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218. 새 여급 3
* * *
“모, 목표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자꾸 말을 더듬는 부엉이 녀. 플로라가 그 모습에 짜증 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일부러 들키려고 그러는 거냐는 플로라의 입 모양. 부엉이 녀는 눈물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통신을 이어갔다.
“제기랄 목숨도 질기 구만. 어느 정도 다친 것 같지?”
“아마 중상인 듯합니다. 마을의 사제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아. 목표의 상태가 마차 이송이 가능할 정도가 되면 며칠 안에 그란 폴로 이동할 거라고 합니다. 끕…”
부엉이 녀의 참던 흐느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상대방이 기쁨에 차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그게 정말인가?”
희열에 찬 남자의 목소리가 수정구 너머에서 들려왔다. 미끼에 급격하게 반응하는 남자.
“도살자 엘프와 연꽃? 아니지, 이제부터 언급 금지였지…. 그래 도살자 엘프와 ‘그’ 꽃도 같아 움직인다고 하나?”
도살자 엘프는 로리엘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이게 웃기면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에 숨을 죽이고 통신을 지켜보던 로리엘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들도 다들 웃음을 참는 모습.
‘그런데 꽃은 뭐지? 이실리엘인가?’
놈이 지칭한 꽃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놈의 대화 내용은 이따 질문하기로 하고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아니요, 둘은 무슨 연유인지 마을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마을에 있던 은 등급 용병 대여섯쯤이 따라붙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관주인이 금 등급인데 같이 갈 확률이 높고요.”
사리나의 말을 토대로 세 암살 길드의 전력이 비슷하지만, 마지막 남은 저놈들이 인원이 제일 많다고 했으니 총 전력을 아슬아슬하게 쏟아부을 정도의 인원을 불러준 것이다.
“금하나에 은 대여섯? 정말 지랄 같은 여관이군! 대체 그 여관은 뭐 하는 여관이기에!”
수정구 건너편에서는 흥분한 남자가 고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잠시 후. 진정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수 없이 남은 길드 전력을 다 끌고 쳐야겠군! 천오백 골드도 결코 이득이 아니야. 젠장! 처음 습격조는 다 죽었나?”
천오백 골드라는 말에 홀에 숨을 죽이고 있던 인원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다. 헥터 미친놈이 엄청난 금액을 쏟아부었다니 놀랄 수밖에.
“예, 남김없이. 강 건너 캠프도 다 쓸려나갔습니다. 저희도 늪지 근처에 숨어있습니다.”
“제기랄! 그 많은 인원이 전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군!”
“그럼 이후에는 어떻게?”
“잘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가 다른 변수가 생기면 바로 연락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부엉이 녀의 말이 끝나고 잠시 여관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아직 상대방의 연결이 끝났는지 알 수 없어 숨을 죽이는 상태.
“끄, 끝났어요.”
부엉이 녀의 끝났다는 말에 다들 그제야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휴우…”
우리 대상어는 계획대로 의심도 하지 않고 미친 듯 달려들어 미끼를 꿀꺽 삼킨 것 같았다. 부엉이가 잡혀서 미끼를 건넨 것을 상상도 못 했을 테니 당연할 것이다.
“형님 그래서 누구를 데려가실 겁니까?”
어느새 바짝 붙은 벨릭이 의욕 넘치는 얼굴 기대하는 표정으로 물어오고 있었다. 자신도 이번 일에 끼고 싶어 하는 눈치. 하지만 이미 머릿속에 생각한 인원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예로만 가야 해. 아무래도 암살자들이라서 독을 쓸 확률이 높고 속도나 기습에 관련된 권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시트라 씨, 이실리엘, 로리엘, 시리엘, 에이리. 이 인원으로 간다.”
나의 인선 결과를 들은 벨릭과 리젤다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상대할 암살자 중에는 금 등급도 있을 텐데 둘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은 등급과 금 등급의 차이가 단순히 한 단계로 보여도 그것은 단계를 나눈 기준일뿐. 둘 사이에는 엄청난 실력 차가 있으니, 속도나 기습에 특화되어있을 암살자를 상대로 버티지 못할 확률이 높은 리젤다나 벨릭을 데려갈 수 없는 것이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다. 목숨은 하나이니. 둘 다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 더욱더.
“서운해도 어쩔 수 없어. 둘 다 소중한 사람이니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이실리엘이나 로리엘이 안 소중하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혀, 형님은 무슨 그런 말씀을…”
술 마신 것처럼 벌겋게 된 얼굴로 부끄러워하는 벨릭.
“이 새끼야 부, 부끄러워하지 마. 분위기 이상해지잖아!”
