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84화 (184/352)

〈 184화 〉 182. 높은 엘프 보호구역 6

* * *

“새로 오신 손님 여섯 분, 넷은 기사. 둘은 고위 귀족입니다. 그것도 아주 높은.”

나는 부엌에서 요리하느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여관에 새로운 남자 손님 여섯이 왔다는 사실은 아까 이실리엘에게 식사 주문을 추가로 받으면서 들었기에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신분인지를 들은 것도 아닌데, 시트라씨가 저렇게 대충의 신분까지 유추해 말하자 그들의 신분에 대해 놀란 것 보다는, 시트라 씨가 그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이 더 놀랍게 다가왔다.

뭔가 커리어우먼 느낌이랄까? 그동안은 전형적인 순수와 광신도를 오가는 야누스 같은 두 얼굴의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뭔가 전문가처럼 말하니 새롭달까?

“예? 그렇지만 그걸 어떻게?”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넌지시 돌려서 물어보았는데, 역시나 뭔가 엄청 전문적인 느낌이 풀풀 풍기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단 심문관은 신분을 숨기고 잠입하기도 합니다. 또한 잠입해있는 마족의 끄나풀들을 찾아내는 것도 저희의 일. 상대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투 같은 것으로 상대의 신분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오오…. 대, 대단해요. 시트라 씨.”

나는 시트라 씨의 대단함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시트라 씨는 나의 칭찬이 조금 부끄러웠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설명을 이어가셨다.

“가, 감사합니다. 요, 용병으로 위장했지만 넷의 절도 있고 규칙적인 움직임. 상당히 훈련된 기사입니다. 단련된 팔다리 근육만 봐도 절대 용병은 아니죠. 그리고 조금 움직임이 과한 것이, 무거운 어떤 것에서 벗어난 모습. 갑옷을 벗은 전형적인 기사들의 모습이죠.”

“그럼 다른 두 분은요?”

시트라 씨의 전문적인 추리에 재미를 느낀 나는, 다른 두 분의 신분은 어찌 유추해 냈을까 궁금해 다시 물었다.

“기품이 느껴지는 식사 예절, 깨끗한 식사용 단검. 턱을 당기고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걸음걸이. 귀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대동한 기사 넷의 수준을 비추어볼 때, 상당한 고위 귀족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나 젊은 분의 몸가짐은 어지간한 고위 귀족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죠.”

내가 시트라 씨의 설명에 정말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릴 때. 옆에서 수리아 왕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고위 귀족이라는 시트라의 의견은 저도 공감해요. 한 명은 왕족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몸가짐이었으니까요.”

시트라 씨와 왕족인 수리아 왕녀까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아마도 확실한 것. 그런데 그런 분들이 왜 오셨을까?

“그런데, 고위 귀족이라면?”

“아마도 그 남작 때문인 것 같군요….”

아! 갑자기 이실리엘에게 노예라는 둥 개소리한 그년! 확실히 왕국에서 이변을 알아차릴 정도의 시간이 되긴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남작이 살해당했으니, 뭔가 움직임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전문가 느낌을 풀풀 풍기는 시트라 씨에게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보복일까요? 아니면 정찰?”

“복수하려 했으면 군대를 끌고 왔겠죠? 그리고 고위 귀족 본인이 직접 왔다는 건, 이쪽을 살펴보고 협상하기 위함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시트라 씨의 날카롭고 인텔리한 추리.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협상해야 한다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트라 씨의 말에 옆에 수리아 왕녀도 그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왕녀님도 일국의 왕녀니, 외교나 교섭 같은 것은 경험이 많으실 터. 왠지 의욕에 찬 눈동자로 날 보는 두 분을 보니 왠지 믿음이 솟아올랐다.

“유리한 고지라면?”

“저희가 다 준비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러셀 씨는 마지막에 결정만 하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싸우지도 않고 두 분이 뭔가 같이 처리한다니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공사 구분은 한다는 건가? 둘의 그 모습에 더욱더 믿음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제가 따로 도와드릴 건 없고요?”

“혹시 수호자 한 분을 빌릴 수 있을까요?”

혹시 따로 필요한 건 없으실까 여쭈어봤는데 돌아온 것은 수호자 지원. 뭐 딱히 어려운 건 아니었다. 걔들은 삼 교대로 마을 경계 그리고 가끔 사냥 다녀오거나 레우케 요정인 시르케에게 하프연주 듣는 게 일이니.

