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33화 (233/352)

〈 233화 〉 230. 교단의 위기 2

* * *

사제의 안내를 따라 시트라 씨의 방으로 향하는 복도.

­또각또각

몇 번 와본 적 있기에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다는데 굳이 안내를 자처하는 사제님. 그녀의 뒤를 따라 시트라 씨의 방문 앞에 다다르니. 갑자기 그녀가 뒤돌아 조용히 하라는 손동작을 취해 보였다.

[쉿!]

[옛? 그….]

‘뭐지? 혹시 지금까지 주무시나?’

­똑똑

“접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네…”

조용히 하라는 손동작에 혹시 주무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시트라 씨의 목소리. 잠시 사제님의 손동작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사제님의 손길에 방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삐그덕

시트라 씨의 방문이 열리자마자 꽃밭에 들어선 것처럼 시트라 씨의 냄새가 확 하고 문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콧속과 안면을 강타하는 향기의 향연. 향긋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냄새. 시트라 씨의 냄새. 맡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편안해지는 그 향이었다.

그렇게 향에 취하듯 사제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서니 예의 검소하고 삭막한 실내장식의 시트라 씨의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의 방이라고 할 수 없는 기본 가구로만 꾸며진 정말 기본적인 숙소. 차라리 내 여관방이 더 화려할 것 같은 모습. 검소한 시트라 씨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은 외견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꽃밭 가운데 뛰어든 것처럼 더욱 진하게 콧속으로 밀려드는 진한 백합과의 향. 그녀의 삭막한 방과 어울리지 않는 그 향 속에서 나는 시트라 씨를 찾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면 책상에 앉아계실까?’

처음에 책상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테이블?’

거기에도 시트라 씨는 없었다.

하지만 시야로 그녀를 찾겠다는 것은, 애초에 어리석은 생각. 후각은 진한 향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를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후각이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라 침대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리면서도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지금까지 침대에 누워있을 분이 아닌데 혹시 아프기라도 한 건가? 하는 걱정.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를 확인하니 시트라 씨가 어깨가 드러나는 아주 얇은 잠옷 한 장만 입은 채 침대에 벽을 보고 살짝 웅크린 채 돌아누워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불은 배만 살짝 덮은 상태.

그녀의 흰 목덜미와 드러난 어깨, 부드럽게 보이는 발, 그러고 귀여운 발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흘러내려 반짝이는 은발은 덤.

드러난 허리와 엉덩이의 굴곡이 침을 꿀꺽 삼키게 했다.

­꿀꺽

모든 모습이 시야에 명확하게 들어오고 나서야 반응하는 뇌.

자애와 순결 교단의 사제가 속옷만 입고 있는 입은 모습을 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 아무리 날 좋아하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 그녀에게 받아들인다는 말은 전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뒤늦게 화들짝 놀라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사제가 내 팔목을 붙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왜? 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

눈빛으로 대체 왜 그러냐는 신호를 보내자. 그녀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시트라 씨를 향해 말을 시작했다.

“시트라님 인제 그만 기운 차리세요. 수리아 왕녀를 돌보고 오면 침대에서 일어나질 않으시니… 그렇게 속상하신가요?”

“수리아 왕녀가 자꾸 자신이 이긴 듯한 표정으로 저만 보면 실실 웃어대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속상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 그런 시트라 씨의 말에 나를 보고 싱긋 웃는 사제님.

요즘도 시트라 씨는 매일 수리아의 몸을 돌보는 중이다. 큰 부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지라 충분한 치료와 휴식이 필요했기에, 시트라 씨가 매일 들러 수리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신성력을 불어넣어 주는 중인데, 은혜를 갚아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그런 유치한 도발을 감행하다니!

이런 상황에 도발을 거는 수리아나 그걸 또 걸려서 속상해하는 시트라 씨나 애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친해서 그런 거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또 유치한 도발에 걸려 손을 부들부들 떠는 시트라 씨의 뒷모습을 보니 이게…

‘귀, 귀엽네?’

질투하는 시트라 씨의 귀여움에 빠져들고 있을 때 사제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저런,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아뇨, 저를 놀리는 게 확실합니다!”

절대 아니라는 목소리로 시근거리는 시트라 씨. 하긴 내가 생각해도 놀리게 맞긴 해.

“저런 저런 그래서 화가 나서 그렇게 누워계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냥 처음에는 수리아 왕녀가 얄미웠는데, 생각해보니 러셀님에게도 너무 서운합니다. 저는 그분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온종일 그분 생각에 바보가 되어 버린 기분인데… 수리아의 마음만 받아주시고…”

그녀가 서운함으로 이불을 풀썩댈 때마다 달콤한 향을 풀풀 풍기는 그녀의 육체의 향과 온종일 내 생각만 한다는 말에 방안이 후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이렉트 고백이 바로 앞에서 박힌 가슴에서는 뛰는 심장의 고동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 뛰는 소리가 귓속을 한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사제님을 바라보자 더욱 진해진 미소.

