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240. 교단의 위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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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푸 훕! 추기경님이 그 말 들으시면 경악하시겠네요.”
생각보다 성기사는 성격이 좋은지 내 처제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폭소를 참지 못하며 말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어? 형부? 푸흐흡…”
그렇게 성기사는 실실 웃으며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음식이 마저 준비되고 식당 쪽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늘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아침 먹고 자겠다는 마음이 가득 담긴 표정.
그리고 그렇게 늘어진 사람들 사이에 성기사 다섯과 추기경님이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아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제일 먼저 그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로 하고 이실리엘과 쟁반을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배고프셨죠? 어젯밤에 좀 소란이 있어서 아침이 좀 부실해도 이해해주세요.”
이실리엘이 웃으며 고기가 가득 담긴 스튜를 추기경 앞에 내려놓자 화들짝 놀라며 일어서는 추기경.
“이, 이런 어, 어찌 높은 엘프님께서 식사 시중을! 뭐 뭣들 하느냐 어서! 어서! 돕거라!”
추기경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성기사들을 다그쳤다. 그리고 성기사들도 다들 그 자리에 일어서서 음식을 받아들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
나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냥 앉아계시죠. 장모님도 앉아계시고 처제들도 그냥 앉아있어. 결혼한 언니 집에 놀러 왔는데 일하는 거 아니야 알았지?”
내 말에 추기경은 똥 씹은 표정이 되고, 아까 부엌으로 아침을 주문하러 왔다 아미쉬라는 여자가 갑자기 고꾸라지더니 배를 움켜쥐고 웃기 시작했다.
“모, 못 참겠어! 꺄하하하악…!”
추기경의 얼굴이 당황함으로 물들고 이실리엘이 영문 모를 행동에 눈을 깜빡였다.
저녁을 다 먹고 한가해지자 추기경이 면담을 요청했다. 온종일 계속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더니. 저녁 식사가 끝나고 한가해지자마자 성기사를 보내 면담을 요청한 것이었다.
어제 이야기가 이상하게 마무리되어 예상은 했는데 시트라가 깨어나기 전에 대화를 요청한 것은 의외였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딸 같은 아이라고 했으니 나와 대화하기 전에 시트라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볼 것으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대화의 시작부터 조금 거슬리는 상황. 그런데 추기경은 면담이 시작하자마자 시트라를 성국으로 데려갈 수 있는가를 물어왔다.
“시트라를 성국으로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정중한 말투였지만 시트라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된 발언. 나는 추기경의 말에 시트라가 깨어나기 전에 이 문제를 반드시 결론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직은 교단에 묶인 신분이니 무슨 이유를 들어서든 그녀를 압박해. 그녀가 그것을 원한다며, 내 의사를 무시하고 끌고 갈 확률이 매우 높은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의견도 무시되는데 외부인인 내 의견 따위는 당연히 무시될 것이 뻔한 것이다. 내가 높은 엘프의 남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나는 조금씩 차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성녀가 되었어도 그전에 이미 저의 아내이기에 성국으로는 보낼 수 없습니다. 시트라도 당연히 제 곁에 있는 걸 원할 거고요.”
“하지만 성녀는 성국의 상징 같은 존재. 부디 부탁드립니다. 하룻밤의 인연이라 생각하시고….”
추기경이 낮에 시트라의 상태를 한번 확인해도 되냐기에 부탁을 들어주었는데, 아마 그때 시트라가 성녀가 된 것을 확신한 것 같았다.
그녀가 순결을 잃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성녀가 되었으니 크게 문제없다는 느낌.
그리고 그녀와 나의 관계를 하룻밤의 인연으로 치부하는 추기경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내 얼굴이 분노로 물들고 있었지만, 추기경은 다시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성녀는 성국의 보배 부디 부탁드립니다.”
나는 불같이 타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그녀에게 씹어뱉듯 말했다.
“분명 헬로나님은 저에게 시트라를 딸 같은 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딸같이 생각하시는 것 맞습니까? 딸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 진정 그것이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시트라는 딸 같은 아이. 자식이 영광된 자리를 마다하고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가겠다는데 당연히 부모로서는….”
“본인이 원치도 않는데 성국에 끌려가서, 사람들의 가식적인 존경을 받으면서 혼자서 외롭게 늙어가는 게요?”
내 가시 돋친 말에 깜짝 놀라는 추기경. 아마도 내가 이렇게 날카롭게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보통 부모는 교단과 딸의 행복을 놓고 고민하는 상황이 되면, 당연히 딸의 행복을 선택할 것이고 딸의 행복은 딸이 원하는 삶일 텐데…. 그냥 본인에 욕심 때문에, 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추기경님?”
내 말에 미간이 꿈틀하는 추기경. 아무것도 아닌, 내가 높은 엘프의 권세를 빌어서 감히 자신에게 무례하게 군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럼 뭐 빌린 김에 아주 ’영끌’ 해버리지 뭐.’
