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29화 (229/352)

〈 229화 〉 226. 해충 박멸팀 7

* * *

백색의 새하얀 세계.

처음 시트라 씨를 보고 겁에 질려 우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회오리 너머로 도망치기 위해 그곳으로 뛰어들었던 녀석들은, 갈기갈기 찢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회오리에 찢긴 놈들을 보고 다시 우리에게 달려와 죽기 살기로 시트라 씨의 보호막에 달려들어, 무기가 부러지고 주먹이 깨지라 두드리던 녀석들도, 서로 부둥켜안고 몸을 떨다가 이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추… 추워…”

“사, 살려주세요…”

“제, 제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을 뜰 수 없는 함박눈. 그리고 사이사이 섞인 날카로운 얼음. 거기에 말 그대로 살갗이 찢겨나가는 칼바람.

일부는 땅을 파고 보호막 안으로 기어들어 오려고 했던지. 단검으로 땅을 파내기도 했는데, 에이리가 대지의 정령으로 땅을 단단하게 만들자 금세 단검을 잃고. 손가락 끝에 피가 나고 손톱이 빠질 때까지 흙을 움켜쥐다 잠시 후 얼어 죽어버렸다.

지옥에 던져진 죄인들이 사방에서 질러대는 신음과 절망 섞인 비명.

그 후에 찾아온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은 새하얀 세계.

그 고요한 정적을 깨고 한 엘프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움직이는 게 없다요.”

아직 중앙 대륙어에 익숙하지 않은 에이리의 독특한 말투. 에이리의 모두 다 죽은 것 같다는 보고였다.

하지만 그 보고에도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트라 씨의 신성 보호막 안에서 다들 멍하니 새하얀 세계를 바라보고 있을 뿐.

시트라 씨의 신성 보호막은 아무것도 침범하지 못했다. 눈도, 화염 구도 차가운 냉기조차도 말이다.

목 높이까지 쌓인 눈. 저 밖은 얼마나 추울까?

“어때 러셀! 이것이 바로 무려 ‘눈 폭풍’이다!”

어느새 날아온 실리아가 보호막 밖에서 팔짱을 끼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솔직히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날카로운 얼음과 함박눈 거기에 살이 찢기는 바람.

상급 정령을 특별한 경우 아니면 물질계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왕국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자랑하던 실리아의 모습이 허언은 아닌 것같은 기분.

하지만 실리아의 얄미운 표정을 보니 칭찬해주기는 싫었다. 노예 따위가 감히 주인님께 칭찬을 ‘요구’하다니 버릇이 없었다.

노예는 초반에 버릇을 잘 들여야 하는 법.

“그래, 대단하긴 하네. 실리아, 밖에 회오리부터 일단 없애봐.”

“아니, 그게 다야? 무려 ‘눈 폭풍’인데?”

칭찬이 그게 다냐는 어이없다는 실리아의 목소리.

“그래, 대단하네. 엄청 대단해… 와아… 엄청나…”

“러셀, 이 바보!”

실리아는 나의 영혼 없는 칭찬에 토라졌는지 휙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노예 따위가 버릇없게도 말이다.

실리아가 토라져 날아가 버렸지만, 그래도 명령은 제대로 수행했는지. 회오리가 사라지자 따듯한 남부의 기온이 몰려들어, 쌓였던 눈이 빠르게 녹아들기 시작했다.

차가운 눈들이 녹으며 수증기를 내뿜는지. 뜨거운 욕탕에 증기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하얗게 안개 같은 것이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 내리는 모습이야 좀 많이 온다고 하는 생각만 들었지만, 이렇게 쌓인 눈이 실시간으로 녹아내리는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또다시 펼쳐진 장관에 다들 구경에 여념이 없을 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령이 인간 왕국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계산은 어떻게 한 것일까? 너무 구체적인 예시였다.

‘혹시 진짜 멸망시켜 본 적이 있는 건 아니겠지?’

실리아와 나디아의 존재감이 과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머리에서 떠올랐다.

그리고 왕국 멸망에 대한 궁금증에 공중에 시선을 두고 실리아를 두리번거리며 찾을 때. 저 멀리 평원 한쪽에서 대량의 수증기를 뿜어 올리며 무엇인가가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알몸의 로리엘 뒤를 따르는 진짜 로리엘. 로리엘이 우리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눈은 다 녹여버리며 뛰어오는 로리엘.

화끈한 여자.

로리엘의 모습에 시트라 씨가 그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허겁지겁 보호막을 걷자 차가운 냉기가 온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밀려드는 냉기에 몸서리를 치는 우리들의 귓가에 로리엘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마리도 밖으로 못 나왔다!”

“어? 한 마리도 밖으로 못 나갔으면, 계획대로 잘된 거 아닐까?”

“하지만, 혼자 심심했다!”

