리고 고요가 내려앉자 추기경이 조심스레 시트라에게 말했다.

“어머니의 말씀을 저희에게 내려주시옵소서!”

“어,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자애의 성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하려니 어색한 시트라. 시트라는 어색하게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먼저. 러, 러셀을 향한 말씀입니다.”

러셀의 이름을 부르니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이 동그래지는 러셀. 표정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웃을 뻔했지만, 시트라는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제 지참금을 두둑하게 넣었으니 저, 저와 어머니를 잘 봐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짜 장모는 순결의 어머니이고 추기경님은 나이 많은 처형이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음…. 그리고 장모님보다는 편하게 앞으로 엄마라고 부르셨으면 좋겠다고….”

시트라의 첫 신탁 전달에 추기경의 얼굴이 당황함으로 물들고 러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장모님이 두둑하게 넣은 지참금이 뭔지, 좀 확인해볼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