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215. 벚꽃 수확 12
* * *
플로라는 어느새 올빼미를 가로로 들고 목을 길게 빼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올빼미의 모가지를 수직으로 꺾어버릴 것 같은 상황.
플로라의 행동에 깜짝 놀라 그녀를 달래 간신히 올빼미를 넘겨받았다. 아직 올빼미에게 알아낼 것이 많은데, 이렇게 갑자기 잡아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플, 플로라 다, 다른 걸로 해줄 게 기. 기다려!”
“칫!”
짜증이 난다는 듯 혀를 차는 플로라. 플로라가 애교 많고 도발적이긴 해도 이렇게 막 나가는 여자가 아닌데, 갑자기 올빼미 목을 꺾으려 하다니.
‘이놈이 자꾸 헛소리해서 짜증 났나?’
나는 플로라를 진정시켰다.
“플로라 짜증 나도 참아 알았지? 알아낼 게 많으니까.”
춤밖에 출 줄 모르는 무희가 아무리 힘이 센 사람들이 옆에 많아도 그렇지. 올빼미도 나름 암살자인데, 플로라는 너무 겁이 없었다.
“자꾸 올빼미가 ‘말하면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을 구분 못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좀 났어요. 확 목을 꺾어버리고 싶게.”
“말하면 안 되는 것?”
“아, 아니, 말해야 하는 것을, 빨리 말 안 해서요. 화가 나서 말이 이상하게 나왔네요.”
역시나, 자꾸 주제를 돌리면서 말을 회피하니. 옆에서 보던 플로라가 짜증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플로라의 과격한 행동은 사람이라면 오줌이라도 지려버렸을 것 같은 상황.
혹시 또 플로라가 돌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싶어. 올빼미와 플로라 사이에 가로막듯 서서 다시 올빼미에게 물었다.
“이야기를 어디까지 하다 말았더라? 맞다! 근데 연꽃이 뭐라고?”
아까 분명 연꽃이 어쩌니, 했었기에 그것을 물었으나. 올빼미는 바들바들 떨며 내 어깨너머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오는 어색하게 웃고 있는 플로라의 얼굴.
플로라의 손길 한 번에 완전히 겁을 먹은 것 같은 올빼미였다.
하긴 밑도 끝도 없이 모가지를 꺾어버리려 하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때, 올빼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 헛소리가 나왔습니다! 노, 놀라서 그, 그랬나 봐요!”
역시나 플로라의 눈치를 심하게 보면서 말을 더듬는 놈. 플로라의 거친 협박이 잘 먹힌 것 같기에 놈에게 빨리 위치를 불라며 더욱 압박했다.
“아무튼. 이제 어디 있는지 말해야지? 자꾸 다른 소리 하면서 머리 굴리면, 플로라가 먹고 싶다는 요리를 위해, 부엌에 끓고 있는 기름 솥에서 따듯한 목욕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놈을 협박하면 슬쩍 부엌을 바라보자. 놈이 기겁하며 바로 자신이 있는 곳을 실토하기 시작했다.
“가, 강 건너에 있습니다!”
“이런! 강너머에 있었다니!”
놈의 대답에 이실리엘과 로리엘이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아마도 이실리엘과 로리엘은 강 건너는 수색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강폭이 좀 넓기도 하고, 물살도 강한 편이니. 당연히 우리는 강너머로 건너갈 일이 없기에 처음부터 수색에서 빠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강 건너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놈들이 알아챈 느낌.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피하려고 약삭빠르게 강 건너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이실리엘과 로리엘이 자신들의 실수를 자책하며 밖으로 달려 나가려 할 때 그녀들을 저지하며 올빼미에게 물었다.
“잠깐! 이실리엘, 얘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몸 성히 데려오지! 너 어떻게 생겼는지 빨리 말해라 살고 싶으면.”
생김새를 묻는 나의 질문에 놈이 허겁지겁 대답했다.
“가, 갈색 머리, 검은 로브, 수풀로 가려진 야영지 누워서 잠들어 있습니다. 저, 저를 감시하는 놈들이 둘이나 있습니다. 근처에도 야영지가 또 있을 겁니다.”
“이실리엘, 로리엘 들었지? 수호자들 데리고 가서 깡그리 잡아 와!”
“알겠어요. 러셀!”
“알았다!”
로리엘과 이실리엘이 여관 밖으로 달려 나가고, 대화 중이라 신경 쓰지 못했지만, 신전을 부탁했던 처남이나 벨릭이 여관에 되돌아와 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신전은 어떻게 하고 여기에 와 있어?”
“수리아님은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기에 여관 삼 층으로 옮겼습니다. 올라가 보시죠.”
응급 처치가 끝나서 옮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에 재빨리 여관 삼 층으로 향했다. 그대로 차가운 신전 바닥에서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는데, 어쨌거나 호전되었다는 말.
급하게 삼 층으로 뛰어 올라가자.
복도에 안톤이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수리아의 방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안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수리아의 방은 삼 층 복도 제일 끝방.
급하게 복도를 지나자 수리아의 방으로 향하자. 안톤이 방안에 내가 왔음을 알렸다.
“러셀 형님 오셨습니다.”
하지만 안톤이 내가 왔음을 알렸음에도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신들의 일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뒷모습.
침대에 수리아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침대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신전의 사제 둘, 시트라 씨, 엠마, 아우로라로 인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에서 남자의 비명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끄우우우욱…”
“태어나서 유일한 착한 일일 테니. 기꺼운 맘으로 받아들이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입을 다무세요. 철퇴로 골통을 깨버리기 전에! 타인의 목숨을 빼앗으며 즐거우셨을 테니. 자기 죽음도 웃으며 받아들이라 이 말입니다!”
