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199. 대장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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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직 저녁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길드 내부는 조금 한가한 상태였다.
테이블이 절반 정도 차 있었으나 맥주를 홀짝이거나 식사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애매한 시간이긴 했다.
용병들은 보통 점심이 될 무렵 기어 나와 식사하는 편이니. 저녁은 해가 지고 나서야 먹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한가하다는 것은 주방도 한가하다는 것.
눈인사를 해오는 몇 명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해주고 빠르게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문이 열리면 저기 애니가 있다.
뭐 아내들에게 애니를 아내로 받아줬다고 말했지만, 내가 한 건 정말 말을 전달한 것일 뿐. 애니는 자신의 선행으로 자기가 보답받았다.
발레리나 리젤다, 이실리엘도 빨래나 식사 준비를 돕긴 하지만, 그건 정말 돕는 수준. 애니가 그간 그렇게나 일을 도왔다니. 그날 눈물 속에 잡아준 거친 손이 그런 것이었다니.
새삼 고마운 마음이 솟았다.
주방으로 이어지는 낡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아마 카운터에서 누군가 날 확인했는지 다들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러셀 씨! 어서 오세요.”
미우 씨와 먼저 인사를 하고, 다른 수인 하나를 거쳐 앞으로 가니. 저쪽 뒤에서 솥을 휘젓고 있는 애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딱히 바쁜 시간도 아니고 솥 아래 피운 불도 약하니 눌어붙을 염려도 없는데, 저렇게 솥을 휘젓고 있는 것을 보니. 부끄러운 듯.
반가운 목소리로 애니를 불렀다.
“애니?”
애니의 몸이 움찔했으나 마치 듣지 못했다는 듯 솥을 휘젓는 것이 보인다.
“애니?”
거듭 그녀를 부르자 애니는 뭔가 결심했는지 손을 꾹 움켜쥐고 뒤를 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주, 주인님 오, 오셨어요?”
애니의 얼굴에 반가움과 기쁨, 부끄러움, 실망감 같은 감정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짧은 시간에 저렇게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니.
‘애니는 전생의 변검술사로도 되는 것인가?’
기쁨은 나를 만났다는 것 때문일 것이고, 부끄러움은 며칠 전 밤의 흑역사, 실망감은 아마 좋은 소식을 아직 전해주지 못해서일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애니에게 엄하게 말했다.
“애니 남편이 왔으면 달려와서 안겨야지, 부엌에서 대체 뭘 하고 있어?”
그러자 애니의 얼굴에서 놀람과 당혹감, 기쁨이 다시 재빠르게 변화하더니. 놀란 그녀의 손에서 국자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애니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어? 어떻게?”
그녀는 내 말속에 담긴 뜻을 이해한 듯했다. 품속에서 울리는 믿을 수 없다는 애니의 목소리.
“애니가 뿌린 씨앗을 거둔 것뿐이야.”
“네?”
옛날 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고난으로 뿌리면 기쁨으로 거둔다더니. 고난으로 뿌렸던 애니의 눈물이, 기쁨의 결실이 되어서 애니에게 찾아온 것.
아내들에게 선행 마일리지를 적립했다가 한 번에 되찾은 애니는 내 품속에서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다.
‘나는 별로 한 게 없으니. 뭐 따지면 행복 배달부쯤 되나?’
다음날.
나는 애니의 배웅을 받으며 그란 폴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주인님, 또 가면… 열흘인가요?”
아쉬운 듯한 애니의 목소리. 애니의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분신 능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둘이 방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애니의 부담스러운 주인님이라는 말에 그녀의 의향을 물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이제 주인님 그만하면 안 돼?”
“아뇨. 밖에서 주인님은 뛰어난 분이니, 저부터 높여드려야 해요.”
공과 사를 구분해서 밖에서는 사장님이니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나를 높은 분 취급해주겠다는 건가?
기특한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애니야. 네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어. 남자는 자기 여자한테 밖에서 주인님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침대 위에서 듣고 싶은 거란다?’
나의 음습한 욕망은 나중에 애니를 꼬셔서 채우기로 하고 나는 그녀에게 가족들에게는 언제 말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래, 알았어. 고집은…, 그건 그렇고. 음… 다음에 올 때는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그, 자, 장모님께 인사드리는 것도 생각해보자.”
“네?! 아, 알겠습니다. 주, 주인님.”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 애니.
혼자 한나 아주머니, 아니 장모님께 애니와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해 드리기는 좀 뻘쭘해서, 애니를 휴가 명목으로 내부로 돌린 후. 같이 인사를 하자는 권유였다.
어제도 출발 전에 장모님을 부엌에서 마주했는데 정말 난감했다. 그러니 하루빨리 말씀을 들야 했다.
‘애니라도 옆에 있으면 괜찮겠지?’
나는 장모님께 인사하러 가자는 말에 부끄러워하는 애니를 품 안에 넣고 입을 맞춰준 후. 주방 화덕의 불꽃보다 더 새빨개진 애니를 뒤로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마을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장모님이랑 처남 처제들 계속 잡일을 시킬 수도 없고…. 새로 직원을 더 뽑아야 하나?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계속 생각났다.
