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217. 새 여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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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나는 새파랗게 질린 채 입술을 떨며 말하기 시작했다.
“여, 여관에 여, 여급이 부, 부족한 것 같은데 자, 잘할 수 있습니다. 빠, 빨래와 요, 요리도 거들 수 있고 또 저, 저는 상대의 힘, 힘의 크기도 알 수 있습니다!”
‘응? 힘의 크기를 알 수 있다고?’
로리엘이 주워온 노예는 생각보다 많이 쓸만해 보였다. 애니가 빠져서 여관 여급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는 건, 며칠 생활하면서 당장 여관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알아차리고 있는 것.
눈치가 빠르다는 말이었으니.
우리 애들이 다 유능하긴 한데 눈치껏 알아서 하는 것이 없다는 게 문제였는데. 좀 똘똘하게 움직이는 애가 있으면 편하긴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수리아가 여기 있는 동안은 에삭스의 새 왕과 수리아의 엘리전이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먼저 쓰러지는 자가 지는 목숨을 건 레이스가 벌어질 확률이 높았다.
내가 화가 나도 왕을 직접 손보지는 못하는 이유.
수리아의 왕국에 있는 많은 귀족이 그녀를 지지한다지만, 그녀의 가문은 헥터를 지지하는 상태. 분열이 일어날 것이 뻔한 상태에서 전 왕을 시해한 여왕이라는 불명예를 직접 안길 수 없는 것.
북부같이 외부의 적들과 싸우는 영토에서 내부 결속이 무척이나 중요한데, 내 손으로 내부 결속을 반쪽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피해를 보는 것은 그녀일 테니.
더군다나 그녀는 헥터가 죽으면 북부로 떠나야 하는 처지. 하루라도 더 그녀를 머무르게 하려면, 헥터 그 새끼가 최대한 병신 짓을 덜 하면서 질긴 목숨을 근근이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화가 치밀어올라 당장 달려가 쏴 죽여도 시원치 않지만 말이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내 품에서 쉬다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은 먼저 병석에서 일어나는 것이 먼저겠지만.
그런 이유로 헥터 그 머저리가 먼저 무덤으로 들어가기 전에 계속 암살자를 보낼 확률이 높으니. 전문가가 하나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았다.
전생에서도 해커로 유명한 사람들이 보안 전문가가 되곤 했으니 같은 맥락이랄까?
더군다나 상대의 힘의 크기를 알 수 있다는 건, 힘을 숨긴 암살자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니. 그렇기에 그녀를 한번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살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거면 곤란하니 말이다.
“그럼, 여기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군데?”
“다, 당연히 가, 가슴 큰 엘프님이십니다.”
바로 이실리엘을 지목하는 사리나.
‘이 새끼 가슴을 좋아한다더니, 사람을 가슴 크기로 지칭하다니!’
조금 분노가 솟아오르긴 했지만, 그러나 정확하긴 했다. 이실리엘이 젤 세긴 하니까 말이다.
“그럼 그다음은?”
“로리엘님과 그 친구분들입니다.”
이거 생각보다 정확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약간 문제가 있었다. 이놈이 엉뚱한 녀석을 쳐다본 것.
“그다음은?”
사리나는 플로라를 한번 쳐다봤다가 그녀가 인상을 확 쓰자 시트라 씨를 지목했다.
‘플로라는 가슴 때문에 쳐다본 건가?’
약간 헷갈리는 행동을 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능력 같았다.
“이, 이단 심문관님이 분홍 머리 공주보다 약간 더, 그리고 신성력을 끌어올리시면 훨씬 더.”
사리나의 말에 시트라 씨가 뭔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리나의 구명을 청했다. 보통 이런 살인마 같으면 어서 빨리 뚝배기를 터트리자고 흥분하셨어야 하는데 말이다.
‘수리아 이긴 게 좋았나?’
“러셀 씨 제법 ‘눈썰미’가 있는 것 같으니 살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불명예의 이름을 내리기도 했고요….”
“오줌싸게 사리나라는 이름을 시트라 씨가요?”
“예, 평생 불명예 속에 속죄하라는 의미로….”
아주 더럽게 불명예스럽긴 할 것 같은 이름.
일단 이놈의 길드는 로리엘에게 거의 다 죽고 살아남은 놈이 없다고 했으니 로리엘의 관리하에 맡기면 될 것 같았다.
제법 똘똘한 놈이니 헛짓하면 어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
“야, 로리엘 이거랑 저거랑 일단은 네 노예니까. 네가 잘 관리해라 알았지?”
“아, 아니다.”
“뭐가 또 아닌데?”
일단 오줌싸게 와 부엉이 녀의 소속을 로리엘에게 맡기려 했는데 거부하는 로리엘. 왜 거절하는지 이유를 묻자 들려오는 수줍은 목소리.
“내 노예가 아니라 우, 우리 노예다.”
‘친구니까 같이 쓰자 이 말인가?’
“그래 그럼. 그럼 관리는 네가 하고 주간에는 여관에서 일 좀 시키자. 마침 애니가 없어서 일손이 부족하긴 했어. 이상한 짓 하면 그냥 목을 쳐버려 알았지?”
