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 203. 대장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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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와 다크 엘프가 가문의 원수 같은 느낌이라면, 드워프와 엘프는 개와 고양이 같은 관계.
이유는 다른 것이 없다.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와는 다르게 드워프는 광산을 만들어 땅속을 헤집고, 그 과정에서 버팀목을 만들기 위해 대량의 나무를 벌목하거나, 필요하다면 노천광산 같은 것도 만들어 자연과 나무를 해치니. 엘프들이 예쁘게 보지 않는 것.
드워프 들도 그깟 나무 때문에 걸핏하면 화살을 쏘아대는 엘프들에게 혼자 고고한 척 내숭에 콧대만 높다는 편견이 지배적이다.
이 편견이라는 것이 매우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기에, 대부분 엘프나 드워프들은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근데 그런 생각은 드워프들 사이에서 자란 드워프들만 해당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어, 언니 머, 머리카락 만져봐도 돼요?”
이실리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쪼망만한 생물이 손을 내밀어 아주 조심스럽게 이실리엘의 머리카락을 손 위에 올렸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탄성.
“우아아아…”
“저, 저도요 누나!”
드워프 꼬맹이들이 앞다투어 이실리엘의 머리카락을 만져보겠다며 난리가 난 상태였다.
“화, 황금 같아요!”
번쩍이는 황금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드워프들 이기에 이실리엘의 금빛으로 번쩍이는 머리카락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인 것 같았다.
결혼 적령기라는 노르딕 씨의 딸도 조심스럽게 이실리엘에게 부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저, 저도…”
노르딕 씨를 닮아선지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는 엄청 용기를 냈는지, 새빨간 얼굴로 이실리엘의 승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실리엘의 미소와 함께 고개가 끄덕여지자.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아이같이 이실리엘의 머리카락을 손안에 넣고 기뻐하는 그녀.
저 드워프 친구 이름은 스나졸린이라고 했다. 드워프식 이름인 것 같은데 이름도 어렵다.
양 갈래로 묶은 검은 머리. 귀욤귀욤한 얼굴. 에밀의 위치가 위협받을만한 귀여움으로 무장하고 있는 그녀였다. 더군다나 아동 체형임에도 훌륭한 미드…
‘아니다. 아니야!’
위험한 것에 빠져들 뻔한 자신을 다시금 경계하며 정신을 붙잡았다.
‘드워프 새끼들은 다 페도! 씹새끼들! 종족이 음란한 종족이었어!’
그렇게 내가 나쁜 것에 빠질뻔한 정신을 부여잡고 있을 때.
탕탕탕 탕탕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노르딕 씨의 웃음 섞인 호통도.
“이 녀석들! 이실리엘님 귀찮게 하지 말고 다른 곳에 가서 놀거라!”
한 달 넘게 낮에는 평원에 풀숲에 엎드려 숨어있다 밤에만 이동. 불을 피울 수도 없어 몇 번을 제외하고는, 쥐나 늑대의 생고기만 뜯어 먹었다는 노르딕 씨 가족들이 기운을 차리게 된 것은, 여관에 도착하고 닷새나 지나서였다.
첫날 여관에 도착하고 이틀이나 내리 자버린 노르딕 씨 가족.
애써 구한 내 드워프가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시트라 씨도 불러오고 날 리가 났었지만. 코를 골고 자고 있다는 시트라 씨의 말에 얼마나 황당하던지.
결국 닷새 만에 기운을 차린 노르딕 씨 가족은 은혜를 갚겠다며,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며칠간 노르딕 씨는 여관 내부를 보며 뭔가 계속 불편한 표정이었는데, 뭔가를 계속 돕고 싶다고 하기에 구해달라는 연장을 조금 내주었더니. 여관 내부에 달라붙어 우기 때부터 삐걱거리는 문이며 의자 테이블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이래서 드워프 꼭꼭 숨겨두고 노예처럼 부려 먹고 싶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보통 우리가 수리라고 하면, 삐걱거리는 문이야 경첩에 기름칠하고 문짝 뒤틀렸으면 그거 잡아주는 정도라고 당연히 생각하여야 할 수밖에 없는데.
드워프들의 수리는 뭔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이실리엘님 혹시 좋아하는 게 있으십니까?”
“꽃이요!”
갑자기 문짝 뜯어고치다가 좋아하는 걸 물어본 노르딕 씨에게 해맑은 얼굴로 꽃이라고 대답한 이실리엘 덕분에, 여관 문짝에는 양각된 꽃들이 피어났다.
문짝 하나 고치는데, 온종일이 걸렸지만, 여관 문짝이 예술품이 되어버린 모습.
문짝을 다 고친 후 그의 말이 압권이었다.
“제가 대장 기술이 전문이라서 목재는 좀 서툰데 죄송합니다.”
‘안 서툴면 꽃에 벌이라도 날아오는 건가?’
