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04화 (204/352)

〈 204화 〉 202. 대장간 5

* * *

“의심 말인가요?”

내 의심이라는 말에 노르딕 씨는 긴장한 표정,

‘자신이 의심받는다고 생각하신 건가?’

나는 노르딕 씨의 긴장도 풀어줄 겸 본격적 사이다 대접의 시동을 걸었다.

“예, 그,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할 수 없는 이상한… 아니지…. 마치 마족이나 할법한 행동을 하는 사람… 아니, 그걸 과연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새끼가 아니, 영주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 마족이나 할법할 행동을요?”

나의 말에 세 사제의 눈빛이 경악과 분노로 물들고. 더군다나 시트라 씨는 바로 광신도 모드로 돌변하며 물으셨다.

지금 눈빛은 순수한 시트라 씨가 아니라 광신도 시트라 씨.

“자세하게 말씀해 보시죠. 러셀 씨. 확실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이야기군요?”

착 가라앉은 시트라 씨의 목소리. 발동이 제대로 걸렸다.

마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이단 심문관 시트라 씨가, 마족이라는 소리에 눈빛을 빛내는 것은 당연한 일.

나는 그녀에게 눈을 맞추며 노르딕 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천천히 시작했다.

처음 노르딕 씨가 도망 노예이고 평생을 영주의 광산에 갇혀 지냈다는 말에 세 사제는 조금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가 되자 여자 드워프를 잡아서 강제로 결혼시키고 새끼를 치듯 드워프를 번식시켰다는 말에서 분노 게이지가 끝까지 올라간 듯 보이더니.

“그 태어난 아이 중에 첫째 딸이 다 자라자. 그걸 다른데 팔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노르딕 씨는 딸을 잃을 수 없어 광산을 무너트리고, 혼란한 틈에 간신히 도망쳐 이곳으로 오는 저의 마차에 뛰어들어 도움을 요청하신 것이죠!”

“맙소사!”

세 사제의 입에서 동시에 들려온 목소리. 이미 그들의 분노 게이지는 분노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정황상 마족으로 의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내 이야기가 다소 억지처럼 들렸던지. 옆에서 노르딕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제, 제가 보기에는 마족은 아니었던…”

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불쌍한 노르딕 씨. 이거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뭔가 그거 같았다. 지금 이게 편들 때가 아닌데.

분위기 파악을 못 하신 노르딕 씨에게 물었다.

“노르딕 씨, 인간과 마족을 나누는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을 먹는 것? 뿔 같은 외형? 부정의 마나? 아뇨, 다 아닙니다. 노르딕 씨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세요.”

“그, 그럼 무엇이죠?”

조심스러운 노르딕 씨의 물음. 나는 그의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아니,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마족의 마음을 품으면, 그것은 마족일까요? 인간일까요?”

내가 노르딕 씨를 부여잡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이 들려온 것은 노르딕 씨가 아니라 시트라 씨.

활화산같이 불타오르는 눈으로 씨트라 씨가 외쳤다.

“당연히 마족입니다!”

사제들도 내 말이 맞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르딕 씨는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표정.

“자 노르딕 씨, 그 마족이 어느 나라 어느 영지의 누구라고요? 여기 고위 이단 심문관 시트라 씨는, 인간 사이에 숨어 인간인 척하는 마족을 찾아내 벌하는 것이. 아니, 멸하는 것이 특기이시죠.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자가 어디 있는지. 자! 어서 말씀하시죠!”

눈앞에 있는 것이 이단 심문관이라는 사실에 그제야 내 말이 이해되었는지. 노르딕 씨의 입에 미소가 함지박만 하게 걸리더니, 그가 마치 말라죽기 전 비를 맞아 되살아난 초원의 풀처럼 생기 머금은 소리로 외쳤다.

“남부 빌라인 왕국 베드포드 자작령 라울이라는 자입니다!”

노르딕 씨의 희열에 찬 음성에 마을 광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 순간 그는 노예 쩌리 드워프가 아니라 진정한 해머를 휘두르는 드워프 전사 같았다.

시트라 씨를 통해서 안 것이지만, 이곳의 종교는 그래도 아주 합리적인 편이다. 신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세계이다 보니 너무 세속적이지도 않고. 매우 상식적으로 움직인다.

이들이 이렇게 전생의 종교처럼 세속적이거나 타락하지 않고 종교 본연의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 된다.

첫째는 잘못하면 신에게 직접 대가리가 깨지는 세계이니 쉽게 타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마족과 몬스터라는 공통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높은 분들께 감시도 당하고 있고, 공통의 적도 있으니. 전생과는 다르게 종교인들 그리고 성국은 정말로 세계 평화를 위해서 움직인다.

그러니 인간을 위해 북부를 틀어막고 있는 북부 다섯 왕국을 지원하기도 하고, 이실리엘 같은 위험인물(?)을 감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일은 하는 이유는 당연히 인간과 유사 인간들의 문명과 그 결속력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

성국에도 여러 종족이 있고 다양한 종족의 사제가 있으니, 인간 한정만은 아닌 것이다. 인간, 엘프, 드워프, 다크 엘프, 수인 등등 수많은 종족의 결속력과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이들의 대의 목표.

