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224. 해충 박멸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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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리고.
늑대 인간이 성문을 푸딩처럼 썰어댄다. 밖에는 늑대인간을 따르는 늑대계열 몬스터들이 몰려와 난동을 피우는 상황. 성벽에서 아래로 쏘아지는 화살과 단창, 사람들의 함성.
성문 안쪽에서 밖으로 달려 나가길 대기하는 말 탄 기사들.
그 전장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이런 큰 그림을 그린다고? 마치 실수로 위장해서?
이건 천재이거나 미친놈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
실리아에 대한 나의 평가였다.
이게 리젤다의 결혼식에 있었던 사건인데. 벌서 몇 달 전이다. 그때부터 이미 침을 발라놨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가계약만 걸어두고 왜 내색 한 번 안 했는지도 궁금했다.
정령과의 가계약.
정령사가 정령을 선택하는 게 아닌. 정령이 정령사를 선택하는 행위. 자신과 상성이 좋은 정령사 감을 발견하고 미리 선점하는 행위란다.
나디아의 말로는 중하급 정령들은 자신들과 같은 정령력이 충만한 시기에 계약하지 않아도 세상 구경을 자주 할 수 있다고 했다. 화산이나 마그마에서 불의 정령들이 나타난다거나, 깊은 산속 폭포에 물의 정령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사건 말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큰 상급 이나 정령왕 같은 친구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계약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 구경을 절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법칙에 묶여있다는데 절대적이라고. 워낙 물질계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그런 것이라는 말.
하긴 걔들이 저희 마음에 안 든다고 깽판 치면 물질계가 남아나질 않을 테니 이해가 가는 내용이긴 했다.
그러다 보니 정령 왕이나 상급 정령들은 물질계 나가는 걸 학수고대 한다는데. 그런 이유로 혹시 우연히 물질계로 나갔다가 자신들을 소환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을 발견하면, 이렇게 가계약이라는 걸 통해서 다른 정령들보다 먼저 선점하는 행위가 지위가 높은 정령들에게 만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령들의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같은 정령들끼리는 가계약의 징표가 찍혀있는 인물은 상대의 정령력의 여유가 있더라도 절대 먼저 계약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규칙을 지킨다는 것.
도망간 정령 녀석들이 전부 이해되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거 실리아 부르면 천둥 치고 번개 떨어지고 그러는 거 아닌가?”
당사자랑 면담을 진행해야 하는데 당사자가 여간 시끄러운 인물이 아닌지라 걱정이 먼저 들었다.
“힘을 쓰지 않으면 괜찮다. 그리고 같은 상급 정령인 내가 힘을 제한하면 되니 괜찮을 거다.”
나디아의 말을 믿고 시작된 실리아 소환.
나는 속 목의 상처에 정령력을 집중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집중했다. 그러자 몸에 있던 정령의 기운이 담긴 빛무리가 손목의 상처로 빨려 들어가고, 상처에서 마치 바람이 새어 나오는듯한 기분이 들더니. 예의 실리아의 놀란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어, 어떻게 알았지!”
마치 들켰다는 듯한 목소리.
‘어떻게 알긴 이 새끼가!’
하지만 실리아에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내가 아닌 다른 입술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어서 가계약을 해지해라!”
“엥?”
분노한 목소리의 주인은 로리엘이었다.
“너,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엘프는 정령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는데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반말도 서슴없는 로리엘.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를 붙잡아 간신히 진정시켰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로리엘의 얼굴.
‘그렇게 분했나?’
“그래, 정령과 계약해야 하니까. 얼른 가계약 해지해줘. 당사자 동의 없는 모든 계약은 무효인 거 모르냐?”
전생의 룰을 기반으로 나는 준엄하게 실리아를 꾸짖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실리아의 행동은 조금 예상 밖이었다.
내 시선은 내 다리를 향하고 있었다. 펄럭이는 내 로브 자락. 내 로브 자락이 펄럭이는 이유. 내 다리를 꼭 붙잡고 간절하게 울부짖는 한 정령 때문이었다.
요놈이 아무래도 눈물 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 같았다.
“우아아아… 제발! 계약해줘! 말 잘 들을게! 정령계 너무 심심하단 말이야! 시키는 거, 다 잘할게! 롱 윈드가 불러줘서 300년 만에 나왔던 거란 말이야! 잘해줄게! 부탁이야!”
눈물도 흐르지 않는데 로브 자락을 부여잡고 우는척하는 실리아.
‘정령도 분명 눈물을 흘리는 걸 아는데, 요 새끼가 거짓말을?’
정령도 눈물을 흘린다. 정령의 눈물이라는 것이 존재하니. 모험가나 용병은 당연히 안다.
모든 정령의 속성을 품고 있는 정령석과는 다르게 해당 정령의 속성만을 품고 있는 정령석과 비슷한 물건. 그런데 이놈이 눈물을 흘리는 척만 하니 당연히 저건 거짓말.
“어허, 돌아가! 절대 안 돼!”
