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화 〉 233. 교단의 위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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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세계에서 전생했다는 거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구나.’
시트라의 일까지 다 정리되면 다 모아두고 아내 의회를 한번 다시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 사이에는 신뢰가 중요한데, 나 혼자 뭔가를 꼭꼭 숨기고 있는 상황.
지금 당장은 미안하지만, 발레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발레리 그건 내가 나중에 따로 말해줄게. 이야기하려면 길어. 알았지?”
“네, 알겠어요. 러셀”
불편한 마음을 한편에 밀어두고 장 만들기를 이어갔다.
준비해둔 커다란 토기에 염도 맞춘 소금물을 집어넣고 메주를 안에 넣어줬다. 그리고 혹시 나쁜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게 숯 몇 조각 띄워주면 모든 과정은 끝.
그리고 혹시 메주가 떠오르지 않게, 나뭇가지를 토기 안에 걸쳐 메주를 떠오르지 못하게 눌러주면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
“자, 이게 끝이야.”
“뭔가 엄청 쉬워요!”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군요?”
다들 쉽다고 생각했는지. 어렵지 않은 과정에 이 정도면 자신들도 할만하다는 표정이 가득하였다.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처음 보는 거라 일을 거드는 정도인데, 이 정도면 자신들도 다음번에는 거뜬하게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표정.
“그렇지 대신 이제 30일 정도 기다려야 해. 발레리가 날짜를 확인해주고. 35일째 되는 날 나에게 알려줘야 해 알았지?”
“네, 러셀.”
모든 과정이 끝나고 준비해둔 성긴 리넨 천으로 뚜껑을 덮어주고 혹시 벌레가 들어가지 못하게 테두리를 감아준다.
여관 뒤뜰 볕이 잘 들어오는 곳에 위치시킨 큰 항아리 다섯 개. 이제 시간을 두고 잘 익어갈 것이다. 다만 수고스러운 과정이 남아있다.
“그리고 넷이 한 달 동안 신경 써야 할 것이 있어.”
“뭔가요 그게?”
“뭔데요?”
“자기 그게 뭔데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어오는 아내들. 그래, 그냥 인정하니까 세상이 천국이구나. 아내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이걸. 아침에 이슬이 다 내리고 해가 뜨면 항아리 뚜껑을 열어주고, 밤에는 닫아주고 해야 해. 그건 넷에게 맡겨둘게. 알았지?”
나의 맡긴다는 말에 장어통발 순번처럼 아내들 사이에 뭔가 순번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관의 평화로운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시트라를 만나기 위해 아베느 왕국의 수도 그란 올에 도착한 헬로나와 성기사들은 도착하자마자 당황함에 휩싸였다. 그란 올 방문이 처음인 헬로나가 이곳 출신인 성기사를 바라보자 그녀도 놀라서 어안이벙벙한 표정이었다.
아베느 왕국의 수도 그란 올은 이명이 ‘황금의 도시’ 도시 밖에 펼쳐진 황금의 물결이 아름다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아주 목가적인 왕국의 도시인데.
그런 목가적 도시의 광장 한복판에 뭔가 기이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광장에 펼쳐진 것은 뭐랄까? 광란? 광분?
산채로 불타오르는 죄인들. 비명 그리고 군중들의 성난 외침. 수도 주민 대부분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죽여라! 쓰레기들을 죽여라!”
“감히! 온 왕국민들을 다 죽이려 한 놈들을 다 죽여라!”
“모두 죽여라!”
도시 광장은 그야말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군중들의 분노한 감정으로 뜨겁게 끓어오르는 광장. 광분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상황.
헬로나나 성기사들이 광장에 도착했음에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불타오르는 죄인을 향해 성나 소리치는 군중들.
타오르는 죄인들의 죄목을 적은 판자에는 도둑질이라고 적혀있었으나 군중들이 도둑에게 내보일 감정으로 봐서는 그것이 절대 아니었다.
헬로나가 턱짓하자 성기사 하나가 군중 틈에 낀 한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엇! 누, 누가? 서, 성기사님?”
성기사의 복장을 보고 성기사임을 알아챈 남자가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내 여기 지금 막 도착해서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저놈들이 왕국의 모든 국민을 다 팔아먹으려 했습니다. 아니,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말이죠.”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남자는 아주 분노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은밀하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몸을 숙이더니 성기사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이건 비밀인데 말입니다. 아니, 저 미친놈들이 남부 늪지대에 자리 잡은 용의 둥지에 침입해 용을 화나게 했다지 뭡니까.]
[요, 용 말인가?]
남자의 대답에 놀란 성기사가 재빠르게 헬로나에게로 달려갔다.