“그리고, 자꾸 러셀님이 수리아 왕녀는 받아주시고 저를 받아주시지 않는 게. 얼굴 때문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꾸 듭니다.”

얼굴의 큰 상처는 그녀의 최대 콤플렉스. 몇 번이나 언급했으니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기도 하고 요즘에는 별다른 말이 없어서 그냥 그렇거니 했는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정말 나를 의심하는 건 아니고 그냥 토라져서 투정 부리는 느낌이긴 했는데. 사제의 질문에 내 생각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러셀님이 얼굴의 상처 때문에 시트라님을 받아주시지 않을 분이었나요?”

“물론 그분이 그런 분은 당연히 아니시지만… 서운하니 자꾸 그런 마음이 듭니다. 바보같이!”

자기의 가슴을 두드리며 토라진 듯한 목소리의 시트라 씨.

그녀의 손길에 출렁거리는 가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려 하자 사제님이 ‘오’ 이런 표정으로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분은 대체 어느 교단이시기에…

내 궁금증도 잠시.

이제는 사제분이 질문을 유도하지 않아도 시트라 씨가 자신의 마음을 줄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이 상한데도 러셀님이 보고 싶으니까 더 짜증이 납니다! 매정한 분. 저는 왜 찾아와주지 않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머리도 쓸어주고, 다른 분들처럼 안아주기도 하고, 다정하게 제 이름도 부, 불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속마음을 쏟아내듯 엄청난 말을 한 시트라 씨는 잠시 후 진정이 좀 되었는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속이 상하니 별 이야기를 다 하게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순결의 사제 신분으로 남자를 생각하다니… 왠지 더 비참합니다… 어쩌다 사랑에 빠져서는…”

자기의 내면을 낱낱이 고백한 시트라 씨.

사제는 나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열린 문으로 나가며 나에게 말했다.

“라고 하네요. 러셀님 그럼 두 분은 좋은 시간 보내세요?”

­끼익 쿵

닫힌 문. 안에 남겨진 나. 사제의 입에서 들려온 내 이름에 뒤를 돌아눕고는 그대로 굳어버린 시트라 씨.

모든 것이 멈춘 듯했으나 천천히 새빨갛게 물드는 시트라 씨를 보니. 멈춘 건 아닌 것 같은 상황. 그리고 시트라 씨가 새빨갛게 물들자 방안의 향도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시트라 씨의 입에서 천천히 들려오는 당황한 목소리.

“대, 대체 언제부터?”

“어? 그? 처음부터?”

사제 앞에서 거짓말은 할 수 없기에 진실을 이야기했으나. 잘못된 선택인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어깨가 다 드러난 잠옷만 입은 것이란 사실도 잊은 듯한 망연한 표정이었다가. 잠시 후 갑자기 침대에서 용수철이 튕기듯 일어서더니. 자신의 장비가 걸려있는 벽으로 달려가 고풍스러운 장식의 단검을 꺼내 손에 쥐더니 목덜미로 가져갔다.

나는 그녀의 돌발 행동에 너무 놀라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아채며 말했다.

“지, 진정하세요. 시트라 씨 진정 진정!”

“저, 저 같은 건 주, 죽어야 합니다. 부, 부끄럽게 사느니 그냥 어머니 품으로! 끄흐흑…”

수치감에 자살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옷을 벗은 것만 알몸이 아니고, 지금 내 앞에서 내면이 발가벗겨진 기분 일 테니…

이불 킥 까지는 예상했는데, 그러나 자살은 조금 선을 넘은 상황.

나는 단검을 쥔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그녀를 저지하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신성력까지 끌어내는 것 같지는 않은데, 힘은 왜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그렇게 단검 하나를 가지고 그녀와 실랑이하다 보니, 단검은 우리 둘의 머리 위에서 빼앗으려는 나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녀의 손아귀를 오가고 있었고. 우리는 머리 위로 양팔을 들어 올린 채 얼굴이 아주 가까운 상황이 되어있었다.

결국 그녀의 힘에 이렇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누구 하나 다치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자.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최후의 수단. ‘키스’였다.

­츄웁

콧속으로 밀려드는 그녀의 체향과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

­탱그랑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바닥으로 단검이 떨어져 내려오는 소리. 역시나 나 예상대로 무장 해제된 시트라 씨는 바로 단검을 떨구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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