나의 단호한 대답에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로리엘. ‘믿고 있었다고 젠장’ 이런 느낌이랄까?
로브 자락을 펄럭거리며 거짓 울음을 짜내던 실리아는 내가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생각을 바꿀 수 없음을 단호히 내비치자.
이번에는 갑자기 반대로 배짱을 부리기 시작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그녀의 태도.
“그, 그렇다면 나도 계약해 줄 때까지, 가계약을 풀지 않을 테다!”
그러나 녀석의 말에서 이미 녀석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씩 웃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이실리엘이 널 불러주지 않을걸? 내 앞에 여기 북풍의 진 나디아가 너를 대신해서 우리를 지켜줄 테니까. 굳이 널 부르지 않아도 되거든. 뭐 다음 물질계 구경은 500년 뒤쯤 되려나?”
내 말에 이실리엘이 고개를 끄덕이고, 로리엘도 그렁그렁한 눈물을 걷어내고 같이 웃었다.
나의 말에 반투명한 실리아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화들짝 놀래는 실리아.
“노, 농담이지? 나, 나는 번개도 쏠 수 있고 포, 폭풍도 부를 수 있고…”
녀석의 당황한 목소리가 모두에게 느껴졌다.
“여기 나디아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날카롭고 차가운 바람의 정령이니. 적들의 팔다리 정도는 멀리서 토막 치고, 얼음덩이로 만들어 얼려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소리도 시끄럽지 않고. 누구처럼 말이지.”
“당연하다. 롱 윈드의 수컷은 아주 똑똑하군. 실리아? 인간 수컷이 거절하니. 어서 가계약을 풀어라! 잠깐 본 것만으로도 나에 대해서 벌써 저렇게 파악하다니…”
내 말에 나디아가 나에 대해 더욱 관심을 나타내자. 실라아가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재, 쟨 언제 불렀어? 야 인간 아니, 러셀 잘, 잘 생각해봐. 번개와 천둥, 바람까지 부를 수 있는 건 내가 유일하다니까?”
간절한 음성.
동시에 실리아의 눈에서 타원형의 무엇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발치로 굴러떨어졌다.
정령의 눈물!
이젠 진짜로 울기 시작하는 실리아.
“정령계 너무 지루하단 말이야! 으아아아…”
‘진짜 우니까 또 난감하네?’
나는 징징 울고 있는 실리아게 물었다.
“야 근데 가계약을 왜 걸어둔 거야? 어차피 이실리엘이 종종 불러주는데?”
“분명 롱윈드가 날 자주 불러주긴 했지만… 에, 엘프들은 결국 나중에는 잘 부르지 않게 된단 말이다!”
보통 엘프들이 나무가 다칠까 봐 폭풍의 진 부르는 것을 꺼리니. 결국 이실리엘도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기에 보험을 들어놨다는 말인가?
참 멀리도 내다본 실리아.
여자의 눈물에 한없이 약해지는 남자의 본성으로 인해. 할 수 없이 일단 실리아를 달래기로 한 나.
“실리아 나는 불의 정령과 계약하고 싶은데, 너는 이실리엘이 불러줄 테니까. 아니, 내가 자주 불러주라고 할 테니까. 가계약 그냥 해지하자. 응? 불의 정령으로 이실리엘의 바람의 정령과 상승효과 내려고 하는 거니까. 어차피 네가 도와야 한다니까?”
내가 불의 정령과 계약하려는 이유를 조심스레 설명하자. 실리아는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불의 정령이 아닌 자신과 계약해야 한다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 그러면 당연히 나랑 계약해야 한다! 너희가 아직 몰라서 그런데 불과 바람은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아서 크게 효과를 볼 수 없다. 하지만 네가 나를 소환하고 이실리엘이 나디아를 부르면 우리 둘이 놀라지 마라! 무려! ‘눈 폭풍’을 소환할 수 있다!”
다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이런 표정을 짓자. 실리아가 급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눈 폭풍 들어봤냐? 눈 폭풍이다! 그냥 폭풍이 아니고 ‘눈 폭풍!’ 그 눈 폭풍 말이다!”
눈 폭풍을 어지간히도 강조하는 실리아.
“누, 눈 폭풍은 안에 들어온 것은, 깡그리 얼어 죽는다! 마음만 먹으면. 그래! 인간들의 왕국 하나 사라지게 만드는 일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 어떠냐? 응? 대단하지 않냐?”
존재가 과해서 다방면에 도움이 될 조금 덜 과한 친구를 찾는 것인데. 뭔가 대량 학살에 능하다고 자기를 어필하는 실리아.
‘땡! 면접 탈락입니다!’
나는 면접에서 면접관의 니즈를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장점만 어필한 실리아에게 마음속으로 불합격을 내리고 최종 불합격 사실을 통보했다.
“실리아, 다음 기회에 지원을… 아니, 안 되니까. 일단…”
그러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뭔가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고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난 실리아. 그녀가 빽하고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
“좋다! 내 진명을 가르쳐 주겠다!”
그녀의 말에 나디아, 그리고 강변의 모든 엘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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