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34화 (234/352)

〈 234화 〉 231. 교단의 위기 3

* * *

자신을 위해 바쳐진 신전에서 자신을 섬기는 사제들이 모두 모여들어 기도하는 소리에 자애와 순결의 여신이 감동하기라도 했는지. 믿을 수 없게 사흘 만에 신탁이 내려왔다.

신탁이란 글 또는 신이 인간의 육체에 깃들어 언어로 신의 뜻을 전하는 것.

이번에는 글이었다.

인간의 육체에 깃드는 것은 성녀 정도나 되어야 하는 일이니 어쩌면 글이라는 수단으로 신탁이 내려온 것은 당연한 일이나. 신탁 자체가 수십, 수백 년에 한 번 정도로 희귀한 일이니 헬로나는 기절할 듯 놀라고 말았다.

신탁이라는 게 기도한다고 무조건 내려오는 것이 결코 아닌데 신탁을 내려주시다니! 자신의 애절한 부르짖음이 신에게 닿았다는 사실에 헬로나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쏟아내며 감격에 벅차 부르짖었다.

“어머니!”

‘눈물로 기도하긴 했는데 진짜 신탁이라니!’

그것도 신탁받기 위해 따로 성대한 무엇을 준비한 것도 아닌데, 꿇어 엎드려 기도하는 헬로나의 추기경복 등에 빛이 쏟아져 내리더니 여신이 내린 글자가 새겨진 것이었다.

이제 이 옷은 영원히 성물이 될 것이고 그 성물이 알려질 때 자신의 이름도 알려질 것이다.

영광! 영광이었다. 자신이 입은 누추한 옷에 직접 글을 내리시다니. 헬로나는 믿을 수 없어 겉옷을 벗어 신상 아래 조심스레 펼치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보통 여신의 신탁은 음유시인의 시처럼 은유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 해석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성서해석에 뛰어난 사제들과 원로 추기경들의 도움을 받아야 뜻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지만, 벅찬 마음에 일단 내려진 신탁을 확인하려는데, 천천히 옷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알아보기 쉬운 중부대륙 공통어.

신탁에 사용되는 신들의 고귀한 문자인 신문(?文) 아니고 중부대륙 공통어?

‘오해하지 말라고 해석까지 해서 내려주셨단 말인가?!’

영광되고 감사한 마음으로 헬로나가 천천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니.

.

처음에는 잠깐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 문장부터 뭔가 때를 놓쳐버렸다는 그런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 문장도 뭔가 조금 짜증 나는듯한 느낌.

원래 신탁이라는 게, 신이 내릴 때의 감정이 묻어 나오는 것이라 읽은 것만으로 신의 감정의 편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데, 이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뭐랄까? 짜증과 귀찮음?

신탁이라고는 믿기 힘든 감정.

느껴지는 감정만으로는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좀 놔둬라.’ 같은 느낌.

“어, 어머니?”

감격에 찬 부르짖음은 바로 의문이 되었다.

하지만 헬로나는 화들짝 놀라 불손한 감정에서 빠져나와 급하게 말씀을 이해하려고 해봤다. 아마 미천한 자신이 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걸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되새겨보는 첫 문장.

‘느, 늦었었다니 무엇이 늦었다는 말씀이시지?’

당황스러운 신탁의 내용에 처음에 무슨 기도를 했던지 까먹었다가 헬로나가 급하게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를 떠올리고는 신탁이 새겨진 옷을 손에 들고 경악했다.

몇 년 전 중급 사제가 인큐버스에게 순결을 빼앗겼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놀라지 않았는데!

자신이 했던 기도의 내용이 떠오르고. 이어서 신탁의 내용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딸인 시트라가 순결을 버리고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어찌하옵니까?’

‘이미 늦었으니. 하게 두라.’

신탁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헬로나의 입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 설마!”

신탁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는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결코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헬로나는 사방으로 소리쳤다.

“아베느 왕국으로 갈 것이다! 마법사를 불러들여 마법 문을 준비하라 하거라!”

놀란 사제들이 사방으로 마법사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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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르릅

­츕

상황이 정리되어 안심하는 마음으로 입술을 떼려는데, 그녀는 나를 부둥켜안고 간절하게 입술에 매달려왔다. 하지만 처녀답게 입술만 딱 붙인 채 어쩔 줄 모르는 상황.

그녀를 제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을 뿐이었으나 상황이 이러면 호응해 주는 것도 도리.

내가 천천히 그녀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자. 키스에 감겼던 그녀의 두 눈이 부릅떠지더니 시트라가 화살에 맞은 짐승처럼 몸을 떨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감기는 눈.

­츄릅 츄르릅

향긋한 꽃내음 속에서의 긴 키스.

그렇게 키스를 이어가던 중. 입술까지 이어진 그녀의 흉터가 입술에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어루만지듯 그것을 입술로 한참을 어루만졌다. 상처 입은 짐승의 상처 부위를 핥듯 그녀의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키스를 이어가길 한참.

­파하

입을 떼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트라.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린 모습에 나는 그녀를 품 안에 안으며 속삭였다.

