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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in 여관-175화 (175/352)

〈 175화 〉 173. 3 다음에 왜 6 이지? 3

* * *

이실리엘의 거대한 분노 앞에 우리는 단체로 한나 아주머니댁으로 끌려와야 했다. 홀은 아직 아침을 하는 분들이 있으니 전부 옆집으로 연행되어 온 것.

한나 아주머니댁 홀.

테이블을 하나를 중앙에 두고 수리아 왕녀, 시트라 씨, 처형인 플로라 셋이 테이블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조물조물하고 있었다. 물론 반대편에는 매 같은 눈을 번뜩이는 이실리엘 리젤다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죄인처럼 쭈구리가 된 나도.

본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으니 첫째 부인인 이실리엘 앞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 그렇게나 도발적이던 플로라 처형도 이실리엘의 기세 앞에서는 고양의 앞에 쥐였다. 알아서 기는 느낌. 다른 두 분은 본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생각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느낌.

나는 셋으로 인해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나쁜 짓을 하다가 끌려온 기분에 사로잡혔다.

­타악

적막함 속에 이실리엘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 소리에 나를 비롯한 넷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나는 좀 억울한데.’

나는 일단 나만이라도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일단 오해를 풀고자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러니까 말이지…”

“러셀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 손을 잡아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주는 이실리엘. 역시 우리 아내는 나를 믿어주고 있었다. 그래 이실리엘이 무조건 나를 혼낼 리가 없다. 나는 현재 일종의 피해자니까.

‘나는 이실리엘에게 신뢰받고 있는 남편이었다!’

확실히 나는 플로라 처형에게도 거절의 의사를 명백하게 밝히려고 했고, 갑자기 둘의 난입으로 난장판이 된 것이니. 역시, 이실리엘은 공정한 엘프였다.

내가 마음속으로 공명정대한 높은 엘프를 칭송하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은 이실리엘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이실리엘의 서늘한 목소리가 셋에게 비수처럼 날아갔다.

“저는 감히 높은 엘프의 반려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셋에게 그것이 듣고 싶으니까요.”

­꿀꺽

셋이 동시에 침 삼키는 소리가 홀에 뚜렷하게 새겨졌다.

“발레리의 언니인 플로라 씨가 먼저 이야기해 보시죠. 이게 무슨 일인 거죠?”

이실리엘이 제일 먼저 발레리의 언니를 다그치자 처형인 플로라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다소곳하게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이실리엘님. 저는 네 번째 아내로서 러셀님을 좀 즐겁게 쉬게 해드리려고 제 방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아침을 준비하느라고 힘드셨을 테니까요. 남편을 돌보는 것은 아내의 의무고 다른 분들은 바쁘신 것 같기에 제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 시트라 씨와 수리아 왕녀의 표정이, 맛없는 음식을 씹어 삼킨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아까 그 요녀는 어디 가고 딱 발레리 수준의 순진한 여자가 내 앞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이실리엘이 플로라 처형의 말에 눈썹을 꿈틀하며 리젤다를 바라보자 리젤다가 갑자기 한 손을 조용히 들었다.

“네 리젤다 말씀해 주세요.”

뭐가 여자들 사이에 룰이 만들어 진 것 같았다. 뭔가 이제부터 손들고 허락받고 말해야 하는 느낌.

“무희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발레리에게 들었습니다. 무희 옷을 좋아하는 러셀이 당연히 플로라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리라는 것은 모두 예상하였지만…”

“리, 리젤다? 그게 무슨…”

내가 무희가 유혹하면 당연히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는, 리젤다의 의견에 반박하려 하자 이실리엘이 높은 엘프의 위엄 넘치는 음성으로 말했다.

“러셀은 조용히 하세요. 지금 리젤다가 발언 중입니다!”

와… 전생의 정치인들이 공개토론 나와서 느끼는 그 억울함이 무엇인지 똑똑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는 왜 시간도 안 지키고 자기 순서도 아닌데 왜 저렇게 나서면서 말하지? 했는데. 이거 상황이 되니 그럴 수밖에 없네?

나는 급한 마음에 좀전의 리젤다처럼 손을 번쩍 들었으나 이실리엘에게 다시 한번 혼만 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뭔가 시스템이 복잡한 것 같았다.

마냥 손을 든다고 발언시켜주지 않는 느낌.

“다른 사람이 발언 중입니다. 러셀 기다리세요. 다시 한번 다른 사람이 발언할 때 손을 들거나 끼어들면 발언 요구를 제한하겠습니다. 아시겠나요?”

‘아니, 나 신뢰받는 남편 아니었어?’

억울함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까 나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던 이실리엘은 어디 가고 단호박 그녀만이 남아있단 말인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이실리엘을 바라보며 내 모든 표정으로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이실리엘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리젤다에게 발언을 이어가라 지시할 뿐이었다.

“리젤다 다시 말씀해 주세요.”

