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25화 (225/352)

〈 225화 〉 222. 해충 박멸팀 3

* * *

삼 일 전.

수리아의 일로 불편한 다리의 문제점과 나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경험한 나는, 아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남부 시골의 작은 여관주인만으로 편하게 살기에는 얽힌 일이 많은 것.

수리아를 받아들이면 북부 다섯 왕국 중 하나의 부마 또는 국서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이미 그전부터 이실리엘 덕분에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원한다고 해도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소소하게 장사나 하면서, 아내들과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씩 늙어간다는 미래는 없어진 것이다.

지금이야 높은 분들이 이실리엘의 힘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지만, 미친놈은 언제나 등장할 수 있고 다섯 사람이 있는 곳에 무조건 한 명은 쓰레기라는 법칙처럼. 이실리엘을 이용하려는 놈들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내가 잘못해서 납치라도 당해 목숨을 위협받는다면, 이실리엘이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새 무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좀 더 빠르게 강해질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세계수님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나에게 상급 정령을 계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처음 소환에는 상급 정령들이 저희끼리 싸우느라 못 왔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지금은 그럴 일이 없을 테니 충분히 계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령과의 계약 문제에 대해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이실리엘에게 상담받기로 하고 한밤중 그녀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렇게 시작된 이실리엘과의 대화.

내 팔을 베고 누운 이실리엘이 말할 때마다 가슴이 간질간질 울리고 있었다.

“아, 세계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말이군요?”

“응 그런데 지금은 정령석도 없고….”

“정령석이요?”

내 정령석이라는 말에 당황해하는 그녀.

“응 정령과 계약하려면 정령석이 필요하니까…”

“러셀, 제가 있는데 정력석이 왜 필요해요.”

“응?”

자신이 있는데 정력석이 왜 필요하냐는 이실리엘의 물음.

‘뭐 높은 엘프는 살아 움직이는 정령석 이라도 되다는 말인가?’

그녀의 설명이 시작되자. 나는 정령석이 필요 없다는 그녀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실리엘은 정말로 살아있는 정령석 이었던 것!

“정령석은 정령들이 관심을 보여 모여들게 하려는 것인데. 정령석이 없어도 제가 부르면 그것보다 많이 모여들걸요? 그리고, 그, 음…. 어…. 러셀이 부르면 아마 저, 저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이 올 거예요. 아, 아마도…”

이실리엘이 말을 끝내고 왠지 빨갛게 된 얼굴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부르면 많이 온다고? 나는 그런데 인간이라서 힘들지 않을까?”

“그, 밤마다 저, 저랑 함께 자기 때문에…. 정령력이 아, 아마 추, 충만할 거예요.”

‘정력? 아… 정령력… 그런데 같이 자기 때문에 많이 온다고?’

이실리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실리엘을 바라보자. 이실리엘이 무척이나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내 눈을 화급히 가려버렸다. 순간 뭔가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지고 눈앞에 느껴지는 충격.

“끄흑…”

“아! 이거 아프다고 했죠. 미, 미안해요. 러셀. 말을 해야 했는데.”

“아, 아냐 겨, 견딜만해.”

정령의 시야. 눈알이 빠질 것 같은 짜릿한 충격.

잠시 후. 시야가 회복되자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살아있는 정령력 반딧불이었던 것이다. 하복부에서 가장 빛이 많이 나는 게 매우 부끄러운 상황.

“혹시 이실리엘 이거 다른 엘프들 누, 눈에도 그대로 보이는 거야?”

“그, 그렇죠?”

“자주 할수록 더, 더 밝아지나?”

“아, 아마도…”

나는 그녀에게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렇지만 결혼식 연회 때는 이, 이렇지 않았는데?”

“그, 그때는 저희가 그 요, 요즘만큼 자주 하지도 않았고 가, 같이 자는 것도 드물었으니까.”

“그, 그래?”

하긴 실리아가 마련해 준 첫날 밤 외에는 리젤다에게 미안해서 눈치를 보느라 좀 그랬긴 했는데, 그런데 로리엘이나 에밀 그리고 다른 엘프들이 이런 걸 다 본다니 왠지 부끄러웠다. 부부 금실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조, 좀 더 하다 보면, 정령의 기운이 몸 안에 안정화되어서, 그렇게 이, 일부분만 빛이 강하지 않을 거예요.”

일부분이라는 단어에서 내 하복부로 눈을 옮겼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는 이실리엘. 역시 그녀는 정령력에 대한 최고 전문가답게 기막힌 해결책을 내놓았다. 안정화될 때까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조언.

나는 부끄러움에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돌려 이실리엘을 바라보자.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걸어준 정령 안에 그녀의 하얗게 빛나는 머리카락과 그녀의 몸에서 삼투압이라도 일으키는 듯 반짝이는 정령력 가루들이 그녀와 나의 살결이 맞닿은 부분에서 나에게 조금씩 물들 듯 번져 들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그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실리엘이 내 품에서 일어나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러셀, 그럼 당장 계약하러 가봐요!”

