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 238. 교단의 위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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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엇을 계시나 암시하는듯한 모양. 계속 머릿속에 떠올리려 하지 않았던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듯한 그 기묘한 모양에 헬로나는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깃발을 손에 들고 신전 중앙에 꿇어 엎드려 있을 때. 신전의 사제 둘이 자던 얼굴로 허겁지겁 안쪽에서 달려 나왔다.
손에 든 등불로 자신을 비추더니 깜짝 놀라는 둘.
“누, 누구? 추, 추기경 예하?”
“예하를 뵙습니다!”
한밤중 신전에 누가 들이닥쳤나 확인하려다 기절할 듯 놀라는 두 사제였다. 하지만 헬로나는 둘이 놀라든 말든 시트라의 위치를 물었다.
“시트라는 어디 있죠?”
“그, 그게…”
“시트라님은…”
두 사제가 자신의 시트라가 어디 있냐는 물음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할 때. 갑자기 신전의 창문 너머에서 강렬한 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빛에서 느껴지는 농밀한 신성력. 고위 사제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 농밀함에 헬로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대, 대체 무, 무슨 일이?”
그리고 헬로나는 잠시 시트라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도 잊고. 탄성을 내뱉으며 그 신성력에 이끌리듯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신전 안의 남은 인원들도 모두 그 신성력에 이끌리듯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신성력에 이끌려 몰려나온 그들이 신전 문밖에서 본 것은 한밤중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의 기둥.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빛의 기둥이 저 멀리 마을 안의 한 건물을 내리비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자다 깬 모습의 사제 둘이 경악하며 외쳤다.
“시, 시트라님!”
“시, 시트라님!”
“저, 저기에 있단 말입니까? 시트라가?!”
헬로나가 시트라가 빛의 기둥이 있는 곳에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모든 사제와 성기사들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빛을 기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절룩거리며 달려 삼 층으로 뛰어오르자. 대낮같이 밝은 삼 층의 모습. 삼 층을 대낮처럼 밝히는 빛은 내방의 열린 문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열린 방문 좌우에서 머리들만 빼꼼 내밀고 멍하니 방안을 지켜보는 아내들의 모습.
“무, 무슨 일이야?”
놀란 목소리로 묻자 리젤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멍하니 방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내들 머리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서자. 눈에 보이는 것은 이질적인 현상.
천장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빛의 기둥. 그리고 그 빛의 기둥 안에 알몸으로 이불을 덮고 축 늘어진 채 공중에서 천천히 회전하는 시트라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트라의 늘어진 은발이 보석처럼 빛나고 알몸에 살짝 덮은 얇은 이불이 아슬아슬 그녀를 가리고 있었다.
“이 무슨….”
분명 신성력과 관련된 현상 같은데 이미 시트라는 신성력을 모두 잃은 상태. 키스하다 혀 좀 넣었다고 처녀 탈락이라고 신성력 탈탈 뽑아가더니.
갑자기 이건 무슨 해괴한 현상인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다들 시트라만 바라보고 있을 때. 아래쪽이 소란스러운가 싶더니 처음 보는 중년의 여사제와 신전의 사제 둘 그리고 신전의 엠블렘을 가슴에 새긴 여기사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우르르 아래층에서 달려 올라왔다.
그렇게 놀라 기절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도착한 사람들은 모두 숨을 몰아쉬더니. 그중 중년의 여 사제가 숨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끓어 엎드리며 외쳤다.
“서, 성녀가 나셨습니다!”
“예?! 뭐요?”
잠시 후.
빛의 기둥이 사라지자 시트라가 천천히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황급히 달려가 그녀를 받아안아 침대에 눕혔다. 시트라는 예전처럼 또다시 잠이 든 것같은 상태.
“리젤다, 발레리랑 시트라를 좀 지켜봐 줘 아래층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으니 알았지?”
“네, 러셀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나는 잠시 그녀를 지켜보다가 그녀의 이마에 조용히 입을 맞춰준 후 이실리엘, 플로라와 여관 홀로 내려왔다.
여관 일 층으로 향하는 이유는 사제들이 좀 전 이실리엘의 엄한 한마디에 모두 일 층 홀로 내쫓겼기 때문이었다.
내가 시트라를 안아 들자 중년의 여사제가 화들짝 놀라며 내 방으로 들어서려 했는데, 그게 이실리엘을 화나게 한 것 같았다.
“누구신데 3층과 러셀의 방에 함부로 올라오시는 거죠? 3층은 여관주인인 러셀과 아내들의 공간. 함부로 올라오시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시트라의 지인인 것 같아 지금까지 무례는 참았지만, 더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실리엘이 눈을 부라리며 딱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사제와 성기사들은 정중하게 사과하고 얌전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실리엘, 플로라와 사제들이 기다리고 있는 일 층에 도착하자.
