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192. 위탁 운영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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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많이 오는 식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속도이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음식을 낼 수 있느냐. 얼마나 빠르게 테이블을 치울 수 있느냐.
물론 맛은 기본이니 그걸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전생에서 많은 음식을 취급하는 ㅇㅇ천국 같은 음식점들은 식당 내부에서 항상 물을 끓이고 있었다. 끓고 있는 물을 바로 떠 라면을 끓이고, 준비된 음식 재료에 끓고 있는 물을 넣어 바로바로 조리하는 것.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길드의 식당도 마찬가지로 속도가 중요했다.
그렇기에 나는 길드 식당에서 제공하는 스튜와 빵의 기본 차림을, 큰 냄비에 끓여놓은 스튜를 넓적한 대접에 떠서, 크루통처럼 잘게 자른 빵을 위에 올려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단 이러면 큰 그릇 하나와 숟가락만으로 식사할 수 있으니 설거지 시간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주문을 많이 받아도 바로바로 낼 수 있으니 아주 좋다.
끓여놓은 스튜라고 해서 영원의 스튜처럼 무슨 씨간장 만들 듯이 끓이고 또 끓이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끓여서 저녁까지 소비하고 혹시라도 남는다면 길드 직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로 했다.
“애니 잘 봐, 재료 대부분은 웜 포트에서 손질해서 보내줄 거야. 그러니까 포대에 든 마른 채소들을 전부 고기가 끓고 있는 냄비에 그대로 집어넣고, 웜 포트에서 보내준 조린 토마토소스를 한 통 전부 집어넣는 거야. 그리고 여기에 곡물가루를 살살 돌려가며 넣는 거야. 절대 곡물가루는 한꺼번에 넣으면 안 돼. 안에서 풀어지지 않고 뭉쳐버릴 수 있으니까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애니가 집중하는 모습으로 설명을 들으며 물었다.
“그런데 주인님, 버터나 버터를 이용한 루는 넣지 않나요?”
역시 수석제자. 그래 그런 것이 궁금해야 정상인 것이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버터나 루는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넣는 건데, 길드같이 많은 사람이 오가는 데다가 그렇게 해버리면, 버터는 아무래도 비싸니 재료비가 많이 들거든. 여관이야 뭐 원상 유지만 하면 되는 거고, 애초에 돈 벌 생각이 별로 없게 운영하고 있었으니 상관없지만, 여기는 아니거든.”
“아, 그렇군요.”
이해했다는 애니의 대답.
“재료의 질을 조금 낮추는 거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발레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마른 채소를 사용하는 것도 웜 포트에서 가져오다 시들거나 하는 걸 피하고, 우기라든지 기타 사정으로 재료를 배달할 수 없을 때도 비교적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지”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남부는 잉여 농산물이 제법 많이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몬스터와 교통의 문제로 가치가 낮은 농산물을 내다 팔기는 힘이 들고 결국 제때 먹지 못하는 농산물은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
과일 같은 가공성이 뛰어난 것들은, 술을 만들거나 할 수도 있지만. 채소는 아까우면 말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그러니 채소는 싸지만 말린 채소는 더더욱 싸다!
사시사철 신선한 채소가 나는데 말린 채소가 팔릴 리가 없는 것이다. 혹시 몰라 기근을 대비해 농가라면 어느 집이라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는 정도랄까?
“그래서 곡물가루에 대체품인 견과류 가루를 추가 한 거고, 처음에 고기를 끓이기 전에 냄비에 볶아서 기름을 충분히 내라는 것도 그런 이유야.”
“알겠습니다.”
애니가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커다란 냄비에서 스튜가 끓어오르며 좋은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라도 밑바닥이 늘어 붙지 않도록 이마에 땀을 훔치며 냄비를 휘젓는 애니를 뒤로하고 길드 홀로 나왔다.
용병과 모험가들은 항의 후에 길드에서 식사하지 않고 있다고 했으니,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람잡이. 우리 바람잡이들이 길드 홀의 테이블 한가운데서 아까부터 식사를 기다리고 있기에 상태를 확인하러 나온 것이다.
부엌에서 나오는 나를 보자 기쁨으로 물드는 얼굴들.
오늘의 바람잡이는 릴리아나 누님을 비롯한 길드의 접수원들. 어제 벌레 잡느라 고생했으니 내가 약간 늦은 브런치를 대접하겠다고 한 것.
“러셀, 아직 멀었어?”
릴리아나 누님이 배고픈 표정으로 재촉했다.
“예, 그럼 네 분 식사 나갑니다.”
누님에게 대답하며 슬쩍 길드 홀 내부를 살펴보니, 몇몇 테이블에 이미 용병 몇 명이 앉아 혹시 새로 들어오는 의뢰는 없을까 자리를 잡은 상태.
나는 재빠르게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 애니에게 말했다.
“애니, 네 그릇 준비해줘.”
“네, 알겠습니다!”
리젤다가 건네주는 대접에 애니가 스튜를 듬뿍 퍼담고, 그것이 발레리에게 전해지면 발레리가 잘게 자른 빵을 위에 올린다. 그리고 그것이 서빙 테이블에 오르면, 내가 쟁반에 담아서 밖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적절한 분업. 하지만 오늘은 사람이 많은데 앞으로는 애니 혼자 해야 한다.
‘어? 생각해보니 설거지도 해야 하네?’
아뿔싸 주방 인원이 더 필요했다. 주방 보조 인원을 깜빡하다니! 하지만 숙소 인원 제한으로 웜 포트에서 사람을 더 데려오기는 힘들고, 주방 보조와 설거지할 사람은 이곳에서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일단 보조 인원은 밖의 릴리아난 누님께 부탁하기로 하고 스튜를 먼저 내가기로 했다.
