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220. 해충 박멸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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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후 이른 아침. 부엉이를 통해 암살자들이 얼마나 모여들었나 확인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수도에 근거지를 둔 녀석들이라서 오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기에 놈들의 준비 상황을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쪽에서도 마냥 시간을 질질 끈다며 의심을 할 수도 있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놈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조용한 한나 아주머니댁 빈방. 나와 이실리엘, 사리나가 부엉이의 수정구 통신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부엉이입니다.”
“무슨 일이지? 놈들이 움직이기라도?”
“분홍 머리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습니다. 준비는 얼마나? 늦어도 며칠 안에 이동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간 교육이 좀 의미가 있었던지. 아니면 플로라가 옆에 없어서 그런지. 부엉이는 비교적 마음에 드는 연기를 하는 중이었다.
저번처럼 떨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부엉이 녀.
“이미 준비는 끝났다. 이쪽도 이미 초소와 웜 포트의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정확한 인원은 얼마쯤 될 것 같은가?”
“사제 하나와 용병 넷 그리고 여관주인입니다.”
“인원이 줄었군. 다행이야. 금 하나에 나머지는 은 등급이 확실한가?”
“예, 여관에 있는 용병들이니 확실합니다. 가슴에 문장도 확인했습니다.”
혹시나 우리 쪽 행동을 간파할 수 있을 만한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부엉이가 우리에게 잡혔다는 사실을 어떤 루트로든지 파악할 수도 있다는 계산에, 수호자 하나는 두고 가기로 했다.
그렇기에 처음 계획했던 인원보다 하나가 준 것.
혹시라도 이쪽으로 쳐들어올 수도 있으니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이군. 놈들이 출발하면 연락하고 따라붙어라. 철수는 같이한다.”
“알겠습니다.”
부엉이와 놈들의 통신이 끝나자. 때가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놈들이 모여들기를 고대하고 있었고, 놈들은 우리가 마을 밖으로 나오기를 고대하는 상황.
서로가 원하던 것이 맞아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늦지 않게 시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통신이 끝난 것을 확인한, 사리나가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럼 언제쯤?”
“오늘 밤늦게 그란 폴로 출발한다고 하시죠. 야음을 틈타 이동해. 아침이 밝자마자 그란 폴에 도착하겠다는 계산 정도로 움직일 거라고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엘프분들이 있으니 야음 속에서 싸우는 건 저희 쪽에 훨씬 유리할 겁니다.”
역시나 사리나. 유능하게 아주 맘에 쏙쏙 드는 계획을 뽑아내고 있었다. 이래서 전생의 보안업체들이, 유명한 곳을 침투한 해커를 보안 전문가로 뽑아가고 그랬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의미에서 특채한 것인데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고 있었다. 로리엘의 엉뚱함과 나의 혜안이 적당히 조합된 결과인데 잘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나 할까?
결국 통신이 끝나고 시작된 회의 끝에 사리나의 의견대로 우리는 오늘 밤 놈들을 치기로 결정했다.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 모여들어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이제 방역업체 직원들이 출동해야 할 때. 우리는 전생의 해충 방역업체 직원을 자처하기로 한 것이다.
한밤중이지만 소란스러운 웜 포트의 여관 입구. 여관 입구가 소란스러운 이유는 여관 앞에 대기하고 있는 천막을 씌운 마차에 사람들이 하나둘 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차에 탑승하는 인원은 나를 비롯해 이실리엘, 로리엘, 시리엘, 시트라 씨. 모두 완전 무장 한 상태. 그리고 모두 로브로 전신을 가린 상태였다.
잠시 후 깜짝 놀라줘야 할 관객들이 있으니 철저히 준비한 것.
마차의 등은 모두 꺼진 상태였고, 어둠 속에서 혹시라도 무서워할 말을 위해서 말에게 밤에도 잘 볼 수 있는 마법을 에브리나가 걸어주었다.
하나둘 그렇게 다들 마차에 오르고 이실리엘을 옆자리에 태우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출발 전. 마지막으로 서로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마차를 출발시키기 위해서 고삐를 내리치기 직전.
토끼 수인 자매 중 동생인 나나가 여관 문밖으로 뛰쳐나와 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러셀님 왕녀님이….”
나나의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그 눈물을 본 순간 우리 모두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서, 설마? 아, 아니겠지?’
“서, 설마!”
시트라 씨가 가장 놀라 마차 밖으로 뛰어내리고. 나를 비롯한 그란 폴로 출발하려던 인원이 모두 놀란 얼굴로 나나를 바라보자, 그녀의 입에서 들려온 것은 절망이 아닌 우리가 고대하던 소식이었다.
“깨, 깨어나셨어요.”
놀란 얼굴로 마차 옆자리를 돌아보자 이실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러셀, 어서 다녀오세요. 음…. 이제 여섯째인가요?”
따듯한 이실리엘의 말. 나는 고마운 그녀를 급하게 안아준 후 마차에서 뛰어내려 여관으로 달렸다. 절룩거리며 여관에 들어서고 홀을 가로질러 급하게 계단을 오르자.