“시트라, 이제부터 위험한 짓 하면 절대 안 돼. 알았지? 무슨 말인지 더 말 안 해도 알겠지?”

붉게 물든 그녀의 볼이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단심문관 출신인 그녀는 상환판단력이 남다른 것 같았다.

키스가 끝나고 한참 후.

시트라의 방. 어쩌다 보니 그녀의 침대에 누워 그녀를 팔베개해주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녀가 키스를 끝내자마자 비틀거리기 시작했기 때문.

그녀는 위험한 일은 절대 하면 안 되다는 내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고 얼마 되지도 않아. 갑자기 어두운 안색으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그녀를 부축하자 그녀의 몸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빛. 그녀의 신성력이 조금씩 흘러나와 흩어지고 있었다.

가루같이 떨어져 내리는 그녀의 신성력.

“이, 이건?”

“괘, 괜찮아요. 신성력이 조금…”

무슨 일인지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상황.

‘설마? 이거 키스만으로 처녀 탈락이라서 순결의 신성력이 사라지는 건가? 맙소사.’

키스로 처녀 탈락이라니. 처녀의 기준이 너무 빡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심기체 처녀론도 아니고 키스 탈락이라니.

아니, 심기체라도 나를 좋아한 상황에서 탈락이어야지. 그간 가만 있다가 키스 한 번에 탈락은 뭔가 이상한 기준이었다.

“서, 설마?”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시트라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 미안. 이, 이럴 줄은 몰랐는데…?”

아니, 첫날밤도 아직인데 키스만으로 신성력이 사라지는 상황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상황.

원래 그녀를 찾을 때. 내 계획은 그랬다. 먼저 그녀에게 그녀의 마음을 받아준다는 이야기를 전한 후. 기뻐하는 그녀와 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다가. 정기 보고나 특별 보고로 성국에 보고하고, 결혼 승낙받든지 아니면 결혼을 통보하든지 하는 것.

그 후에 시트라가 사제에서 물러나 여관의 아내 대열에 합류하는 것.

그런 짜임새 있는 계획이었는데, 키스 하나로 뭔가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녀의 마음은 확인했지만, 아직 성국에 어떤 허락도 받지도 못했고. 그녀에게 신성력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 시키지도 못하고, 갑작스러운 일을 맞이하게 하고 말았다.

종교인들에게 신성력이란 믿음의 상징이고 삶의 징표 그들의 삶의 흔적인데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할까.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할 때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좀 어지러운데 눕혀주시겠습니까?”

그녀의 부탁에 나는 그녀를 부축해 재빨리 침대로 향했다. 그렇게 그녀를 눕히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맞이했을 일. 괜찮습니다. 러셀님.”

어떤 기분일까. 자신이 평생을 걸쳐 쌓아 올린 신앙과 믿음의 증거가 흩어지는 기분은? 그녀가 일생을 통해 이루어 온 것들을 하찮은 나를 향해 내던지다니. 상상 못할 무거운 사랑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아까 투정 부리며 그녀가 내뱉었던 말처럼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

“시트라…”

그 와중에도 천천히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와 흩어지는 신성력. 탈력감을 느끼는지 늘어지는 시트라. 그녀가 무엇을 참지 못하겠는지 손을 뻗어 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 안아주세요.”

허탈한 감정에 나의 품을 찾는 시트라. 나는 그녀의 좁은 침대 옆에 누워 그녀를 품에 안았다. 떨리는 몸. 내 품에 안긴 상태에서도 신성력은 그녀에게서 빠르게 흘러내렸다.

상급 이상이라던 그녀의 신성력이 빠르게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시트라가 양손으로 내 목을 휘감더니 입을 맞춰왔다.

­츄릅

그리고 속삭였다.

“사, 사라진 것 대신 러, 러셀님으로 채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해가 갈만한 소지가 있는 말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감히 시도할 수는 없는 일. 나는 그녀를 품 안에 꼬옥 끌어안고 키스만 나눌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키스가 시작되자마자 졸졸 흐르던 시냇물 같이 흘러나오던 신성력은 콸콸거리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거 혀를 ‘넣었다고’ 비처녀 판정은 아니겠지?’

진짜 그런 거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대단한 것을 한 것도 아니고 고작 키스인데. 고작 키스만으로 가차 없이 주었던 것을 빼앗아 가는 치졸한 행위에 몸이 떨려왔다.

그렇게 얼마나 키스를 나누었을까?

품 안에 그녀의 향이 짖게 베고 머릿속이 그녀만으로 꽉 차오를 때. 그녀의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쥐어 짜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줄어들었다.

품속을 들여다보자 뭔가 나른한 얼굴로 기운을 잃은 그녀. 그녀의 귀 및 머리를 천천히 넘겨주며 말했다.

“시트라. 신성력이 사라져도 이제 내가 평생 지켜줄게….”

그녀가 능력을 전부 잃더라도 내가 그녀를 지킬 것이라는 고백에, 그녀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그녀의 흉터를 지나, 침대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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