방안에 울리는 시트라 씨의 분노한 음성과 신랄한 비웃음.
침대 반대쪽으로 향하자 그제야 수리아의 모습이 드러났다. 새파랄 정도로 창백했던 그녀의 안색은 어느 정도 돌아온 상태였으나, 지금도 치료가 한창인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잠든 수리아의 가슴에 한 손을 대고 붉은 기운을 흘려 넣고 있는 아우로라. 그녀의 다른 손은 엠마와 시트라 씨에게 붙잡혀 꽁꽁 묶인 상태로 온몸을 버둥거리는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움켜쥔 머리로 피처럼 붉은 기운이 빨려 올라가고, 그 기운이 빨려 올라갈 때마다 남자는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갔다. 그리고 반대로 수리아의 얼굴은 생기를 조금씩 찾아가는 듯 보였다.
입이 막힌 채 공포에 부들거리는 남자는 그렇게 한참을 신음하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 것처럼 바짝 말라 고꾸라졌다.
잠시 후 빨아들인 모든 생명력을 불어넣은 아우로라가 다른 사제들을 향해 말했다.
“휴… 생기는 이제 충분합니다. 혹시라도 밤새 생기를 더 잃으면, 아침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하죠.”
아우로라는 땀으로 젖은 이마를 훔치며, 수리아에게 손을 떼고 천천히 물러났다.
“괜찮은 겁니까?”
“러셀 씨 오셨군요.”
다들 집중하느라 안톤의 말도 듣지 못했는지. 내가 온 것을 지금 알아챈 것 같았다.
“네, 수리아는 괜찮습니까?”
“네 독은 모두 해독했고. 생명력도 충분하게 불어넣었습니다. 다만 너무 크게 다치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터라. 다시 생명력이 빠져나갈 수도 있어, 언제 깨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라면?”
“신체 치료와는 별개인 정신, 영혼과 관련된 것은 저희가 알 수 없습니다. 죽음에 문턱까지 이르면, 영혼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어, 깨어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식물인간 이런 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아뇨, 반드시 깨어납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는 시트라 씨의 말에, 혹시라도 식물인간 같은 것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레 물었지만, 시트라 씨는 단호한 표정으로 반드시 깨어난다고만 말씀하셨다.
그것이 그녀의 바람인지. 아니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엠마, 다들 땀도 많이 흘리고 고생하셨을 텐데, 내가 잠시 보고 있을 테니. 목욕이라도 하고 쉬다 와. 여긴 내가 지켜볼 테니까. 부엌에 이야기해서 한나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식사도 하고 말이야 저녁도 못 드셨을 텐데.”
고생한 사제들에게 목욕도 하고 식사도 하고 오라며 교대를 자청했다. 사제들은 대부분 나와 작은 인연 때문에 과도한 선의를 베풀어주고 계신 것이니 말이다.
“아닙니다. 러셀님, 제가….”
아우로라가 나서며 자신이 지키겠다고 했지만, 엠마와 시트라 씨의 손에 이끌려 다 같이 방 밖으로 사라졌다.
공주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핑크 머리 공주가 눈앞에 잠든 듯 누워 있었다. 살포시 감은 눈, 이색적인 머리카락, 흰 피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한참을…
수리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죽은 남자를 누군가가 와서 끌어내 가고 몇 명의 사람이 왔다 갔으나. 말라비틀어진 암살자의 껍데기를 누가 가져갔는지, 누가 왔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냥 계속 수리아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한참을 수리아만 바라보고 있을 때.
토끼 수인 자매가 와서 조용히 이실리엘의 도착을 알렸다.
“주인님 첫째 마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시죠.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부탁할게.”
“예 주인님.”
부엌 식구들 호칭이 애니로 인하여 이상하게 바뀐 것 같지만, 의문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재빨리 계단을 통해 홀로 내려가니, 온몸이 포박돼 여관 중앙에 실신한 채 장작처럼 쌓여있는 남녀 일곱. 그리고 어깨에 부엉이를 올리고 눈물 콧물을 짜내고 있는 밤색 머리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정말 몰라요. 흐윽…”
“자기가 속해있는 단체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 저는 흑… 정말로 잡혀가서 시키는 일만 해서. 정말 몰라요. 엉엉…”
“무슨 일인데?”
내 물음에 부엉이의 본채로 보이는 여자를 다그치던 리젤다가 손에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몽둥이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
“이년 아니, 이 마법사가 자기가 속한 암살단 이름도 모른다고 해서.”
“다른 놈들은?”
“자꾸 자살을 시도해서 벌서 두 명이나 죽었어요. 그래서 샌드맨에서 재운 상태에서 깨울 수가 없었어요.”
‘캠프를 습격한 것 치고는 숫자가 적다 싶었더니 그런 이유였나?’
그럼 깬 놈을 잡아 족쳐야지.
“부엉이를 잡아 뜯어 보지 그랬어?”
“자기! 그건 제가 할게요.”
내가 부엉이를 왜 고문 안 했냐고 묻자. 어디선가 나타난 플로라가 신이 난 표정으로 자신이 하겠다며 나서고 있었다.
‘부엉이나 새가 싫은가?’
전생에 새 공포증 있는 사람들이 새는 다 먹어서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기억이 있는데, 플로라도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자꾸 부엉이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같은 느낌이 든달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