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80화 (180/352)

〈 180화 〉 178. 높은 엘프 보호구역 2

* * *

엘프의 아름다움에 라페스빌도 한때 엘프 첩을 생각한 적이 있지만, 그것들은 강제로 옆에 데려다 놓는다고 해서 결코 얻을 수 없는 것. 자연스럽게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자기 같은 왕이 엘프의 마음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운 것이다.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없으니. 차라리 일반인이나 용병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남자라면 엘프 아내 얻는 상상 한 번쯤 당연히 해봤을 것이고, 자신도 남자이니 당연히 엘프에 대해서는 자신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 엘프라면? 그 예쁘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아니, 그게 아니고…. 아무튼 그 엘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 엘프가 맞습니다.”

조금 싸늘해진 목소리.

“저, 저는 저, 절대 엘프에 이상한 마음을 품거나 노예로 거느리지 않았습니다. 절대 말입니다. 절대!”

라페스빌은 자기 말을 급하게 수습했다. 얼마 전에 엘프 때문에 경고장을 받았기에 말을 조심해야 했다.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뭐 알겠습니다. 아무튼 제 아이가 그곳에 머무르는 이유를 알려드리지요. 이제부터는 진짜 성국의 극비사항 절대 말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꿀꺽

묵직한 안개처럼 깔리는 헬로나의 말에 라피스빌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결례라는 것도 잊은 채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남부 늪지대 공백지 작은 마을에 북부 대수림의 높은 엘프께서 와계십니다.”

“대수림의 높은 엘프라면?”

엘프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하는 라페스빌도 대수림의 높은 엘프라는 단어에 잠시 당혹감을 느꼈다. 남부의 평원 엘프나 다크 엘프, 동부나 서부에 있는 엘프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대수림의 엘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는 것.

다크 엘프들을 제외하고는 엘프에는 귀족이나 왕족이 없을 것인데, 높다는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높은 엘프는 엘프의 귀족 아니, 왕족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아니, 엘프들에게도 그런 분이?”

엘프에도 귀족이나 왕족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 하며, 라페스빌이 헬로나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제 아이는 그분을 감시 아니, 모시고 있지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주변을 지킨다고 보면 될까요?”

“아하! 엘프들의 높은 분이라서 보호하는 것인가요?”

아하 그런 높은 분이기에 성국에서 보호하려는 것인가? 라페스빌은 생각하며 물었다.

“아니요. 라페스빌 전하의 영지와 전하의 목숨을 그분의 진노로부터 보호해 드리는 것입니다.”

라페스빌은 들려온 말을 잠시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진노로부터 그분을 아니, 그분의 진노로부터 나를?’

그렇기에 다시 한번 물었다.

“그, 그러니까 저를? 무, 무엇으로부터 저를?”

“높은 엘프님으로부터입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헬로나 추기경이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예?!”

이어지는 이야기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평범한 엘프들조차 인간의 수명을 네다섯 배 훌쩍 뛰어넘는데 그런 평범한 엘프들보다 서너 배나 더 오래 산다는 높은 엘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들이 엘프의 탈을 쓴 괴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그런데 그것이 마냥 믿기가 힘든 것이?”

추기경의 말이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엘프들이 그렇게나 강하다니.

“전하께서는 능력을 내려받은 인간이, 더욱 노력해서 검이나 활이나 창이나 한가지 무기의 달인이 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라페스빌 그란 올 그의 가문은 원래 무가에서 시작한 왕가, 아직도 무를 숭상하기에 당연히 대답할 수 있었다.

“평생. 아마 평생을 쏟아부어야겠지요?”

“저런 남부의 창이 아직 녹슬지 않은 것 같군요.”

헬로나 추기경이 수정구 너머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30년, 50년 이야기하는 놈들은 벌레 같은 놈들이었다. 무는 평생을 쌓아 올리는 것. 무기의 달인은 생에 끝에나 도달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엘프들이 자신의 평생을 수련에만 매진한다면 어떨까요?”

애초에 엘프라는 것들이, 무에 관심이 별로 없고 자연을 벗 삼아 사는 것을 즐기는 종족인지라 비교적 무력이 약한데, 그들의 긴 수명으로 수련만 한다면 확실히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 있었다.

무는 재능에 기반하지만, 노력이 없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데, 엘프들이 긴 수명으로 무엇인가에 끝없이 몰두하면, 당연히 성취는 높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엘프 장인들의 목공예품은 아주 가치 높게 취급되니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헬레나의 말.

“그리고 그런 일반 엘프들의 서너 배의 삶을 사는 높은 엘프라면?”

