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216. 새 여급 1
* * *
부엉이를 고문한다는 말에 서슬 퍼런 표정으로 왠지 신이 난 플로라.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서 부엉이 옆에 가서 부엉이를 낚아채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플로라의 표정이나 행동을 봤을 때 쥐어뜯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부엉이가 분자 단위로 쪼개질 것으로 의심되었기에 플로라의 행동을 급하게 뜯어말렸다.
“플로라 다짜고짜 잡아 죽일 거 아니야 손 내려. 제발. 부엉이 목숨은 내가 이야기 좀 하고 나서 결정하자 알았지?”
“자기, 플로라 부엉이 먹어보고 싶은데.”
행동이 저지당하자. 애교까지 부리는 플로라. 하지만 무작정 잡아 죽일 수는 없었다. 정보를 알아내야 했으니까.
플로라를 부엉이에서 떼어내고 옆을 보자.
부엉이 녀는 플로라의 행동에 어깨에 올렸던 부엉이를 어느새 품 안에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정말 저는 납치당한 게 맞아요! 살려주세요. 흐어엉…”
진짜 납치 피해자면 모를 수도 있는 일. 그러나 그냥 믿기에도 조금 의심스러운 일.
무죄를 주장하며 엉엉 우는 부엉이 녀.
“고, 고문 안 해도 다 말씀해 드릴게요! 제, 제발 근데 이름은 정말 몰라요. 그냥 길드라고만 계속 말해서. ‘길드의 명령이다! 길드의 명이니 움직여라!’ 이렇게만 말해서 정말 몰라요!”
일단 면밀하게 조사해봐야겠지만, 부엉이는 직접적으로 습격에 가담한 것도 아니고, 정말 단순히 정찰병인 것 같기는 했다. 부엉이가 움직이면 본체인 여자가 활동을 못 하니.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다 때려죽이고 싶지만.
저건 잡아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도 같았다.
야간 마을 감시, 전서구 같은 용도 말이다. 살아있는 CCTV나 집배원이라고나 할까? 조금 탐이 나는 부분이라서 진짜 납치 피해자면, 나쁜 짓에 가담한 죄로 잡아두고 장기 노역이라도 시키고 싶긴 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조건을 걸었다.
“위에 수리아가 깨어나면 살려는 주는데, 그녀가 죽거나 깨어나지 못하면 너도 죽는다 알겠냐? 내가 살려준다고 약속했던 것은 일단 여기까지야. 다른 헛소리 하면 그냥 여기서 부엉이도 너도 다 잡아 뜯어 버릴 테니까 입 다물어. 알겠냐?”
부엉이 녀는 자기 입을 막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워도 어떤 이유로든 습격에 가담한 놈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수리아가 죽는다면 말이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목욕과 식사를 끝내고 쉬고 계신 것인지. 다른 사제들과 한쪽에 테이블을 차지하고 계시던 시트라 씨의 조금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엉이는 마법 생물이라서 치료가 안 되지만, 튼튼한 본인이 있으니 얼마든지 마음껏 잡아 뜯으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저희가 숨은 확실히 붙여드릴 수 있습니다.”
시트라 씨의 말에 사제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수리아가 다친 영향인지 과격해진 사제들과 시트라 씨였다.
일단 부엉이 녀의 처리 방향이 정리되었으나. 습격한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아직 답보상태.
여관에 장작더미처럼 쌓인 놈들은 치료 용도 이외에는 사용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 쓸모없는 놈들인데, 정체를 알아낼 방법이 없나?”
“그냥 이쪽에서 활동하는 암살 길드나 이런 걸 다 한번 뒤져볼까요?”
리젤다의 의견.
확실히. 조금 무식하긴 하지만. 하나하나 털다 보면 누군지 나올 테니. 괜찮은 의견이긴 했다.
아침이 밝는 대로 릴리아나 누님께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시트라 씨가 그런 정보를 알만한 사람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알려왔다.
“제가, 그걸 알만한 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죠?”
“오줌싸게 사리나!”
‘뭐? 뭔 싸게 뭐요?’
시트라 씨가 이상한 호칭의 이름을 부르자. 얼마 전부터 로리엘의 손님으로 여관에 묵고 있던, 도착한 날 몸이 아파 식당에서 오줌을 지렸던 여자가 홀 구석에서 벼락을 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네, 넷!”
“이리 좀 와보세요.”
시트라 씨의 싸늘한 목소리.
로리엘의 친구는 바들바들 떨며 천천히 여관 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이실리엘이 저번처럼 다시 몸이 아픈 것은 아닌가 싶어 그녀를 살짝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저번처럼 몸이?”
그러나 이실리엘의 손이 그녀의 몸에 닿자마자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노란 물줄기.
쉬이이이
“어머!”
이실리엘이 화들짝 놀라 뒤로 피하고. 나는 무심코 그것을 보고 시트라 씨가 부른 이름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이름이 그렇구나…”
홀에 모여있던 사람들도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한나 아주머니가 여자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다시 홀로 데려왔다. 아직도 긴장했는지 파들파들 떠는 그녀.
“야. 로리엘, 근데 이분 네 친구라며, 이분 뭐 하는 분이기에 이분이 암살 길드를 아셔?”