헬로나가 삼 일간 여신에게 응답을 바라며 부르짖고 있을 때.
라페스빌은 부엉이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휘하의 기사단과 수도의 사병들을 움직여 뒷골목, 술집, 여관, 하수구, 빈민가까지 모두 들쑤시며 암살 길드 관계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무고한 사람들도 잡혀들어갔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대부분 범죄자이긴 했으니. 만약 아니라 해도 이제부터 범죄자가 될 것이니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라페스빌의 과격한 움직임에, 귀족들이 조금씩 반발하기 시작했다. 원래 모든 이권에는 귀족들이 엮여있기 마련이고, 암살 길드에도 연관된 귀족들이 제법 있어 관련자를 잡아들이다 보니 귀족가와 연결된 자들을 여럿 잡아들이게 된 것.
그렇게 감옥에 잡아들이는 암살 길드 관계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귀족가에 관련된 자들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 늘어나는 귀족들의 원성.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려주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엘프님이 남쪽에 계신 사실을 공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먼저 높은 엘프님이 그곳에 계신 것을 성국에서 비밀로 하고 있기도 했지만, 중부 대륙인들 사이에 알려진 엘프들에 관한 편견.
육체적으로 그다지 강하지는 못하지만, 미모가 빼어난 종족.
엘프 중 엘프인 높은 엘프가 남부 대늪지에 머물고 계신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것은 인세에 다시 없을 미인이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
‘그냥 엘프도 아름다운데 높은 엘프라면 그 미모가 얼마나 드높을 것인가?’라는 자연스러운 물음에 도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늪지대에 높은 엘프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철없는 귀족가 자식들이나 모험가들이 아름다운 엘프를 보겠다고 기웃거릴 상황이 눈에 선했다. 그 과정에서 철없고 무뢰한 새끼들이 사고를 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귀족이라는 특권과 젊음이라는 단어는 가끔 상상 못 할 짓을 저지르게 하니 말이다. 놈들이 몰려들어 쳐댈 사고를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아찔했다.
그리고 그분이 무섭다는 사실을 알려줘도. 코웃음 칠 것이 뻔하기도 했다.
육체적 능력이 부족해 활을 쓰는 종족이 엘프라는 종족이었고 그들의 궁술이나 정령술이 대단하긴 하지만, 갑옷을 입고 돌격하는 기사에게 안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높은 엘프님과 그분이 있는 곳에서 본 몇몇 엘프는 그가 아는 엘프들과는 전혀 다른 종족으로 보일 정도. 남부나 서부, 동부에 흩어져 사는 다른 엘프들과 그분들의 차이는 집에서 기르는 개와 늑대 이상의 차이이지만, 그건 직접 만나 보았을 때 일이니. 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뻔했다.
자신도 그분들을 만나 떨어지는 벼락과 발바닥과 정신에 깊이 남은 통증을 느끼지 못했으면 의심하고 남았을 상황.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라페스빌은 귀족들의 원성을 잠재우고 이번 일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 성국으로 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분이 화가 많이 나셨다는데, 저희 쪽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암살 길드의 흔적을 쫓아 남부를 휘몰아치실지도 모르는 일. 먼저 나서서 관련자들을 색출하고 다 잡아들였는데, 국내 귀족의 반발이 너무 큽니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라페스빌이 수정구로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은 성국의 모든 군권을 담당하는 전쟁의 신전 소속 추기경. 위급한 상황을 알렸는데 뜻밖에 수정구에 등장한 것이 그였다.
그는 보통 군사 작전이 필요한 일에나 등장하는 사람인데 설마 하며 그와 대화를 시작하자. 역시나 그는 예상대로의 제안을 해왔다.
“아주 일을 잘 해주셨는데, 왕국이 난처하게 되신 것이로군요. 신전기사단이라도 보내 불신한 것들을 모두 이단으로 몰아 깡그리 신들의 품으로 보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더러운 일에 손댄 자들 아니겠습니까?”
신전기사단이라는 것은 성국의 통합 무력 단체. 그냥 싹 쓸어버리겠다는 이야기.
전쟁의 신전 소속 사제답게 뭔가 과격한 수단을 동원하려 보이는 추기경. 라페스빌은 아찔해 지는 정신으로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보다 펴, 평화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방법이 말입니다.”
과격한 추기경을 달래듯 라페스빌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엘프, 이종족 보호구역이라는 말에 노예 상인 같은 구린 놈들이 몰려들 것도 뻔한 일. 놈들이 아예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사실을 공개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꾸 비밀로 하니 일이 더 꼬여가는 듯한 느낌에 라페스빌은 조심스레 공개의견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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