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 221. 해충 박멸 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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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뜬 일곱 달. 무릎까지 자란 풀들을 휘날리는 바람만이 가득한 평원. 우리가 탄 마차는 무릎까지 자란 풀들을 헤치고 천천히 그란 폴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워낙 인적이 드물어 그런지 웜 포트와 그란 폴 사이의 길은 흔적만이 남은 상황. 암살자의 위협에 마을로 오가는 마차를 중단한 지, 열흘이 좀 넘었을 뿐인데, 풀은 이미 길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었다.
길이 꺾어지는 곳에서 길을 잃은 말들이 풀숲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풀숲에서 뛰어나온 평원 쥐에 말들이 놀란 것을 진정시키길 몇 번.
그렇게 돌발 상황을 겪으며 흔적만 남은 길을 더듬어 올라가려니,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마차.
“사리나를 데리고 왔었어야 했나? 이실리엘 아직이야?”
작전 중에 변수가 생겨 마차가 늦어지니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깨어난 수리아를 확인하려 늦어진 것과 어둡고 빽빽하게 자란 풀들로 인한 지연.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전 중에 일어날 변수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실책이었다.
“괜찮아요. 러셀 걱정하지 마세요. 도망갔으면 따라가 잡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흔적은 아직이네요.”
옆자리에서 손을 잡아주며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하는 이실리엘.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아는 이실리엘은 내 마음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수롭지 않은 걱정이라 듯 말했다.
솔직히 이 인원이면 암살자 수백 명이 몰려와도 걱정 없는 인원이긴 했다.
다만 로리엘이 저번에 평원의 대학살을 벌일 때. 그란 폴 근방까지 시체의 흔적이 길게 이어져 있었기에, 놈들이 흩어져 도망가기 전에 일거에 잡아들이기 위해서 많은 인원을 데려온 것일 뿐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내 불안의 근본적 원인은 놈들이 눈치채고 도망갈까 하는 불안이지. 전투의 패배 같은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는 않는 사소한 걱정이긴 했다.
“아직이야 이실리엘?”
“아직 보이지 않네요. 정령들도 찾지 못하고 있어요.”
“이쯤이면 나타날 때도 되긴 했는데?”
놈들이 숨어있다는 초소와 마을의 중간쯤에 가까워져 오고 있기에, 이실리엘에게 혹시 흔적이 나타났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실리엘이 불러둔 바람의 정령이 마을을 떠난 직후부터 계속해서 주변을 확인하는 상황이었지만, 놈들의 흔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마차 안이 조금 분주해 보여 안쪽을 들여다보자. 어둠 속, 마차 안에는 숨죽인 시트라 씨, 로리엘, 에이리가 놈들의 위치가 가까워져 왔다는 말에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고 천천히 몸을 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눈앞의 먹잇감을 먹게 어서 내보내 달라는 야수들처럼 흉흉한 안광을 흘리거나, 이해할 수 없는 기대 감찬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나는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차 안의 인원들을 살피고 고개를 돌려 앞쪽을 바라볼 때. 마차 안에서 몸을 풀던 수호자 에이리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하나 붙었다요.”
그리고 동시에 이실리엘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추적이 하나 붙었네요.”
로리엘의 친구인 두 수호자 에이리, 시리엘 중 에이리를 이번에 참가시킨 이유. 물의 정령이 주특기인 시리엘보다 에이리가 먼 거리 감지에 뛰어나다는 이실리엘의 조언 덕분이었다.
강이 바로 옆이긴 했지만, 주변에 물이 있고 없고에 따라 위력의 차이가 심한 물의 정령보다, 방어에 특별한 강점이 있으며 땅 위를 디딘 모든 생물을 정령력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추적할 수 있다는 땅의 정령 전문가 에이리.
확실히 감지에 훨씬 뛰어나다더니. 이실리엘보다 약간이긴 했지만, 더 빠르게 추적이 붙었다는 것을 알려왔다.
“이실리엘 처음 부탁한 대로. 에이리도 알겠지?”
“네!”
“알겠다요. 러셀.”
나는 제일 먼저 둘에게 사전에 의논한 대로 행동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빠르게 움직여야 할 로리엘에게 행동을 지시했다.
“로리엘 준비해.”
“응 알았다.”
로리엘의 역할은 혹시라도 도주하는 녀석들을 찾아내 처리하는 추적꾼.
로리엘은 내 말을 듣자마자 달리는 마차 뒤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어둠에 녹아들듯 한밤중 풀숲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로리엘이 완전히 한밤중 어두운 풀숲으로 녹아든 것을 확인하자. 나는 시트라 씨에게 다음 행동을 지시했다.
그녀의 맡은 임무는 수호. 그녀가 처음 공격에서 우리 모두를 보호할 것이다.
“시트라 씨 올 겁니다. 준비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러셀 씨.”
