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214. 벚꽃 수확 11
* * *
“순순히 말씀하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이실리엘의 화난 목소리가 여관 홀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내 부탁으로 잡아 온 암살자를 심문하는듯한 목소리.
워낙 아름답고 귀여운 목소리지만, 이실리엘이 화났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단호함이 실린 목소리였는데, 그런데 홀에 도착해 눈에 들어온 상황이 조금 이상했다.
여관 홀 중앙에 이실리엘이 묶어두고 심문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엘프나 수인도 당연히 아니었고.
그것은…. 웬 올빼미였다.
그렇다 올빼미.
그 날개가 달리고 퍼덕거리고 쥐 잡아먹고.
갈색 털의 올망졸망한 눈망울의 올빼미를 노려보며 심문하는 이실리엘.
올빼미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로리엘이 단검까지 들이대고 있으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갑자기 둘 다 미치기라도 한 것은 아닐 테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목욕을 마친 나를 부축해온 양옆에 발레리와 플로라를 바라봤지만, 둘 다 어색하게 날 보면서 웃어왔다.
‘그렇지? 나만 이상한 거 아니지?’
분명 암살자를 잡아 와 심문하고 있어야 할 것인데. 올빼미?
혹시?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전생 판타지 게임 같은 곳에 단골로 등장하던 드루이드 같은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조심스레 이실리엘을 불렀다.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이라면 그것은 대단한 것이니까 말이다.
동물들과 대화하는 이실리엘이라… 왠지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이, 이실리엘?”
이실리엘을 조용히 부르자 올빼미를 향해 치켜떠 졌던 이실리엘의 눈썹이 천천히 각도를 바꾸더니 평소의 순한 눈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러셀! 이제 괜찮아요?”
강아지처럼 반기는 이실리엘.
“으, 응 그 그런데 뭐, 뭐 하는 거야?”
어색하게 뭘 하는 중인지를 묻자. 이실리엘의 입에서는 내가 시킨 대로 잘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지금 심문 중이에요! 러셀이 의심스러운 거 다 잡아들이라고 해서. 며칠 전부터 여관 근처를 맴돌던 놈을 잡아들였거든요!”
나에게 자신이 잘하지 않았느냐는 표정을 지은 이실리엘은 곧바로 시선을 올빼미에게 돌리더니, 다시금 올빼미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어서 불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에요!”
눈을 부라리며 다시 올빼미를 협박하는 이실리엘.
‘머리가 아픈데, 그런데 왜 이렇게 귀엽지?’
이실리엘의 이상한 행동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이 난처한 표정을 지을 때.
홀 한쪽 테이블 벨릭의 품에 안겨있던 에브리나가 장난기가 동했는지 벨릭의 품에서 일어나 웃으며 다가왔다.
“그냥 털 다 뽑아서 구워버려요.”
에브리나가 손에 불꽃을 피워 올리며 천천히 다가오자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큰 올빼미의 눈이 마치 빠질 것처럼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이실리엘이 딱히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올빼미의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의, 의심스러운 건 알겠는데, 무고한 동물은 괴롭히면 안 되는 거 아닐까?”
“하지만 로리엘 말로는, 올빼미가 벌써 며칠째 마을 안에서, 자기를 지켜봤다고 했는걸요!”
내가 해명을 바라는 눈으로 로리엘을 바라보자 로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치 올빼미가 엿보기 꾼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난하는 투로 말이다.
전생에 있었던 여자들 사는 원룸 훔쳐보는 변태도 아니고, 올빼미가 그런 걸 훔쳐볼 리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기분 나쁘게 계속 쳐다봤다. 매일 밤. 목욕탕부터 침실까지”
‘아니 무슨 짐승인 올빼미가 그런 데를 골라보겠어….’
“오, 올빼미니까 밤에 쳐다본 거 아닐까?”
나는 올빼미가 짐승이고 밤에 활동하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로리엘의 생각을 바로잡아주려 했는데.
“하지만 벌서 열흘도 넘게.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억울하다는 듯한 로리엘의 목소리.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열흘도 넘게 올빼미가 마을에 있었다는 로리엘의 말이 뭔가 조금 이상하기 시작했다.
올빼미는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는 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밤에 활동하기도 하고, 민가 근처에 쥐를 잡기 위해 울음소리가 들리곤 해도. 직접 몸을 드러내고 며칠씩 민가 근처를 헤매는 건 애가 아프거나…?
“낮에는 보통 어디 앉아있었는데?”
“여관 지붕 위였다.”
로리엘은 침입자를 막으라고 했더니 새 한 마리까지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물어보니 바로 나오는 대답. 하긴 며칠 전에는 침입한 벌레도 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마 그 벌레도 잡아다 심문한 건 아니겠지?’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며, 곰곰이 로리엘의 말을 되짚어보니. 들으면 들을수록 수상하긴 했다.
