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35화 (235/352)

〈 235화 〉 232. 교단의 위기 4

* * *

신성력이 모두 빠져나간 탈력감 때문인지 내 품 안에서 잠이든 시트라를 침대에 눕혀두고 이불을 잘 덮어준 후 밖으로 나오자. 문을 닫기도 전에 두 사제가 즐거운 안색으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성력에 민감한 사제들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들 눈치챈 얼굴. 시트라의 속마음을 알게 해준 사제가 내 얼굴을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시트라님이 선택한 일이니 너무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 없습니다.”

“맞아요. 어차피 예정되어있던 일이니까요. 그나저나 시트라님도 용감하시네요. 저희가 처녀는 지키면서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상당히 다양하게 일러드렸는데. 그냥 처음부터 처녀를 내던지시다니. 어머, 용감해라.”

“아무래도 거긴 처음부터 좀 힘들 수도 있고. 처녀이니 아무 생각도 안 났을지도… 후훗.”

뭔가 큰 오해를 하고 계신 듯한 대화. 나는 급하게 진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오, 오해인 것 같은데 단순히 키, 키스 정도밖에 안 했는데요?”

내 오해를 풀기 위한 말에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두 사제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치 다 아는데 어디서 감히 거짓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

“아니, 러셀님 저희가 바보도 아니고, 무슨 키스만으로 신성력이….”

“그래, 꺾을 수 없는 꽃을 땄으니 두렵기도 하겠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성국에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나의 개 억울한 표정과 옷차림 그리고 방안을 살짝 흘깃 살피더니. 사제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아무리 교단이 달라도 그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진짜 고작 키스만으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혀를 내두르는 두 사제.

“맙소사!”

두 사제는 정말 안타까운 표정이 되었다.

“어쩌죠?”

신성력을 모두 잃었는데 신전에 놔두기도 그렇고. 잠이든 시트라를 두고 나오긴 했는데 그냥 가버리는 건 절대 아닌 것 같아 둘에게 물은 것이었다. 잠이 들어 자리를 피해주긴 했지만, 두고 가면 왠지 절대 안 될 것 같은 느낌.

사제들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러셀 씨 며칠은 꼭 붙어있어 주실 수 없나요? 신성력 잃은 건 마음에 상실감이 커서 누가 옆에서 꼭 붙어있어야 할 텐데요. 러셀 씨면 당연히 더 좋을 텐데.”

“여관 일 때문에 마냥 신전에 제가 붙어있을 수도 없어서….”

“그럼 그냥 지금 여관으로 데려다가 러셀 씨, 방에서 며칠…. 러셀 씨의 다른 아내들이 싫어하려나?”

나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아무래도 내 방에라도 데려다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둘의 조언을 받아들여 시트라 씨를 이불에 감아 등에 업었다.

다치고 배고픈 양은 집안으로 받아들여 돌봐야 한다는 아내들의 이타심을 믿어보기로 한 것.

탈력감이 심한지 잠에 빠진 시트라 씨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사제 한 분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업어 여관으로 향했다. 수리아를 업고 올 때와 같은 기시감이 드는 상황. 기구한 운명에 한탄하며 이불로 돌돌 만 시트라를 업고 절룩거리면서 여관으로 향하니 멀리서 빨래를 널던 사리나가 내 모습을 확인했는지 재빠르게 달려와 말했다.

“주인님 제가 업겠습니다. 이리 주시죠.”

“아니, 그냥 부축만 좀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주인님.”

사리나가 널던 빨래를 버리고 오자 같이 빨래를 널던 올빼미가 세탁한 시트에 휘감겨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들어왔지만,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여관으로 들어섰다.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여관으로 다시금 누군가를 업고 들어서자 시끄러웠던 여관이 삽시간에 조용해지고 모두 무슨 일인지 놀라 다 같이 몰려들었다. 나는 먼저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해 사람들의 입을 막고 천천히 3층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가요 러셀?]

[자기, 무슨 일이에요?]

하지만 여관의 안주인 이실리엘과 여관의 감초 플로라는 잽싸게 다가와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좀 있다가 이야기해줄 게 일단 3층으로.]

나는 일단 시트라를 내 방까지 데려간 후. 내 침대에 조용히 눕히고 방에서 나왔다. 밖에 나오자 아내들이 몰려들어 무슨 일인지 궁금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상황. 수리아도 토끼 수인의 도움을 받아 복도에 나와 있었다.

나는 일단 모두 수리아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에게 말했다.

“……그렇게 된 거야.”

“아니, 아무리 순결의 교단이라도 키스에 신성력을 싸그리 거둬가다뇨!”

가장 분노하는 것은 수리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냐며 황당해했다. 다른 아내들도 어처구니없는 얼굴.

