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42화 (242/352)

〈 242화 〉 239. 교단의 위기 11

* * *

나는 사제의 물음에 똑같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낮에만 해도 분명 처녀였는데, 좀 전부터는 처녀가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이… 좀 전에 그, 아니게 되었는데요… 음… 이미 늦으셨다고 해야 하나… 그, 분명 아까 전까지는 처녀였는데, 그러니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지….”

“예?!”

‘시트라랑 XX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기에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어 버벅거리는데, 내용은 대충 이해했는지 추기경이 머리를 쥐고 ‘아니, 아닐 거야’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 많은 분이 저러니 내가 뭔가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솔직히 좀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고작 키스 한번 했다고 비 처녀로 낙인찍어 모든 신성력을 거둬간 것은 내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나는 갈 곳 없는 유기견 처지가 된 시트라를 데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또 시트라가 비 처녀라는 상대방을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든 것뿐이니 말이다.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 현실을 부정하는 추기경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후… 시트라는 이미 제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고, 저도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녀가 제 방에 있는 의미는 아시겠죠?”

추기경은 내 말에 망연한 표정이 되어 ‘그게, 저기…’ 이러면서 말을 잊지 못했다. 그녀의 수행원인 성기사들도 놀란 얼굴.

그리고 추기경이 더 이상 못 버티겠는지 그 자리에서 털썩 스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추기경이 쓰러지자 대화는 끝나버리고 사제들이 달려들어 신성력을 퍼붓고 난리를 치느라 여관의 홀은 단번에 개판이 되어버렸다.

그 모습에 잠에 깨어 내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플로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 여기도 우리 노인네 같은 사람 하나 또 있나 봐요. 푸훗…”

쓰러진 추기경을 빈 객실로 옮기고, 시트라와 함께 생활하던 사제들과 시트라의 상태나 아까 끊긴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시 홀에 모였다.

원래는 추기경에게 들어야 했으나, 추기경이 쓰러진 난장판 상황에서 사제들이 바로 치유나 정신 정화 같은 신성력을 퍼부었음에도 추기경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들 정신을 못 차리는 추기경의 상태가 너무 이상해. 혹시나 지병이나 여행 중에 잘못 먹은 것같은 건 없는지 물었다가 그녀가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듣고 다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성기사들에게 말을 들어보니 열흘 넘게 마차 안에서만 생활하며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소리. 그리고 도착 직전에 말에게 축복까지 걸어 신성력도 다 뽑아냈다는 이야기에, 다들 그녀가 푹 쉬게 방에서 조용히 물러 나왔다.

사제 둘을 테이블 앞에 두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우선 궁금한 것은 뭔가 무척 과하게 대응하고 있는듯한 추기경의 행동.

“근데 추기경님은 왜 저렇게 급하게 찾아오신 거죠?”

“아마 시트라님이 얼마 전에 교단에 결혼하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셔서 놀라서 찾아오신 건 아닐까 싶네요.”

“예?”

얼마 전이라면 나와 이야기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을 때인데 시트라는 생각보다 용감했다. 교단에 직접 결혼하겠다고 보고까지 하다니.

‘배수의 진 뭐 그런 느낌인가? 필사의 각오? 물러나지 않겠다는?’

거절했으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궁금함으로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상급 이단심문관 위치가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추기경이 직접 찾아오는 건 조금 과한 대처가 아닐까 싶어 되물었다. 아무리 수양 딸이라고 해도 이 세계에서 여행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아니, 그래도 시트라가 그렇게 중요한 위치인가요?”

“신성 강림이 두 번이나 임했으니. 아마 당연히 성녀가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겠죠.”

두 번이라. 한번은 우리 축제 때. 한번은 아내들과 대화 중에 잠깐? 두 번째는 신성 강림으로 봐야 하나 애매하긴 했지만 뭐 아무튼 그렇다 치고.

“그런데 진짜 성녀가 되는 게 맞나요? 자애와 순결 교단인데 그러니까 순결이…”

내가 이들이 도착하기 전 시트라와 나 사이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언급하자. 두 사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두 분이 그렇게 그, 급하게 진행하실 줄은 몰랐네요. 하하…”

“그, 급하기보다는 뭐랄까? 그… 치료(?) 차원에서…”

그래, 솔직히 신성력 다 빨아가 환자와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만들어서, 나는 정말 아까 열과 성의를 다해서 사랑으로 치료에 임한 것뿐인데 말이다.

그러니 한편으로 지금 이 상황은 그쪽에서 내쳐서 내가 잘 거두려고 했는데, 갑자기 다시 가져간다고 하는 느낌이랄까?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줬다 뺏는 새끼가 가장 나쁜 새끼인데, 약간 그런 느낌?

“치, 치료… 하, 하하 러셀님은 역시 재미있는 분이군요.”

사제들이 나의 치료라는 표현에 어색하게 웃으며 순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뭐 따, 딱히 처녀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을 것입니다. 가정을 이룬 분들도 있으니까요.”

“그렇죠. 성녀는 신들만이 평가할 수 있는 신앙이 기준이니까요.”