그렇기에 이렇게 인간이 저질러서는 안 되는 금기, 종족 간의 화합을 깨트리는 범죄를 극도로 혐오한다.

엘프들의 사건 때 시트라 씨와 이단 심문관들이 발작했던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

그러니 아마 노르딕 씨의 입에서 나온 저 이름은 이제 자신이 마족임을 자백할 때까지, 성국에게 끌려가서 엄한 심문을 당할 것이다. 살가죽이 타고 피가 흐르고 뼈가 부서지는 그런 심문 말이다.

그가 마족이 아니라는 것은 성국에서도 알겠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놈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아마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성국이 움직이지 않을 확률은 영 프로. 반대로 움직일 확률 백 프로인 것이다.

만약 모종의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조금 확률을 올려주면 된다.

이렇게.

“시트라 씨 성국에 보고하실 때. 이 이야기를 들은 이실리엘이 무척 ‘분노’했다고 좀 전해주세요.”

“부, 분노 말입니까?”

당황함으로 물드는 시트라 씨. 감시역이 우리 편이면, 역으로 써먹을 수도 있어야 하는 것.

“예, ‘타오르는 분노’ 정도로 하죠.”

이실리엘과 직접 가서 영주 새끼를 오크 밥으로 던져주고 싶지만, 우리가 직접 움직이면 또 성국과 아베느 왕국의 높은 분들께서 불면증에 잠을 못 이루실 테니.

이런 건 우리가 직접 가기 전에, 깨끗하게 정리해주십사 당부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물론 그 당부의 말씀 때문에 잠이 못 주무실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분들이 걱정이 많은 것으로 하자. 아무렴.

시트라 씨와 이야기를 끝내고 여관으로 향하는 길.

“흑… 흐윽…”

“자자 그만 진정하세요. 노르딕 씨.”

노르딕 씨는 가족의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계속 저 상태셨다.

시트라 씨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영주의 나쁜 짓을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하시고, 성국을 통해서 가능하면, 노르딕 씨와 그리나 씨의 가족들에게도 연락을 취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이야기가 나오고부터였다.

젊을 때 잡혀가서 평생을 광산에서 살았다는 말이 기억나서, 혹시 성국을 통해 가족에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 해서 시트라 씨에게 물었더니. 시트라 씨가 아주 흔쾌히 그렇게 해주겠다며 약속을 해주신 것이었다.

시트라 씨는 신전에는 정규 보고라는 것과 긴급 보고가 있어서, 각지에 흩어져있는 신전에 연락을 취할 수 있다며, 동부 쪽에 연락을 취해서 혹시나 노르딕 씨와 그의 아내의 가족들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이 이곳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겠다고 했다.

노르딕 씨는 자기의 가족에게 연락까지 취해준다는 말에, 가장으로서 그간 참았던 두려움과 그리움, 슬픔 등이 한꺼번에 다 터져 나온 모습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흐윽…”

“그 말 지금까지 한 서른 번은 하신 것 같아요.”

“왜. 저, 저를 이렇게 도와주시는 거죠? ”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초면부터 마을에 대장간이 필요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나는 걸으면서 그에게 내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었다.

“저도 부모님이 습격해온 오크 무리에 돌아가시고 십오 년을 용병으로 굴렀죠. 어린 나이부터. 말이죠. 혼자서 세상에 내던져져 무척 힘들었어요. 개 같은 신들. 나만 왜 이따위 삶을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는 내 말에 무척이나 공감하는 것 같았다. 그도 아마 비슷한 생각일 테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자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제 아내들과 결혼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의 고통과 슬픔 괴로움이 이 순간을 위해서였구나. 아마 노르딕 씨도 제 아내들을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노르딕 씨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를 보며 잠깐 뜸을 들였다. 밥이 익으려면 뜸은 항상 필요한 것.

“저분도 나 이상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셨구나. 저분한테도 그동안의 고통이 앞으로의 행복을 위한 잠깐의 고통이라고 생각될 수 있게 도와주자. 뭐 그런 이유죠.”

“흐흐흑… 제, 제가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주 그냥 절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와 천천히 걸어 여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여관이 조금씩 가까워져 올 때. 나를 부르는 아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

“러셀! 손님들은 씻고 식사하고 계세요.”

“어서 와요! 애니는 보고 왔어요?”

아마 빨랫줄에 붙어서 다 같이 빨래를 널고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가 나를 먼저 발견해 소리치자. 셋이 앞다투어 손을 흔들려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 항상 일등은 이실리엘 이지만…

뒤처진 둘을 뒤로하고 이실리엘이 내 옆에 노르딕 씨에게 먼저 인사를 건냈다.

“아, 이번에 오신 손님의 바깥분이시군요? 반가워요. 러셀의 첫째 아내 이실리엘이라고 합니다.”

“아, 노르딕 씨 소개해 드릴게요. 제 첫째 아내 이실리엘. 높은 엘프이자 이 보호구역의 지배자? 통치자? 뭐 그런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가 이실리엘을 소개하자 노르딕 씨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노, 높은 귀?! 흡!”

그리고 곧바로 자기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은 노르딕 씨는 정정하듯 다시 외쳤다.

“바, 발로나님 만세!”

노르딕 씨는 이실리엘을 보자 내가 자신에게 어떤 대접을 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높은 엘프급 대접은 어떤 대접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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