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219. 새 여급 4
* * *
사리나와 부엉이 녀는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여관 옆에 있는 고용인들의 숙소로 보이는 건물의 이인실. 사리나는 노예가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자기의 생각과 전혀 다른 대우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남은 음식을 먹고 헛간에서 동물들과 함께 잠들고, 유일하게 깨끗할 때는 주인의 시중을 드는 순간뿐인, 벌레만도 못한 비참함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여관 일을 돕는 것 이외에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
여관 손님들과 같은 음식을 먹으며, 저녁에는 따듯한 물로 목욕하고, 깨끗한 이불 안락한 침대에서 잠드는 노예라고 볼 수 없는 생활.
비참하게 생명을 구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 이상한 여관의 최대 권력자는 러셀이라는 여관주인 남자. 모든 여자가 그 남자의 말에 절대복종한다. 자기의 주인 로리엘도 마찬가지인 상황.
그러니 러셀이라는 남자의 말만 잘 따르면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할 거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괴물 같은 여자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이상한 남자. 아무리 괴물 같은 여자라도 그의 앞에만 가면 순한 양처럼 변하며 애교를 떨어대게 하는 대단한 남자.
남자는 이 비정상적인 여관에서 어찌 보면 가장 정상적인 남자였다.
그런 정상적인 한 사람의 기분만 맞추면 되니 아주 쉬운 일이지만, 하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문제가 있었다.
사리나가 옆 침대에 누워 잠든 부엉이 녀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같은 암살 길드 출신이라는 게 믿기질 않는 여자. 오늘 이 여자 때문에, 두 번의 목숨을 위협받고 한 번의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멍청하기 이를 데가 없는 여자.
“움냠…”
침을 흘리고 태평하게 잠에 빠져든 꼴을 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 여자랑 한 조가 된 것 같은데, 무서운 주인들보다 당장 옆에 잠든 멍청한 여자의 돌발 행동을 걱정해야 한다니.
그렇게 옆에 침 흘리는 부엉이 녀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다 사리나는 천천히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한밤중 사리나와 부엉이 녀는 목덜미에 느껴지는 차가움에 잠을 깨야 했다.
“흐에엑 흡….”
부엉이 녀가 목덜미에 느껴지는 차가움에 기겁하다 입을 틀어막히고.
사리나는 제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떠 상황을 확인했다.
자기의 목에 차가운 칼날을 들이대고, 달빛에 드러난 위험한 미소를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는, 남편에게 자기의 능력을 숨기고 있는 여자.
무희. 여관주인의 넷째 부인이었다.
칼날이 목에서 치워지자. 사리나는 잽싸게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듯 바닥으로 내려와 꿇어 엎드렸다.
“부, 분부하실 일이라도?”
“어머! 멍청하고 입 싼 누구와는 다르게 아주 교육이 잘된 벌레군요?”
사리나는 이마가 마룻바닥에 닿게 고개를 조아렸다. 로리엘과 친구 엘프분 다음으로 흉흉한 기운을 흘려대던 분. 자기의 능력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분이셨다.
남자 주인이 능력을 확인해보기 위해 무력의 순서를 물었을 때. 자기가 그녀를 바라보자 미간을 찌푸려 확실한 의사 표현하셨던 분. 눈치 있게 그녀를 걸렀기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별도로 당부하실 말씀이 있는 듯했다.
“제가 여기 왜 왔는지 아나요?”
역시나 질문이 들려왔다. 하지만 자신이 할 대답은 한가지.
“벌레는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습니다.”
“어머나 어쩜 이리 똘똘할까. 그 말 믿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넷째 마님.”
그녀의 시험을 통과한 것 같기에 다소 안심하는 차. 그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우리 새대가리는 눈치가 없는지. 제가 왜 찾아왔는지도 알아차리질 못하고 있네요.”
자다 깨 영문도 모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부엉이 녀.
넷째 마님이 부엉이 녀에게 질문을 시작하셨다.
“우리 새대가리는 제가 왜 왔는지 아시나요?”
“저는 죽음의 연꽃에 대해서 한마디도…. 웁”
급하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자기 입을 틀어막는 부엉이.
개 같은 년! 부엉이 녀는 몰라야 할 사실을 자신에게까지 알려 죽음으로 끌고 들어가는, 개 같은 행위를 저지르고 말았다.
넷째 부인이 숨기고 싶어 하던 비밀이 죽음의 연꽃의 일원이라는 사실이었다니! 그렇다면 계속 트집을 잡아 부엉이의 모가지를 꺾어버리려 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숨기고 싶은 부인의 비밀을 자신에게까지 알린 부엉이 녀.
잠들기 전 했던 걱정이 현신로 다가오자 사리나는 망연한 표정이 되었다.
‘씨발년 뒤지려면 저 혼자 되질 것이지….’
“하…”
넷째 마님의 싸늘한 혀 차는 소리.
“이럴 땐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선택을 강요하는 넷째 마님.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사리나는 엎드려 간청드렸다.
