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191. 위탁 운영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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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 불로 태워 죽이는 것.
지금 그란 폴의 용병, 모험가 길드 뒷마당에서는 화형식이 한창이다.
타닥 타다닥
길드 뒷마당 한편, 거세게 피어오른 불길에서 솟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바짝 마른 나무들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길 속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애니, 발레리와 리젤다는 그 화형의 현장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영원히 사라졌겠죠?”
리젤다의 말에 애니와 발레리가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아닌 길드 뒷마당이 화형의 현장으로 변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길드에서 청소해둔 숙소와 부엌 때문이었다.
최악의 상태로 유지되던 길드의 부엌은 온갖 음식물과 곰팡이의 집합소였고 길드에서 청소를 한번 했음에도 상태가 장난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침대나 일부 가구들은 사용하라고 놔둔 것 같은데, 목재의 틈으로 숨어든 빈대와 이, 바퀴 같은 녀석들 그리고 지푸라기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또 다른 녀석들 때문에, 가구는 사용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이전 요리사 그 새끼는 직업이 요리사가 아니라 벌레 소환사? 그런 느낌인 듯했다. 얼마나 벌레들이 많은지 어찌할 수가 없는 상태.
그러니 깡그리 태울 수밖에 없는 것.
그렇다 길드 뒷마당의 때아닌 화형식은 범죄자가 아닌 벌레의 화형 현장이었다.
우리는 안에 있던 가구를 전부 다 길드 뒷마당으로 끌어내 쌓아 올리고 불을 놓았다. 가구를 옮길 때마다 떨어져 내리는 벌레에 여자들이 얼마나 기겁했던가?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도 한사람이 몸서리를 치면 다른 사람이 곧이어 몸서리를 치는 기현상이 연출되고 있었다.
‘소름도 전염이 되는구나?’
한참을 타오르는 불꽃을 다 같이 바라보던 우리는, 사그라든 불씨를 확인하고 물을 뿌려 잔불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 태웠으니 다시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젠장.’
어차피 전부 매입 비용에 포함할 것이지만, 하지 않아도 될 수고에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짜증을 낸다고 무엇하겠나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속 마음을 정리하고 아내들과 애니를 끌고 장인 거리로 향했다.
길드에서 나오면 바로 마을 광장이 보인다. 광장에는 원래 분수대가 국룰 이거늘. 이곳에는 분수대 대신 큰 공용 우물이 있다.
그 우물을 지나, 광장 한편. 주먹만 한 돌들이 깔린 제일 큰길로 들어서면, 그곳에 우리의 목적지 장인 길드가 있다. 여러 가지 장인 길드들을 나타내는 문장들이나 간판이 문 위마다 걸려있는 곳.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그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장인 거리 안쪽에 모여 도란도란 무엇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반갑게 아는 척을 해왔다.
“엇! 풍유의 사제님이시다!”
“누구라고? 풍유의 사제님? 헛! 진짜네?”
“사제님! 여긴 어쩐 일로?”
고개를 돌려보니 발레리가 새빨개진 얼굴,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홍보, 확실했구나?’
사람들은 내가 내년에 황금마차 운영할 때 일부 물품도 양보해주겠다고 했는데, 나보다 발레리를 더 기억하고 있었다.
확실히 내 아내지만 저 미드와 빨간 머리카락은 남자라면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으니….
우리는 그 무리와 반갑게 인사를 한 후, 그분들에게서 운 좋게 가구 장인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침대는 3개 부탁드려요.”
“아, 아니! 4개요.”
애니의 외침. 4개의 침대를 요구하는 애니를 바라보자. 애니가 내 시선에 대답하듯 말했다.
“주인님이 오시면 잠잘 곳도 필요하시니까요.”
“아, 맞네. 내 침대를 생각 안 했네. 예 침대 4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사각 테이블 다섯 개, 의자 네 개, 상자 세 개, 더 필요한 건 없어 애니?”
생각보다 애니는 꼼꼼했다. 나도 가끔 오갈 것이니 당연히 침대가 필요한데, 깜빡할 뻔한 것이다. 나중에 잠자리가 없어서, 근처 여관이나 길드 방을 빌리는 사태가 생기면 안 되니.
침대를 시작으로 애니는 꼼꼼하게 다른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통과 설거지통도요.”
“아 맞네, 물통 다섯 개와 설거지통으로 쓸. 큰 통 반으로 자른 것 두 개도요.”
“도마로 쓸 나무판도 필요합니다.”
“네 도마로 쓸 두꺼운 나무판도 두 개요.”
눈앞의 가구 장인은 우리의 주문이 늘어날 때마다 기분 좋은 미소가 입에 걸리고 있었다. 아까 가구를 태울 때 늘어 붙고 지저분한 주방용품들도 대부분 태워버려서 주문량이 많으니, 평소에 이런 큰 주문을 받을 일 없는 가구 장인은 당연히 신이 날 수밖에 없는 것.
“최대한 깨끗한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이곳에서는 새 가구를 주문하면 그때부터 만드니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말린 나무를 켜고 대패로 깎고 거친 면을 다듬는 데만 며칠씩 걸리는 것.
