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171. 3 다음에 왜 6이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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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좋아서 또는 러셀이 좋아서 다른 여자가 고백해온다면 그건 좀 생각해볼 문제이긴 했다. 그 여자도 운명을 느꼈다면 어떻게 그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도 운명의 끌림에 따라 러셀의 아내가 되었는데. 이것이 러셀의 아내 셋의 비교적 공통된 생각이긴 했는데.
이렇게 선물? 그래, 마치 물건 넘기듯. 그것도 약간 문제가 있는 물건을 넘기듯 떠넘겨지는 것은 셋에게도 아니, 러셀까지 넷에게도 처음 겪는 신기한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긴급 아내 의회가 깊은 밤. 첫째 아내인 이실리엘의 방에서 열린 것이었다.
“발레리 이것이 흔한 일입니까?”
딸을 마치 물건처럼 떠넘기듯 내어주는 발레리 아버지의 처사를 이해해줄 수 없었던 이실리엘이 서부 인간 문화를 잘 아는 발레리에게 사실을 확인을 위해 물었다.
그 물음에 발레리가 손을 들어 자기의 녹색 불빛을 반짝였다.
“대답할 때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이실리엘님!”
고개를 끄덕인 발레리가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시작했다.
“예 서부에서는 한 남자에게 딸 두셋 내어주는 건 비교적 흔한 일이긴 합니다.”
서부에서 여자는 가문의 재산 취급이니 남자들끼리의 거래 품이 되기도 하고, 많은 지참금에 물건처럼 팔려 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문의 수장인 아버지가 딸을 거래하듯 팔거나 내어주는 것은 비교적 서부 문화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한 남자에게 딸 둘을 내어주는 것도 몇 번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이기에 발레리는 자신이 아는 내용을 이실리엘에게 대답해 주었다.
“서부에서는 당연한 일이군요. 그럼 거절도 가능한 것입니까?”
“보통 이렇게 딸을 보낼 때 거절당하면 엄청난 치욕으로 받아들입니다. 딸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되니까요. 처녀가 아니라거나 외모가 나쁘다거나…”
발레리의 말에 이실리엘이 고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거절은 불가능한 것으로 봐야겠군요?”
“거절당하면 여자도 치욕으로 느끼고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으니….”
발레리가 말끝을 흐렸다. 발레리의 말에 이실리엘은 사랑 고백을 거절당한 엘프의 자결이 떠올랐다. 조금은 그것과 결이 다르긴 했지만, 가문의 선택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거절까지 당한다니, 그건 확실히 가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리젤다의 머리 위에 초록 불이 떠올랐다. 발언을 요청하는 것. 이실리엘의 리젤다의 요청을 수락해 발언을 허락해 주었다.
“리젤다, 말씀해 보세요.”
“언니는 뭘 하시던 분이죠?”
발레리를 향한 리젤다의 질문. 그래 만약에 거절할 수 없다면, 발레리의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했다. 현재는 이실리엘, 리젤다, 발레리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기에 비교적 분쟁 없이 지내고 있지만, 사람이 늘어나면 지금의 평화가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언니는 무희였습니다. 제가 노래를 시작한 것도 언니의 권유였고, 어릴 때 둘이 나중에 저는 노래하고, 언니는 춤추자고 약속하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저희 자매가 그러는 걸 극도로 싫어하셔서 저는 중간에 그만두었지만, 언니는 결국 서쪽에서 정말 유명한 무희가 되었죠.”
무희라는 말에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번에 러셀을 위해서 사 왔던 무희 옷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러셀의 그 뜨거웠던 반응.
셋은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러셀이 이 선물을 거절할리는 없다고 봐야 했다. 자신들이 입은 무희 옷에도 그런 열렬한 반응이었는데, 진짜 무희가 무희 옷을 입고 나타난다? 러셀이 좋아할 것은 당연한 일.
“성격이나 다른 것은요?”
리젤다는 날카로운 눈매만큼이나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글쎄요. 언니는 좀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그리고 억압당하는 걸 싫어해서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뭔가를 시키려고 하면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는데, 아버지의 말을 언니가 쉽게 허락한 것도 의외이긴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결혼은 무조건 언니가 원하는 사람이랑 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아내 의회는 그 후로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었지만, 딱히 해결방안 없이 잠시 사태를 관망하자는 의견으로 끝나고 말았다. 셋 다 모질지 못한 성격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침과 저녁 중에 조금 더 신경 쓰이는 쪽을 고르라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아침을 고를 것이다. 저녁이야 어떤 것을 내놓아도 충분히 다들 만족해하지만, 아침은 과하면 거부감이 들고 너무 가벼우면 하루에 두 끼를 먹는 이곳에서는 저녁까지 버티기가 힘드니, 당연히 아침 식사 준비가 힘든 것이다.
평상시에 보통은 아침으로 가벼운 귀리, 보리, 콩이 주재료인 죽이나 평원 엘프와 에밀이 따온 야생 버섯과 채소로 만든 수프에 새벽에 한나 아주머니가 애니와 갓 구운 빵 또는 딱딱한 빵을 새알을 푼 물에 적셔 구운 프렌치 식 토스트, 난이나 팬케이크 같은 것이 주메뉴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신선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 또는 그란 폴에서 구해온 과일과 베이컨이나 소시지를 조금 곁들여 다소 가벼워질 수 있는 아침 메뉴에 단백질을 추가해서 포만감을 더하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더 일찍 일어나서 한식을 준비하고 있다.