“예, 이실리엘님, 무희 옷을 좋아하는 러셀이 당연히 플로라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리라는 것은 모두 예상하였지만…”

리젤다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아까 그 부분을 반복하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 이런 억울함이라니. 배신과 불신이 나의 가슴을 강하게 후벼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평가는 바닥이었다.

나는 무엇 때문인지 그녀들에게 무희에 헬렐레해서 아내들이 있는데도 또 아내를 받아들이는 뭔가 이상한 놈이 되어있었으니 말이다.

마음속에 터져 나오는 외침을 그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무희 옷이 좋은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무희 옷을 입었으니 좋은 것이었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그녀들만의 규칙으로 인하여 발언을 허락받지 못한 상태. 억울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리젤다의 발언이 끝나고 반드시 발언권을 얻어 이 오해를 풀리라 다짐하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남편을 기쁘게 하는 순서는 첫째 부인이 정하는 고귀한 권리, 하렘에서는 그것이 규칙이라고 하던데 제가 발레리에게 들은 것이 잘못된 정보일까요?”

리젤다가 눈을 매섭게 빛내며 처형을 노려봤다.

‘아니, 이 사람아 지금 지적할 것은, 그게 아니라 플로라 처형이 당연하게 자신이 아내라고 말하는 부분이라고!’

나는 대답 없는 외침을 목이 터지라고, 가슴이 찢어지라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하렘이 처음인지라 규칙에 익숙하지 않아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껏 슬픈 표정을 짓는 플로라 처형의 눈에서 눈물까지 ‘또르륵’ 굴러떨어졌다. 요물! 요물이었다. 그녀의 연기에 모두 속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당연히 넷째 아내인 듯 행동하는 처형을 아무도 알아채지도 제지하지도 못하는 것.

‘맙소사.’

더군다나 지금 이 장소에서 억울한 피해자는 플로라 처형 하나뿐인 것 같았다. 사실을 알고 있는 나도 저 표정과 연기에 깜빡 넘어갈 것 같은데, 순하디순한 이실리엘은 어떨까?

확인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할리우드 최정상 여배우급 연기를 펼치며 플로라 처형은 이실리엘의 매서운 질책에서 손쉽게 벗어났다.

처형의 모습에 깜빡 넘어간 이실리엘이 그녀를 위로할 정도였으니.

“저, 저런 의욕이 앞서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눈물을 거두세요. 다음부터는 너무 의욕에 앞서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네, 이실리엘 첫째 아내님.”

그 모습에 어처구니없어하는 수리아 왕녀와 시트라 씨. 억울하고 화가 나고 분하지? 그 기분이 지금 내 기분이야, 이 사람들아!

더 어이없는 건 처형이 말을 끝내더니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조용히 내 옆으로 와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마치 자신은 이제 내 아내가 확실해 이쪽에 당연히 앉아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심지어 이실리엘도 리젤다도 제지하지 않는 모습.

“자기는 입 다물고 가만 있으면, 내가 자기께 되는 거니까 조용히 있어요?”

귓가에 느껴지는 뜨거운 김과 함께 그녀가 내 옆에 자리를 잡으며 조용히 속삭인 소리였다.

그렇게 자리 이동이 끝나고 이실리엘이 다시 플로라 처형에게 질문을 이었다.

“그런데 러셀을 기쁘게 하려고 했다면서, 저 두 분과 왜 여관 홀에서 러셀이 뒤엉켜 있었던 것이죠?”

“제가 러셀을 데리고 제방으로 가려는데 본인들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저를 막아서다가 그만 언쟁이 생겨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뭔가 알맹이는 다 빠졌는데 거짓말도 아니네? 플로라 처형은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 변호사 같은 것 했으면 승소율 장난 아니었겠어!

플로라 처형의 그 말에 이실리엘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이 사실 입니까?”

“예…. 그 뭐….”

“트, 틀린 말은 없습니다. 확실히.”

둘의 떨떠름한 대답. 내 옆에 처형이 둘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얄미워서 볼 잡아 뜯어주고 싶네. 진짜.’

“두 분은 대체 왜 그러신 거죠? 이건 분명히 제 가족의 일인 것 같은데요? 플로라를 제지해 주신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그리고 러셀에게 엉켜있던 이유는 플로라의 말만으로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러셀에게 무엇을 하려고 하신 거죠?”

“그, 그것이…”

“…”

둘은 새빨개진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하며 다시금 자기들의 꼼지락거리는 손가락만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렇게 둘이 손톱만을 잡아 뜯을 때. 처형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시금 입을 열어, 좌중에 본인이 대마법사라도 되는 양 거대한 운석 급 멘트를 떨궈버렸다.

“제가 러셀에게 키스하자. 본인들도 하겠다며 덤벼들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실리엘님!”

“네엣?”

“뭐라고요?”

얄미운 고자질 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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