로리엘이 허리춤에 단검을 빼 들어 몇 번 회전시키더니 부엉이 녀와 사리나를 한 번씩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리엘의 그 모습에 사리나는 아직 흘릴 게 남았던지 다시 줄줄 소변을 흘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얜 기저귀 좀 채워라.”
내 말에 사리나의 목덜미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다음날 부엉이 녀는 아침부터 플로라에게 목이 꺾일뻔했다.
멍청한 부엉이 녀가 중요한 정보를 어제 하나도 말하지 않은 것이 들통났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묻는 것만 대답한 부엉이 녀였다.
부엉이 녀는 마법사고 정찰한 내용을 길드에 수정구로 연락하는 것도 부엉이 녀의 임무였기에, 암살자 길드와 연락할 수정구 또한 가지고 있었는데. 어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 아침에 재심문 과정에서 들통난 것이었다.
겁을 먹어서 생각이 안 났다는 허탈한 소리. 플로라가 격분하여 부엉이를 잡아채 목을 잡아 반쯤 꺾었으나 살려둬야 한다는 나의 소리에 부엉이 녀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히끅… 흐윽…”
“부엉이, 그만 우는 게 좋을 거야! 내 인내심이 아주 바닥이거든?!”
플로라는 무희 따위가 아주 그냥 막 나가기로 했는지. 지금도 부엉이를 쥐잡듯이 잡는 중이었다. 내가 너무 걱정돼서 말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플로라 화가 나겠지만 참아 알았지? 플로라는 무희인데 저런 흉악한 애들한테 그러면 안 돼. 알았지?
“네, 자기. 그래도 자꾸 거짓말을 하니까…”
“그리고 내가 살던 곳에는 이런 말이 있어. 새대가리라고. 새는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지.”
“푸흡… 새대가리? 뭔가 말이 재미있네요.”
혹시라도 부엉이가 미쳐서 확 들이받으면 플로라는 최소 중상인데. 어제부터 너무 막 나가는 플로라.
플로라 옆에 훌쩍이는 부엉이 녀의 품에 안긴 그녀의 부엉이는 조금 상태가 별로였다. 반쯤 돌아간 목의 부엉이, 하지만 다친 건 아니란다. 부엉이는 목이 유연해서 그 정도 꺾인 정도로 상처 입거나 죽지는 않는다고.
다만 좀 놀라서 그런 거라고…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진 부엉이 녀였다.
부엉이의 울음이 어느 정도 그치고 길드에 어디까지 보고가 되었는지 묻자. 수리아가 중상을 입었고 신전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보고되었다고 했다.
수리아가 살았나 죽었나 확인하려 신전을 기웃대다가 이실리엘에게 붙잡힌 거라고.
“그럼 신전에 사제가 몇 명 있는지. 어느 수준인지는 저쪽이 모른다는 거네?”
“네, 제가 잡히기 전에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던 거라. 훌쩍…”
“보고는 언제 하는데?”
“지금쯤… 끄흡…”
멍청한 부엉이 때문에 절호의 기회를 놓칠뻔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니 개꿀잼 몰카 한번 찍어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
“일반 수정구랑 똑같나? 상대 얼굴 보면서?”
“아, 아뇨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목소리만 들리게 되어있어요.”
아마도 서로의 신분을 철저하게 모르게 하기 위한 것 같은데, 덕분에 우리에게는 아주 좋았다.
일단 오줌싸게 사리나를 불러 계획을 잡았다.
부엉이의 말로는 로리엘 때문에 암살자들은 절대 마을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했다. 사리나의 길드가 로리엘에게 처참하게 죽는 것을 자신이 전부 감시해 그대로 보고했기 때문에, 마을 안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는 방침을 세웠다는 것.
그러면 마을이 아닌 곳에 몰려들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거 잘하면 번거롭지, 않게 아주 편하게 깡그리 잡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홀에서 사리나와 한참 대화 끝에 묘안을 짜내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역시나 암살자답게 놈들의 심리도 잘 알고, 혹시 놓친 부분도 꼼꼼하게 챙기는 사리나.
우리는 이야기가 끝나고 홀에 있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다들 조용해 봐! 암살자 길드 새끼들이랑 얼굴 보면서 이야기 좀 하자고 약속 좀 잡아야겠어.”
내가 여관 홀에 암살자들과 통신한다는 사실을 알리자. 다들 내 주변으로 조용히 몰려들었다. 그리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나는 부엉이 녀에게 통신을 지시했다.
부엉이의 압수한 가방에 있던 수정구를 부엉이에게 건네주자 그녀가 천천히 수정구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통의 수정구라면 빛이라도 나와야 정상이었으나. 칙칙한 검은 수정구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잠시 후 갑자기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엉이인가?”
“예, 부, 부엉이입니다.”
부엉이 녀는 저쪽에서도 부엉이라고 불리는 듯했다. 부엉이 녀의 목소리를 확인한 남자가 바로 수리아의 상태를 물어왔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지?”
음침하고 더러운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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