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03화 (203/352)

〈 203화 〉 201. 대장간 4

* * *

늦은 오후. 웜 포트에서 뿜어 올리는 연기가 멀리 지평선 너머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나 씨와 아이들은 마차 짐칸에서 비상용으로 준비해 두었던 모포 위에 곯아떨어진 상태. 노르딕 씨도 쏟아지는 잠을 몰아내려 연신 눈을 비비고 있었다.

같이 눈을 붙이라고 해도 고집불통인 노르딕 씨.

그의 눈에 가장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굳은 의지와 무게가 느껴졌다.

노르딕 씨가 몰려오는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그때. 마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보이기 시작하네요. 저기가 웜 포트입니다.”

불안해하는 노르딕 씨를 위한 그녀 나름대로 배려이리라.

마리나의 설명에 짧은 다리로 마차에서 일어나 기둥을 잡고. 저 너머 보이기 시작하는 웜 포트를 복잡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노르딕 씨.

그는 웜 포트를 목전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족을 이끌고 미지의 땅으로 온 노르딕 씨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마차가 거의 도착했다는 말에 잠에서 깨어난 그리나 씨와 아이들이 마차 앞쪽에 머리를 걸치고, 앞에 보이는 웜 포트를 구경하고 있었다.

“여기가 이종족 보호구역의 마을….”

두려움과 설렘이 가득한 아이들의 눈빛. 태양 아래서 마을이라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일 것이다. 어느 세계나 아이들은 보호받아 마땅한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생활했다는 아이들은 그럼에도 순수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을 반기기라도 하듯, 아주 맑고, 밝고, 정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 러셀! 여기! 여기!”

우리 마차가 가까워져 오기 시작하자. 목책 위에서 경비를 서던 마을 사람들과 초록 머리 엘프의 머리가 쏙하고 나타나더니. 그중 녹색 머리 엘프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에밀이 뭐가 그렇기 신이 나는지. 목책 위에서 나에게 손은 흔들고 있었다.

“여어… 에밀~”

나도 에밀을 불러줬다. 그러자 아직 거리가 좀 남았음에도 목책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녹색 머리 엘프가 바람같이 달려오더니, 민첩한 몸놀림으로 마차에 달라붙었다.

“러셀! 다녀왔어?”

‘에밀 녀석 강아지 같다니까?’

엘프 아니랄까 민첩하게 마차에 달라붙은 녀석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며칠 보지 못한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다음번에는 마을가서 말린 과일 같은 것이라도 좀 사다 줘야 할 것 같았다.

“누가 보면 정말 오랜만에 보는 줄 알겠네.”

“헤헤… 어? 근데 이분들은?”

그제야 드워프들을 발견한 에밀. 참 빨리도 발견한다. 에밀이 경계 제대로 서고 있는 건 맞는 건가? 나는 에밀의 근무가 심각히 걱정되었다.

‘아니, 눈앞에 있는데 이제야 발견하면 어쩌는 거니 에밀아.’

“아 사정이 있어,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그래, 그럼. 나, 간다~”

그녀는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다는 듯. 나타났을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정말 바람같이 나타났다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러셀 씨 신전으로 먼저 갈까요?”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드워프들의 시뻘겋게 화상을 입은 피부가 걱정되었던지 마리나가 물어왔다.

목욕도 시켜야 하는데 저런 피부로는 불가능했기에 치료는 반드시 필요했다.

“응, 그래 우선 신전부터.”

마리나는 곧바로 신전으로 마차를 몰았다. 마차가 신전 입구에 서자마자. 나는 신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시트라 씨를 불렀다.

“시트라 씨!”

신전 내부를 울리는 내 우렁찬 목소리에, 숙소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시트라 씨와 다른 사제 두 분이 금방 나타나셨다.

“러, 러셀 씨 어, 어쩐 일이시죠?”

왠지 얼굴이 붉게 물든 시트라 씨. 뭔가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시트라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아마도 내가 몸살로 누운 날 나에게 탈력을 건 것이 조금 미안했던 것 같았다. 뭐 덕분에 잘 쉬기도 했으니. 미안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시트라 씨, 제가 아프던 날 있었던 일은 다 들었습니다.”

“네! 다, 다 들으셨다고요? 저, 정말 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다 말입니까?”

화들짝 놀라며 외치는 시트라 씨. 얼굴이 더더욱 붉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놀라고 미안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격렬한 반응.

‘그렇게 미안할 일은 아닌데?’

“예, 다 들었어요. 그렇게 미안하지 않으셔도 돼요. 덕분에 푹 쉴 수 있었어요. 생각보다 해보니까. 그거 좋더라고요. 시트라 씨가 해주셔서 그런가? 기운이 쭉 빠는 것이. 하하하…”

“그, 그렇습니까? 제, 제가 해주니까… 기, 기운이 빠지셨다니… 그, 그렇게나…”

시트라 씨는 부끄러운 듯 양손으로 볼을 감싸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탈력을 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행동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몬스터 잡는 것도 아니고 사람한테 걸었다는 이야기는 나도 처음 들어봤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말했다.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푹 쉬라는 의미에서 나를 걱정해서 걸어준 것이니, 그렇게 미안해하면 내가 마음이 불편하니 말이다.

