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210. 벚꽃 수확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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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암살 길드가 목표인 분홍 머리를 잡으려 혈안일 때.
검은 형제 단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관망하기로 했다.
두 길드 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목표물의 목을 가지고 나오는 놈들을 처리해 목을 가로채면, 상대 길드도 견제하고 의뢰도 자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데, 굳이 엘프들도 많고 정찰도 불가능한 내부로 들어가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동 방침은 거대한 위험을 피해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헉헉 헉…”
한밤중 퍼밀리어인 올빼미를 통해서 마을을 관망하던 암살 길드 소속 마법사가 수풀로 위장한 야영지에서 숨을 몰아쉬며 기겁하며 깨어났다. 그녀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무, 무슨 일이지?”
마법사를 호위 및 감시하기 위해 같은 야영지에 파견된 암살자가 마법사의 안위를 확인하며 물었다.
“다, 다 죽었습니다!”
“무엇이? 서, 설마? 마을 사람들을 다? 아무리 그래도 국왕의 입김이 닿는 곳인데…”
무식한 다른 길드 놈들이 설마 마을 전체를 몰살하기라도 한 것인지 하는 물음이었지만, 마법사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아, 아니, 반대입니다!”
반대라는 것은, 어둠의 그림자가 다 몰살했다는 것.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뭐? 어둠의 그림자가 다 죽었다고!”
“길드 마스터와 금 등급 암살자 한 놈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올빼미의 눈이 타버릴 것같은 강한 불! 그 엘프는 절대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둠의 그림자 길드는 며칠 전부터 야금야금 암살자들의 수준을 올리며 마을로 침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야간에 마을 경계를 서는 녹색 머리 엘프에게 목표는 보지도 못하고 깡그리 몰살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여관으로 몰려든 뱀의 독니 또한 며칠 후 몽땅 죽음을 맞이했다.
복도 창가에 앉아 있던 올빼미의 눈에 들어온 믿을 수 없는 장면.
“여, 연꽃…”
“갑자기 감시하다 말고 무슨 연꽃을 찾는… 서, 설마 여, 연꽃?”
마법사의 연꽃이라는 말에 기겁하는 암살자.
암살자라면 누구라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단어, ‘죽음의 연꽃’. 전설적 암살 길드. 불의한 죽음은 용서치 않는다는 그들 중 하나가, 마법사의 말로는 무희로 위장하고 거기 있다는 말이었다.
“화, 확실하냐?”
“부, 분명 무희의 춤과 죽은 놈들의 상처에서, 연꽃잎 모양이…”
마법사의 보고에 그날 검은 형제 단의 수뇌부는 말 그대로 혼돈이었다. 자신들 대신 이제 분홍 머리를 가져다줄 길드가 남지 않았기도 했지만, 연꽃이라는 말에 새파랗게 놀라버린 것.
연꽃은 결코 자신들처럼 무고한 암살의뢰는 받지 않으니. 그곳에 연꽃이 있다면 뭔가 다른 이유. 더군다나 뱀의 독니가 모조리 몰살한 것으로 봐서는, 역시 그들의 앞에서 무고한 암살 시도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계단임이 분명했다.
“마을 안의 엘프가 어둠의 그림자 길드 마스터와 금 등급 하나로 이루어진 둘을 한순간에 동시에 처치할 능력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여관 안에는 연꽃이라고? 제국의 황성이나 성국의 교황을 잡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질 지경이군…”
다른 두 암살 길드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검은 형제의 나이 많은 원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간부가 된 지 얼마 안 된 삼십 대의 암살자 하나가 그를 비웃었다.
“아니, 노친네들 뭘 그리 겁을 먹나! 이참에 연꽃을 꺾어버리고 우리가 대륙 최고의 암살 길드로…”
하지만 젊은 간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난.
“어리석은 놈! 이제부터 연꽃에 대한 언급은 금지다. 함부로 입을 놀렸다 사라진 놈들이 한둘인 줄 아느냐!”
“연꽃은 목격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것임을 아직도 모르는 머저리가 우리 길드에 있었다니! 네놈은 강등이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 젊은 간부가 징계당하고 남은 간부들이 회의를 이어갔다.
“그럼 이번 의뢰는 불가능한 것으로?”
하지만 의뢰 불가를 전달하면, 의뢰에 선금으로 받은 500골드의 계약 위반 금액인 그 열 배를 토해내야 하는데 결코 불가능한 말이었다.
“의뢰인에게 연락해라. 500 골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 가격을 더 올리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이들은 생명을 황금으로 가치를 매기는 자들. 불가능한 것은 결코 없는 것이다. 다만 황금의 무게가 달라지고 방법이 달라질 뿐.
며칠간 감시로 엘프나 연꽃은 마을이나 여관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밖에서 기다리면 되니까 말이다.
시간이 좀 걸릴 뿐 기다리면 기회는 반드시 오기 마련인 것이다.
노르딕 씨가 마을에 정착하고 며칠 후.
나는 수리아 왕녀와 해 질 녘 강변에 나와 있었다.
이렇게 둘이 강변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이유는 저녁거리로 할만한 물새를 잡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기름은 비싼 편인데. 얼마 전 왕이 왔을 때 먹었던, 돈가스를 한 번 더 먹고 싶다는 아내와 손님들의 요청에, 나는 어제 돈가스를 다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잘 먹는 아내들을 보니 행복하긴 했는데. 남은 기름이 문제였다.
그래서 튀김에 쓴 기름을 한번 쓰고 전부 버리긴 아깝고, 아예 못쓰게 되기 전 그 기름으로 치킨이라도 만들어볼까 해서 강가로 나온 것이었다.
