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172. 3 다음에 왜 6이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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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자 토끼 수인 자매에게 부축받는 핑크 머리 수리아 왕녀와 옆에선 은발의 시트라 씨가 매서운 눈빛으로 나와 처형을 노려보고 있었다.
둘 다 아침을 먹으려고 오신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아내와 남편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웬 모르는 여자들이 이렇게 훼방을 놓을까?”
처형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는 투로 말하자 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마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누가 누구 부인이라고요? 저희가 러셀님의 아내를 모를 것 같습니까?”
“사제 앞에서 거짓말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둘은 감히 누구 앞에서 거짓말이냐며 눈을 부라렸다. 확실히 어제도 없던 아내가 또 생겼다는데 제삼자들도 놀랍긴 하겠지.
그러나 우리 처형은 둘의 기세 앞에서도 결코 기가 죽지 않는 센 여자인 듯. 처형은 도리어 둘을 피식 웃어주며 도발하듯 말했다.
“어머! 진짠데? 아버지가 직접 나를 러셀에게 ‘선물’해 주셨는데? 러셀, 그러고 보니? ‘선물’, 아직도 못 열어봤잖아요? 내방으로 ‘선물’ 열어보러 갈까요? 나는 선물 받으면 참지 못하고 바로 열어보는데, 우리 자기는 아끼다가 열어보는 종류의 사람이려나? 아껴주는 것도 좋긴 한데, 역시나 내가 못 참겠네?”
‘서, 선물을 열어본다고?’
처형이 자기 원피스의 매듭을 어느새 내 손에 쥐여주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대로 걸어 나가자 나는 놓으면 되는 매듭을 혹시 풀리기라도 할까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따르고 있었다.
매듭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지만, 매듭은 흡사 접착제라도 붙은 듯 손에 딱 붙어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전생에 보았던 야한 영화의 제목이 떠오르고 있었다,
‘처형! 시즈모드 만은….’
그런 내 모습에 쏟아지는 질책.
“서 선물이라니! 그걸, 받으셨단 말인가요? 러셀님! 어서 돌려보내세요!”
“러셀 씨, 저런 망측한 선물을 받으시다니! 절대, 안 됩니다. 절대!”
둘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처형이 물었다.
“대체 두 분은 누군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하긴 내 아내도 아닌데, 처형이 지금 위험한 짓을 저지르고 있지만, 그런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것.
“저, 저희는….”
“저, 저희는….”
둘은 처형의 질문에 난처한 표정으로 뭔가 한참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왕녀로부터 말도 안 되는 말이 터져 나왔다.
“저희도 서, 선물입니다!”
“마, 맞습니다! 선물 그거!”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빽 지르는 둘.
“뭐라고요?!”
둘의 말에 나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본인들이 선물이라는 왕녀님과 시트라 씨의 말.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나 하시는 걸까?
오늘이 내 생일도 아닌데. 선물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말을 하려면 최소한 나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힘든 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
‘삼십 대에 이런 인기라니. 역시 남자는 와인 인가?’
동시에 둘이 나를 좋아할 만한 교류가 우리한테 있었는지 재빠르게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먼저 왕녀님은 춤을 못 추셔서 슬퍼하시기에 손 한번 잡고 춤 한 번 춰드린 게 전부이다. 춤을 다 추고 왕녀님이 입맞춤하셔서 깜짝 놀라긴 했는데, 그냥 답례 정도로만 생각했고 아내들도 벨도 딱히 아무 말이 없어서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반응이라니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빼앗겨서 분노하는 모습이 아닌가.
또한 시트라 씨와 같이 한 일은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범죄자 고문하고 때려죽이기. 뭔가 로맨스에 부합되는 요소가 하나도 없는 일만 같이했다. 범죄자가 울부짖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이게 두근거림이나 설렘으로 이어진다면, 이거 시트라 씨는 정신 감정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뭐 마지막에 문병 간 방안에서 부득이한 접촉 사고로 인한 입 박치기가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사고이고 그걸로 좋아하게 된다고? 연애로 아니,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기 위한 계기가 아무래도 부족했다.
‘어지간한 금사빠가 아니고서야, 무슨 스쳐도 임신도 아니고 말이지…’
대체 둘의 저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처형도 마찬가지인지. 처형도 둘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하…’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상하다니깐 저거.’
“풋… 그래요 그러면, 대신 순서를 지키자고요. 저희는 일단 먼저 온 선물을 열어보러 갈 테니. 나중에 온 두 분은 알아서 순서를 정하시죠.”
귀찮다는 듯 내던진 처형의 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폭탄을 뒤에다 떨구고 다시 나를 끌고 가는 처형. 그러나 그 말도 안 되는 폭탄은 화려하게 도화선에 불이 붙고 있었다. 시트라 씨와 수리아 왕녀가 잠시 서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며 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째서 수리아 왕녀 당신이 러셀 씨에게? 왕국에서 허락할 것 같습니까? 평민과? 왕위는 어쩌시려고!”