“다음에 혹시라도 아프면 잘 부탁드려요,”

“아, 아플 때만 말입니까…?”

뭔가 아쉬운 목소리로 아플 때 외에는 안되냐는 듯 물어오는 시트라 씨. 금방 미안해하다가 마음의 불편을 어루만져주니 바로 저런 반응이라니. 역시나 순수한 분.

하지만 안 아플 때 탈력을 걸면 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나를 위한다고 해도 그건 일단은 디버프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평소에 기운 없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 나는 일단 아내가 넷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시트라 씨를 달래기 위해서 말을 꺼냈다.

“평상시에는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 순간 생각해보니, 탈력을 여러모로 사용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 푹 쉴 때도 좋긴 하겠네요.”

그래, 뭐 전생에 마취 주사 맞고 잠자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프ㅇㅇㅇ 주사처럼 말이다. 그거 한번 걸려보니까 아주 푹 쉬게는 되었으니까.

정말 푹 쉬기 위해서 걸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근육이 다 풀어지는 게 꼭 마사지 받고 난 기분이었으니.

“아! 알겠습니다. 푸, 푹 쉴 때. 저, 저만 믿으십시오!”

이제는 아예 고추같이 붉은 얼굴로 주먹까지 불끈 쥐는 시트라 씨. 저런 순수한 분이 어쩌자고 내가 좋다고… 나는 정말 죄 많은 놈이었다.

“그런데, 러셀 씨, 찾아오신 이유가?”

자책감에 빠진 나에게 방문한 연유를 묻는 시트라 씨. 아 참! 환자가 있었지. 시트라 씨와 이야기하다가 깜빡해버리다니.

“아 참! 내 정신 좀 봐! 환자입니다!”

“아니, 그걸 지금 말씀하시면…”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사제들과 시트라 씨가 신전 밖으로 달려 나가자. 마차 위에 붉게 탄 피부로 신전을 내다보고 있는 드워프 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사제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누가 환자인지 당연히 알겠다는 듯 뛰어가 상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분들입니까? 맙소사 얼굴에 이런 화상을!”

시트라 씨가 드워프 들을 살펴보다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너무 오랜만에 장시간 태양 빛에 노출되어서 피부가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이런 아이들까지. 자자 어서 치료를 시작합시다.”

“팔과 손등 목덜미도 심합니다. 진물도 심하군요. 중급 치료를 걸겠습니다.”

시트라 씨를 비롯한 세 상급 사제가 치료를 시작하자, 다섯의 드워프는 금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꼬질꼬질하지만 매끈한 피부를 보니 기분이 좋아질 지경이었다.

그냥도 귀여웠던 드워프 꼬마들이 귀여움을 백 프로 회복하자. 사제들의 얼굴에도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치료가 끝나자마자 바로 마리나에게 부탁했다.

“마리나 이분들 모시고 여관에 가서 목욕 깨끗하게 하고, 장모 아니, 한나 아주머니께 따듯하고 곱게 간 수프를 끓여서 먹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리젤다에게 방은 다섯 분이 쉴 수 있게, 침대 네 개짜리 방으로 준비해드리라고 하고. 돈은 받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알았지? 아 참, 옷도 세탁해드리고. 가운이 좀 길 것 같긴 한데, 잘 접어서 입을 수 있게 해드리라고 말해줘.”

“예, 러셀 씨.”

마리나가 마차를 끌고 여관으로 떠나려 할 때 나는 노르딕 씨를 마차에서 끌어 내렸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 내려온 노르딕 씨. 아이들도 아버지와 떨어지자 놀란 표정.

“먼저들 가서 씻고 먹을 것들 먹고 계세요. 사제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곧 따라갈 테니.”

떨어진다는 사실에 노르딕 씨 가족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트라 씨가 나서서 그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 땅, 이 마을에 들어온 이상. 아무도 당신들을 어쩌지 못합니다. 괜찮습니다.”

분위기나 눈빛 읽어내는 재주가 있으신 분이니 아마도 그들의 생각을 살짝 읽어낸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사제의 말이 보증수표라도 되는 듯 노르딕 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드워프 들도 조금 안심된 표정이 되었고, 곧 그들을 태운 마차가 여관 쪽으로 사라졌다.

내가 노르딕 씨를 이곳에 내리게 한 이유.

그것은 마을에 도착한 노르딕 씨에게 불안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올. 마법의 사이다 한잔을 대접하기 위함이었다.

“러셀 씨 무슨 하실 말씀이 있는 건가요?”

시트라 씨가 내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어오셨다.

역시 이단 심문관.

나는 다소 심각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그, 조금 의심스러운 게 있어서 말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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