그렇기에 여기서 가구를 산다고 하면 대부분 중고. 그렇기에 문제없고 깨끗한 녀석으로 부탁을 한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풍유의 사제님이 직접 오셨다고, 바튼 녀석이 얼마나 잘해주라고 당부했는데요. 걱정하지 마십쇼.”
남자는 가슴을 두드리며 발레리를 바라보았다.
이거 자신을 믿으라는 제스처 같은데 발레리를 바라보며 가슴을 두드리니 뭔가 묘하게 기분이 언짢네? 성희롱 같고 말이야?
나는 조금 언짢은 기분으로 계약금 일부를 지불하고, 가구 장인의 공방을 나섰다. 그리고 천을 다루는 공방과 가죽공방, 대장간까지 거치고서야 오늘의 쇼핑을 끝낼 수 있었다.
조금 지친 걸음으로 길드 앞에 다다르자.
길드 입구에 책상을 꺼내놓고 앉은 릴리아나 누님과 다른 접수원들이 보였다. 여기저기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앉아서 마치 피난민처럼 일하는 모습.
릴리아나 누님과 다른 접수원들이 길드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길드 문 앞에서 앉아계신 이유는 길드 내부 소독 때문이다.
이곳은 외관이 석조 주택이라도 기둥과 바닥 천장 등은 목재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벌레가 창궐했다? 목재의 틈으로 벌레들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까 화형식 전. 그 참혹한 현장을 보여주자 길드 내부에 요즘 벌레가 많았는데, 그것 때문이었냐고 난리가 났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냐는 릴리아나 누님의 징징거림에 나는 최후의 방법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부 소독.
부엌과 숙소 내부를 비롯한 길드 내부 전체가 소독을 위해서 문을 다 닫고 쑥을 태워 연기를 내부에 꽉 채우는 중이었다. 전생의 한국 쑥과는 다르게 이곳의 쑥은 엄청 독하고 매운데, 잘못 먹으면 환각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태우는 향이 엄청나게 독해서 벌레들에게도 잘 듣는 편이다.
물론 너무 독해서 잘 쓰지 않는데 이렇게 많으면 어쩔 수 없다.
내가 장인 거리 쪽에서부터 걸어와 길드 입구에 얼굴을 비추자 내 얼굴을 확인한 릴리아나 누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으아아 러셀!”
“왜, 왜요 누님?”
“저, 저기!”
누님이 가리킨 곳을 보니 길드의 문틈 창틈으로 견디지 못한 온갖 벌레들이 꼬물거리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연기를 먹어서 기운이 없는지 기어 나오다가 뒤집히는 놈들도 보였다.
숨어있던 벌레들이 상당했던 모양.
“저거 저렇게 두면 나중에 연기 사라지고 다시 기어들어 갈 거 같은데?”
내 말에 릴리아나 누님과 다른 접수원들이 경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그럼 어떻게 해?”
“잡아야죠!”
“뭐어?!”
릴리아나 누님의 비명에 다른 접수원 아가씨들이 다 같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현실을 부정하듯 말이다.
‘뭐, 어쩌겠어? 잡아야지?’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현실을 직시시켜 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길드 앞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접수원 아가씨들의 째지는 비명이 광장으로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주! 죽어!”
“다! 죽어버리라고!”
“끼아악! 튀, 튀었어요! 액체가! 다리에!”
잠시 후 비명을 듣고 광장에서부터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하나둘 길드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길드에 자욱했던 살인 쑥 향이 사라지는 데는 하루가 꼬박 걸렸다. 살인 쑥 향이라는 표현을 쓴 데는, 저녁쯤 등장한 부 길드장 그분이 다음날까지 연기 때문에 못 들어간다는 내 말에.
“뭐 대충 빠진 것 같은데, 이 정도 연기야 전장에서는 흔한… 하하하….”
이러면서 들어가셨다가 거품을 물고 끌려 나오셨기 때문이다.
“어휴! 영감 진짜!”
릴리아나 누님이 가슴을 두드리며 거품을 문 부 길드장을 따라 성 쪽으로 사라졌다. 저분도 릴리아나 누님의 피로에 한몫하시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나와 애니의 지시에 도착한 가구들을 배치하고, 조리도구들을 채워 넣자 길드의 부엌은 대부분의 정리가 끝났다.
아직 길드에는 쑥 향이 조금 남아있지만, 그냥 은은한 정도.
나는 마지막으로 준비된 상황을 둘러보았다.
부엌 내부의 방마다 방을 쓸 애니의 지시대로 두 개의 침대가 안락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그리고 부엌은 나의 지시대로 조리 테이블에 조리도구, 도마 등이 적당하게 놓였다.
화덕의 숯에서 뜨거운 온기가 솟아나고, 위에 끓고 있는 커다란 무쇠솥에서는 수증기가 위로 솟으며 벌써 무엇인가가 끓고 있었다.
“후아! 드디어 끝났다.”
외부 테이블을 닦고 들어온 발레리가 힘이 들었는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정리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이미 점심때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여관이라면 아침들을 이미 먹고 쉬고 있을 시간이지만, 늦게까지 술을 퍼마신 용병들은 이제 슬슬 기어 나와 첫 끼를 먹을 시간이니 말이다.
“자! 이제 시작이다!”
내 새로운 식당이 오픈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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