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200. 대장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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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염의 남자 드워프는 노드릭 스톤스틸. 여자는 그리나 프론즈폴.
둘 다 동부 출신 드워프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확신했다. 이건 진짜(?) 드워프가 확실하다고.
맙소사! 스톤스틸, 브론즈폴! 드워프 냄새 뿜뿜 나는 가문 명이 아닌가? 뭔가 드워프 이야기가 내 입에서 나오자마자 적당한 타이밍에 아주 적절하게, 딱 아주 작위적 냄새가 풀풀 풍기게 드워프를 보내준 것이. 뭔가 신들의 주작 같은 냄새를 피어오르게 하지만.
이 정도 도움은 환영이다.
‘드워프의 신 딱 기억해두겠어!’
나는 남자 드워프에게 물었다.
“드워프 종족 신이 누구시죠?”
“불과 망치의 여신 발로나 님이시네. 그건 왜?”
“발로나님이 이렇게 저희를 만나게 해주셨으니 감사를 드려야죠!”
내 말에 드워프 가족들의 눈동자에 미친놈을 보는듯한 작은 경계심이 피어올랐으나. 아무리 봐도 며칠은 굶은 것 같은 그들에게, 빵과 물 탄 포도주 육포를 건네자 그들의 경계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경계심 풀기에는 먹을 것만 한 것이 없다니까?’
그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난쟁이 도둑놈에서 VIP 손님이 되신 드워프 들을 태우고 웜 포트로 출발했다. 그리고 웜 포트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노드릭 씨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나에게 석궁을 들이댄 이유라든지. 자신들이 쫓기는 이유 같은 것들 말이다…
이쪽 세계에서 엘프가 그 미색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성노예로 인기가 높은 종족이라면, 드워프는 일종의 기술적, 군사적 의미로 가치가 높은 노예이다.
강한 힘과 정밀한 손놀림을 가진 드워프들은 같은 물건을 제작해도 다른 종족들보다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기에 데리고 있기만 하면, 물품을 쭉쭉 뽑아내서 팔아치울 수 있는 것.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이다.
더군다나 마법이 걸린 무기는 정말 희귀하니, 돈을 가지고 구할 수 있는 물건 중에 드워프제 물건이야말로 제일 고급품.
그러니 엘프와 마찬가지로 드워프는 노예 상인들이 노리는 주요 품목 중 하나인 것이다.
쫓기고 있다는 노드릭 씨의 신분도 그러니 당연히 노망 노예.
“나는 젊을 때 잡혀 왔는데, 혼기가 차니까. 영주 새끼가 나를 통해 마치 짐승처럼, 새끼를 쳐서 팔아먹는다며. 아내를 어디서 잡아다 주더군.”
씁쓸한 목소리의 노드릭 씨.
“뭐 아내도 도망치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나에게 마음을 허락해 주었지.”
노드릭 씨가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이 보였다.
‘스토리가 아주 그냥 개 같네?’
드워프를 잡아다 노예로 부려 먹으면서, 결혼까지 시켜 새끼를 치게 한 후. 팔아먹거나 숫자를 늘린다? 어느 영주 새끼인지 얼굴 좀 보고 싶었다.
이시릴엘에게 죽은 남작 놈과 거의 동급인 놈들이 이 세계에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드릭 씨의 이야기는 분노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노드릭 씨는 노예가 된 후, 한평생 영주의 작은 광산 안에서 살았다고 했다. 잡힌 후 태양을 본 것은, 도망친 지금이 처음. 그의 자식들은 작은 광산에서 태어나 외부로 처음 나와보는 것이라고 해다. 태양 아래서 걸은 것도 이번이 처음.
그와 그의 가족들의 피부가 새빨갛게 탄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처음 노출된 피부가 빛에 과민 반응을 일으킨 것.
엘프들이 노예로 잡히면 침대 위에서 생활하고 침대 위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소리가 있듯이, 드워프 노예들은 잡히면 대장간에서 생활하고 대장간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아주 씨게 넘었다.
노드릭 씨의 말에 마리나는 할 말을 잃고, 미우 씨나 다른 수인씨도 예전 자신들의 처지가 생각났는지 눈물을 훌쩍이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노예이긴 했지만. 가족도 생기고 나름으로 열심히 일했네. 고단하긴 했지만, 가족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네. 첫째 딸의 결혼 적령기가 오니. 영주 새끼가 어딘가에 팔아먹는다고 하지 않겠나?”
‘큰딸이라면 그리나 씨 옆에 앉은 꼬꼬마 같은데, 쟤가 적령기라고?’
눈앞에 있는 것은 10대 후반 정도의 여자아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드워프들은 결혼을 일찍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자. 노드릭 씨가 웃으며 말했다.
“드워프는 노화가 느리네.”
“뭐 아무튼 그래서 딸을 팔려 가게 할 수는 없어서, 광산을 무너트려 혼란한 틈에 도망쳐 나온 것이네, 그리고 모험가였던 아내의 기억을 더듬어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는데, 메마른 평원에서 바람에 날려오는 이걸 발견했네, 처음에는 불쏘시개로 쓰려고 했는데….”
