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234. 교단의 위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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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알다시피 완전 공개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엘프님에 관한 내용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은 라페스빌 국왕께서도 당연히 아시겠지요?”
라페스빌도 당연히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비밀을 공개하더라도 그분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만한 사실만을 알려야겠지요.”
둘은 서로의 말에 생각이 일치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사고 칠만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비밀을 공개하는데, 둘의 의견이 일치했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러셀의 말대로 성국과, 북부 다섯 왕국, 그리고 이들이 끌어들인 여러 나라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를 표했기에, 양지에서 대놓고 누군가 침범하지 못할 것은 자명했지만, 이번의 암살자들같이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전부 막기란 불가능한 일.
이번 암살자들만 해도 경고를 무시하고 감히 마을까지 침입해 높은 엘프님의 가족을 상처입히기까지 했다지 않은가.
그러니 귀족들의 반발도 잠재우고, 양지든 음지든 결코 감히 넘보지 못할 무슨 방법이 필요던 것이다.
“병력을 주둔시킬 수도 없는 일이고….”
“뭔가 사람들은 절대 접근하지 못할 뭐 그런 것이 없을까요?”
“마계의 문이라도 열렸다고…”
“그러면 대륙에서도 큰일이라 다른 나라에서도 난리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고민해보던 둘 중 전쟁의 교단 추기경의 입에서 넋두리하듯 흘러나온 말.
“뭐 용이라도 산다고 해야 하나?”
그 말에 라페스빌의 머릿속에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중간 대륙에 사는 이들에게 뿌리박힌 공포는 무엇인가? 용, 용이었다. 동, 서, 남, 북 경계 끝에서 가끔 나타나 재앙을 만들고 사라지는 존재.
수십 또는 수백 년에 한 번 나타나지만 나타나면 중간 대륙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존재.
지능이 있어 대화도 가능하지만, 고고하고 도도한 그들과의 정상적인 대화는 거의 불가능. 모든 생물을 자기들의 발아래로 보는 거대한 재앙. 용.
“그, 그겁니다!”
“뭐가 그거란 말입니까?”
“용 말입니다. 용! 은밀히 사람들에게 용이 산다고 알리는 겁니다. 의구심을 품는 놈은 직접 가서 확인하라고 하면 되는 것이지요!”
라페스빌은 용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생각했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처음 성국에서 비밀로 하려고 했던 일은, 어쩌다 보니 자신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제는 또 다른 상황이 되었다.
엘프님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아니, 우리가 그분에게서 안전하여지려면 어느 정도 다른 이들에게도 비밀을 알려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용만큼 강한 엘프가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는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높은 엘프님이 소통이 가능한 종족이라는 사실과 그 빼어난 미모 때문이다.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그렇기에 그분을 회유하려거나 자기의 편에 끌어들이려거나 하는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그분이 분노하실 수도 있고, 더군다나 엘프에 대한 기존의 틀에 박힌 생각과 그분의 미모로 인해 찾아올 난장판까지 고려하면, 완전한 공개는 절대 불가능.
그분의 강함을 알리면서도 그분이 아름다운 엘프라는 사실은 숨겨야 했다. 알려야 하는 것은 누구라도 겁내고 두려워할 만한 것.
그것이 용이었다.
성국에서는 그녀를 용의 무력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견해를 내보였다. 그러니 그녀에게 용의 가죽을 씌우는 것. 무력은 비슷하지만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고 재앙처럼 움직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과 말이 통하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느낌이니 말이다.
무례한 놈들이 넘을 수 있는 선의 기준이 다른 것.
까불면 뱃속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온순한 종족인 엘프는 느낌이 전혀 다르니까 말이다.
라페스빌 자신이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괜찮은 생각.
뭐 솔직히 용 같은 엘프라고 했으니. ‘용 같은 엘프’에서 ‘같은 엘프’만 뺀 내용이니 딱히 거짓말도 아니고 말이다.
러셀님에게 기르시는 고양이의 표기를 도마뱀으로 바꿔야 한다고 알려야 했지만, 선물 좀 들고 찾아가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라페스빌이었다.
귀족들도 자신들이 관계된 놈들이 용이 자리 잡은 곳에 침입해, 둥지를 튼 용이 노해 근처에 마을을 몇 개 불살랐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으면 입을 꾹 닫을 테고 말이다.
믿지 못하는 귀족은 성국에서 확인시켜주면 되니 나쁘지 않았다.
한참 생각을 정리할 때 전쟁의 신의 추기경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용이 산다는 말에 용을 구경하겠다고 몰려들 미친놈들은 당연히 없겠지요?”
