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09화 (209/352)

〈 209화 〉 206. 벚꽃 수확 3

* * *

이른 아침 사리나는 로리엘이라는 자신의 주인님이 된 엘프의 손에 이끌려 여관 손님이 되었다.

노예가 되어 주인으로 모시겠다며 목숨을 구걸하자 엘프는 자신이 만난 후 처음으로 미소를 짓더니, 아주 기쁘게 자신의 복종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노예’를 좋아하는 엘프라니.

여러 가지로 이해 못할 엘프였다.

하지만 벌레만도 못한 자신이 로리엘님을 감히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은 그녀가 살려준 벌레니까. 살려면 이제부터 벌레가 되어야 했다.

사리나가 로리엘의 손에 이끌려 여관의 손님이 된 이유. 당분간 로리엘님의 친구 인척 행동하며 여관에 손님으로 있으라는 그녀의 지시 때문이었다.

로리엘님의 뒤를 따라 떨리는 마음으로 첫발을 디딘 여관.

여관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사리나에게 여러 가지 감정이 몰려들었다. 이 여관에 들어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목숨이 사라졌던가? 그런데 손님이라는 두 단어에 여관은 자신을 향해 활짝 문을 열고 있었다.

‘대체 그동안 뭘 한 거지? 손님으로 위장하고 있다가 처리하고 나왔다면?’

암살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옆의 로리엘님을 보자 그것이 정말 쓸데없는 생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표물을 처리한다 해도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그 후 로리엘님의 손에서 펼쳐질 자신의 미래가 떠올랐다.

피와 살육의 축제. 생각만 해도 손이 떨려왔다.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그래, 누구라고?”

그래, 여관주인 남자와 이야기 중이었지. 사리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로, 로리엘님의 부하…, 아니, 치, 친구입니다.”

“로리엘이 인간 친구가 있었나? 뭐 아무튼 환영해. 근데 어디서 지린내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로리엘?”

사리나는 부끄러움에 몸을 떨며 조심스레 말했다.

“제, 제가 모, 몸은 씻은 지 오, 오래되어서 죄송합니다!”

“아, 그랬구나. 이거 미안하네, 아가씨에게 실례하고 말았네? 그러면 먼저 목욕물 준비해 줄 테니까. 일단 씻고 옷부터 빨자.”

쓸데없이 다정한 여관주인의 목소리.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평원에서 구르며, 기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오줌까지 지렸던 사리나는 여관의 종업원으로 보이는 토끼 수인에게 안내되어 따듯한 물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따듯한 물속에 몸을 담그자 서러움이 사리나에게 몰려왔다.

엘프의 손에 떨어진 자신의 비참한 미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리나는 따듯한 물속에서 소리죽여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지금만 울고 이 목욕통에서 나가면 철저히 벌레로 살아가겠다고.

‘나쁜 일은 많이 한 결과일까?’

한참을 통속에서 흐느끼다 오해받을까 싶어. 목욕을 끝내고 여관 식당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맞이한 것은 진정한 괴물들의 세계.

아침 식사를 위해 여관 홀에 모여든 인원들은 인간이 아닌, 뭔가 다른 존재였다.

사리나가 살인마로 암살자로 유명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길드 마스터는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비밀.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한지 약한지를 알아챌 수 있는 특이한 능력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식당에 들어선 사리나는 뼈저리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다.

자기의 주인이 된, 로리엘님 주변에서 아침을 먹는 다른 두 엘프는 로리엘님과 같은 수준. 아까 만난 여관주인만 해도 금 등급은 될 것 같았는데, 한쪽 구석에서 자신이 암살 길드의 표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태평하게 밥을 먹고 있는. 아마도 목표였던 것으로 보이는 핑크 머리도 금 등급 이상으로 보이는 기묘한 기운을 흘려내고 있었다.

‘500 골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걸 뚫고 저걸 잡으려면, 그 음유 시인의 노래 속에나 등장하는 용사들이나 모여야 가능할까?

분홍 머리 여자 하나에 500골드라는 거금이 박힌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길드 수뇌부 새끼들은 다 머저리였다.

그렇게 실없이 웃고 있을 때.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가슴 큰 금발의 엘프가 자기 앞에 나타나자, 사리나의 테이블 아래로 갑자기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어머! 손님!”

아까처럼 오줌을 지리고 만 것이었다.

부끄러워하고 말고 할 정신도 없었다.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버렸으니 말이다. 멍한 얼굴로 다시 여관 종업원에 손에 이끌려 몸을 씻고 정리된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엘프.

‘무, 무엇인가? 이것은?’

용? 아니, 전설에 마왕? 자신의 취향인 젖가슴 너머 그녀의 안에 저 꿈틀대는 기운은 무엇이란 말인가?

살아생전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힘이 엘프 안에 꿈틀대고 있었다.

그 무서운 로리엘님도 저 태양 앞에서는 빛을 잃고 말 정도였다.

테이블에 식사를 내려두고 자신을 향해 ‘맛있게 드세요’라고 미소 지으며 말하는 금발 엘프의 말이 자신을 맛있게 먹겠다는 말로 들려오고 있었다.

손을 덜덜 떨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숟가락을 떠올리는 사리나.

‘죽음을 앞둔 식사가 이런 기분일까?’

그때였다. 갑자기 다가온 마왕 같은 엘프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머, 손님 어디 아프신 건 아닌가요? 이 땀 봐.”

“아, 아닙니다!”

“아니긴요. 땀이 이렇게나 많이. 아까 실수하신 것도… 러셀! 손님이 몸이 좋지 않은가 봐요.”

사리나는 말하고 싶었다. 이 땀은 당신 때문에 나는 거라고. 날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그것은 마음속에서만 터져 나오는 외침.

