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30화 (230/352)

〈 230화 〉 227. 해충 박멸팀 8

* * *

“마, 마물이다!”

“짐승형 마족인가?!”

“폐하 피하십시오! 마물이 어떻게 이곳에!”

깜짝 놀라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라페스빌의 건너편. 사람의 말을 하는 부엉이를 겨누는 병사들의 창들. 그 창 사이에서 부엉이가 놀라 소리쳤다.

“저, 정말이에요. 남쪽에서 왔다구요!”

남쪽에서만 왔다고 말하며 울부짖는 부엉이. 부엉이가 퍼덕거리자 라페스빌의 콧속으로 약간 탄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것도 같았다. 마족들 특유의 유황 탄내 같은.

자다 깬 데다 너무 놀란 나머지 라페스빌은 남쪽이라는 말을 처음에는 바로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마침 남쪽 여행에 동반했던 근위 기사가 라페스빌을 부축하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전하 남쪽이라면. 그, 엘프님의….]

남쪽의 엘프님이라는 말에 뇌가 벼락을 맞은 듯 깨어나고. 화들짝 놀라 소리치는 라페스빌.

“잠깐! 모두 멈춰라!”

병사들의 창이 부엉이를 찌르기 직전이었다.

병사들의 창은 멈췄지만, 부엉이가 말을 한다는 사실에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은 상태. 라페스빌이 부엉이에게 물었다.

“자, 잠깐. 남쪽이라고? 그런데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부엉이는 멈춘 창날을 보고 자신의 날개로 사람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라페스빌에게 말했다.

“러, 러셀님께서 분명 그런 질문을 하실 거라고. 그때는 이렇게 말씀드리라고 하시더군요. ‘발바닥은 평안하신지요?’ 마, 맞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는지. 확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부엉이. 하지만 그 말에 라페스빌은 정신 나간 듯 크게 웃으며 모두에게 소리쳤다.

“와핫핫핫핫! 모, 모두 물러가게. 내 손님이시었구먼.”

“예? 하지만 마물이.”

영문을 모르는 병사와 기사들이 우물쭈물하자. 라페스빌이 나직이 말했다.

“높은. 아니, 성국에서 은밀히 보낸 사자인 듯하니. 오늘 침실에서 본 것은 모두 함구하게!”

그렇게 우물거리며 병사와 기사들이 물러나자. 라페스빌이 근위 기사에게 조용히 명령했다.

[행정관! 행정관을 들라 하게! 남쪽에서 손님이 오셨다고만 전하게.]

“예 전하.”

근위 기사마저 행정관을 부르려 달려 사라지고 둘만 남은 방안. 라페스빌이 조용히 부엉이에게 물었다.

“그, 남쪽의 러셀님이 보내서 오셨다고요? 그런데 그, 누구신지?”

부엉이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조심히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라페스빌 전하, 저는 러셀과 이실리엘님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온. 그, 그분들의 노예 레오나라고 합니다. 시, 실례가 많았습니다. 조, 조용히 깨우려 했는데… 그게… 죄, 죄송합니다.”

깨진 도기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는 목소리로 말하는 부엉이.

“와하하하 시, 신경 쓰지 말거라. 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 그분이 자네를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가?”

라페스빌은 부엉이를 급하게 위로하고 방문의 목적을 조심스레 물었다.

부엉이가 말을 한다는 사실과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어색했지만. 남쪽이랑 엮이면 이상한 일투성이기에 라페스빌은 담담히 노예라 자신을 소개하는 부엉이의 존재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번 일을 겪고 라페스빌은 그들을 만날 때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 것인 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왕실 보고 제일 귀한 물건을 놓아두는 곳에 조심스레 가져다 둔 백단목을 생각할 때 부엉이가 라페스빌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그것이….”

­꼬르륵

“그러니까…”

­꼬르르륵

라페스빌이 처음 행정관을 찾은 후로부터 달 하나가 졌을 때쯤.

한밤중 자다 깬 행정관이 눈곱도 떼지 못하고, 잠옷 위에 로브만 걸친 채 라페스빌의 침실로 들어섰다.

한쪽으로 뻗친 머리 볼에는 알 수 없는 자국까지. 그가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

“전하! 나, 남쪽에서 손님이 오셨다고…”

그러나 급하게 라페스빌의 침실로 들어선 행정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라페스빌 자기의 모습과 부엉이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침실에서 웬 부엉이에게 생고기를 먹이며 웃고 있으니 그렇겠지?

라페스빌은 행정관의 시선을 즐기며 부엉이에게 고기를 던졌다.

라페스빌이 단검으로 적당히 고기를 잘라 던져주면 넙죽넙죽 받아먹는 부엉이. 주먹만 한 고깃덩이를 몇 개나 삼킨 부엉이는 잠시 후 날개를 손처럼 움직여 배를 두드렸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행정관.

“와하하 맛있느냐?”

“예, 국왕 폐하 감사합니다.”

아직 멍한 상태의 행정관. 라페스빌은 그에게 정신을 차릴 시간을 허락하기로 했다. 사람의 말까지 하는 부엉이니 놀랍기도 할 것이다. 자신도 놀랐는데 노안의 행정관은 얼마나 놀랄 것인가.