그렇게 사제들이 성녀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성녀.

신께서 직접 선택하는 그의 종으로. 보통 순결한 처녀인 경우가 많지만 순결하지 않다고 해서 성녀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모시는 신이 보기에 인품과 신앙이 아름다운 자가 뽑히는 것뿐이라는 설명.

그러니 신에게 선택받기 전에는 인간들은 누가 성녀가 될지 알 수도 없고 뽑히고 나서도 왜 성녀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많이 나온다고 했다.

상대의 믿음과 신앙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어릴 때 신전 한번 들려 단 한 번 기도해본 게 전부인 아가씨가 갑자기 성녀가 되기도 하고, 어린 소녀가 뽑히기도 또는 추문이 많았던 아가씨가 뽑히기도 한다는 것. 이번처럼 교단 내에서 교단 관계자가 뽑히는 게 더 특이한 상황이라고.

“하지만 자애와 순결의 교단이라서 저희도 확신해서 말씀드리기는 힘들겠네요. 오전의 현상도 정상적은 아니라고 하니까요.”

“그건 그렇다 치고, 추기경님은 성녀가 된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

추기경이 의심치 않고 무조건 성녀라고 이야기부터 꺼냈으니. 한번 물어본 것인데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성국의 기록에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성녀가 될 자를 내리비춘다고 되어있다고. 성국의 사제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성국에서 제일 큰 이벤트 중 하나니 다들 사제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배우는 것이라고.

대충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시트라가 왜 성녀가 되었는지는 자세한 내막은 신만이 알고, 일단

성녀로 뽑힌 것 같다는 이야기가 결론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확신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

그간 시트라에게 들은 이야기와 여러 가지 사건들을 종합해보면 자애와 순결 여신이 시트라와 나를 이어주고 싶어서 부단히 애를 쓴 느낌인데, 마지막에 이 행동은 조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트라 깨어나면 어차피 다 해결될 일.

“뭐 시트라가 깨어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조금 기다려 볼까요?”

내 말에 두 사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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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의 아침은 아주 늦게 시작했다. 어젯밤 빛기둥과 추기경 일행들의 소란에 자는 도중 잠을 깬 인원 대부분이 아침에 늦게까지 잠을 자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아아암…”

그렇기에 태양 세 개가 다 뜬 늦은 아침에, 나의 아침도 시작되었다. 어제 시트라와 같이 잘 수가 없어서 이실리엘의 방에서 같이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실리엘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아침을 준비하는 모양.

사리나가 준비해준 세숫물로 세수를 하고 바로 비틀비틀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예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는 이실리엘.

“러셀, 한나 아주머니랑 그냥 아침은 스튜로 준비했어요. 밤에 다들 잠을 설쳐서 간단하게 먹고 다시들 잔다는 분들이 많아서요.”

“그래? 수고했어. 성기사들과 추기경님은?”

“아 좀 전에 깨셔서 리젤다와 발레리, 플로라가 다들 목욕탕으로 안내해 드렸어요.”

혹시 깨어났나 물었더니 목욕탕으로 향한 모양. 솔직히 좀 냄새가 나긴 했었다. 열흘 동안 씻지도 않고 마차 안에서 생활했다더니.

나는 일단 준비된 재료로 식사를 준비했다.

따듯한 빵과 스튜, 포도주, 토마토, 상추와 양파를 넣은 샐러드 조금. 우리 여관 아침치고는 너무 간단했다. 한나 아주머니가 걱정할 정도.

“러셀, 오늘 아침 너무 부실한데 괜찮을까?”

“다들 아침 생각도 없을걸요? 자고 싶지. 정 출출하면 점심에 바비큐나 한번 하죠.”

“그래, 그럼.”

부엌에서 요리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자 냄새를 맡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는 사람들. 식사를 내가야 하나 해서 홀을 확인하려는데 목욕을 금방 끝냈는지 얼굴이 발그레한, 성기사 하나가 부엌까지 찾아와 조심스레 물었다.

짧게 자른 밤색 머리를 질끈 동여맨 약간 보이시한 스타일의 여자였다.

“안녕하십니까? 러셀님. 저는 시트라의 자매 아미쉬라고 합니다. 밤에는 경황이 없어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아, 시트라의 자매요? 어 그러면?”

‘처제인가?’

잠깐 호칭에 당황했지만. 상대방이 웃으며 당황한 나를 위해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아, 교단에서는 다들 자매라고 부릅니다. 친구 정도로 보시면 되겠네요.”

“아! 친구! 아이고 반갑습니다. 그런데 부엌에는 어쩐 일로?”

부엌까지 날 찾아온 연유를 묻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예, 그 아침을 주문하려고요.”

아마 아내들이 설명하는 걸 까먹은 모양. 하지만 설명을 했어도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아, 저희는 숙박하면 음식은 공짜인데, 처가에서 장모님이 처제들과 오셨는데 식구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나요? 그냥 편하게 우리 집이라 생각하고 즐기십시오.”

나는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무를 수도 없게 늦어버렸는데. 뭐 어쩌란 말인가. 성녀가 되기 전에 이미 내 아내인 것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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