“어느 미친놈이 용이 산다는데 거길 구경하러 찾아가겠습니까? 용이 직접 찾아가면 모를까?”
“하하하, 용이 직접 찾아간다? 재미있는 농담이군요.”
라페스빌은 생각했다. 용도 잡을 엘프와 용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궁금한 일이긴 했다. 중간 대륙의 재앙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둘의 대화가 끝나고 라페스빌은 은밀히 항의하는 귀족들과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퍼트렸다.
항의 하던 귀족들은 늪지대에 용이 자리를 잡았다는 말에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으나 성국에서 라페스빌의 말을 보증하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성국이 거짓을 말할 리 없으니 완벽한 보증이었다.
라페스빌이 퍼트린 소문이 귀족과 민가에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탐욕에 빠진 범죄자들이 남부 늪지대에 둥지를 튼 용의 영역에 침입해 용을 화나게 했다. 탐욕으로 물든 놈들이 용의 보물을 노리다가 용이 화나는 바람에 국왕이 직접 가서 목숨을 걸고 용에게 사죄했다더라. 용에게 보물을 바치고 간신히 분노를 잠재웠다더라.’
물론 약간 라페스빌을 영웅시하는 내용을 추가한 것은 덤이었다.
헬로나는 기사의 보고를 듣고 성국에 바로 연락을 넣었다. 원래 남부 늪지대에 높은 엘프가 사는 것은 기밀. 그러나 엘프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니지만, 용이 산다는 이상한 소문이 남부 왕국을 휩쓸고 있으니 사실 확인을 하기로 한 것.
“헬로나 추기경!”
“대체 며칠씩이나 연락이 안 되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간 얼마나 큰일이 있었는데!”
전쟁의 신의 추기경이 노한 목소리로 통신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신탁이 내려온 상황이라.”
“시, 신탁 말입니까? 허어! 자애와 순결 교단에 이 무슨 경사가 계속…. 추, 축하드립니다!”
신탁이 내려왔다는 말에 노했던 전쟁의 추기경은 급하게 표정을 바꾸고 헬로나를 축하했다.
그리고 헬로나는 그를 통해서 지금 그란 올의 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란의 현장이 벌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늪지대에 용이 사는 것으로, 일단 발표가 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은 어디로?”
“웜 포트로 향하는 길입니다. 신탁 때문에…”
“저, 저런 신탁의 내용이 설마!”
신탁의 내용은 그냥 두라는 것이었지만, 굳이 찾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기에 대충 둘러댄 헬로나는 통신을 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평소 같으면 라페스빌 왕을 찾아가 인사도 나누고 군중들 앞에서 직접 더러운 놈들을 태워주기도 했겠지만. 헬로나는 조용히 마차를 구해 바로 웜 포트와 가깝다는 그란 폴로 향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시트라 생각뿐.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란 폴로 향하는 마차 안. 헬로나 추기경은 머릿속에 가득한 번민을 몰아내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로자리오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시트라의 생각과 함께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한 단어가 계속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늦었다.’
자꾸만 늦었다는 신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던 것이었다.
‘무엇이 늦었다는 것일까?’
자신이 자신에게 계속 묻는 말. 절대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다. 여신에게서 신탁이 내려진 후 머릿속에서 떠오른 그것의 의미는 지금까지 계속 한가지였으니 말이다.
최악의 상황.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몸에서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헬로나는 머리와 몸을 떨듯 털었다.
머릿속에 계속 비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성녀 후보라고 하시더니…. 아! 성녀가 맞긴 맞는군요. 성녀(??)라 그렇지. 호호호”
사랑과 생명의 교단 추기경이 할 비웃음이 귓가에 선했다.
평원에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이 나부끼며 쏴아 거리는 소리가. 다행스럽게 헬로나의 귓가에 들려오는 비웃음을 빠르게 지워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마차 속에서 멍한 정신으로 그란 폴로 이동하는데 상급 성기사 중 하나가 헬로나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을 알고 있는 측근.
“그런데 예하, 시트라의 상대는 누구랍니까?”
시트라가 사랑에 빠진 남자가 누구냐는 질문.
그러고 보니 정기 보고 때 시트라가 결혼하고 싶다는 사실을 알려왔을 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상대가 누구인지도 묻지 못했었다.
헬로나가 마치 생각 못했다는 놀란 얼굴로 성기사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직도 자신이 생각하는 상황보다 더 최악이 남아있던 것이었다.
‘높은 엘프의 가족이 된 것이라면?’
자신의 불안함을 더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성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그분은 아니겠지요? 아내가 셋이나 있다는데… 더군다나 그 높은 엘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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