“도, 도구를 주시면 혀, 혀를 끊겠습니다.”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목숨을 살려주시면 절대 입을 닫겠다는 각오를 보여드려야 했다. 이것도 안 되면 자신과 부엉이에게는 결국 죽음뿐이었다.
똑 또옥
자기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머리카락을 타고 마룻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땀방울 소리가 천둥같이 들려오길 얼마였던가. 땀방울 소리를 비집고 마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우리 오줌싸게는 걱정 안 해도 되겠군요. 다만 혼자 판단하지 마세요. ”
‘사, 살았다.’
자기의 대답이 그녀를 만족시켰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 자기 목숨은 보류된 것이지 삶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눈앞의 멍청한 부엉이 년 때문에 말이다.
역시나 주인마님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우리 새대가리는 어찌해야 하나 정말 난감하네요.”
“마, 마님 하찮은 벌레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목이 떨어질 뻔할 것을 각오하고 의견을 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요? 우리 똘똘한 오줌싸개가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저 멍청한 년은 아무래도 머리가 모자라 언제라도 실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처리하시면 주인어른 때문에 곤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쩜! 우리 오줌싸게는 제 걱정과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있죠? 그래서요?”
“저랑 저년은 아마도 한 조로 묶여서 활동하게 될 것 같으니. 제가 딱 붙어서 멍청한 년의 입을 감시하겠습니다. 허튼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말이죠. 그리고 만약 허튼소리가 나온다면, 제가 제 손으로 처리하고 저도 자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리나는 고개를 깊숙하게 조아려 그녀에게 동의를 구했다.
지금 저년의 처리를 종용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저녁 덕분에 저년이 죽으면 남겨진 비밀은 아는 사람은 자신뿐인데, 그럼 자신도 부엉이 녀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저것 트집잡혀 목을 잡아 꺾일 것이 뻔한 일.
자신만 죽으면 이곳에 비밀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저년의 감시를 핑계 삼아 자신도 살기 위해서는 저년을 살려두어야 하는 것이다. 멍청한 년과 한배를 타야 한다는 부담감이 몰려왔으나 현재는 그것이 둘 다 사는 유일한 방법.
멍청한 년과 묶이게 된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지만,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엎드린 자기의 머리 위로 마님의 발이 올라왔다.
“만족할만한 대답이긴 한데. 주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하면, 머리통을 밟아 터트리고 싶어진답니다?”
어떤 의도의 말인지 이미 눈치챈 마님의 서늘한 말씀.
“주, 죽여주십시오.”
“뭐, 그래도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아는 것 같으니 믿어보기로 할까요?”
믿는다는 말을 남기고 넷째 마님은 마치 연기처럼 방안에서 사라져버렸다. 마님이 사라지자마자 들리는 울음소리.
“흐아아아앙…”
부엉이 년은 갑자기 자신에게 달려들어 울어대기 시작했다. 누가 예쁘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품에 기어들어 와서 처우는 년.
그리고 동시에 사리나의 몸을 휘감는 따듯한 느낌.
쉬이이이
긴장이 풀린 반동인지 자기 몸을 끌어안고 오줌을 싸는 년.
‘이년이 대체 무슨 짓을?!’
“흐에엑…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오랜만에 사리나에게 살인의 충동이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목을 비틀어 죽이고 젖가슴을 뜯어버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리넨 가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상대방의 가슴은 자신과 비슷한 동류로 보였기에 사리나는 간신히 살심을 간신히 억눌러 참을 수 있었다.
가슴 작은 년 중에 나쁜 년은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고, 얜 조금 멍청할 뿐이니…
어두운 밤 소변 냄새나는 젖은 가운을 입고, 하나는 들고 목욕탕으로 향하는 사리나. 미리 받아둔 세면용 물로 부엉이 녀는 일단 몸을 닦고 재웠다.
그년이 뒤처리해야 했지만,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 직접 움직이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하 시발 진짜 밤중에 새대가리 년 때문에! 내가 이게 무슨 짓이야…”
남자 주인이 알려준 단어 새대가리는 이제 부엉이 녀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하는 짓을 보면 주인의 말처럼 머리가 나쁜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엉이 녀의 소변으로 젖은 몸과 가운을 가지고 목욕탕으로 향할 때.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눈앞에 로리엘님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꺄읍!”
어지간해서 놀라지 않는 자신이었지만 로리엘님이 나타날 때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덜미가 섬뜩한 그 느낌. 목이 떨어지지 않았나 만져보고 싶어질 지경.
“한밤중에 어딜 가는 거죠?”
“모, 목욕탕에 잠시.”
목욕탕에 간다는 말에 로리엘님이 주변으로 퍼지는 소변 냄새와 젖은 몸, 손에 든 가운을 보더니 인상을 쓰며 말씀하셨다.
“왜 자꾸 하지 않는 거죠?”
“예? 무, 무엇을?”
“기저귀…. 아침에 꼭 확인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로리엘님은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사리나는 자신에게 내려진 치욕의 이름에 다시 떨어야 했다.
‘새대가리! 이, 개 같은 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