이쪽에서는 애들이 집안일 돕는 건 당연한 거긴 한데, 또 가족이 되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러셀 씨 어제 말씀하신 건 다 준비되었습니다.”
생각에 빠져있던 나에게 마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애니와 꽁냥거리는 동안 마리나가 어제와 오늘 필요한 물품을 전부 구매해 두었기에, 우리가 빠르게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미우 씨와 다른 개수인 한 명을 태우고, 물건이 가득 찬 마차를 끌고 남문을 지나 성 밖으로 나섰다.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 늘어선 민가들을 지나니 곧 정신이 아득해지는 좁다란 길과 풀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마의 구간. 전생에도 터널이나 고속도로 운전은 너무 졸려서 젬병이었는데. 나는 계속 반복되는 풀밭 구간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와 같이 졸음과 싸워야 했다.
마차가 풀밭을 가르며 웜 포트를 향하고, 나는 마리나의 옆자리에서 꾸벅꾸벅 조는 상태.
그때 졸음 가득한 귓가에 들리는 마리나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
“러셀님 졸리면 뒤에서 주무세요. 그러다 굴러떨어지겠어요.”
마리나의 말에 뒤쪽에서 미우 씨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암… 그럴까?”
마차 짐칸으로 넘어가 잠이나 잘까 하며 기지개를 켜는데, 선두의 말이 무엇인가에 놀랐는지 발을 번쩍 들고 울부짖었다.
“히이이잉!”
기지개를 켜다 놀라 마차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한 나는 간신히 마차에 매달렸다. 그때 놀란 우리의 귓가에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전부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어!”
‘로리엘이나 수호자를 안 데리고 왔더니 이런 일이 일어나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또 어느 정신 나간 범죄자가 죽음을 재촉하나 싶어 앞을 보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자. 짤막한 키의 검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키 작은 남자 하나가, 어느새 마차의 조수석으로 다가와 내 옆구리에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뭐지 이 시츄에이션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남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자, 내 입에서는 놀란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 며칠 고민하고 원하던 그것이 야생으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야생의 드워프가 등장했다!’
“어? 드워프?”
요 며칠 발레리와 드워프 생각만 하다가 드워프가 나오니 깜짝 놀라 입 밖으로 나온 말. 그리고 어쩜, 이 타이밍에 야생의 드워프가 시기적절하게 등장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내 말이 기분이 나빴던지 드워프 남자가 날카롭게 물어왔다.
“드워프 처음 봐?”
“하…?”
드워프의 날카로운 말에 들려온 것은 코웃음.
마리나가 코웃음을 치고 뒤에서 미우 씨나 수인 씨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얠 어떻게 교육하나 하는 표정을 짓기에, 내가 일단 손짓과 눈빛으로 다른 사람들을 제지 시켰다.
마리나야 은 등급 최상급 정도는 되고, 수인씨들도 일반적인 인간보다는 힘이나 민첩성이 남다르니. 웬 드워프 한 마리가 나타나 석궁들 들이대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
내가 그녀들을 제지한 이유는 이게 난쟁이 도둑놈인지, 내가 필요한 드워프인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 무슨 일이시죠?”
내가 드워프에게 제법 공손하게 물었다. 석궁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혹시 모르니 좋은 첫인상을 남기려고 말이다.
하지만 내 질문에 드워프는 질문으로 응수했다.
“너희들 보호구역 안으로 가는 거냐?”
“예? 아 그렇죠? 거기 안에 마을에 사니까?”
“그, 그래?”
우리가 안쪽의 마을에 산다니 그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깐 주저하더니 아까보다 다소 경계심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를 좀 태워줘야겠어. 다들 이리 와!”
“예?”
남자의 외침에 풀숲에서 기어 나온 것은 거지꼴의 드워프 네 마리. 아니 일가족. 그러고 보니 내 앞의 드워프의 몸에서도 고약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긴 기간 동안 노숙을 한 것 같은 모양새.
다섯으로 이루어진 일가족 같았다. 어린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뭐냐? 이 생물은? 그렇지 않아도 애들은 작은데 다리까지 짧으니. 이건 너무나도 귀여웠다.
그리고 옆의 남자를 보니 이게 커서 저렇게 된다니 믿어 지지가 않았다.
전생의 닥스훈트를 보는 기분으로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보호구역 안으로만 들어갈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확실히 안쪽 마을에 산다니 부드러워진 드워프였다. 그리고 그때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 드워프가 남자를 나무라며 말했다.
“여보! 너무 난폭하게 굴지 마세요!”
“아, 알았다고…. 해치지 않을 테니 부탁한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줘.”
남자가 석궁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부인도 간절하게 부탁했다.
“부탁드려요.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쫓기고 있어요.”
“예?”
용서할 수 없는 문제였다. 누가 내 드워프에 손을 대려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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