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207. 벚꽃 수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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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그림자가 로리엘에 의해 와해 되고 있을 때. 남은 두 길드 중. 뱀의 독니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뱀의 독니는 그 이름대로 독살이 특기.
투입한 인원은 열여섯 명.
목표를 다른 길드에 뺏기기 전에 전력을 쏟아붓기로 한 것이었다.
이들은 먼저 그란 폴에서 대늪지로 가끔 사냥하러 가는 파티를 습격하거나 대충 실력을 보여주고 위장한 신분을 이용 모험가로 등록했다.
보호구역에 합법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알아보니 그란 폴의 용병, 모험가 길드에 등록한 모험가라면 누구라도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적당히 변장할 수 있는 파티를 쓸어버리고 그들로 위장하거나 용병이나 모험가로 위장해 웜 포트라는 마을로 향했다.
중간에 검문이 있긴 했지만 사냥하러 가는 모험가라니 느슨하게 통과시켜주는 기사들.
그렇게 뱀의 독니 소속 암살자들은 각기 흩어져 웜 포트의 여관으로 숨어들었다.
이틀에 걸쳐 엘프의 눈물이라는 여관에 숨어든 암살자들은 여관에서 목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홍 머리의 여자. 그리고 그녀를 확인한 순간. 모든 암살자는 속으로 크게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다리 병신.
‘이런 목표에 500골드나 준다고?’
뱀의 독니 소속 암살자들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투입된 암살자들은 은밀히 신호를 주고받으며, 누가 이것을 처리할 것인가 논의 했다. 그리고 이 간단한 먹이를 막내들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경험을 쌓게 해주기로 한 것.
그리고 저녁 시간. 기회가 찾아왔다.
독을 쓰는 암살자들에게 가장 좋은 시간. 식사의 시간.
목표의 음식에 독을 타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천천히 다른 손님들 그리고 자신들 앞에 차례대로 식사가 전달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이 맛있는 식사가 나와 그것을 먹느라 막내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방해받을 정도였지만. 뱀의 독니 소속 암살자들은 금발의 엘프가 분홍 머리 여자에게로 향하는 식사를 들고 이동하는 것이 보이자 막내들에게 은밀히 신호했다.
자신들의 신호에 집중하던 막내 둘은 신호를 받자마자. 재빨리 일어나 한 명은 엘프의 시선을 돌리고 한 명은 소매에 넣은 독을 흘리는 데 성공.
제법 가르친 보람이 있는 완벽한 연계였다.
이제 분홍 머리 앞에 음식이 놓이기만을 기다릴 때.
손과 발을 짤그랑거리면서 레우케 요정의 하프 소리에 맞춰 간단히 흥을 돋우던 무희가 갑자기 금발의 엘프를 가로막았다.
“프, 플로라 음식 내가야 하는데요.”
무희가 자신을 가로막자 어쩔 줄 몰라 하는 엘프.
무희는 금발의 엘프를 빙글빙글 돌며 현란한 춤을 추더니. 어느새 그녀의 손에서 이인분의 식사를 빼앗아 들고는, 그것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며 춤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묘기처럼 그녀의 손에서 쟁반이 돌아간다.
엘프의 어색한 웃음과 대비되는 매혹적인 무희의 웃음과 손동작. 다른 손님들은 그 모습에 웃으며 손뼉을 쳤지만, 뱀의 독니 소속 암살자들은 아니었다.
잘못해서 저 음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놓이면 애먼 사람만 죽고 목표는 경계심만 높아질 터.
모두 식은땀을 흘리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렇게 묘기처럼 식사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무희는 잠시 후. 막내 둘 앞에 식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처음 온 손님들이니 당연히 여기부터 드려야 했는데. 플로라가 직접 배달한 것이니 당연히 드셔 주실 테죠?”
매혹적으로 웃는 무희.
들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막내 둘의 행동은 저 무희에게 완벽히 간파되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다른 암살자들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내는 막내들.
‘머저리 같은 놈들.’
다른 암살자들은 모두 그들의 눈빛을 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어느 부분에서 알아챈 거지?
하지만 남은 암살자들은 무희에게 들킨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기에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암살의 지휘자인 금 등급 암살자 셋 중 하나가 막내들을 보여 암호로 정해놨던 손짓으로 명령했다.
이마에 땀을 닦는 것처럼 보이면서 오른쪽 귀를 슬쩍 만지는 행동.
‘길드를 위해 희생하라.’
막내 둘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둘은 죽어가는 눈으로 자신들의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방으로 올라갔다. 마지막 먹은 음식이 무척이나 훌륭했으니 그것으로 위안이 되리라.
그들이 먹은 독은 바로 죽는 독이 아니다. 마치 잠든 것처럼 죽어버리는 독.
내일 아침에 저 둘은 죽은 채 발견될 것이다.
이제 남은 인원 열넷. 무희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조심해서 일을 벌여야 했다.