대출은 당길 때 당기는 것. 나는 이왕 빌린 김에 아내들의 권세를 탈탈 끌어모으기로 했다.
“지금 대답을 아주 잘하셔야 할 겁니다. 지금 저는 헬로나님게 선택권을 드리고 있는 거니까요.”
그 말에 추기경이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서, 선택권이요?”
“예, 만약에 시트라에 대한 결정이 추기경이라는 신분이 내린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저는 앞으로 헬로나님을 추기경으로 대접해 드릴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 헬로나님의 선택이 사랑하는 딸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연히 가족으로서 장모님으로 대접해 드릴 생각이니까요.”
추기경이 내 이야기를 듣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침묵할 때. 아까 인사를 나눴던 아미쉬라는 성기사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러셀님 두 가지 차이점에 관해서 물어도 되겠습니까?”
추기경과 대화 중인데 그녀가 끼어들어도 상관없나 추기경의 얼굴을 한번 봤지만, 추기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지위가 아래인 사제나 성기사들을 자식처럼 대한다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성기사 아미쉬가 아침 식사 중 바닥에 굴렀을 때도. 혼낸다기보다는 딸을 타이르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런 모습을 쭉 유지하시면 좋았는데 시트라에게는 왜 욕심을 내셔서 험한 대우를 자처하실까?’
나는 속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만약에 시트라에 대한 결정이 추기경으로 내린 것이라 판단이 든다면, 저는 추기경님과 자애와 순결의 교단 그리고 성국을 통상적인 외교의 관례에 따라 상대해 드릴 예정입니다. 뭐 제가 국가는 아니지만. 국가와 국가, 단체와 단체 간의 철저한 이익 계산과 ‘힘의 논리’에 의한 관계가 되겠죠?”
나는 옆에 앉은 이실리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힘의 논리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찍어 누르는 방향이 될 것이고, 저희 관계에서는 제가 아마 더 강한 자가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진 힘을 이용해 찍어누를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실리엘에게 물었다.
“이실리엘 우리 시간 나면 중부대륙 구경이나 갈까? 북부 엘프 숲에 있는 이실리엘의 할머니나 높은 엘프 친구들 몇 명 데리고, 중부에 여러 왕국 구경도 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한 몇 년 정도?”
“러셀이 같이 가면 어디든 다 좋아요!”
“맘에 들면, 아주 그냥 어디든 자리 잡고 눌러살아도 되고. 중부가 훨씬 살기 좋다더라고.”
엘프들은 시간에 대한 개념도 인간과 다른데, 몇 년 아주 그냥 장기 코스로 뽑아서 중부 곳곳을 여행해 버리거나. 그냥 중부에 자리 잡아 버린다는 일방적 통보.
성국이고 뭐고 숨이 바짝바짝 마르게.
나는 이실리엘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노예 하나를 불렀다.
“실리아?”
“나 불렀어?”
여관 문밖에서 안으로 날아든 반투명의 정령. 몸에 바람과 약한 전류를 두른 모습의 실리아가 급한 얼굴로 테이블 위에 올라섰다.
실리아는 저번에 소환한 이후 정령계로 되돌려 보내지 않고 마을에 풀어두고 키우는(?) 중이다. 대체 세상의 어떤 것들을 구경하고 싶어 노예까지 자처했나 궁금해서, 한풀이라도 하라고 풀어둔 것인데, 생각보다 실리아의 소망은 소박했다.
“왜 러셀? 왜 불렀어? 나 좀 바쁜데. 러셀이 알려준 딱정벌레를 목책 옆에서 발견했거든! 뿔이 엄청 크단 말이야. 날아가기 전에 더 보고 싶은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신기하기만 한 실리아. 딱정벌레, 개미 따위가 보고 싶어 노예를 자처한 실리아였다. 파브르도 아니고…
나는 실리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모험 재개를 허락했다.
“그래, 그럼 나가 놀아라 나중에 이야기할게.”
“알았어! 딱정벌레 아직 날아가지 않았겠지?!”
실리아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재빠르게 밖으로 날아가고. 나는 실리아를 대할 때 지었던 웃음기를 싹 지우고 말했다.
“높은 엘프의 남편으로 살면, 상급 정령 정도는 그냥 소환해지더라고요. 저 친구는 제 정령입니다. 폭풍의 정령이죠. 폭풍을 소환하는 게 저 친구 일인데. 성국 수도에 계속 폭풍이 치면 볼만할 겁니다. 오백일 내내 말이죠.”
상급 정령이라는 내 말과 폭풍이라는 단어에 벼락 맞은 듯 놀라는 추기경과 성기사.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추기경이 다급하게 다음 내용을 물었다.
“그, 그렇군요. 그, 그러면 가족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다정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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