로리엘의 심심했다는 소회로 끝난 해충 박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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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느 왕국의 수도, 라벨 강이 가로지르는 황금의 도시 그란 올.

제법 큰 새 한 마리가 수도의 상공을 달빛 속에서 유유히 날고 있었다. 달빛 속에 드러난 거대한 날개와 큰 두 눈. 하늘은 나는 것은 밤하늘의 제왕 올빼미.

올빼미는 큰 두 눈으로 공중에서 먹잇감이라도 찾는 듯 무엇인가를 한참 찾아 헤매다 수도 중앙의 궁전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큰 테라스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부엉이가 내려앉은 테라스는 수도 그란 올과 아베느 왕국의 통치자 라페스빌의 침실에 붙은 테라스였다.

여기저기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보이지만, 병사들은 부엉이가 테라스에 날아들었다는 사실 초자 모르는 듯 자신들의 임무에만 충실한 모습.

그들이 부엉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은, 부엉이라는 새의 최대 장점, 날갯짓할 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보통 많은 사람이 부엉이를 뚱뚱하고 큰 새라고 생각하지만, 부엉이는 실제 큰 새가 아니다. 다만 엄청나게 부풀려진 깃을 가지고 있고. 그 부풀려진 깃이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뿐. 실제로 부엉이도 닭이나 다른 조류들과 다를 바 없는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엉이의 깃은 왜 한껏 부풀려져 그들이 뚱뚱해 보이게 만들까?

부풀려진 깃들은 부엉이가 날 때 만드는 모든 소리를 차단하는 역할을 해. 부엉이가 밤하늘의 공중에서 먹잇감을 향해 천천히 날아들 때도, 먹잇감들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훈련된 국왕의 처소를 지키는 병사들도, 올빼미가 테라스에 날아내려 국왕의 침실 안으로 뒤뚱뒤뚱 걸어 들어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침실로 침입한 부엉이는 천천히 뒤뚱거리며 내부를 걸어 국왕이 누워 잠자는 침대 머리맡으로 향했다.

그리고 국왕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올빼미가 폴짝 뛰어오른 곳은 국왕이 세수에 쓰는 도기의 모서리. 안에 찰랑찰랑 담긴 물이 잠깐 흔들렸지만, 가득 담긴 물의 무게에 올빼미는 아무런 탈 없이 모서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날짐승이 하기에는 다소 이상한 행동. 그도 그럴 것이 올빼미의 정체가 러셀의 명령으로 국왕에게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찾아온 올빼미 녀였기 때문이다.

러셀의 여관에서 불리는 이름은 새대가리, 진짜 이름은 레오나.

하루를 꼬박 날아 수도로 날아온 레오나는 날개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국왕의 처소를 찾았으니 이제 이야기만 전하면 임무는 끝. 되돌아가는 일만 남는 것.

국왕을 깨우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려는 레오나의 시야에 발아래 찰랑이는 물이 들어왔다. 벌렸던 입이 급하게 다물어지고, 레오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레오나는 국왕을 깨워 이야기를 전해야 했지만. 눈앞에 찰랑이는 물을 보니, 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고민은 잠깐. 타는 갈증을 먼저 해소하기로 결정이 났다.

퍼밀리어는 마법 생물이지만, 실제 생물과 똑같은 신체 구조로 되어있어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한다. 그런데도 하루를 꼬박 날아오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해. 레오나는 올빼의 육체가 주는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고 있던 것이었다.

레오나가 눈앞에 물을 보자 참을 수가 없었던 이유였다.

그렇게 레오나는 고민을 끝내고 눈앞에 물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꼴깍꼴깍

국왕의 침실에 올빼미가 물 들이키는 소리가 조용히 퍼져나갔다.

갈증만 조금 해소하려고, 한 모금만 마시고 국왕을 깨우려고 한 것이었는데. 물은 생각보다 너무 달콤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물을 들이켜는데 기우뚱하는 몸.

그리고….

­와장창!

큰 소리의 원인은 테이블에 있던 도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부엉이가 도기의 모서리에 앉은 상태로 물을 들이켜자. 도기에 물이 줄면서 도기가 기울어져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 것.

한밤중 대리석 바닥에 도기 깨지는 소리가 조용한 궁전에 벼락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온 사방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라페스빌의 침실로 쏟아졌다.

“누구냐!”

“침입자다! 전하의 처소에 침입자다!”

놀라 깬 라페스빌과 병사, 기사들이 발견한 것은, 놀란 표정의 물에 흠뻑 젖은 올빼미 한 마리였다.

“부엉이?”

놀라 올빼미 반대편으로 굴러떨어진 라페스빌의 당황한 음성.

탁자에 널브러졌던 홀딱 젖은 레오나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라, 라페스빌 전하... 그, 그러니까. 나, 남쪽에서 왔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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