남은 열넷은 최대한 조심하기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러 나왔을 때. 여관은 당연히 난리가 나 있었다. 멀쩡한 손님 둘이 죽어 나갔으니 당연히 큰일이 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아침에 내려왔을 때 열넷이어야 할 암살자는 열두 명이 되어있었다.
“어? 다른 방에 손님 둘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여관주인이 사라진 손님 둘을 찾을때, 어디선가 나타난 무희가 여관 주인의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아, 새벽에 내려왔을 때, 저에게 일찍 사냥을 나가신다며, 짐 가지고 밖으로 나가셨어요.”
“이상한데? 사람이 둘이나 죽었는데 여관 손님 둘도 사라졌다? 발레리 시트라 씨를 불러와 줘!”
“알겠어요. 러셀!”
잠시 후. 얼굴에 흉터가 있는 은발의 사제가 여관에 나타났다. 그리고 막내들의 방으로 들어갔던 사제는 한참 후 일 층으로 내려와 여관주인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은 독살당한 것입니다. 죽음의 꿈초를 먹은 게 확실합니다.”
“죽음의 꿈초요?”
“네, 암살자들이 쓰는 더러운 독초입니다. 먹고 잠들 듯이 죽어버립니다. 아마 새벽 일찍 떠났다는 놈들이 암살자들이었겠죠. 더러운 놈들이 나타나다니!”
흥분한 사제의 목덜미에 걸려있던 로자리오가 그녀의 격앙된 움직임으로 출렁거릴 때 암살자들은 그것이 이단 심문관의 목걸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듯한 여관주인의 말.
“상급 이단 심문관 시트라 씨가 그렇다면 그 말이 맞는 것이겠죠. 아니 남의 여관에서 이게 무슨 짓인지!”
화가 난 여관주인의 목소리.
모든 암살자는 식사하다 말고, 놀라 까무러칠 뻔할 수밖에 없었다.
이단 심문관은 어둠의 독니 암살자들이 제일 조심해야 할 상대 중 하나인 것이다. 해독 능력도 뛰어나 자신들의 천적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하지만, 저것들은 사람의 사소한 행동을 보고도 상대가 어떤 직업이나 위치인지를 유추해 내는 능력이 있어. 자칫 암살자의 버릇을 드러냈다가는 그대로 골통이 깨져버릴 수 있는 것.
‘사, 상급 이단 심문관이라니. 시, 신의 사냥개가 어떻게 시골 마을에?’
그렇게 상급 이단 심문관에게 걸리지 않으려 행동을 조심하며 식사하고 있을 때.
그들의 귓가에 들려온 아주 얄미운 목소리.
“제가 보니까 새벽에 막 허겁지겁 나가는 것이 분명 이상해 보이긴 했어요. 그런 나쁜 놈들이었다니!”
‘저년이다!’ ‘저년이야!’
암살자들은 사라진 두 동료의 행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분명 어젯밤에는 다들 움직이지 않기로 했는데 둘이나 사라졌다? 저년이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었다. 얄미운 목소리가 식은땀이 흐르는 귓가에 흘러들고 있었다.
“나쁜 놈들! 쓰레기 같은 놈들! 버러지 같은 놈들!”
마치 자신들에게 들으라는 듯 외치는 목소리.
“지, 진정해 플로라. 나쁜 말은 하면 안 돼.”
“네, 자기.”
질색하는 여관주인의 팔에 달라붙으며 자신들을 향해 기묘한 웃음을 흘리는 무희였다.
이단 심문관이 여관에 도착한 이후로 암살자들은 지금 각자의 방에 갇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희도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데.
적당히 시체가 수습되고 돌아갈 줄 알았던 이단 심문관이 온종일 여관 홀에서 여관주인의 아내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파티로 위장한 인원을 제외하고 오가며 신호를 주고받거나, 식사 중에 서로 연락해야 하는데. 저렇게 홀의 중앙에 이단 심문관이 온종일 있으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눈치가 보이는 것이었다.
괜히 나갔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암살자들의 버릇을 노출할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결국 모든 암살자는 온종일 각자 방에 처박혔다.
그러나 저녁 시간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시체 수습을 도와줬다며, 저녁 식사에 초대한 여관주인 때문에. 이단 심문관이 저녁 늦게까지 남아있었던 것.
대체 신전은 안 지키고, 이단 심문관이 온종일 여관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결국 이날 암살자들은 늦게까지 남아 식사를 한 이단 심문관으로 인해 서로 아무런 신호도 주고받지 못했다.
대화가 완전히 끊긴 상태.
다음 날 아침.
남은 암살자는 열 명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얄미운 무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새벽같이 두 분이 사냥을 나간다고 하셨어요. 여기 여관 너무 좋았다고 돈도 이만큼 주고 가셨어요.”
“무슨 돈을 이렇게나 많이? 여관이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보네?”
무희의 손에는 사라진 이들의 활동비 주머니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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