고소한 향이 오르는 스튜에 올려진 잘린 빵 그리고 거기 푹 꽂힌 숟가락.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길드 접수원들 앞에 하나씩 대접을 놓아드리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아아아! 맛, 맛있게 보여요!”
“오우 러셀, 이건 또 신기한데?”
“빨리 먹어봐요. 언니!”
“자자 말들 그만하시고 일단 드셔보셔들.”
내가 웃으며 말하자 릴리아나 누님이 공치사를 시작하셨다.
“그래 너희들 내 덕뿐인 줄 알아라? 내가 왜 러셀의 음식이 맛있다고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츄르릅
츕
다들 한 숟가락씩 듬뿍 뜬 스튜를 입에 넣는 소리.
“우아아! 정말 맛있어요.”
“이것이 릴리아나 언니가 그렇게나 자랑하던 러셀님의 스튜라니!”
다들 스튜 한입에 행복한 표정이 떠올랐다. 뭐 아침에 밀이나 귀리죽 정도 먹고 출근할 테니. 고기가 듬뿍 들어가고 여러 가지 허브로 향과 맛을 끌어올린 스튜는 당연히 맛이 있겠지.
흐뭇한 얼굴로 넷을 바라보는데, 릴리아나 누님의 입에서는 조금 떨떠름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러셀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인데? 항상 먹던 그 맛이 아니야…”
‘하, 이분 외견은 좀비 같아 다 죽어가는 분이 입맛은 아직 살아계시네?’
누님의 불만에 설명을 시작했다.
“당연하죠. 여관에서 먹던 것은, 항상 버터 한 주먹이 들어가는데. 당연히 맛이 차이가 날 수밖에요.”
릴리아나 누님의 놀란 표정.
“버터를 한 주먹이나 넣는다고?”
아니, 이분 무슨 새삼스럽게 놀라셔. 맛이 좋고 나쁜 건 알지만, 재료가 뭔지는 맛을 구분 못하시나? 하긴 뭐 누님이 절대 미각도 아니고.
“누님, 누님이 드셨던 식사는 대부분 좋은 재료로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서 그렇게 맛이 있는 거예요. 근데 아무래도 많은 인원이 먹는 건 그렇게 버터를 넣으면 맛은 있겠지만. 길드에 돌아가는 수익이… 뭐 저는 상관없지만…”
“오우! 알았어! 무슨 말인지. 이것도 추, 충분해!”
수익 이야기가 나오니 바로 꼬리를 내리는 누님. 누님은 예산의 노예였다.
그리고 그때.
“저기…”
웬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부터 한쪽 테이블에서 앉아있던 용병무리 중 하나였다.
“그… 음식이 얼마요?”
“아, 동화 두 개입니다.”
웃고 있는 용병의 벌린 입에는 앞니 하나가 사라진 자리가 보이고 있었다.
“네 그릇만. 부탁합시다.”
개시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나도 이빨 빠진 남자와 같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앞니 없는 용병의 개시로 시작된 장사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느긋한 장사만 하다가 강남 한복판의 맛집에 던져진 느낌이랄까?
매일 정해진 식사만 준비하던 우리에게는 버거울 정도였다. 더군다나 용병 이 새끼들은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안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주문해대니. 잠시 쉬거나 앉을 시간도 없었던 것.
심지어 처음에 만들었던 양이 다 소비되고 저녁이 되기 전에 한 번 더 끓였는데도, 우리가 먹을 양을 제외하고는 남지 않을 정도로 오늘은 손님이 많았다.
아마 그간 길드 식당을 이용하지 않다가 맛있는 걸 판다는 말에 용병들이 계속 몰려든 여파가 큰 것 같았다.
몰려드는 인원에 릴리아나 누님이 수익을 그만큼 뽑는다는 말이 이해될 정도였다.
장사가 거의 다 끝나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간 하루를 되짚어 볼 때. 미우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어요. 러셀씨.”
소수인 미우 씨가 부엌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발레리와 리젤다는 점심때쯤 미우 씨와 수인 한 명을 인솔해온 마리나가 데리고 떠났다. 지금 길드 부엌에는 나와 애니 그리고 미우 씨와 다른 수인 한 명만 남아있는 상태.
오후 장사는 아내들을 다 집으로 보내고 앞으로 일할 애니와 수인들만의 본격적인 장사였다. 나는 보조로 설거지 같은 것만 거들고, 말이다.
오후에 처음 서빙에 투입된 수인들은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좀 애를 먹었다. 어디선가 계속 몰려드는 용병에 정신이 빠져 초반에 실수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처음이라 그런 것이고 차츰 나아질 것 같았다. 저녁때는 비교적 손발이 잘 맞아 보였고, 뭐 초반에도 손님이 엄청나게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정신이 없던 것이 컸었으니까.
장사가 끝나고 개선해야 할 주방 동선이나 서빙 동선을 생각하고 있는데. 각자 자기가 맡은 일들이 끝났는지, 미우 씨를 시작으로 직원들이 하나둘 주방으로 모여들었다.
진 빠진 모습으로 앉아있던 직원들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고, 마지막으로 내일 장사할 재료를 하지 오늘 모든 일이 끝이 났다.
‘와… 생각보다 힘들구나…’
나도 원래는 아내들이 되돌아갈 때 같이 되돌아가려 했지만, 내일 아침 도착하는 주방 보조도 확인하고 그들에게도 일을 가르치기 위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오늘 장사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애니만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애니에게 떠넘기고 떠날 수가 없었던 것.
그렇게 내일 일에 대해 생각하며,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방으로 돌아온 나를 맞이한 것은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다.
‘맙소사! 애니야 너 다 계획이 있었구나?’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 애니의 설계에 그대로 꼼짝없이 말려든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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