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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in 여관-178화 (178/352)

〈 178화 〉 176. 3 다음에 왜 6 이지? 6

* * *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낡은 테이블을 비추고. 그 테이블에 세 아내가 나와 마주 앉아있었다.

리젤다가 쓰러진 시트라 씨를 성전으로 데려다준 후. 나는 다시 아내 셋을 데리고 한나 아주머니 댁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혹시 한 가문과 한 영혼을 구원하는 데 관심이 있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실리엘과 다른 둘은 이상한 논리로 나를 설득하려 했기에, 세 아내를 한나 아주머니 댁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이야기를 다시 나눌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자와 설득하려는 세 여자의 대결.

“이실리엘, 리젤다, 발레리 잘 들어봐. 비 오는 날 여관 밖에 비를 맞고 추위에 떨고 있는 강아지…. 아니, 양이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이실리엘의 감정 이입이 쉽게 양으로 빗대어 말하기로 했다. 안 키워본 개 보다는 양이 이실리엘이 감정 이입하기는 좋을 것 같으니 말이다.

“당연히 데리고 들어와서 몸도 닦아주고 밥도 먹여야죠.”

이실리엘이 대답에 아내들이 그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어? 주인이 있는 양인지 알아보고 주인이 없으면 키워야죠?”

아 질문이 잘못된 거 같다. 근본적으로 이타심이 강한 친구들인지라 그런지 당연히 키운다는 답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질문을 다시 바꿔보기로 했다.

“다시 물어볼게? 그럼 우리 집에 양이 세 마리가 있다고 하자?”

“네!”

이실리엘이 눈빛을 빛내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양이 나오니 집중하는 듯. 더군다나 세 마리라니 목소리가 활기차가 변했다.

“근데 우리 집은 양을 세 마리 이상 못 키워 먹을게 세 마리분 뿐이거든. 그런데 내가 좀 전에 한 말처럼. 비 오는 날 양 한 마리가 밖에서 떨고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알고 보니 주인도 없는 것 같아.”

“그러면 다른 양들이 먹는걸. 좀 줄여서 네 마리를 다 돌봐야죠.”

“키우던 양들이 배고프지 않을까?”

“배는 조금 고프겠지만 친구가 생겨서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역시나 이실리엘의 대답에 다른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이게 아니라고!’

나는 그냥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야겠다 마음먹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래, 때로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금 아프지만, 진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진실을 대면하면서 성장할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다들 아픈 만큼 성숙해줘!’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직접적으로 이야기해 볼게? 나는 이미 아내가 셋이나 있어, 아주 사랑스럽고 예쁘고 마음에 쏙 들어, 근데 사정이 딱한 세 사람이 나타났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러셀 우리도 바보가 아니에요. 러셀이 무슨 말을 하고 싶지는 말아요.”

‘뭐야 알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한다고?’

나는 이실리엘의 말에 이실리엘이 순간 다른 사람인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갑자기 이렇게 똘똘한 멘트를? 이실리엘의 얼굴에 얼핏 안경을 낀 모습이 떠오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

이실리엘이 왠지 무척이나 똑똑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잘 들어봐요. 러셀. 러셀이 아내로 안 맞아주면 시트라 씨는 이제 영원히 아주아주 영원히 처녀로 살아야 한대요. 시트라 씨도 저처럼 러셀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니, 그러면 당연히 러셀을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고….”

“아니, 아니, 잠깐만. 나를 감시하는데, 왜 나를 좋아하게 되는 건데?”

뭔가 이상한 논리였다. 이실리엘 때문에 성국에서 감시하는 것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감시하다 보면 사랑에 빠진다니. 그게 대체 무슨 결론이야?

물론 전생에 스파이영화 클리셰 같은 전개라서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이실리엘의 말처럼 당연한 것은 절대 아니다.

“네? 러셀을 감시했는데, 러셀을 안 좋아할 수가 있나요?”

이실리엘이 도리어 그게 무슨 이야기냐며 내게 반문했다. 좀 전에 똑똑한 모습과 표정 어디 가고 무슨 광신도 같은 말과 표정이란 말인가.

‘아니, 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냐고.’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 다른 ‘종족’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로리엘도 그렇고 뭔가 사고가 좀 다르달까? 불쾌한 골짜기 이론같이 인간과 너무 닮았는데 이런 미묘한 차이. 하지만 엘프들의 이런 부분은 불쾌하기 느껴진다기보다는 반대이긴 한데….

“그렇지만 저도 대수림 엘프의 마을에서 러셀을 감시하다 보니,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러셀은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이니까….”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오우, 왠지 부끄러워하는 이실리엘. 하긴 듣는 나도 부끄러운데….

이실리엘의 면전 칭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그건 이실리엘 이고, 시트라 씨는 다른 사람이잖아?”

“아뇨. 러셀을 지켜봤는데 러셀의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감시 실격이에요! 그리고 시트라 씨가 러셀을 감시하다 러셀을 사랑하게 되었다니, 그렇기에 저는 시트라 씨에게 믿음이 가요.”

이실리엘은 감정 이입이 심했다. 자신의 사랑과 비슷한 순서를 밟고 있는 시트라 씨에게 아주 우호적인 상태라. 내 말이 전혀 귀에 들리지 않는 상태로 보였다.

더군다나 뭔 신이 빛을 비추고 무지개를 띄웠다는데, 아내들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무슨 신이 꿍꿍이를 부리는 느낌.