“당장?”

“네, 그냥 바로 해버리죠!”

인간인 나와 살아서 그런지 상당히 급한 성격이 된 것인지. 이실리엘은 로브 하나를 걸치더니. 내방으로 나를 끌고 가 나에게도 로브를 뒤집어씌웠다.

잠옷 위에 로브 한 장.

“이, 이실리엘 옷을 입고.”

“아뇨, 그냥 가는 게 좋아요. 정령들이 그래야 더 좋아해요.”

이것저것 걸치고 가는 것보다 알몸을 좋아한다는 이실리엘의 조언.

결국 나는 이실리엘의 손에 이끌려 잠옷에 로브 한 장만 걸친 채 여관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렇게 여관밖에 발을 딛자마자 우리 앞에 로리엘이 나타났다.

“이실리엘님 밤중에 어디를?”

“아! 잘됐네요. 로리엘도 따라와요. 러셀에게 정령을 계약해 주려고요!”

“저, 정말입니까?”

표정 없는 로리엘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더니 나에게 물어왔다.

“러셀은 어떤 정령이 제일 좋은가?”

뭔가 기대 가득한 표정.

“그, 글쎄 딱히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물의…”

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급격히 시무룩해지는 로리엘의 표정.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지 당연히 알 것 같은 느낌이랄까?

로리엘의 표정이 저렇게 풍부하다는 게 신기할 지경.

“물의 정령은 아무래도 물이 가까워야 위력이 오르니 땅…”

물의 정령을 제외하자 다시 밝아졌다가. 땅이라는 말에 금세 며칠 물 안 준 화분처럼 시드는 로리엘의 표정.

“땅의 정령이나 불의 정령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이실리엘이 바람의 정령을 다루니까 불과 바람은 시너지. 아니,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서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불의 정령이 좋을 것 같다는 말에 눈앞의 로리엘 꽃은 언제 시들었냐는 듯. 생기를 머금다 못해 이슬 머금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슬로 글썽글썽한 눈과 빵긋 터진 꽃망울 같은 로리엘의 표정.

“그, 그래! 나, 나도 러셀 너와 같은 생각으로 부, 불의 정령을 선택한 것이다. 이실리엘님의 바람으로 더욱 강화되는! 여, 역시!”

로리엘은 마구 흥분해 모두 잠이든 밤임에도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놀란 이실리엘이 제지할 때까지 말이다.

“로리엘, 지금은 한밤중이에요. 기쁜 마음은 알겠지만 쉿 조용히 해 주세요.”

“죄, 죄송합니다. 이실리엘님 너무 기쁜 나머지.”

진정된 로리엘을 데리고 강가로 향했다.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장작 하나를 들고 우리 뒤를 따르는 로리엘.

강가로 향하며 이실리엘이 로리엘이 저러는 이유에 대해서 조용히 설명해주었다.

“엘프들은 같은 정령에 친밀도가 높은 엘프에게 유대감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엘프들이 불의 정령을 꺼리다 보니. 로리엘은 아무래도 유대감을 형성할 엘프들이 주변에 좀 적어요. 그러니 러셀이 불의 정령이 마음에 든다는 소리에 저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멜팅 플레임 가문을 제외하고는 불의 정령을 다루는 엘프는 극히 희귀하다는 이실리엘의 말. 인간인 내 입장에서는 엘프들이 느끼는 유대감이라는 부분을 조금 이해하기 힘들지만. 동질감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로리엘의 좋아하는 표정을 보니. 왠지 꼭 불의 정령과 계약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못하면 애 우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강가에 도착해. 로리엘이 누구보다도 먼저 장작을 땅에 세우더니. 자신의 작은 불의 정령을 불러내 그 장작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다급하게 말했다.

“이, 이실리엘님 준비되었습니다.”

나나 이실리엘은 어떤 정령을 부를지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준비를 다 끝낸 로리엘. 이실리엘도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러셀도 불의 정령이 괜찮은 가요?”

‘그래, 뭐 남자는 레드 아니겠나. 왠지 안 하면 애 하나 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꼭 하나의 속성과 계약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이실리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실리엘이 불타는 나무토막 앞에 서서 양손을 펼친 채 엘프어로 뭐라고 속삭이자. 불꽃이 크게 타오르며 여러 마리의 불의 정령이 나타났다.

작은 불로 된 새. 도마뱀, 작은 소년 각기 다양한 모습.

“러셀 이 중에 마음에 드는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친구가 되어달라, 계약해달라 부탁해봐요.”

“마음속? 마음속이란 말이지?”

나는 이실리엘이 불러온 불의 정령 중에 손바닥만 한 혀를 날름거리는 도마뱀에게 집중하며 마음속으로 부탁했다.

‘샐러맨더는 도마뱀이 국룰이니 첫 번째는 너로 정했다!’

내 첫 정령으로 낙점된 것은 작은 도마뱀 모양의 불의 정령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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