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 229. 교단의 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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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색의 대리석 바닥과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이질적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건물은 성국의 자애와 순결 교단의 신전. 그분의 순결함을 상징하기 위해 저 멀리 사막에서만 난다는 눈 대리석을 마법 문으로 하나하나 운반해 만든 건물이었다.
성국 내 존재하는 여러 신전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사랑과 미의 여신의 신전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자애와 순결의 신전.
그 신전 한 가운데 위치한 순결한 여신의 대리석 조각 앞에서, 자애와 순결 교단의 최고위 사제인 추기경 헬로나가 엎드린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여신의 조각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엎드린 이유. 그것은 그녀가 온 마음을 다해 눈물로 기도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신앙을 가진 후에 한 번도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의심해본 적이 없지만, 오늘만큼은 그녀가 모시는 분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는 결코 식음을 전폐한 기도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머니 제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옵소서!”
헬로나의 처절한 기도 소리가 신전에 내부에서 울려 퍼졌다.
그녀가 이렇게 식음을 전폐하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녀의 신에 대한 직접적인 음성이 담긴 응답을 원하는 이유.
그것은 그녀의 딸 같은 아니, 딸이나 마찬가지인 시트라 때문이었다.
오늘 성국으로 시트라의 정기 보고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헬로나는 정말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성녀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녀.
그분이 직접 선택한 사랑하는 자. 교황이 인간들의 손에 뽑힌 선출직 중 제일 높은 지위라면 성녀는 신이 직접 뽑은 자.
어느 교단이든 성녀가 나타나면 그 교단의 성세는 기존과 비교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성녀가 자신의 교단에서 날지 모른다는 희망찬 소식과 기대감이 요즘 그녀를 항상 기쁘게 했다.
성녀 후보는 자기의 딸 같은 시트라. 얼마 전 자기 딸이나 마찬가지인 시트라가 신성 강림을 겪었다는 보고에 성국 수뇌부는 발칵 뒤집혔었다.
신성 강림이 무엇이던가? 신이 직접 인간의 몸에 임하는 것.
임하는 것만으로 당사자의 신앙의 순수성과 신성력, 인성, 더군다나 순결의 교단에서는 순결까지 모든 것이 한 번에 입증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제 손으로 길러낸 시트라가 신성 강림을 겪었다는 사실에 헬로나는 전율했다.
“추기경님 감축드립니다. 전부 추기경님이 잘 길러내신 것 아니겠습니까?”
소문을 들은 다른 사제들과 추기경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항상 순결한 처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음습하고 불쾌한 시선을 마주해야 했던 자신이 속한 교단의 입지는, 시트라 하나로 성국 내에서 급격하게 치솟아 올랐다.
가장 기분이 좋았던 일은 성국 내부에서 자신들과 대척점에 있는 사랑과 생명의 교단 추기경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다는 것.
같은 선신 계열인데 사랑과 생명의 교단이 자신들과 대척점인 이유. 그것은 그들의 음란함 때문. 사랑에 빠져 처녀를 내던지는 행위를 부추기는 그런 음란한 것들과는 양립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쪽에서도 그간 자신들을 비하하며 ‘거미줄 교단’이라는 둥 망발을 내뱉었지만 헬로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교단의 성세 차이 때문.
순결만 요구하는 자애와 순결 교단보다. 연애를 권장하는 사랑과 생명 교단이 당연히 규모가 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사랑과 생명의 교단 추기경 그년이 거미줄 교단이라는 망발을 퍼트린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쩌지 못했지만. 고 얄미운 년에게 이번에는 단단히 한마디 해줄 수 있었다.
“순결한 처녀들을 사랑에 빠트려 순결을 잃게 만드는 사랑과 생명의 교단이야말로 서큐버스와 동급인 음란한 교단이 아니겠나요? 그러니 저희보다 그쪽에서 성녀가 나기 더 힘들겠지요.”
아직 성녀가 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목에 힘을 주고 다니냐며, 순결 교단에서 성녀가 날 리가 없다는 비아냥에 자신이 해준 말이었다.
통쾌했다.
모두 시트라 덕뿐.
시트라의 활약은 계속 이어졌다.
최근에는 정신 나간 남부의 남작이, 시트라의 관찰 대상인 높은 엘프에게 자기 노예라며 망발하며 죽음을 자초했다는데. 그때 높은 엘프가 직접 정령이나 세계수의 활을 뽑아 들기 전, 시트라가 직접 그 무도한 년의 머리통을 터트렸다는 말에 성국의 수뇌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트라를 또 한 번 칭찬했다.
그래 그녀가 진노의 검을 뽑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피라는 것은, 한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으니. 분노한 높은 엘프가 날뛰기 전에 그녀의 화를 가라앉혔으니,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렇게 날마다 시트라에게서 들려오는 보고에 교단의 위상이 성국 내에서 하늘을 찌를 때, 들려온 소식은 2차 신성 강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여신이 직접 그 본신에 임했다는 사실은 이제 시트라가 성녀를 정말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는 의견으로 굳어졌다.