“하루 꼬박 날아와서 배가 고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까 그 물 담긴 그릇을 깬 것도 목이 말라 물을 마시다 그만.”

“저런 저런 그 먼 곳에서 하루 꼬박 날아왔다니.”

라페스빌은 안타깝다는 투로 부엉이를 달래며 말했다. 세안용 도기에 담겨있던 물은 어젯밤에 세수를 한 물인데, 그 사실은 숨기기로 하고 말이다.

라페스빌이 한밤중 찾아와 난동을 부린 부엉이를 친근하게 대하는 이유.

그것은 부엉이가 그분의 노예임을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노예라는 것은 생명이 아닌 재산. 눈앞에 있는 것이 그분의 소중한 재산이니 당연히 조심스레 대하고 대접하는 것.

더군다나 타국에서 사신이 와도 대접해야 하는 마당에 세수한 물과 고깃덩이 조금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면 남는 장사인 것. 인간 사절이라면 금은보화를 뇌물로 먹여야 할 수도 있는데 세수한 물과 고깃덩이? 배 터지게 먹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편지를 가지고 왔다는 말로 비추어볼 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이 부엉이가 올 것이 뻔한데 자주 볼 사이이니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행정관. 라페스빌은 마음속으로 혀를 차며 행정관의 정신을 돌아오는 것을 돕기로 했다.

행정관은 다 좋은데 정상적인 범주에서 벌어지는 일을 접하면 조금 대처가 아쉬웠다.

“행정관 왔는가? 밤중에 미안하네, 남쪽에서 손님이 와서 말이네…”

멍한 얼굴로 대답하는 행정관.

“그…. 손님이…. 부엉이가? 말을?”

“아, 이쪽은 그분의 노예인 레오나라고 하더군. 편지를 전하러 왔다고 하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는 행정관.

“아, 그, 그렇군요. 펴, 편지라면 어디에?”

라페스빌도 그제야 편지를 전하러 왔다는 부엉이를 바라봤다. 처음부터 맨몸이었던 부엉이. 설마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부엉이에게 물었다.

“그래, 편지는 어디에?”

“아! 제가 편지입니다!”

자랑스럽게 가슴을 두드리며 말하는 부엉이.

“제가, 자꾸 뭘 흘리고 다닌다고. 편지를 직접 가져가는 게 미덥지 않으시다며. 직접 말로 전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말씀드릴까요?”

뭘 자꾸 흘리며 다닌다는 부분에서 말은 다 기억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그분들이 알아서 잘 판단하시지 않겠냐고 생각하며 라페스빌이 말했다.

“그, 그래 말해보거라.”

부엉이의 입이 조심스레 열리고 편지의 내용이 흘러나왔다.

“이실리엘님과 그분의 수하 엘프분들이 수도에 한 번 방문하길 희망한다고 하십니다.”

부엉이의 말에 라페스빌이 깜짝 놀라 행정관을 바라보자 행정관도 라페스빌을 바라보며 침실에 들어설 때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갑자기 수도를 방문한다는 말에 라페스빌은 놀라긴 했지만 침착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번에도 발바닥을 쑤심 당했지만 침착하니 일이 잘 풀렸지 않은가?

수도의 아름다운 성을 구경하시려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 어! 어! 어떤 일로 그분들이 수도까지?”

희망을 부여잡고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으나 들려온 것은 절망. 들려와서는 안 되는 소리가 부엉이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도에서 활동한다는 버러지 같은 암살자들이 보호구역에 침입해. 러셀님의 아내 중 하나가 크게 다치셨고 이실리엘님이 크게 노하셔, 직접 암살자들을 찾아보시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성국의 추기경이, 용 같다고 했으니 당연히 거짓말은 아닐 터. 백여 년 전쯤 동부 화산지대에 나타났던 화룡이 동부 끝에 가장 큰 도시를 완파했다고 들었는데.

수도가 불타오르고 저번에 보았던 그 정령이 하늘에서 벼락을 연거푸 떨어트리는 모습이 라페스빌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부엉이가 테이블에서 뛰어내려 테라스로 향하기 시작했다. 라페스빌이 다급하게 부엉이에게 물었다.

“어, 어디 가는 게냐?”

“아, 편지를 다 전달했으니. 이만 가려고요.”

무심한 부엉이 놈 같으니 이런 엄청난 소식을 던지고 그냥 가버리려 하다니.

부엉이에게 들은 내용이 너무 엄청난 내용이라 아직 머릿속에 정리가 안 되는데, 떠난다는 부엉이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한 채. 라페스빌과 행정관은 멍하니 부엉이가 하는 행동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뒤뚱뒤뚱 걸어가는 부엉이.

부엉이는 테라스 난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난간에 올라 날개를 몇 번 파닥거리며 날아가려는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멈춰 섰다. 그 석상같이 멈춰선 모습에 라페스빌과 행정관이 의구심 섞인 눈으로 부엉이를 바라보자.

부엉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보며 무척 부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배, 배가 불러서, 모, 못 날 것 같은데. 자, 잠시 쉬어가도 괜찮을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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