치킨을 만든다면서 물새를 잡으러 나온 것은, 오리나 기러기도 적당히 손질하면 닭과 거의 차이가 없어 튀김으로 괜찮은 편이기에, 수리아 왕녀와 약속한 대로 이야기도 나눌 겸. 그녀를 말에 태워 끌고 하류 쪽으로 나온 것이었다.
처음 튀김 요리했을 때가 기억난다. 내가 한번 쓴 기름을 다 버린다고 하니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의 그 놀란 모습. 멀쩡한 기름을 왜 버리냐고, 놔두면 다른 요리에 쓸 수 있다고 하셨었지….
뭐 내가 비누라도 만드는 법을 알면 기름으로 빨랫비누라도 만들었겠지만, 나는 그런 건 전혀 모르니 어쩔 수 없이 알뜰하게 써야 하는 것이다.
전생 같으면 콜레스테롤이다 뭐다 말이 많았겠지만, 여긴 살찐 사람 찾아보기 힘든 곳이고 활동량도 많으니 동맥경화 같은 건 안 걸릴 것이다.
더군다나 기름이 아직 맑고 투명하기도 하고, 색은 좀 진해졌지만. 전생에 닭집 같은 곳에서도, 시커멓게 변할 때까지 사용했으니 두 번 정도야 괜찮을 것이다.
‘아, 아마도?’
아무튼 그래서 기름이 아주 못 쓰게 되기 전, 치킨을 튀기기 위해서 새를 잡으러 나온 것이었다.
손에 잡힌 고삐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왕녀님이 탄 말에는 이미 사냥한 물새 몇 마리가 묶여서 대롱거리고 있었고, 왕녀는 그 위에서 무료할까 걸어주는 내 말에, 눈을 빛내며 대답하는 중이었다.
“근데, 왕녀님 시트라 씨랑은 어떻게 친하게 된 거예요?”
둘이 친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물음을 했음에도 화내거나 정색하지 않고, 수리아 왕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서로 질색하면서도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데, 친하지 않으면 그럴 수가 없으니 물어보았던 것이었는데 역시나 둘은 사이가 나쁜 게 아니었다.
“그게 말이죠. 제 별명이 북부의 벚꽃이잖아요. 보시다시피 이것 때문에.”
수리아 왕녀가 자기 머리카락을 손으로 찰랑거렸다. 확실히 그녀의 머리카락 색은 총천연색 머리카락이 흔한 이곳에서도 특별하긴 했다.
어딜 가도 눈에 확 들어오는 색이랄까?
“북부에서는 봄에 제일 빨리 피는 꽃이라서, 전장 제일 앞에서 달리는 선봉장이라는 의미도 있거든요. 그런데 성국에서는 벚꽃의 꽃말이 순결, 처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애와 순결의 여신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시트라는 자애와 순결의 이단 심문관이니 만나서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해졌어요.”
“아하. 그럼 싸우게 된 건요?”
둘이 하도 티격태격하니 이것 또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둘이 싸우는 이유를 묻자 왕녀도 좀 부끄러운지 부끄럼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남들이 들으면 좀 웃을 수도 있는데, 북부에서 마족의 끄나풀을 잡았는데, 둘이 그걸 두고 좀 다툼이 생겨서….”
뭐 친구들 사이에 싸우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고, 싸움이라는 게 원래 시간이 지나면 유치한 이유인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왕녀를 달래며 다시 물었다.
“뭐 싸움이 다 그렇죠. 저한테는 이야기 못 해주시나요?”
“아뇨, 드, 듣고 웃지나 마세요! 그게…. 저는 못 도망치게 다리를 끊고 심문하자고 했는데, 시트라는 팔을 잘라야 반항을 못 한다고 그래서, 그걸로 서로 다투다가 그놈이 도망가는 바람에….”
‘아니, 그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머릿속에 있는 말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왔다.
“아니, 그게 무슨….”
“그, 그러니까 제가 웃을 수도 있다고….”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왕녀가 조금 부끄러웠던지 발그레한 얼굴로 다른 곳을 바라봤다.
“그래서, 다시 잡긴 했나요?”
“예, 뭐 나중에 다시 잡긴 했어요. 뭐, 결국은 서로 양보하지 않아서, 팔다리 다 뭉개고 심문했지만… 그 후에도 뭐 그 비슷한 이유로 서로 자주 부딪혀서 그런 거예요.”
걘 무슨 죄일까? 마족의 끄나풀이라는 이유로 하필 둘한테 붙잡혀서 모진 고통을 당한 죄인의 명복을 마음속으로 빌어줬다.
그리고 솔로몬의 재판처럼 둘은 사람을 두고 싸우게 하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으로 갈라 달라고 할 게 뻔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왕녀의 이야기로 둘의 관계를 머릿속에 정리해, 비교적 친한 사이로 결론 내리고 있을 때. 왕녀가 궁금한 것을 물어왔다.
“현자님, 아니, 러셀님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저는 잘 모르니깐요.”
‘내 이야기라…?’
은퇴한 용병의 이야기를 왕녀님께서 재미있어하실까 싶어 그녀에게 최대한 요약한 그간의 삶을 전달해주었다.
“뭐 저냐 알다시피 평민 출신에, 부모님은 마을을 습격한 오크에게 먼저 돌아가셨고. 십오 년 용병으로 구르다가 우연한 계기에 이실리엘을 구해주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그게 뭐예요! 성의 없이… 치…”
‘이해하기 쉽게 요약해준 건데, 이건 여자들에게 성의가 없는 건가?’
데이트 이거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게 호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여자와 단둘만의 이런 자리는 온 생을 통틀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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