며칠 씻지도 못한 것같이 꼬질꼬질하고 냄새를 풍기는 중년의 여사제와 성기사들이 한쪽 구석에 안절부절못한 채 앉아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일 층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확인하자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일단 먼저 사리나와 토끼 자매에게 손님들에게 컵으로 마실 수 있는 따듯한 수프를 한잔 씩 부탁했다. 빛의 기둥 때문에 깨어있던 직원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차 한잔 마실 정도가 지나자 사제들의 손에 따듯한 수프가 담긴 컵이 하나씩 쥐어졌다. 나는 마지막 사람에게 컵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먼저 상대방에게 우릴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관주인 러셀. 그리고 여긴 제 아내들입니다.”
“여신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자애와 순결 교단의 추기경 헬로나라고 합니다.”
역시나 높은 직책 같아 보았는데 추기경이라면 성국 2인자쯤 되는 위치인 것을 알고 있기에 조금 놀라웠다. 이런 변방에서 보일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추기경님이라면 성국에서 높은 위치로 알고 있는데 여긴 어떻게?”
“시, 시트라를 만나러 왔습니다. 시트라는 제 딸, 딸아이 같은 존재거든요.”
‘양녀 그런 건가?’
결혼하지 못하는 사제나 내시 같은 부류들은 양녀나 양부를 맺어 가문을 이어가는 예도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했다.
그리고 시트라가 깨어나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일단 그녀의 신분과 시트라의 양모로 추정되는 인물을 정중히 대하기로 했다. 갑자기 들이닥쳐 내방까지 들어온 것은, 조금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이해해주기로 했다.
원래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접하면 사람은 당황하게 되니까 말이다. 누가 오밤중에 빛의 기둥이 쏟아져 내릴 거라 상상이나 했겠느냐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도 있었다. 추기경이라면 교단의 높은 분이니 아는 것도 많을 것이고, 지금 현상을 설명해줄 건 그녀뿐이니 말이다.
“아,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좀 전에 시트라가 성녀가 되었다고?”
“예! 예 그렇습니다. 성녀! 교단의 축복 교단의 경사입니다!”
내 질문에 불안. 초조한 얼굴에서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기뻐하는 추기경.
나는 궁금함에 그녀에게 물었다.
“어? 그런데 성녀는 신성력 가진 순결한 처녀만 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신성력을 모두 잃은 오전의 일과 시트라는 이제 처녀도 아니었기 때문에 성녀가 된었다는 말을 결코 믿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묻자. 그녀가 황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그, 그게 무슨.”
내 질문에 급하게 당황하는 추기경.
그때 시트라와 함께 생활하던 두 사제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내 말에 오해의 소지를 막기라도 하겠다는 듯 급하게 추기경에게 설명했다.
“시, 시트라님이 어제 갑자기 신성력을 잃으셨었거든요. 러, 러셀님이랑 키스를 한번 했다는데 그것으로….”
“시, 신성력을 말입니까? 아니, 시. 시트라가 러셀님과 키, 키스했다고요?”
추기경의 당황한 얼굴. 하지만 그녀는 높은 위치의 사제답게 금방 감정을 숨기더니 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키, 키스만으로 신성력이 사라지다니 말도 안 됩니다! 저희 교단에서 저 모르게 연애하는 사제들도 제법 있고 그들도 직접적인 성행위만 하지 않는 것뿐이지 다른 것들은 많이 한다고 보고받고 있거든요. 그런데 키스했다고 신성력이 사라졌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입니다.”
추기경에 입에서 흘러나온 엄청난 이야기. 당황해서 그런지 교단의 비밀을 마구 폭로하고 계셨다.
나는 그들이 한다는 다른 것들이 조금, 아주 조금 궁금해졌고. 아내들은 사제들의 비밀을 주워듣고는 경악했다.
사제들의 비밀 연애 이야기가 그녀들에게는 충격인 것 같았다.
아내들과 다르게 내가 사제들의 이야기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이유는, 전생에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아내들보다 조금 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서도 수도원 수리 중에 땅을 파보니 어린이 시체들이 나오기도 했다거나. 원래 고아원 이라는 것이, 사제들이 몰래 가진 아이들을 키워주기 위해 생겼다는 소리도 인터넷이나 책 따위에서 몇 번 본적도 있으니까. 아내들보다 조금 익숙하달까?
신에게 헌신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더라도 열병같이 찾아오는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뭐, 사제들이 즐기기 위해서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아내들의 표정에 전생의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을 때 시트라와 생활하던 한 사제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저희도 키스만으로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사라진 모습을 보니 믿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하지만 추기경님 말씀대로라면, 성녀가 되는 데 전혀 문제는 없겠네요. 그, 그렇죠 러셀님? 시트라님은 순결한 처녀가 맞으니까요. 그렇죠?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서, 설마? 아, 아닌? 아니게 된?”
사제가 어색하게 웃으며 묻다가 내 표정과 아까 방안의 광경을 떠올리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자기의 입을 가리고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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