삼 층 끝은 이미 몰려든 사람들이 잔뜩이었다.
오늘따라 유독 멀게만 느껴지는 복도 끝.
복도 끝 모여든 사람 사이, 경계를 위해 대기하던 처남이 계단에 올라선 날 발견했는지 쏜살같이 달려와 부축했다. 평소 같으면 거절했겠지만, 마음이 급한 지금은 거절할 수 없었다.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급하게 복도를 가로지르자 날 보고 미소 지으며 물러나는 사람들.
그렇게 수리아가 누워있는 삼 층 복도의 끝방에 들어서자. 며칠간 잠들었던 수리아가 그 무겁게만 느껴졌던 눈꺼풀을 들어 올린 채. 고개를 돌려 내가 들어서는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룩거리며 쓰러지듯 침대 머리맡에 달라붙자. 그런 날 보고 미소 짓는 수리아.
제일 먼저 몸이 걱정되었지만, 암살자를 몇 명이나 잡아 빨아낸 생명력을 쏟아 넣어 그런지 몰라도 병석에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 침대에만 누워있었음에도 마르지 않고 생기를 머금은 입술. 생기를 머금은 머릿결.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자, 잘 잤어?”
전생의 소중한 사람이 죽을 뻔하다 살아나는 영화 같은 데서 자주 등장하던 단골 대사였는데, 내가 이 말을 하게 될 줄이야…
그러나 이런 상황에 이 말이 왜 자주 쓰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마치 자다 깬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잘 잤냐는 인사에 그녀 또한 그 말이 맞는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은가…
“모, 못 깨어나는 줄 알았어…! 크흑…”
그간 내 마음의 불안을 토해내고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묻자. 그녀는 내 머리를 조용히 쓸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조용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무, 무섭게 해서 미안해요.”
무섭게 해서 미안하다는 왕녀의 표현. 거기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었다.
긴 병환으로 떠난 에삭스의 왕을 지켜보던 그녀의 마음이 두려움과 무서움이었다는 간접적 표현이기도 하니 말이다. 부상으로 병석에 누워있던 가족들을 보며 무서움에 떨었을 왕녀.
침대에 누워있는 북부 왕국의 유일한 혈통인 왕녀의 내면은 아직 여리디여린 소녀였던 것이었다.
“아니야. 깨어나 줘서 고마워.”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맞잡은 손.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대화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러나 몇 마디 하지도 못했는데 옆에서 사리나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시간에 맞추시려면 어서 출발하셔야 합니다.”
늦어지면 놈들이 의심할 수도 있다는 뜻.
그때야 수리아도 내가 완전 무장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내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꼭 잡은 채로 말이다.
“어, 어디 다녀오시게요?”
“깨어났는데 미안해. 급하게 다녀올 일이 있어서 그래. 잠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어, 어디를…?”
걱정되는지 자꾸만 물어오는 왕녀.
“나는, 내 것에 손대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 손을 댄 새끼는 응당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내, 내 것…”
내 것이라는 표현에, 부끄러움에 빠져든 수리아의 이마 위에 조용히 입을 맞춰주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방을 나서며 나나에게 당부했다.
“나나, 곱게 간 쌀로 물 같은 죽을 만들어서 먹여. 오늘 하루는 무조건 그거만 먹이고 내일부터 천천히 거칠게 간 쌀로 바꿔가 삼 일에 걸쳐서 천천히 바꾸는 거야 알았지?”
“예, 주인님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나나의 대답을 뒤로하고, 마차를 배웅하기 위해 몰려든 인원에게도 혹시 위험한 일이 일어나면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도 일러두었다.
“에반, 혹시 모르니.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지휘는 네가 맡아라. 리젤다가 도울 거야.”
“알겠습니다. 형님!”
에반이 가슴에 주먹을 가져가 북부 기사들의 예로 답했다. 혹시라도 함정이거나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기사 출신이 에반에게 내가 없을 때 여관을 부탁한 것.
“사리나 무슨 일이 있으면 에반의 지시를 따르고 아내들을 지켜라.”
“예 알겠습니다. 러셀님.”
“부엉이는… 그… 그래, 사리나 말이나 잘 들어라.”
“네… 넷!”
사리나는 지가 몫의 일 이상을 해내지만, 부엉이는 음…. 요 며칠 지켜본 결과 그냥 CCTV 이상을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1인분 0.5인분은커녕 –1인분이었으니까.
그냥 부엉이는 사고나 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렇게 적당히 남은 인원들에게 당부할 사항을 전하고 마차를 출발시켰다. 달빛 속에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여관 지붕 위로 수호자인 시리엘이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일곱 달이 모두 뜬 한밤중.
마을 입구의 목책이 한밤중의 정적을 가르며 평원으로 가는 길을 열고, 그 열린길로 우리가 탄 마차가 천천히 평원으로 들어섰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풀들이 토해내는 소리가 마치 폭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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