일생 영광인 신성 강림을 두 번이나. 이젠 그 누구도 다른 의견을 내지 못했다.
자애와 순결 교단의 ‘성녀’ 시트라.
헬로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트라를 위험한 임무에서 불러들여 성국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했지만 시트라가 그것을 거부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신께 무슨 언질이 있었던 모양.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가면 되는 일. 엘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는 것이 금지되어있지만 자기 혼자 살짝 다녀오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직접 시트라에게 찾아가 만나보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늘 정기 보고에서 시트라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던진 것이다.
수정구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여쁜 시트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
“추기경님.”
“추기경이라니요. 시트라는 제 딸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미라 생각하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오늘따라 떠는 목소리가 애처로워 자상한 말을 해주었지만 들려온 이해할 수 없는 절망적인 목소리.
“저, 겨, 결혼하고 싶습니다.”
“뭐라고요?!”
시트라와 나눴던 대화가 다시 생각나자. 헬로나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어머니! 끄흐으윽… 제발 응답을!”
헬로나의 울부짖음에 무슨 큰일인가 싶어 영문도 모르는 다른 사제들까지 모두 몰려들어 다 같이 꿇어 엎드려 기도를 시작했다.
“어머니!”
[그런데 무슨 기도인가요?]
[저희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 부르짖읍시다!]
“어머니!”
사제들의 기도가 그들의 신앙의 대상인 순결의 여신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제랄드님에게 말한 내용을 정리하면.
수리아는 이제 내 아내가 되었으니 건드리면 가만 안 놔둘 것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가만 안놔두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이실리엘이 될것이지만 말이다.
자기의 종족이나 가족 같은 자기 울타리에 무척이나 민감한 엘프들의 가족 구성원을 건드린다? 그것도 그냥 엘프의 가족도 아닌 높은 엘프의 가족 구성원을?
북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헥터 새끼도 수리아가 그냥 여관에서만 머무는 줄 알고 혹시라도 수리아를 건드리는 과정에서 나나 이실리엘이 피해를 보고 그것으로 자신이 의심받거나 큰일을 당할까 싶었던지. 마을 사람이나 다른 사람은 건드리지 말라는 조항을 붙인 걸로 보이는데, 수리아가 이제 내 품에 확실히 들어왔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
물론 사람은 어리석고 귀족들의 압박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하면 다 무시하고 또 암살자를 보낼 확률도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일단 경고라도 해둔 것이다.
사리나를 채용하긴 했지만, 인생사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리고 이번 일이 헥터 새끼가 아무리 제가 아니라고 발뺌해도 소용없다. 제랄드님에게 덧붙인 말이 있으니.
“헥터, 그 새끼가 본인이 암살자를 보낸 게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해주십쇼. 아무튼 앞으로 암살자가 도착하면 무조건 그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말만 전해주십쇼.”
이제 헥터는 살고 싶으면 암살자를 보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이 근처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그놈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된 것이다.
그렇게 북부 쪽도 충분히 단속시키고.
다음으로 향할 곳은 시트라 씨를 만나는 일이었다.
수리아를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같이 묶음이었던 시트라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뭐 플로라야 어느새 뭉그적거리다가 스며들어버린 상태. 애가 얄미운 것 같으면서도 애교를 떨어대니 미워할 수가 없기도 하고…
플로라 하는 짓을 보면 그래서 전생에 여우 같은 마누라랑은 살아도 곰 같은 마누라랑은 못산다는 말이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발레리와 비슷한 압도적 풍유로 애교를 부리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할까? 나름 나도 단호박 같은 남자인데 나도 모르게 녹아버리는 마음…
뭐 그런 이유로 시트라 씨와 이야기를 나누러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여관에서 나와 마을 길을 걸어 천천히 신전으로 향했다.
평원에서 자라고 있는 풀들이 여기저기 자라난 마을의 한적한 오솔길을 지나면 광장이 보이고 그 광장 한편에 백색의 돌로 지어진 신전이 보인다.
이 세계의 종교를 책임지는 성국 산하 수많은 신들을 모두 모시는 신전.
시트라가 사는 곳이다. 전생으로 치면 성국내 자애와 순결의 사제들은 수녀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나는 수녀에게 청혼받은 것이다. 그것도 유부남인 상태에서.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말도 안 되네?’
신전 앞에 도착해 문을 열기 전 신전을 올려다보았다.
신전을 보자 전생에 신앙 있는 와이프는 가지지 말라는 선배 유부남 형님들의 경고가 생각나기도 해 문을 잡는 손이 잠시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가 아니면 영원히 처녀가 된다고 협박받고 있다는 시트라 씨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삐그덕
신전의 문을 천천히 열어젖히자 안에 시트라 씨와 같이 신전에서 사는 두 분의 상급 사제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머 러셀 씨, 당연히 시트라님을 만나러 오셨겠죠?”
두 사제가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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