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198. 대장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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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내들과 애니의 일로 정신이 없을 때.
중앙과 북부, 남부의 국가들에 같은 날 이상한 포고문이 나붙었다.
성국과 북부 다섯 왕국, 남부의 아베느 왕국, 그리고 수많은 국가의 인장이 찍힌 포고문.
남부 그란 폴 이남의 대 늪지 지역을 엘프 및 이종족 보호구역으로 선포한다. 해당 지역에 허락 없이 침입하거나 이종족에게 위해를 끼치는 자는 성국, 북부의 다섯 왕국, 남부의 아베느 왕국의 준엄한 심판이 임할 것이다.
해당 지역을 방문하고자 하는 자는 남부 그란 폴의 모험가 길드에서 통행증을 반드시 발급받을 것.
며칠 후 국왕의 밀사를 통해 나에게도 포고문이 도착했고 나는 그제야 국왕과의 만남의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든 순간 나에게 찾아든 감정은 기쁨도 만족감도 아닌 책임감이었다.
남부 늪지대 인근이 엘프 및 이종족 보호구역으로 묶인 후, 나에게는 이제 이곳을 가꾸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이제 나와 아내들 그리고 나의 자식들이 살아갈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시골 마을로도 매우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만, 땅이 있고 사람이 있으니 보다 나은 삶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군다나 나의 자식들이 살아갈 땅이니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게 노력하고 싶은 것.
뭐 그동안 유유자적 은퇴 후 삶을 계획했지만 먹여 살릴 식구도 좀 늘어나고, 책임질 사람도 늘어날 테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방에서 발레리와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발레리 마을이 발전하려면 뭐가 필요할 것 같아?”
“음…. 글쎄요? 식량과 인구?”
풍유의 사제님의 베이직 한 의견. 나는 발레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이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선 우리 마을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리적 이유가 크다.
근처에 있는 큰 도시인 그란 폴. 거대한 도시가 있으면, 주변의 위성도시나 마을도 당연히 발전하겠지만 우리 마을은 그 특이한 위치로 인하여 해당 사항이 없다.
그렇다. 대늪지. 위험도가 높은 대늪지와 거대 도시 사이에 끼어있으니, 가끔 들리는 모험가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이 찾기에는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인상이 강한 것이다.
늪지대에 퍼져있는 몬스터들이 우리 마을 살림을 풍족하게 하는 효자이면서 반대로 마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험한 이곳에 사람들이 올 이유도 없고 어디선가 흘러드는 갈곳 잃은 유민들만이 인구증가로 이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통 마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식량, 인구, 기술.
식량은 당장은 문제가 없었다. 우리 마을은 풍요한 남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기에 곡식이나 채소 수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과일은 아직 과일나무가 없어서 재배를 못 하고 있지만, 에밀과 평원 엘프 친구들이 과일나무 전문가라니 천천히 시도하면 될 것이다. 경작지가 더 필요하면 강 근처를 개간하면 될 일이고.
하지만 인구는 우리 마을의 아마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이 마을에 자리를 잡고 자연적으로 늘어난 인구는 거의 없다. 엘프들과 수인씨들이 우리의 마을 인구를 급성장하게 해주었지만, 그것이 전부.
아마도 자연증가보다 도적 떼나 문어에 희생당해 줄어든 주민이 더 많을 것이다.
거기에 남작령에서 피난 왔던 인원들은 모두 돌아갔고,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평원 엘프들과의 문제로 마을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힘드니, 당분간 급격한 인구증가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니 우리에게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식량은 충분한데 인구의 자연증가는 어려우니, 결국 유입 인원을 늘려야 하는데. 인구를 유입시키는 데는 현재 상황에서 기술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그란 폴에서 왔다 갔다 하거나, 아예 우리 마을에 정착할 그런 돈을 벌게 해줄 기술 말이다.
나의 전투식량 생산이 엘프들의 주거지와 여관 근처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을 통해 마을 사람들도 푼돈을 벌고 있지만 딱 그 정도. 아직은 대규모 인원이 필요할 정도의 대량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 우리 마을이 닥친 상황에서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정작 우리 마을에는 가장 중요한 기술 그게 없었다.
하지만 급하다고 전생의 게임으로 치자면 대뜸 공장이나 연구 시설부터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 모든 일은 차근차근 진행해야 하니.
판타지 세계 상공업의 핵심 기본 테크.
대장간!
그래 바로 대장간이 필요했다. 농기구부터 무기까지 모든 것을 만들고 수리할 수 있는 판타지의 대명사 대장간. 마을에 딱 하나 있으면 뭔가 든든한 느낌을 주는 그 건물 말이다.
‘대장간 같은 거 하나만 딱 생기면 좋은데.’
그리고 대장간 그리고 판타지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그것.
드워프 (Dwarf).