긴장한 사리나의 입에서는 감히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엘프의 부름에 달려온 여관주인이 더욱 끔찍한 말을 내뱉었다.

“야! 로리엘, 네 친구. 아픈가 보다. 식사 끝나면 신전에 좀 데려가 봐.”

식사하다 여관주인의 소리에 이쪽을 바라보는 로리엘님. 저분을 귀찮게 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인가.

벌레가, 벌레만도 못한 자신이 주인님을 번거롭게 하고 만 것이었다.

사리나가 공포에 떨며 부정하는 말을 급히 하려 할 때, 로리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닙니…”

“식사가 끝나고 데려갔다 오겠다.”

로리엘님의 대답이 더 빨랐다.

마치 사형 선고처럼 들리는 로리엘님의 말씀. 식사가 끝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로리엘님을 뒤따라 한참을 걸어갈 때, 로리엘님의 예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아프면 미리 이야기합니다.”

“예?! 옛!”

질책이나 협박, 비난, 경멸, 목숨의 위협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들려온 것은 무심하지만 따듯한 배려의 말씀. 사리나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그, 그렇구나! 이분의 노예가 되었으니 나는 이분의 보호를 받는 것.’

적일 때는 두려움과 공포였으나 그녀의 소유물이 되니 따듯한 배려! 사리나의 몸이 전율로 떨려왔다.

그렇게 로리엘님의 따듯한 말씀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리나는 그녀를 따라 신전으로 향했다.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희고 아름다운 건물. 그 건물의 문을 조심히 열고 로리엘님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시트라?”

그러자 은발의 사제가 허겁지겁 안에서부터 달려 나왔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미인.

제법 고위 사제인지 엄청난 기운.

“어머 로리엘님 여긴 어떻게?”

“환자.”

자신을 바라보며 딱 한 단어.

“아 환자군요. 제가 잘 치료해서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돌아가 계세요.”

“알았다.”

로리엘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관으로 되돌아가셨다. 자신을 믿어주시는 걸까? 아니면 도망쳐도 언제라도 다시 잡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아마 후자겠지?’

공포와 달콤한 안도감에 휩싸인 사리나의 귓가에 따듯한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어디가 아프신 거죠?”

사리나는 새벽부터 목숨의 위협과 죽음의 문턱. 괴물들과 만난 사실에 갈가리 찢긴 정신을 보듬어주는 사제의 따듯한 목소리에 뭔가 이끌리듯 물었다.

“그, 그것이. 구,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죄, 죄인도 속죄하면 요,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어머, 그런 기특한 생각을, 물론이죠! 신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속죄하는 영혼을 언제나 기꺼워하십니다.”

‘그렇구나! 회개하면 누구나 용서받을 수 있는 거구나.’

환한 얼굴로 기뻐하는 사제 앞에서, 사리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처박고 울며 그간 자신의 죄를 토해냈다.

“회, 회개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죄인. 살인자와 암살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흑흑…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네? 무엇으로 살아왔다고요?”

“젖가슴 살인마. 암살자 길드의 동급 암살자 사리나 그게 저입니다. 흐흐흑…”

흐느끼는 자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 사제의 손길. 역시 사제는 따듯했다. 자신 같은 추악한 살인마도 신께서는 용서하신다니. 사리나는 사제의 손길을 느끼며 한참을 울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한참을 울다가 보니 사제의 손길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뭔가 무겁고 차가운…

‘뭐지?’

한 손으로 머리 위를 만지자 차가운 쇳덩이의 느낌.

눈물투성이 눈으로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바라보자 사제가 어느새 동그란 철퇴를 들고 자기의 머리를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 터트릴지 고민하는 것처럼.

따듯하다고 느껴졌던 손길은 실상 차가운 철퇴.

그리고 그때야 눈에 들어온 그녀의 목에 걸린 이단 심문관의 로자리오.

­쉬이이이이

벌써 두 번이나 쌌는데도 아직 나올 게 있었던지. 다리 사이에서 다시금 소변이 흘러나왔다.

신들의 사냥개 앞에 죄를 고백하다니.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이단심문관 앞에서의 참회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 신력을 끌어올린 이단 심문관은 그냥 고위 사제가 아니었다.

상급 그 이상의 어떤 존재.

이단 심문관이 번쩍거리며 황금의 신성력을 내뿜으며 천둥같이 입을 열었다.

“신이 용서치 않는 쓰레기 중의 하나가 죄를 청하니. 원대로 해드려야겠군요.”

단호한 음성.

­우직

엎드린 자기의 손을 뭉개는 메이스.

“꺄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저, 저는 로리엘님의 ‘노예’입니다.”

살기 위해 부르짖은 이름이 효과가 있었는지 사제가 급하게 신성력을 거두더니 물어왔다.

“거짓말은 아니겠죠?”

“저, 정말입니다. 저는 그, 그분의 노예가 되기로 맹세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벌레 같은 노예입니다. 끄흐윽…”

부들거리며 뭉개진 손을 붙잡고 울부짖자 사제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자기의 손을 치료하며 말했다.

“당신이 누구라고요?”

“젖가슴 살인마. 암살자 길드의 동 등급 암살자 사리나…”

“아뇨 틀렸습니다. 당신은 이제 오줌싸게 사리나입니다. 아셨습니까? 치욕의 이름을 짊어지고 평생 속죄하는 것입니다!”

이단 심문관을 통해 불명예의 기사처럼 사리나에게 치욕의 이름이 내려졌다. 그리고 엄한 당부의 말도.

“제가 항상 지켜볼 것입니다. 명심토록 하세요. 그리고 그분들을 모시는 데 한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이제 이전의 사리나는 죽고 사라졌다. 사리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오줌싸게 사리나.’ 사제를 통해 아니, 이단 심문관을 통해 새로 얻은 그녀의 이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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