내 말에 짧게 대답한 시트라 씨는 덜컹거리는 마차 가운데 몸을 고정하고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차 내부에 조용히 읊조리는 시트라 씨의 기도문이 울려 퍼질 때.
에이리의 긴박한 음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땅속에 숨어있다요. 손가락 세 번 만큼, 곧 멀지 않다요.”
땅속에 있다는 건 좀 의외였다. 가까운데도 이실리엘이 감지하지 못하다니. 확실히 에이리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그녀의 정보에는 정확한 인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손가락 세 번만큼은 서른 명쯤 된다는 소리.
놈들이 남은 인원을 싹싹 끌고 왔기를 기도하며, 우리 마차는 놈들이 만들어둔 함정의 아가리를 향해 천천히 자진해서 들어갔다. 서른 명의 암살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지옥 굴로 마차가 천천히 들어서자.
아무런 경고도 없이 마차로 날아드는 화염구 두 발.
쿠르릉 콰쾅
거대한 폭발음에 땅과 대기가 울부짖었다.
그리고 화염구의 폭발로 휘날리는 먼지 속에 날아드는 화살, 그리고 단검.
말들이 놀라 앞발을 쳐들며 달려 나가려 했지만, 말들은 땅에 뿌리박힌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놀란 외침만을 뱉어냈다.
“히이이잉”
“히이잉”
놀라 울부짖는 말. 화염구로 인해 피어오른 자욱한 먼지와 휘날리는 풀잎.
그리고 잠시 후 이어지는 정적.
놈들은 일제 공격 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먼지가 걷히길 기다리는듯한 모습.
놈들의 기다림을 덜어주기 위해 이실리엘이 부른 바람의 정령이 하늘로 먼지를 싹 걷어냈다. 그렇게 폭발로 인한 먼지가 사라지자 드러난 것은, 시트라 씨의 금빛 신성력을 머금은 반구. 상급 이단 심문관인 시트라 씨의 강력한 신성 보호막 주문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색도 없다 먼지가 걷히고 달빛이 비치자. 그 빛에 반응하듯 번쩍이며 빛을 반사하는 반구.
그리고 그 반구의 모습에 습격해온 암살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 때. 한밤중의 침묵을 찢듯 시트라 씨의 강렬한 외침이 마차 안에서 터져 나왔다.
“벌레 같은 놈들은 이 자리에서 오늘 다 참회해야겠습니다! 강제로 말이죠!”
신성력을 가득 담은 외침에 대기가 짜르르 울리며 진동했다.
그리고 붉은색의 이단심문관 복장을 한, 목소리의 주인 시트라 씨가 빛을 번쩍거리며 마차 뒤로 뛰어내리자 놈들 사이에서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 이단 심문관이 어째서 여기에!”
“버러지 같은 놈들! 그냥 심문관이 아니라 상급 이단 심문관입니다!”
보호막에서 뿜어져 나온 빛과 시트라 씨의 등장에 놈들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 때. 그건 마치 시작이라는 듯 또 다른 하늘과 대기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우리를 중심으로 저 멀리에서부터 거대한 원형으로 휘감기는 구름과 바람. 언제나 난장판인 현장을 책임지는 우리의 믿음직한 친구.
폭풍의 진 실리아였다.
“러셀, 이러면 되는 거지?”
우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가 완성되자 실리아가 어느새 머리 위에 다가와 칭찬 마려운 강아지처럼 물어왔다.
실리아가 소환한 거대한 원형의 회오리는 암살자들을 남김없이 그 안에 가둔 상태. 머릿속으로 부탁한 대로 완벽한 가두리 완성.
계약한 정령과는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 없이 생각만으로 뜻이 전달되니, 그렇게나 편할 수가 없었다.
“그래, 수고했어.”
“그런데 나 혼자면 된다니까 잰 왜 불렀어!.”
“걘 이실리엘이 불렀잖아.”
“너희 부부는 나 혼자면 충분하잖아!”
실리아가 시샘을 부리는 목소리로 투정하자 공중에서 이지적이고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리아 욕심부리는 건 좋지 않습니다. 하, 당신은 롱 윈드의 남편과 계약했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실리엘은 다른 롱 윈드랑 다르게, 나를 유일하게 자주 불러주던 친구라고!”
“흥, 계약한 롱 윈드의 남편이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정령왕께 말씀…”
“아! 알았어! 알았다고!”
실리아가 말도 안 되는 떼를 썼지만, 싸늘한 목소리에 지적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곧 침묵하고 말았다.
서릿발 날리는 목소리로 실리아를 침묵시킨 주인공은 또 다른 정령이었다.
천방지축 성격의 실리아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발랄한 아가씨 모습이라면 서릿발 날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긴 드레스를 입은 차도녀.
이실리엘이 새롭게 불러낸 북풍의 진 (Jinn of North Wind) 나디아였다.
상급 정령인 바람의 진들이 두 마리나 있는 이유. 그것은 내가 실리아와 계약했기 아니, 당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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