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82화 (182/352)

〈 182화 〉 180. 높은 엘프 보호구역 4

* * *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라페스빌은 웜 포트라는 작은 마을의 여관 앞에 도착했다. 그란 폴에서 강을끼고 내려오다 하루. 공백지 마을이라 경계가 심했지만, 하루 묵고 늪으로 간다는 말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말을 타고 노숙까지 하며 이동한지라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상태. 국정을 돌보느라 수련을 게을리한 결과였다.

솔직히 말하면 국정이 아니라 좋은 것만 먹으며, 여자만 끼고 방탕한 생활을 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후…. 지치는구먼.”

라페스빌은 크게 숨을 한번 내뱉은 후 푸념했다. 남작 년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성에서 자신을 둘러싼 첩들의 다리를 베고 기름진 고기나 뜯으며 즐거운 순간을 보냈을 텐데.

하지만 이미 터진 일.

라펠스빌은 자신을 따라온 행정관을 슬쩍 바라보았다. 노년의 행정관도 무척이나 지친 모습.

“호버든 괜찮나?”

“신은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좀 지치는군요. 그래도 목적지까지 도착했으니. 들어가시죠.”

안에서 높은 엘프라는 분과 대화가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모처럼 여관에서 쉴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라페스빌과 다른 이들이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비교적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여관은 되도록 피하고 노숙을 이어갔기에, 모처럼 만의 여관의 푹신한 침대를 기대하는 마음이 없지 않은 것이었다.

기사 넷과 행정관 그리고 라페스빌이 여관으로 들어서 내부를 확인하자 여관은 수도에서 여기까지 지나오며 묵은 어떤 여관들보다 깨끗하고 아늑했다.

벽난로 근처에 앉은 레우케 요정이 하프를 잔잔히 연주하고, 여기저기 걸린 마력등들이 여관 내부를 꼼꼼하게 밝히고 있었다. 등불 기름이나 마력등에 들어가는 마법석 가격을 아끼려 여관 내부는 어느 정도 어둡기 마련인데, 이곳은 구석구석 까지도 꼼꼼하게 등을 배치한 모습이었다.

라페스빌이 다른 곳과 비교하며, 역시 높은 엘프라는 분이 계신 곳이라 다른 곳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며 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여관 홀은 사람이 절반 정도 찬 상태였고, 식사 시간이 가까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수님, 식사는 아직 멀었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된다네요.”

“자기 배고파? 오늘도 잘 먹어야 힘을 쓸 텐데?”

“그, 그래 마, 많이 먹어야겠다 오늘 저녁은….”

한쪽 테이블에 볼이 홀쭉하게 들어간 털북숭이 용병이 옆에 퇴폐적으로 생긴 여자를 품에 끼고. 아니, 반대인가? 아무튼 저녁 식사를 재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성에 두고 온 첩들을 한번 다시 떠 올리며, 라페스빌이 자신들도 빈자리를 찾아 앉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둘러보는데, 누군가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서 종종걸음으로 나와 자신들에게 다가왔다.

라페스빌은 부엌에서 나온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눈을 통과해 자기 머리를 꿰뚫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부엌에서 그녀가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인 순간. 자신이 많은 여자를 만나면서 인사처럼 던졌던 그 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우시군요.”

그 말처럼 진짜로 눈이 부시고 있었다.

머리에 받은 충격은 눈이 받은 충격의 여파. 그래 저것은 눈이 소화할 수 없는 아름다움. 눈부신 아름다움을 소화 시키지 못한 눈이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머릿속에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페스빌은 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지금까지 많은 여자를 만나보았고, 또 첩도 제법 많은 편에 속했다. 다섯이나 있으니. 그런데 자신이 여자들에게 흔하게 던졌던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말은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단어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다가옴에 따라 마치 세상이 밝아지듯. 여기저기 등불을 켰음에도 밤이라 어두울 수밖에 없는 여관 내부가 대낮처럼 환해지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태양 같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걸어오더니 자신에게 고운 입술을 열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손님이신가요?”

그래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여자들이 반딧불이라면 눈앞에 이분은 태양.

라페스빌은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태양 아니, 소, 손님 맞습니다.”

“그럼, 이쪽 테이블로 안내해 드릴게요?”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태양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그것이 자기 생각만은 아니었던지. 옆의 기사들과 노년의 행정관마저도 입을 떡 벌리고 매료 마법에라도 걸린 듯 자신을 따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

“저희 여관은 하루에 동화 두 개를 받고 있습니다. 음식과 목욕은 무료, 장비 관리와 목욕 중 마사지, 오일 마사지등은 별도로 동화 한두 개를 더 받고 있는데, 어떤 것을 이용하시겠나요?”