내 질문에 로리엘은 한 단어로 답했다.
“벌레?”
“뭐?!”
친구를 벌레라고 부르는 로리엘. 아니, 아직 중부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닐 텐데? 아니, 엄청 친한 친구는 별명으로 부를 수도 있긴 하지만.
“아니, 무슨 친구를 벌레라고….”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로리엘은 말수가 없어서 그렇지 중부어를 잘 못 하지도 않고 단어를 틀릴 리도 없으니. 그녀의 표현이 이상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한밤중에 벌레를 잡는다고 했던 로리엘.
‘내가 분명 살려주라고 했었는데 벌레는….’
“잠깐 벌레라면? 그날 밤에 잡던 벌레가 이 벌레였어?”
“응 그렇다.”
“하, 요거 벌레 같은 암살자 새끼들이 아주 주변에 천지였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사리나라는 여자는 여관 바닥에 넙죽 엎드려서는 바들바들 떨며 애원했다.
“사, 살려주세요. 저, 저는 로리엘님의 벌레 같은 아니, 벌레만도 못한 노예입니다. 저를 살려주세요.”
“노예라고?”
로리엘에게 뭘 당했는지. 자신을 노예라 자칭하며 바들바들 떠는 여자.
“로리엘. 너 뭐 했길래 얘가 이러냐?”
“살려준 것뿐이다.”
나는 바닥에 엎드린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 고개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아는 대로 다 말해봐.”
여자의 위에서는 자신이 아는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아래서는 노란 물줄기가 다시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오줌싸게 사리나라는 여자는 어둠의 그림자라는 암살 길드 소속의 은 등급 암살자라고 했다. 자신은 살인으로 남부에서 조금 이름을 날리던 연쇄 살인마인데 암살 길드에 스카우트 되어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
“살인마면 별명이 뭔데?”
“저, 젖가슴 살인마입니다.”
“뭐야, 저년이 젖가슴 살인마였어?”
마틴의 입에서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명한 년이야?”
“예 큰형님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죽인 여자들의 가슴을 벗겨낸다고. 수도에서 떠들썩했었거든요. 다들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여자라니 의외긴 하네요.”
“아니, 근데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여자들한테는 대체 왜 그런 거야?”
같은 여자를 죽이고 능욕을 했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힘들어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저, 젖가슴 큰 년들이, 다 미웠습니다! 젖탱이만 큰 년한테 나, 남자친구를 빼앗겨서 복수심에 시작한 일인데… 그래서 젖탱이 큰 년들을 다 찢어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 그런데 그 후에는 그, 가슴을 주무르는 게 좋아져서….”
‘가장 미워하던 것을, 가장 사랑하게 된 것인가? 아니, 가장 사랑했기에 가장 미워했던 것인가?’
젖가슴 살인마라는 말과 가슴을 주무르는 게 좋다는 여자의 말에, 발레리가 화들짝 놀라며 양손을 모아 자기 가슴을 가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다 가려지지 않았지만.
그리고 암살자 사리나의 말에 다들 그녀의 가슴으로 시선이 쏠리고. 다들 그녀의 분노를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었다.
‘음…. 수직 절벽.’
사리나라는 여자가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아랫입술을 꼭 물더니 서러운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실리엘이 그 모습이 불쌍해 보였던지 사리나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려 했지만, 자신을 위로해주는 이실리엘의 가슴을 확인한 사리나는 더욱 울부짖을 뿐이었다. 아마 이실리엘의 위로를 위로가 아니라 능욕으로 느낀 것 같았다.
잠시 후 진정된 사리나를 통해 나머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같은 임무에 참여한 길드는 셋. 의뢰비는 500골드였다고 했다. 자신들이 속한 어둠의 그림자 길드는 로리엘에게 거의 다 사망했고, 며칠 전 여관에 죽었던 손님 두 명도 사용한 독으로 봐서 뱀의 독니라는 암살 길드 소속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 수리아를 노렸는데 다른 손님 둘이 잘못해서 죽어버리자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고 물러난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는 사리나의 의견.
“아마 목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죽었으니. 포기하고 물러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저놈들은?”
여관 중앙에 땔감처럼 뒤엉킨 놈들은 손으로 가리키자 사리나가 새로운 길드의 이름을 뱉어냈다.
“아마도 검은 형제단. 남부에서 규모도 크고 역사 깊은 암살 길드입니다. 아마 저 부엉이녀로 저희가 실패하는걸 확인하고, 마을 안에서는 로리엘님 때문에 절대 성공할 수 없으니 밖에서 기다렸겠죠.”
“좋아, 이야기는 잘 들었고. 그럼 내가 널 살려줘야 할 이유를 빠르게 말해봐. 널 살려줬을 때 어떤 이익이 있는지 뭘 잘하는지”
로리엘이 노예로 삼았다니 살려주긴 할거지만, 다른 마음 못 품게 하려면 이런 애들한테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압박 면접이 필요했다.
“하, 하지만 저는 로, 로리엘님의 노예….”
“내가 죽이자고 하면 로리엘도 그러자고 할걸?”
내가 로리엘을 바라보자 로리엘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줌싸게 사리나는 로리엘을 바라보며 망연한 표정이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