나는 조심스레 내가 가용한 수호자를 떠올려 보았다. 로리엘, 시리엘, 에이리, 일단 로리엘은 제외 로리엘은 암살이나 학살하러 보내면 모를까 협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친구인 것이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협상 아니, 협박이라면 그 부분에서는 달인이겠지만…

‘다른 친구들은 아직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은데….’

나는 정확히 어떤 목적으로 쓸지가 궁금해 시트라 씨에게 되물었다.

로리엘은 안되니 통역할 수 있는 리젤다를 붙여 시리엘이나 에이리를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으니 말이다.

“음…. 어떤 수호자가 필요하신 거죠? 다들 성향이 다르니.”

“저는 그, 저번에 악인들을 처단하셨던 로리엘이라는 그분이 마음에 드는군요.”

시트라 씨가 기대감 찬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시트라 씨에게 순수한 모습과 위험한 두 가지 모습이 있는데, 분명 그간의 친분으로 미루어볼 때 저 눈빛은 위험한 시트라 씨의 눈빛.

지금까지의 신뢰감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예?! 로, 로리엘은 협상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인물이 아닐까요?”

“아니요. 그분이 딱 맞습니다.”

역시나 위험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옆에 수리아 왕녀가 있으니 괜찮겠지?’

두 분이 앙숙 같은 존재니, 시트라 씨가 조금 엇나가더라도 수리아 왕녀가 바로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시트라 씨의 요청을 수락했다.

“예, 그럼 로리엘에게는 말해두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에?”

“예 저쪽에서 빨리 움직일 테니 저희도 빨리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두 분만 믿겠습니다.”

내 믿겠다는 말에 둘의 얼굴이 수줍게 붉게 물들었다. 나는 마음 한편으로 조금씩 차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며, 로리엘을 찾아 이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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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페스빌은 긴 여정으로 인한 피로를 따듯한 물로 하는 목욕으로 시원하게 풀어냈다. 왕궁에서나 할 수 있는 따듯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말이다.

그리고 오일 마사지, 미 부인의 손길에 조금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근육이 시원하게 풀어지고 정신까지 헤실헤실 풀어지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라페스빌은 행정관과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그 감각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깜빡 졸고 말았다.

밤에 있을 높은 엘프님과의 대화를 위해서 잠들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만 까무룩 몰려오는 잠에 깜짝 놀라 깬 라페스빌은 행정관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마사지라는 것 정말 좋지 않았나?”

오일 마사지에 대한 행정관의 소감을 묻기로 한 것이다.

“신도 처음 접해보는 것인데, 그 손길이 참….”

미 부인의 손길을 언급하며 부끄러워하는 것이, 행정관도 미 부인의 손길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마냥 부담스럽지는 않았던 모양.

라페스빌은 남자끼리인지라 피식 웃어주며 눈을 감았다. 노년이긴 해도 행정관도 남자. 아직은 왕성한(?) 모양. 돌아가면 젊은 여자라도 하나 내려줄까? 하는 생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행정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것이!?”

­풀썩

라페스빌이 행정관의 외침에 놀라 몸을 일으켰을 때는, 자기 침대 위에 쓰러진 행정관과 라페스빌의 침대 위에 한 손을 잔뜩 뒤로 빼고 있는 작은 생물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엇…?”

침대 위의 작은 인간형의 생물체는 요정으로 보였는데, 그것이 뒤로 뺀 손을 앞으로 하며, 무엇인가를 던지는듯한 모습을 보이자.

그것의 손에서 반짝이는 가루 같은 것이 라페스빌의 얼굴로 뿌려졌다.

‘자, 잠들면 아, 안 되는데…’

그리고 그 반짝이는 가루를 맞은 라페스빌은 그대로 다시 침대 위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둘이 곯아떨어지고 얼마 안 돼, 그 작은 생물체가 문밖으로 아장아장 걸어 나가자 엘프 하나와 다크 엘프 둘이 방안으로 은밀히 걸어들어왔다.

“다른 방은 어떻게 됐습니까?”

“로리엘님의 말씀대로 모두 죽음의 잠으로 잠재워둔 상태입니다. 손가락 하나면 여신님 곁으로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직은 모르니 절대 목숨을 해치지는 않도록 합니다.”

“예, 로리엘님.”

“그럼, 이 둘은?”

“구덩이로 데려갑니다. 왕녀와 사제가 모든 교섭은 구덩이에서 부터 시작은 하는 것이라 하더군요.”

“예, 그럼 분부대로.”

로리엘의 지시에 두 다크 엘프가 라페스빌과 행정관을 어깨에 메고 급하게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로리엘도 천천히 그들을 따라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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