그제야 라페스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 헬로나 추기경이 한마디를 보탰다.

“그냥 남부 늪지대에 용이 둥지를 틀었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예? 그 정도라고요?”

용이 무엇인가. 중앙 대륙에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서부나 동부 외곽에서는 자연 재앙처럼 가끔 나타나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살아 움직이는 자연 재앙이다.

그나마 어지간한 일은 황금을 바치는 정도에서 끝날 수 있지만 용 같은 엘프라니.

“강하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이 또 용이라니 허허….”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닐까? 믿기 힘들다는 라페스빌의 웃음에 헬로나가 나직이 말했다.

“높은 엘프는 정령왕도 소환할 수 있는 엘프이니 당연합니다.”

정령왕이라는 말에 라페스빌과 행정관이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서로의 눈알이 그렇게 커질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라페스빌이 말을 더듬으며 헬로나에게 물었다.

“저, 정령왕이라면 그, 평지를 바다로 만들고, 산을 구덩이로 만들며, 바다를 도리어 산으로 만든다는 그것 말입니까?”

“예 조금 ‘과소’ 표현된 부분이 있는데 틀린 말도 아니군요. 확실히”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

대수림에는 중부 대륙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엘프들이 아닌 ‘진짜’ 엘프들이 살고 있으며, 그 진짜 엘프 중 엘프가 높은 엘프라는 것. 이것은 성국 수뇌부와 북부 왕국만 아는 기밀인데 최근 이상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그 괴물 같은 존귀한 엘프 하나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은퇴한 인간 용병과 결혼해 남부 끝자락 작은 마을에 자신들의 신혼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헬로나는 그 엘프가 마치 용이라도 되는 듯 신혼집이 아닌, 신혼 둥지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성국에서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상급 이단 심문관을 급하게 파견해. 라페스빌 모르게 조용히 날파리들을 쳐내며, 인간 남자와 결혼해 행복한 신혼 생활을 하시는 그분께서, 모쪼록 아무 일 없이 지내기를 바랐는데.

자꾸 그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

이전 남작의 엽기적인 엘프 학대 및 성노예 사건도. 마족에게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길을 지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높은 엘프님에게 직접 벌을 받은 것인데.

이번에 다시금 여남작이 행복한 신혼 생활을 즐기시는 높은 엘프님의 마을로 쳐들어갔다는 것. 더군다나 새 영주가 그 높은 엘프님께 자기 노예라며 높은 엘프님의 반려가 보는 앞에서 모욕을 주었다는 말로 이야기가 끝났다.

“그러니, 항의서한을 피하시려면 직접 그분께 가서 그분의 진노를 멈추시기를….”

진노라니! 근본이 천한 년이라더니! 어쩌자고 그런 분에게 그런 실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행정관의 말을 들었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밖에 익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차를 즐기는 여유로운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인데. 이제 여유로운 하루하루는 영원히 끝난 것이었다. 자기 영토 바로 끝에 둥지 튼 용을 두고 어떻게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늙은이의 말이라고 무시했던 라페스빌은 행정관의 조언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리고 용 같은 엘프라는 말에 겁먹은 라페스빌이 되물었다.

“제, 제가 직접 말입니까?”

“분명히 좀 전에는 직접 가신다고? 생각이 없으시면 통신은 이만 마치고 저는 아직 못다 쓴 항의 서한이나 쓰러 갈…. 아니지, 성국의 비밀을 들으셨으니 성하께 아뢰옵고…”

용이라는 말에 두려움에 빠져있다가 항의서한과 성하라는 말에 재빨리 정신을 차린 라페스빌은 화급히 수정구 너머에서 사라지려는 헬로나를 붙잡았다.

“가! 가야지요! 제가 직접! 그, 그럼 어떻게? 제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수정구 너머에서 반쯤 사라졌던 헬로나가 씩 웃으며 다시 나타났다.

“일단 또다시 어리석은 놈들이 그곳에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높은 엘프의 반려분이 다행스럽게 인간입니다. 그분과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시지요. 그분은 인간이라 제법 이야기가 통할 것입니다.”

“부디 목숨을 보전하실 수 있는 판단을 내리시길.”

꺼져가는 수정구에서 헬로나 추기경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나직이 흘러나왔다.

‘그래, 같은 인간이라면 이야기가 통하겠지!’

“행, 행정관 군대! 아니, 외교사절! 아니, 대체 뭐가 좋겠나?”

라페스빌은 이번에는 늙은 행정관의 말을 잘 들어야 겠다 생각하며 의견을 구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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