“사제가 미쳤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고나 하시는 말씀입니까? 파문을 각오하신 겁니까? 순결의 사제가 순결을 버린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아십니까?”
뒤에서는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된다고?’
처형은 뭔가의 스페셜리스트 같았다. 남녀 관계? 정신 공격? 우리 뒤로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 소리를 들으며 처형이 내게 눈을 맞추더니 유혹의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여기 진짜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아. 자기도 나 재미있게 해줄 거죠?”
꿀꺽
그렇게 이어지는 어이없는 상황 속에 처형에게 끌려 계단까지 몇 걸음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우리 둘의 어깨를 부여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턱
뒤를 돌아보자 시트라 씨와 토끼 수인 자매에게 부축받는 수리아 왕녀가 나와 처형의 어깨를 각각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생각해보니 저희 아니, 제 순서가 왜 뒤인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저는 무려 러셀님과 ‘키스’까지 한 몸인데요? 훗…”
‘아니, 그건 답례 아니었냐고!’
이 사람!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하고 있었다.
처형을 바라보며 뭔가 승리한 듯한 표정을 짓는 왕녀님의 말. 그리고 뒤를 따르는 시트라 씨의 말.
“저, 저도 ‘키스’는 했습니다! 그러니 저도 제 순서가 뒤라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군요.”
시트라 씨는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웠던지 새빨개진 얼굴로 양손에 주먹을 쥐고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니, 시트라 씨 그건 사고였잖아요!’
내가 둘의 말에 뭔가 반박하려 할 때,
츕
내 입술에 덮는 촉촉하고 따듯한 느낌. 그리고 밀려 들어오는 달콤한 혀. 화들짝 놀라 입술의 주인인 처형을 밀어내려 하자 처형의 양팔이 내 뒤통수를 강하게 부여잡았다.
아니, 무슨 여자 힘이? 궁수인 내 팔 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처형의 팔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부릅뜬 눈으로 강제 키스를 당할 때, 옆에서 들려오는 성나고 놀란 목소리.
“이, 이 무슨 망측한! 당장 그, 그만두지 못하겠습니까?”
“어, 어서 그 입을 떼세요! 러, 러셀 씨의 입이! 더럽혀지다니!”
츄릅
처형이 만족한 얼굴로 입을 떼자 나와 처형의 입 사이로 침이 길게 거미줄처럼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시트라 씨와 수리아 왕녀가 목덜미까지 시뻘게진 채 활화산 같은 분노를 토해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처형이 혓바닥으로 입술을 아주 매혹적으로 핥아 올리며 다시금 도발하듯 말했다.
“훗… 둘 다 얼굴 꼴을 보아하니, 어린애들 입맞춤 정도 한 거 같은데. 이런 키스 한 거 맞아? 어른들의 진짜 키스는 내가 먼저인 것 같으니, 다시 순서들 정하세요?”
뭔가 학생들을 가르치는듯한 말투.
이쪽 부분의 완벽한 전문가 느낌.
남자 손 한 번 제대로 못 잡아본 시트라 씨와 곱게 자란 왕녀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대.
굳이 비교하자면 드래곤과 도마뱀의 차이랄까? 아무리 이백 명 정도 되는 용병들의 대가리를 밭에 구르는 수박 깨듯이 터는 둘이라도, 이 남녀들의 전장에서는 금 등급 용병과 나무 등급 용병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처형은 ‘무희’.
무희라는 것은 남자들 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은 본업으로 하는 자.
남자를 대해본 경험의 차이가 둘과는 다른 것이었다. 항상 자신의 아래 있는 자신을 섬기는 남자들만 대해본 왕녀님과 순결의 사제로 남자를 본 적은 있어도 교류해본 적 없는 시트라 씨가 상대할 수 없는 압도적 경험치를 자랑하는 상대.
그런 압도적 경험치 차이에 밀려 시트라 씨와 수리아 왕녀는 자꾸 악수만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최악의 악수가 둘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둘이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저, 저희도 지, 지금 하면 됩니다!”
“저, 저희도 지, 지금 하면 됩니다!”
그렇게 덮쳐오는 둘의 무게에 내가 바닥을 구르고, 처형이 어처구니없는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릴 때. 이 모든 사태를 정리하고 나를 구원해줄 이 집에서 제일 무서운 그녀의 목소리가 주방 앞에서 천둥처럼 터져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짓들이죠!”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이실리엘이 부엌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바닥을 구르는 나와, 내 위에서 서로의 얼굴을 밀며 내게 얼굴을 들이대는 시트라 씨와 왕녀의 모습에 분노를 쏟아 토해내고 있었다.
“히익!”
“히익!”
“히익!”
이실리엘의 분노에 찬 모습에 우리 셋에게서는 자연스레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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