“신성력도 다 잃었는데 신전에 두기도 뭐하고, 그냥 놔둘 수도 없어서 일단 데려왔어. 며칠만 내방에 좀 두고 돌봐야 할 것 같아서. 당분간 내가 바쁠 때는 다른 사람이 꼭 붙어서 돌봐주자. 알았지?”

“알겠어요. 러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가족이잖아요?”

그리고 이실리엘이 단호한 표정으로 좌중을 향해 선언했다.

“일단 러셀의 방에는 열흘 동안 밤에는 출입 금지입니다.”

시무룩해지는 아내들의 얼굴. 그때 플로라와 수리아가 조용히 물었다.

“이실리엘님 저희는 아직 한 번도 밤에…”

“어머, 그렇군요. 수리아는 몸이 다 나으면, 그리고 플로라는 조속히 날을 잡아보도록 하죠.”

이실리엘의 말에 수리아는 시무룩 플로라는 신이나 내 팔에 매달렸다. 첫째 아내로서 이실리엘의 위엄은 대단한 것 같았다.

침대에 시트라를 재워둔 오후는 평원에서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맑은 날이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불편할 때는 요리를 하는 것이 제일. 암살자들이 습격해오고, 놈들을 혼내주고, 새 여급이 늘어나고, 마을과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지상의 소란에도 아무런 영향 없는 여관 지하의 창고 깊숙한 곳, 지상의 모진 풍파에 아랑곳없는 그곳에서는 아내들과 만들어둔 메주가 때깔 좋게 발효되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메주 하나를 반으로 가르자 안에 보이는 곱고 흰 곰팡이.

“러셀, 다된 건가요?”

“응 발효가 아주 잘 된 것 같아.”

“발효가 뭔가요?”

나는 이실리엘에게 발효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많은 종족이 술이나 치즈, 빵을 만들 때 발효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기는 딱히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그냥 빵 반죽이 잘 부풀었네요. 술이 잘 익었네요.’ 하는 정도. 나도 발효라고 표현했지만 이게 전생의 지식을 이쪽의 언어로 표현한 거라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고.

그렇기에 이실리엘이 알아듣기 편하게 최대한 쉽게.

“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거랑 비슷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들이 맛있는 음식이 되게 해주는 거야.”

“아, 근데. 러셀, 메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뭔가 쿰쿰한”

“자기, 이거 냄새 너무 이상해요. 치즈보다 더 독한 것 같애.”

이실리엘과 플로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기겁했다.

설명은 별로 관심 없고 냄새에만 기겁하는 느낌. 서양사람들이 된장찌개 냄새 처음 맡으면 기겁한다던데 그런 느낌일까?

인상 쓰는 이실리엘과, 리젤다, 발레리, 플로라까지 나서 메주를 밖으로 다 꺼내고 여관 뒤뜰로 향했다.

된장이나 간장은 생각보다 아주 만들기 쉬운 음식.

먼저 메주의 겉을 씻어서 한번 말린다. 표면의 먼지를 제거하기 위한 것. 박박 미는 것이 아니라 표면만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소금물 준비.

“자, 봐봐 이렇게 소금을 풀고 새알을 띄우는 거야. 소금물이 적당히 짜면, 물 위에 뜬 새알의 표면이 동화 크기만 하게 되거든? 그러면 준비 끝.”

“러셀, 신기해요. 새알이 소금을 많이 넣으면 많이 뜨고 적게 넣으면 적게 뜨는군요?”

소금물을 푼 토기에 모여든 아내들이 떠오르는 새알을 보고 신기해하고 있었다. 된장은 염도가 중요한데 염도계가 없으니 전통 방식으로 하는 것. 염도가 너무 낮으면 부패 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높으면 장이 너무 짜진다.

“그런데 러셀 토기에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호기심 많은 발레리의 질문. 발레리는 내가 꼭 토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벌써 예전에 토기를 잔뜩 사다 두었는데 아마 그게 생각난 것 같았다.

이곳은 항아리가 없기에 장을 담기 위해서 토기를 준비해놨다.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항아리 같은 느낌의 용기인데 여러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가정에서 포도주를 담그기도 하고 물독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장은 술이 익는 것처럼, 익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때 공기가 필요해. 그러니까 우리가 숨 쉴 때 들이쉬는 것처럼 얘들도 숨을 쉬어야 하는 거지 그래서 토기가 필요하거든.”

“그렇지만 토기는 숨 쉬는 구멍이 없는걸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구멍이 있어.”

“지, 진짜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이라니… 그런데 러셀은 그 구멍을 어떻게 본 거죠?”

발레리의 질문에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익숙한 대화 패턴.

“엄마 아기는 어떻게 생기죠?”

“엄마랑 아빠랑 사랑하면….”

“엄마랑 아빠랑 사랑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크면 다 알게 된다고 할 수도 없고…’

발레리가 아내 중에 제일 ‘크’니까 말이다. 전생했다는 사실을 말 안 하고 있으니 가끔 이렇게 꼬이는 대화. 전생에 대한 고백의 필요성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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