그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서 꺼낸 것은 포고문 한 장.
그렇다. 우리 대 늪지가 엘프와 이종족 보호구역이 지정되었다는 포고문.
종이와 양피지가 비싸고 인장 찍힌 포고문을 허술하게 관리할 리 없으니. 이걸 평원 한가운데서 발견했다는 것은 로또 맞을 확률보다 낮을 테지만, 아무튼 그것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발!”
“발?”
“발로나님 만세! 발로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아주 기적 같은 일이 아닙니까?”
“그, 그렇긴 한데…”
내 환호에 떨떠름한 노르딕 씨였다.
당연히 평생 동굴 속에서 살았으니 여신에 대한 찬양이 나올 리 없겠지. 나도 15년 용병으로 굴러서 그런지 신은 꺼리니까.
하지만, 나는 그를 열렬한 발로나 신도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고난과 슬픔의 강을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당도하였으니, 이제 그에게는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만 그가 마을에서 평생 살지 않겠나?’
마을에 드워프가 운영하는 대장간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노르딕 씨를 위한 천국을 만들어줄 것을 다짐하며, 발로나라는 여신의 첫인상을 최상으로 조정했다.
그렇게 노드릭 씨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저 멀리 초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소가 드워프들의 시야에 들어오자, 노드릭 씨와 그의 가족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애초에 이곳까지 한번 왔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탁 트인 벌판. 초소를 피해서 남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거나 빙 돌아서 평야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아이까지 데리고 강을 건널 수도 없고, 석궁 한 자루로 대늪지 근처 평야를 가로지를 수도 없으니. 길에서 우리를 협박해 마차에 올라타려 한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마차에!
‘발로나님. 만세! 만세! 만만세!’
다른 신들에 비하면 진짜 발로나 이분은 칭송받아 마땅한 분이었다. 우연과 필연을 엮어내서 이렇게 시기적절하고 완벽하게 드워프가 하나도 아니고 한 가족을 내 품에 쏙. 더군다나 아내가 아닌 관계로!
아마 이세계 유일한 공돌이들인 드워프의 종족 신이라 그런가? 이공과 계열의 신의 철저함에 감동하며 나는 노르딕 씨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앉아 계세요.”
“하, 하지만 경비병들이?”
“괜찮습니다. 노르딕 씨. 발로나 여신을 믿으세요!”
두려움에 찬 눈의 드워프들. 처음 만난 사람의 선의를 받긴 했지만, 믿기는 힘들겠지. 노드릭 씨가 석궁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긴 갑자기 얻어탄 마차 주인이 미친놈으로 보일 테니…
그런데 나는 이 들뜬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노르딕 씨와 가족들은 두려움에 떨고 나는 기쁨에 떠는 사이.
우리는 초소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마리나가 마차를 멈추자 노드릭 씨의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무척이나 긴장한 모습.
“엇 러셀님. 안녕하십니까? 돌아가십니까?”
이틀 전 기사에게 뒤통수를 처맞아 뇌진탕이 걱정되었던 병사가 빠릿빠릿하게 인사를 해오자. 한쪽 막사가 열리며 병사의 인사 소리에 놀란 기사 모튼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하하 러셀님 돌아가십니까?”
“모튼님 고생하시네요.”
대낮의 막사는 더운지 그의 얼굴은 열기에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더우신가 보네요?”
“아무래도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이라서…”
“제가 시원한 맥주 한 통 내려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죠?”
나의 맥주라는 말에 경계를 서던 병사와 기사의 눈이 촉촉하게 물들고 있었다.
“아니, 설마 저희를 위해서?”
“하하 저희를 위해서 고생해주실 텐데 뭐 당연하죠.”
모튼과 병사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나는 수인들의 도움을 받아. 큰 통의 맥주 한 개를 마차 아래로 내려주고 금화 한 개를 꺼내 모튼의 손에 쥐여줬다.
모튼이 눈이 자기 손바닥을 보고 경악으로 물들었다.
경계병들에게 동전 한두 푼 뇌물로 주는 것이야,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금화 한 개를 한 번에 먹인다? 그냥 받기에는 금액이 너무 큰 것이었다.
“어! 이, 이건?”
“앞으로 혹시라도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이종족 중에, 도망 노예나 농노들이 있으면, 안전하게 마을까지 부탁 좀 드립니다.”
모튼이 자기 손에 쥐어진 금화와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아하! 마차에 타신 친구(?)분들처럼, 다른 친구분들이 도착하면. 안전하게 마을로 모셔달라는 말씀이시군요?”
말이 통하는 친구.
“그렇죠! 역시나 유능한 기사님 다우십니다!”
내가 그를 칭찬하자. 걱정하지 말라는 그의 믿음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걱정하지 마십쇼. 교대 병력도 제가 철저하게 교육해서, 친구분들을 안전하고 철저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신이 난 모튼과 병사들을 뒤로하고 마차가 출발했다.
마차 안에서 우리를 살펴보고 있던 노르딕 씨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그, 누구신지? 제가 높은 분을 몰라뵙고 실수를 한 건 아닌지?”
공손해진 노르딕 씨.
나는 그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발로나님이 보낸 것으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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