얼마 전 아내들이 남자를 좋아하냐고 물어왔을 때가 생각났다. 내 비명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고, 그 웃음 속에서 로리엘이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소, 소중…”
아침 식사 후 오줌싸게 사리나와 부엉이 녀는 여관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리나는 노예를 자청했으니 부려 먹어 줄 것인데, 부엉이는 수리아의 상태에 따라 그 처우를 결정하기로 했으니 일단은 포로. 하지만 가둬두고서 밥만 먹이긴 좀 그렇고. 놀게 하느니 일을 시키기로 한 것.
암살자 출신이자 마법사인 부엉이 녀를 풀어둔 것은 그녀가 애먼 짓을 못 한다는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퍼밀리어인 부엉이를 노르딕 씨가 급조한 새장에 넣어 여관 천장에 매달아 두었으니 도망치고 싶어도 칠 수가 없는 것.
도망치면 새장을 플로라에게 선물로 준다는 협박에 부엉이 녀는 절대 도망치지 않겠다며 울었다.
그런 이유로 둘의 여관일 선생님 애니의 동생 앤이 둘을 끌고 다니며, 야무진 설명과 손놀림으로 둘에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침에 세수할 물들을 떠다 드리고, 아침 식사하러 내려간 방에 들어가서 물을 모아서 버려요. 사용한 수건은 모아서 옆 건물로 가져가서 같이 빨고요. 이것이 저희가 할 일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으신가요?”
‘누구 처제인지 아주 똑 부러지네.’
“아니요.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어, 그럼 사리나 언니는 저쪽 우측의 안쪽 방부터 정리해 주시고. 부엉이 언니는 좌측 방 부탁드려요.”
“네, 앤님”
“아, 알겠어요.”
나는 처제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교육이 틀린 곳은 없는지. 첫날이니 이것들이 일은 잘하는지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새 여급 둘은 아니, 하나는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았다.
안 쪽방부터 세수용 나무통을 꺼내 밖으로 가져가 물을 버리는 일. 두 손이 있고 두 발이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부엉이에게는 아닌 것 같았으니 말이다.
촤악
세숫 물통을 가지고 나오다 사리나의 하체를 향해 쏟아버린 부엉이 녀.
“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하아…. 신경 쓰지 마세요. 마르겠죠.”
가슴에 대한 분노를 터트릴 때는 분노조절 장애로 보였는데, 사리나는 생각보다 정상적이었다. 부엉이 녀의 실수를 눈감아주는 사리나.
쏟아진 물을 닦고 홀로 향하는 그녀들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그녀들을 본 로리엘이 사리나를 향해 질책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예?”
“왜? 차지 않았지?”
“예?”
“왜? 기저귀를 차지 않았지?”
로리엘은 사리나의 젖은 하체가 오줌을 싼 것이라 착각한 것 같았다.
수치와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사리나. 내가 부엉이 녀가 물을 쏟은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자 로리엘은 ‘아 그렇구나?’하는 표정을 짓더니 태연히 사라졌다.
뒤에 수치로 떠는 사리나를 그냥 둔채.
그리고 이어진 식자재 준비. 토란을 깎기 위해 부엌용 칼을 쥐여줬더니. 깎으라는 토란은 깎지 않고, 토란을 찔러 죽이다가 사리나의 이마를 향해 던지는 부엉이 녀.
사리나가 암살자의 반사신경으로 들고 있던 토란으로 칼을 막아냈기 망정이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사고였다.
“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두 눈을 부릅뜬 사리나.
“괘, 괜찮습니다.”
뿌드득
손에 쥔 토란이 으스러지고 있었지만, 저 정도 이해해줄 수 있다. 지금 죽다가 살아났으니 말이다.
그리고도 부엉이 녀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홀로 간식을 내가다가 벨릭에게 엎어버린다든지.
빨래를 널다가 빨래를 담은 바구니를 쏟아버리고, 널던 시트와 함께 휘감겨 넘어진다든지. 그 과정에서 빨랫줄을 받친 장대를 사리나에게 넘어트려 머리통을 후려칠 뻔하다든지.
물을 긷다가 물통을 아래로 빠트려 버린다든지 말이다.
나는 반나절 동안의 일을 통해 둘에 대한 평가를 확실히 내릴 수 있었다.
사리나 가사 능력 우수, 명령 이해력 우수, 민첩성 우수. 눈치 최상
부엉이 녀 가사 능력 최하, 명령 이해력 하, 민첩성 최하. 눈치 하
그냥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부엉이 녀는 쓸데가 없다는 말이었다. 나중에는 시킬 게 없어서 여관 마당 빗자루질이라도 시켰더니. 먼지를 날리면서 그 먼지 속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을 정도.
먼지가 생기는 반대편에 서야 한다는 상식조차 없는 심각한 상태.
여관 마당에서 먼지 속에 콜록거리는 부엉이 녀를 보며 한탄했다.
“와, 진짜 어디 쓸데가 없어서, 수리아가 멀쩡히 일어나도 살려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이 들 정도네.”
내 한탄에 어디선가 슥 나타난 플로라가 물었다.
“새 대가리인가요?”
나는 말없이 플로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