깊은 산속 샘에서 흐르는 청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그 청량함에 귀가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저, 전부 부, 부탁하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전부 부탁한다고 말하자 행정관에게 건네받은 은화 한 개를 소중히 가슴에 품은 그녀가 다시금 태양 같은 미소를 마치 답례인 양 선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저녁 시간이니 금방 식사를 내오겠습니다.”

다른 여관 같으면 솥에 끓고 있는 이름 모를 것을, 직접 퍼먹어야 할 것인데. 식사를 가져온다는 말에 라페스빌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녀가 자리를 떠나자 행정관이 은밀히 말했다.

“저, 저분이 확실합니다. 떠나오기 전 헬로나님께 확인한 대로 태양같이 반짝이는 금발. 저분이 그분이 확실합니다.”

아름다움에 빠져 누군지 확인하지도 못한 라페스빌이 그제야 자신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떠올리며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행정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저분이신가? 여, 역시. 엘프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알았지만. 확실히, 저 아름다움은 인 외의 아름다움. 마치 눈이 녹아버리는 줄 알았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을 썼지만, 자신만의 감상은 아닌지 다른 다섯도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먼저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아니요. 여관의 일이 거의 다 끝나갈 때, 아무도 모르게 홀이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음, 확실히 그게 좋겠군. 지금은 사람이 많으니까 말이야,”

행정관의 지혜에 다시 한번 탄복하며, 라페스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은 무조건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전하.”

“물론입니다. 전하.”

기사 넷이 하나같이 대답했다. 가족이나 친지가 없고, 평민 출신 기사 넷이었다. 자신의 근위 기사 중에 가려 뽑아 데려온 이들이니. 성국의 기밀, 이제는 자신의 기밀도 되었지만. 이것이 어디로 흘러나가는 일은 없으리라.

라페스빌이 그렇게 기사들을 단속하며 나중의 만남에 대해 생각할 때, 아까의 높은 엘프님이 검은 귀의 토끼 수인 둘과 식사를 테이블로 가지고 오셨다.

태양 같은, 꽃 같은 미소 속에 테이블로 음식이 하나하나 놓아지고, 라페스빌의 눈에 행정관이 음식을 든 높은 엘프님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일어서려다 멈칫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기다리셨죠?”

역시나 눈부시게 웃으며 자기 앞에 식사를 내려놓는 높은 엘프님. 여관이니 어차피 저녁 식사는 영원의 스튜겠지만, 높은 엘프님이 주시는 영원한 스튜가 쓰레기같이 맛이 없더라도, 맛있다며 칭찬하며 먹으리라 다짐하며, 식탁을 내려다본 라페스빌의 앞에 놓인 음식은 생전 처음 보는 요리였다.

자신만 처음 보는 음식인가 하여 옆의 기사나 행정관을 바라보자 다들 어리둥절한 모습.

갈색으로 구워진 빵 같은 것 위에 뿌려진 갈색의 소스, 뭔가를 뭉개놓은 듯한 덩어리 하나에 샐러드 그리고 갓구운 듯 따듯한 빵.

무슨 음식인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자신의 표정을 눈치챘는지. 청량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와 답답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이, 음식은 돈가스라고 하는데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드시면 됩니다. 고기를 기름에 튀겨 소스에 적신 음식이니 맛있을 거예요.”

“예, 가, 감사합니다.”

행정관이 고마움을 높은 엘프님께 전달하고, 라페스빌과 기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단검을 꺼내 고기를 적당히 잘랐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포크로 잘린 고기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바삭한 식감의 즐거움이 지나자 곧바로 입안에 터지는 육향과 육즙 거기에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기름짐을 상쾌한 소스가 잡아 누르는 완벽함.

왕궁에서 꽤 고급 음식을 많이 먹어본 라페스빌 조차 이 여관의 음식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에, 엘프의 음식인가? 아, 아니면 우리가 누구인지가 들킨 것인가?”

라페스빌의 음식의 소감을 행정관에게 전하자. 행정관도 한입 베어 문 고기를 얼른 삼키더니 입을 가리며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같은 음식. 딱히 저희가 들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엘프의 전통 식사 아닐까요?”

라페스빌 앞의 기사들도 자신과 행정관의 호들갑에 그것을 한입씩 먹더니, 두 번째부터는 음식을 단검으로 자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을 포크에 꽂아 후후 거리며 뜯어먹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