올빼미는 야행성이라서 햇빛을 싫어하지 않던가? 그런데 올빼미가 여관 지붕 위? 나무 그늘도 아니고? 햇볕을 쬐면서 지붕 위?’
‘잠깐 그런데 남부 평원에 올빼미가 있었나?’
나는 천천히 이실리엘이 꽁꽁 묶은 올빼미를 올려놓고 있는 테이블 옆에 다가가, 올빼미 옆에 손을 올리고 이실리엘에게 말을 거는 척하다가 놈의 꽁지깃 하나를 냅다 잡아뽑았다.
“꺄아아악!”
올빼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사람의 비명. 정확히 여자의 비명이었다.
그러자 여관 홀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이 다들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올빼미에게 모여들었다. 아마 이실리엘과 로리엘이 너무 단호하게 진행하니 반쯤 유흥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듯한데. 실제로 올빼미가 말을 하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눈이 올빼미를 향하자. 갑자기 올빼미가 사람의 말로 구슬프게 울며 빌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올빼미의 입에서 또렷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조차 놀라서 이실리엘을 멍하니 바라보자. 이실리엘이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죠? 의심스러운 놈이었던 것이 확실했어요!”
‘와…. 이게 소가 뒷걸음질하다가 쥐 잡은 격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사람들의 대단하다는 시선을 한껏 즐기는 이실리엘과 로리엘. 나는 둘의 자랑이 끝난 후. 홀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향해 음흉하게 말했다.
“내가 왕녀랑 사냥 나갔던 게, 새 튀김 해주려고 나간 거였는데. 너희들 튀김 좋아하지? 누가 한나 아주머니한테 기름 솥 올리라고 말씀드려라…. 오리나 올빼미나 다 새니까 튀기면 다 맛있을 거야.”
‘치킨 별거냐? 새 튀기면 다 치킨이지.’
“히이익! 제, 제발 다 말씀드릴게요. 모, 목숨만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흑흑…”
올빼미의 입에서 들려오는 간절한 목소리. 놈이 우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실토하기 시작했다.
일단 올빼미는 마법사의 퍼밀리어 마법으로 인한 계약된 소환수라고 했다. 생긴 것만 올빼미랑 똑같지, 마법적으로 만들어진 생물이라 영혼이 없기에 마법사의 영혼이 반쪽이 들어가 실제 동물과 똑같이 활동하는데.
영혼의 반쪽을 소유한 이유로 올빼미가 죽으면 마법사도 크게 타격을 받거나 죽을 수 있기에, 마법사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마법이라고 했다.
“퍼밀리어와 계약하다니. 세상에…”
에브리나가 놀란 목소리로 말하는 걸로 봐서는 정말 목숨 내놓은 마법인 것 같았다. 하긴 비행 몬스터도 많은데 저걸로 변신해있다가 잡아먹히기라도 하면?
그날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니 확실히 위험한 마법이긴 했다.
울먹거리는 올빼미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난 후.
“그건 그렇고, 넌 그럼 지금 어디 있는데?”
“그야 바로 앞에…”
이 새끼 내가 본체가 어디 있나 물어보는데, 다 알아들었으면서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냅다 주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 뜨거운 기름 맛 좀 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한나 아주머니 기름 끓고 있나요?”
“응 러셀 이제 딱 맞아. 튀김옷 준비할까?”
한나 아주머니가 눈치 빠르게 대답해주시자, 경악하는 올빼미. 우리 여관의 장점이 목욕이니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름에 뜨뜻하게 지지고 나오면 얼마나 몸이 풀릴 것인가.
“히이익! 마, 말씀드릴게요. 말씀드릴게요! 제발 살려준다고 약속해주세요! 제발. 저도 몇 년 전에는 모험가였는데, 이놈들한테 잡혀서 퍼밀리어 마법까지 사용하고 억울하게 살고 있어요. 제발!”
놈은 엉엉 울며 자신이 암살자 길드에 납치되어 원치 않는 퍼밀리어 마법까지 쓰게 된 피해자라며 호소해왔다. 거짓말인 것 같은데 일단 약속은 해준다.
“알았어, 널 구출하러 갈 테니까. 아무런 내색 하지 말고 있어.”
“구, 구출이군요. 아, 알겠습니다.”
“설마 지금 대화한 내용 그쪽에 전부 알리는 건 아니지?”
“아, 아뇨 지금 다들 제가 자는 줄 알 겁니다. 제가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저,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미쳤다고 여관 안에 죽음의 연꽃이 있는…. 케엑”
내 옆에 서 있던 플로라가 엄청난 손동작으로 갑자기 올빼미의 모가지를 잡아채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기, 그, 그냥 이거 잡아먹으면 안 되나요? 저, 저는 오, 올빼미 튀김 꼭 먹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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