한식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 그동안 특별한 몇 번을 빼놓고는 자주 하진 못했는데, 오늘은 장인어른이 계시니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침 메뉴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힘을 빡! 준. 아침 메뉴.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따듯한 국물에 쌀밥과 반찬 몇 가지.
국은 콩나물국을 끓였다. 메주를 만들려고 사두었던 콩을 바구니에 넣고 천을 덮어 물을 주면서 키우고 있었는데, 그것이 제법 자랐기에 콩나물로 국을 끓인 것이다. 물론 고추를 아직 못 찾았기에 매운 콩나물국이 아니라 맑은 콩나물국이지만.
아침에 맑은 콩나물국에 밥 한 그릇. 부담 없고 깔끔하고 어르신들이 좋아할 메뉴 아니겠나?
여기에 반찬으로 토란 조림과 계란말이 소시지볶음을 추가했다. 그래 일식삼찬. 한국인의 기본 패시브 식단이다.
식사 준비가 끝나고 직접 장인어른께 식사를 가져다드리고 드시는 방법도 설명해 드려다. 아침 식사를 가져다드리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것일까? 발레리와 결혼 승낙받을 때보다 더 떨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요 몇 끼를 먹으면서 생각해보았지만 자네 이런 음식은 어디서 배운 것인가?”
마음에 드신 듯한 넉넉한 목소리.
“어릴 때 부모님이 하시는 걸 보고 자랐더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군요.”
‘이계에서 끌려왔습니다.’라고는 할 수 없는 일.
“귀족들도 이렇게는 안 먹는데 특이하군.”
솔직히 이곳은 귀족이나 평민이나 식사에 별 차이가 없다. 물론 귀족들의 식사가 좀 더 풍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요리가 비교적 발달하지 않았기에 조리 방법에 차이는 거의 없는 편이다. 적당히 구워서 소금 찍어 먹거나 아침마다 죽을 쑤어 먹는 건 비슷하고.
양념해 재운다거나, 튀긴다거나, 조린다거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복합적인 맛을 낸다는 것은 비교적 드문 일.
장인어른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서부의 수도에 식당을 열어도 좋을 것 같네, 혹시 식당을 내 볼 생각은 없는가? 내가 다 준비해 봄세 어떤가?”
역시 대 상인이라고 하시더니 장인어른은 뼛속까지 상인이셨다. 하지만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장인어른은 대기하고 있던 발레리에게 붙잡히셨다.
“아빠,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옆에서 발레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투식량이나 황금마차를 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글쎄? 진짜 상인이 보기에는 어떨까?
발레리가 그간 일을 아버지에게 자랑한다며 장인어른을 모시고 삼 층 내 방으로 간 후, 다른 손님이 식사하는 것을 확인하고 있을 때.
발레리의 언니인 나의 처형 플로라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갑자기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기, 나도 마을 좀 구경시켜주지 않을래요? 플로라 심심한데?”
삼인칭! 처음 들어봤다. 이게 실제로도 가능한 애교구나? 처형이 하니까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이건 그녀를 위해 준비된 표현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하 처, 처형 시, 심심하시구나.”
“처형이라뇨! 아내 될 사람에게 서운하게 정말! 잘 생각해봐요. 나를 거절하면 발레리는 여기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롭게 살아야 하는데? 내가 있으면 서로 의지하고 좋잖아요.”
뭔가 상당히 솔깃하고 그럴듯한 말이었다.
이실리엘도 로리엘이나 엘프들이 항상 같이 있어 주고 리젤다도 에반이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 머물고 있으니. 비교적 덜 외롭긴 하겠지만. 반면… 발레리는 오롯이 혼자인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아내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지할 사람이 있으면 좋다는 건 당연하니까.
플로라가 마음에 든 것은 절대 아니었다. 절대로! 뭐, 안 든 것도 아니지만….
내가 잠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처형이 조용히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나, ‘무희’인데 내가 무희 옷 입은 거 보고 싶지 않아요? 남자 중에 무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던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 자기도 괜찮은 ‘남자’니까 당연히 좋아하겠죠? 어때요? 응?
‘지, 진짜 무희라고?’
발레리처럼 무늬만 무희가 아닌 진짜 무희가 내 앞에 있었다. 남미 미녀 같은 피부와 몸매, 발레리와 그 우위를 결정할 수 없어 보이는 가슴. 와 그러고 보니 얼핏얼핏 드러나는 몸매가?
‘맙소사!’
”우리 영감이 여기 올 때 무희 옷도 챙기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어. 아니면, 춤추는 걸 보여줄까?”
처형이 춤추는걸 흉내 내는지 팔짱 낀 반대 손을 마치 뱀처럼 움직이자 나는 그 손끝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부드러운 손놀림.
처형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내 눈동자.
원래 발레리 대신 처형을 아내로 주려고 했다더니. 장인어른은 뭔가 단단히 계획을 하고 오신 느낌이었다. 역시 대상인이 취급하는 물품은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것이었다.
장인어른의 말대로 문제가 있다면, 너무 달콤해 보여서 뼈까지 썩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랄까.
나도 모르게 팔짱을 낀 처형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한번 슬쩍 훑자 처형이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 웃음에 내 정신이 마른 모래에 물기가 젖어 들 듯 그녀에게 젖어 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선물을 거절할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꿀꺽
교태로운 미소와 애교. 발레리가 없었다면 홀딱 넘어갔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미 아내가 셋이나 있는 몸. 내가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밝히려 하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두 명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님, 뭐죠? 이 여자는?”
“남편이 있는 남자에게 꼬리를 치는 이 여자는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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