아무리 봐도 문짝이라기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운 여관의 문짝을 보며 들 수밖에 없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여관 여기저기를 마개조 하는 노르딕 씨와 그걸 돕는 그리나 씨로, 요 이틀내내 여관에는 망치질이 끊이질 않는 중이었다.
지금도 여관 난간을 열심히 고치고 계시는데 슬슬 이제는 이야기를 꺼내 볼 때였다.
조금 늦은 오후 아직 저녁이 시작되기 전. 나는 그의 가족을 엘프들의 거주 구역 내의 빈집으로 안내했다.
“저, 여긴?”
갑자기 전부 웬 빈집으로 끌고 오니 궁금하셨던 것 같다. 나는 일단 다들 자리에 앉힌 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 혹시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사실지 생각해본 것은 있으신가요. 노르딕 씨?”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는 노르딕 씨 가족들. 그리고 노르딕 씨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화, 확실히 언제까지 마냥 저희를 돌봐주실 수도 없는 일. 아내와 제가 무슨 일이라도 할 테니…”
“아뇨 그런 말이 아닙니다.”
고작 며칠 밥 먹여준 것으로 노르딕 씨는 나의 도움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노르딕 씨가 뭘 모르시는 것. 내 취미가 이종족 공짜 밥 먹여주기라는 것을 말이다. 당장 우리 여관 이층에 몇 달째 무전취식 하는 엘프들도 셋이나 있는데.
아주 최소한의 노동만 하면서 말이다.
“예? 그럼?”
“노르딕 씨 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동부로 가실지 아니면 이곳에 정착할 생각이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었거든요.”
본격적으로 그에게 마을에 정착할 의사를 묻기로 마음을 먹고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는데, 나는 그에게 제안을 꺼내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빌 듯 외쳤다.
‘발로나님 믿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마을에는 대장간이 없어요. 마을이 발전하려면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알다시피 대장장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구해지는 게 아니고. 그러던 차에 노르딕 씨 가족이 나타나니 저도 좀 욕심이 나서요.”
일단은 시작은 정직하게 말을 하기로 했다.
“노르딕 씨와 가족들이 원하신다며 마을에서는 언제까지라도 살게 해드릴 수 있어요. 이 빈집도 원하시면 사용하셔도 됩니다. 대장간을 하고 싶으시다면 대장간도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대장간을 열어서 만든 물건을 팔고 싶으시다면, 보호구역 밖은 위험하니 물건은 제가 대신 팔아드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제안은 푸짐하게 종합선물로 준비.
”뭐 그래도 떠, 떠나시겠다면 안전하게 떠나실 수 있게 물론 도와드릴 겁니다. 여비도 충분히 챙겨드릴 거예요.“
떠난다는 말을 꺼낼 때 조금 떨고 말았는데, 속마음을 들켜버릴 뻔했다.
잠시 정적만이 계속되는 오두막.
‘뭔가 마음에 안 드시나?’
내 마음속에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을 때.
”여, 여보…“
정적을 깨고 들린 목소리는 그리나 씨. 울먹울먹한 눈으로 노르딕 씨를 바라보고 계셨다.
‘먹혔나?’
그리고 잠시 후. 노르딕 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감사합니다!”
“이, 이제 여기가 우, 우리 집인가요?”
첫째 딸 스나졸린 양의 물음에 노르딕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 우리도 집이 생겼어!”
“집이야! 우리 집이다!”
쪼꼬미들이 신이나 오두막 내부를 뛰고 노르딕 씨와 그리나 씨, 스나졸린 양의 눈물이 오두막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들 생의 첫 집이었다.
저녁에 노르딕 씨에게 맥주를 대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안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물었더니, 서로 간의 대화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노르딕 씨에게 마을에서 대장간을 열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이 해주겠다는 말이었는데, 노르딕 씨는 왕실 전속 대장장이처럼, 이실리엘의 전속 대장장이 같은 제안으로 받아들이셨던 것이었다.
전속 대장장이는 사는 데 불편함 없는 지원이 약속되고, 섬기는 자가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주는 것을 말하는데. 왕실 전속 대장장이 같은 것은, 엄청난 부와 명예가 따르니 대장장이에게도 명예로운 것.
나한테는 더 좋은 이야기였다.
맙소사. 이 타이밍에서는 그분을 한 번 더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로나님 만세! 만세! 만만세!”
“정말로 발로나님의 은혜가 맞습니다! 껄껄!”
나와 노르딕 씨는 연신 발로나님을 찾으며 맥주를 신나게 들이켰다. 그런데 맥주가 좀 들어간 상태에서 노르딕 씨가 하는 말이 또 재미있었다.
혹시라도 이실리엘이 들을까 봐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하는 노르딕 씨.
[뭐 젊을 때도 말 듣지 않기로 유명한 자식이었지만. 제가 높은 귀, 높은 콧대의 높은 엘프의 전속 대장장이가 되었다면, 우리 부모님이나 형제들도 경악할 겁니다. 크헤헤. 나중에 만났을 때의 표정이 기대됩니다!]
나와 노르딕 씨의 맥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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