결국 나랑 결혼 못하면 시트라 씨를 영원히 처녀로 만든다고 협박하면서, 시트라 씨의 등을 떠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긴 원래 중간에 낀 사람만 고달픈 법이지.

‘성국에 꼭 가야 할 일이 생겨버렸네?’

“그래, 그럼 시트라 씨는 일단 그렇다고 하고. 수리아 왕녀는?”

이실리엘의 옆에 앉아있던 리젤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모습에 이실리엘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지, 지금은 아내 의회가 아니니까 괜찮아요. 리젤다.”

“네 이실리엘님.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러셀,”

이번에는 리젤다가 나섰다. 아니, 아내 의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서로 나눴는지 모르겠는데. 다들 담당 변호사가 하나씩 붙은 느낌.

‘원래 여자의 적은 여자 이런 거 아니었나? 전생 감성으로 이해가 안 되네?’

“그래, 리젤다가 그럼 말해봐.”

내가 리젤다에게 변호를(?) 허락하자 리젤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북부의 고위 귀족은 북부의 전선에서 상당한 피의 희생을 치르는 건 아시겠죠?”

“그야, 뭐 당연히….”

리젤다의 설명이 이어졌다.

리젤다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왕녀의 모든 가족이 이제 죽고 혼자라는 사실과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고 그 속에서 먼저 간 가족들을 생각하며 살고 싶었던 것이 그녀의 소망인데, 내가 그녀를 도망치던 운명에서 다시 밀어 넣었으니 책임감을 느끼라는 것.

아무래도 같은 북부 출신이다 보니, 왕녀의 처지를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체감하는 듯했다.

내 상황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왕녀님은 다시 북부로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아내가 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만큼 절박하다는 말로 들려요.”

가라앉은 리젤다의 목소리. 자기들 때문에 또 누굴 안 받아들이면 앓아눕는 건 아니겠지? 나는 불안한 눈으로 리젤다를 바라봤다.

‘아니 불쌍하다고 다 결혼해주면 제가 남아나질 않는다니까요?’

“그래, 수리아 왕녀도 그렇다고 치자. 그럼 플로라 처형은?”

나는 플로라 처형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발레리가 변호하러 나서나 했는데 들려온 것은 셋의 목소리.

“플로라가 왜요?”

“넷째인 플로라가 무슨 문제라도?”

“언니가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 이 사람들 당연하게 플로라는 이미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장인어른이 선물로 주긴 하셨지만 내가 받겠다고 말한 적은 없잖아?”

“그렇지만 플로라는 ‘무희’잖아요?”

“플로라는 러셀이 좋아하는 ‘무희’인데요?”

“언니는 러셀이 좋아하는 ‘무희’인데?”

나는 왜 아내들의 머릿속에 무희 옷에 미친놈이 되어있단 말인가? 아니, 그냥 그 옷이 야해서 너희들이 입은 모습이 좋았던 것인데. 왜 이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식의 논리가 정립되어있단 말인가?

나는 진실을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었다.

“잘, 잘 들어! 딱 한 번만 이야기할 테니! 나는 무희를 좋아하거나 무희 옷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예쁜 아내들이 야한 옷을 입은 게 좋은 거야 알았지?”

성적 취향을 커밍아웃한 기분이라서 무척 부끄러웠다.

‘아니, 솔직히 무희 옷 좋아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메이드 옷도 좋아하긴 하지만…’

테이블에 정적이 내려앉고, 이야기를 마친 나와 테이블 앞의 세 아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우, 우리가 야한 옷을….”

“그, 그렇군요. 우리가 야한….”

“야한 옷….”

잠시 후 발레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러셀,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언니는 이대로 거절당하고 다시 서부로 가면, 정말 원치 않는 곳에 시집을 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서부의 결혼이라면 누군가의 하렘이거나 물건처럼 팔려 가는 것….”

발레리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언니가 이렇게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데, 저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달리 해줄 수 없을까요. 다른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발레리가 고개를 숙여 이실리엘과 리젤다에게 사과했다.

발레리 입장에서는 피붙이인 언니가 서부식으로 물건처럼 팔려 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에게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내를 위해서 다른 아내를 얻으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말이란 말인가?

결국 아내들의 성화에 일단 당사자들과 각자와 따로따로 이야기해 보는 것으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뭐 좋아해 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니. 최소한 거절하려 해도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 상대방의 마음에 대한 예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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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못 찾았단 말이냐!”

나파로아의 방계 출신으로 에삭스의 새로운 왕이 된 헥터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길길이 날뛰는 중이었다.

그가 이렇게 자신들의 측근에서 불같은 분노를 토하는 이유.

그것은 귀족들이 자신을 공식적으로 살해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왕이 된 후 귀족들의 요구는 하나였다. 전선의 선봉에서 자신들을 이끌어 달라.

하지만 그 요구가 무엇인지 너무도 명확하기에 이렇게 분노하는 것이었다.

“수리아 그년이 죽었으면, 그놈들이 그런 요구를 하지 못할 것인데! 그년이 죽어야 저놈들 다 왕이 귀한 줄 알고 입을 닫을 것인데, 대체 아직도 못 찼고 뭣들하고 있단 말이냐! 내가 저것들에 전장으로 끌려가 죽어야 찾을 것인가!”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닥치고 다 꺼져라! 꺼지라고!”

핑크색 머리카락이 가득 담긴 상자만이 헥터의 분노를 멈출 수 있을 것이기에 헥터의 측근들이 사방으로 뛰어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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