그래! 드워프! 그란 폴에도 드워프 모험가들이 있고. 은 등급 일위였다가 게 밥이 된 호크의 파티에도 드워프 여자가 하나 있지만, 그런 애들은 드워프로 치지 않는다.
응당 드워프라는 호칭을 받으려면 철과 망치와 모루, 불꽃이 기본이니 말이다.
드워프란 강철과 불꽃이 그들의 상장이고 그것이 없다면 그것은 드워프가 아닌 것이다! 아무렴.
나는 한참 고민 끝에 발레리의 다리 위에 누워 말했다.
“어디서 드워프 하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좋겠는데.”
“드워프요?”
“응, 대장간이 있었으면 하거든 마을에.”
“드워프는 광석이 풍부한 동부에나 많잖아요?”
“그래, 그렇지.”
이 세계의 드워프들도 불과 광석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화산지대가 있는 동부에 많이 몰려 산다. 동부는 특이한 광석이 풍부하고 풀무 온도가 식어버리지 않는 용암지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발레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드워프는 그란 폴에도 가끔 보이던데….”
어허, 나의 아내가 사도에 물들려 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다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아주었다.
“발레리, 잘 들어. 드워프라는 건 망치와 모루, 광석과 불꽃이 없으면 그건 드워프가 아니야. 알았어?”
“네? 그, 그럼, 그건 뭔가요?”
“그건, 그냥 난쟁이지.”
“푸훗…. 뭐에요! 그게!”
‘아니, 중대한 사실을 알려줬는데! 진리 앞에서 웃다니. 엄한 벌을 내려야겠구나!’
발레리와 한참 장난을 치다가 잠들기 전까지 대장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 단위로 이주할 대장장이를 길드를 통해 알아보는 것으로 결정하긴 했는데, 그래도 못 구하면 이실리엘이랑 수도 구경을 한번 해보는 것도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냥 뭐 다른 뜻은 없다. 이실리엘에게 수도도 구경시켜주고 왕을 찾아가서 마을에 참 뭐가 필요한데…. 그 철 땅땅 두드리고 그러는 게 필요한데… 어디서 구할 수가 없다고 그냥 하소연만 조금 하고 오려고 말이다.
정말 아무 사심 없이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나는 길드 식당에 배달할 보급품을 싣고 애니에게로 향했다. 대장장이도 구해달라고 의뢰도 넣고, 애니에게 기쁜 소식 전해줘야 했다.
‘얼마나 길드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을까?’
오늘따라 무릎까지 자란 풀들이 그, 긴 터널 같이 느껴지던 풀들이 왜 이렇게 아름답게 보일까? 나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그란 폴로 마차를 몰았다.
그렇게 한참 한 삼 분의 이쯤 왔다고 생각할 때였다, 길 앞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몇 개의 군용 막사와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정지!”
길을 막은 병사들이 마차를 멈춰 세웠다.
내가 몰고 가는 마차에는 교대할 수인 둘과 보급품. 호위인 마리나가 타고 있었기에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기에 나는 일단 마차를 세웠다.
‘무슨 검문이지?’
갑작스러운 검문에 당황했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아마 보호구역이 지정되었으니, 명목상 오가는 길목에 병력을 배치해서 지나는 사람들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국왕의 서비스가 좋았다. 이렇게 길을 맡아주면 대규모로 이쪽에서 들어오는 인원들은 충분히 한번 걸러질 것이다.
“어디서 오늘 길이요?”
아직 내 얼굴을 모르는지 마차를 멈춰 세운 병사가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아, 웜 포트에서…”
병사의 질문에 그에게 어디서 왔는지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기사가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새끼야! 러셀 님이잖아! 어? 안다며? 얼굴 안다며! 이 새끼! 이 새끼!”
빡 빠악
병사의 뒤통수를 뇌진탕이 올 정도로 후려친 기사가 공손하게 인사를 해왔다.
“아이 수고 하십니다. 러셀님!”
“아! 저번에!”
“아, 기억하시는군요. 기사 모튼 입니다!”
시트라 씨와 범죄자 넘기러 갔을 때 만났던 기사였다. 순찰대 소속인 거 같았는데 아마도 임시 초소장 같은 직책이라도 맡은 것 같았다.
“아하하… 그 여긴 어쩐 일로?”
“보호구역 안에 함부로 수상한 녀석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임시 초소를 세웠거든요. 앞으로는 길을 통해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저희가 하나하나 확인할 예정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앞으로 지나다닐 때 자주 뵙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휴 부탁이라뇨.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전 부기사단장 영감이 얼마나 난리를 치던지… 바쁘실 텐데,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관계를 위해서 되돌아올 때 맥주라도 좀 사다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와 헤어진 후. 우리는 오후가 늦어서야, 목표로 했던 길드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애니야! 오빠 왔다!’
저 안에서 애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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