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71화 (171/352)

〈 171화 〉 169. 장인과 처형 3

* * *

발로란은 남자와 발레리를 따라 마을 안에 있는 여관으로 이동했다. 남자가 여관에서 차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니 거절할 수 없었던 것.

일단 상대방은 높은 엘프의 남편. 백단목의 주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정중하게 대해야 했다.

이동하는 내내 남자의 뒤를 따르는 발레리를 보고 발로란은 불안감에 휩싸여야 했다.

‘설마 아닐 거야. 절대로 아닐 거야.’

맹렬하게 현실을 부정했지만, 그러나 상인의 본능은 자신에게 현실을 강하게 일깨우고 있었다. 하지만 발레리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

안내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남같이 테이블 건너편 남자의 옆에 앉은 발레리.

발레리를 만나면 꼭 안아주고 잘했다며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좀 더 남자 앞에서 정중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지만, 참을 수가 없어 발레리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그, 그래 발, 발레리야 잘 있었느냐. 자, 자리는 왜 거기에?”

“어서 말해보거라. 그, 어 어떻게 된 일인게냐? 아까는 그런 꼴로 남자 품에 안겨서?”

참고 있다 입을 열자, 정중이고 뭐고 현실을 확인하고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례한 언사가 터져나갔지만 참을 수 없었다.

발레리의 입에서 아니라는 말이 듣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들리는 밉살맞은 목소리.

“아니, 그걸 물어봐야 알아요? 남자 생긴 거지? 훗…”

자기의 일곱 번째 딸 플로라였다.

발로란은 처음 이곳으로 향할 때 나름 괜찮은 계획을 세우고 출발했었다. 그것은 아내가 둘이라는 여관주인을 결혼으로 묶는 것. 원래 처음 하나에서 둘이 어렵지, 셋에서 넷 되고 넷이 수십이 되는 건 하렘에서 아주 흔한 일이니까 말이다.

남자는 이미 아내가 둘이나 있는 상태. 가진 백단목이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높은 엘프와 혈연으로 묶일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가치가 높으니까 말이다. 엘프들은 같은 종족, 마을, 핏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간보다 훨씬 더. 그리고 자기편이라는 틀 안에 들어오면 무한 신뢰와 애정을 보이는 것은 잘 알려진 일.

높은 엘프의 틀 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 인생 최고의 거래가 되는 것이다.

무엇을 이용해서? 일곱째 딸 플로라를 이용해서 말이다.

솔직히 자신이 보기에는 막내딸이 가장 예쁘지만. 세간의 평가는 일곱째 딸이 으뜸이었다. 어디서 배운 못된 것인지, 남자를 홀리는 몸짓과 눈웃음. 배우라는 가문의 일은 도외시하고, 무슨 무희를 하겠다며 부끄러운 옷을 입고 술집에서 가슴을 흔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을 잡아 온 것이 몇 번이던가.

저것 덕분에 발레리도 이상한 바람이 불어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잠시 허락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 기회에 처리할 수 있으면, 골칫덩어리 딸로 최대의 이익을 보는 것이다.

자기는 골칫덩어리를 치워서 좋고 사위가 될 사람은 예쁜 아내를 얻어서 좋고.

여러모로 둘 다 이익이 되는 거래인 것이다.

그러나 발레리의 입에서 들려온 것은 믿을 수 없는 현실. 어쩌면 만남부터 알고 있던 사실인데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충격이었다.

“아, 아빠 저, 겨, 결혼했어요! 죄, 죄송해요!”

“아! 안녕하십니까? 장인어른! 러, 러셀이라고 합니다!”

“뭐! 뭣! 꺼허허허억!”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시야와 소리가 사라졌다. 맙소사 사귀는 것도 아니고 결혼이라니. 아비 몰래 결혼까지 했다니!

귀여운 막내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참혹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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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발로란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은 여관 객실인 것으로 보이는 장소에 눕혀져 있었다.

상쾌한 허브의 향이 콧속으로 스며들고 깨끗한 이불이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세수를 위해 떠 있는 물에 얼굴을 씻고 준비된 천으로 얼굴을 닦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테이블에는 여관 손님들로 보이는 여러 종족, 여러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외지의 여관에 이렇게 다양한 종족이 있다니…

그리고 테이블 한편 자기의 예쁜 딸 발레리와 골칫덩이 플로라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발로란이 테이블로 다가가자 발레리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아, 아빠. 괘,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구나.”

“이, 이리 앉으세요. 마침 식사 시간이어서, 아빠를 돌보다가 내려온 거거든요.”

발레리가 안내해준 옆자리에 앉자 곧 높은 엘프가 접시를 들고나와 자기 앞에 내려 두며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아니, 여관주인의 부인이라는 것은 들었는데, 높은 엘프가 직접 음식을 나른다고? 발로란이 깜짝 놀라서 발레리를 돌아봤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자기 딸이 결혼했다는 사실은 들었다. 이미 두 부인이 있었다고 했으니 자기 딸은 세 번째 부인 또는 첩. 첫째 부인이 음식을 나르는데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다니. 너무 애지중지 키워서 철이 없는 게로구나.

발로란은 가슴속으로 한탄하며 발레리에게 말했다.

“발레리야 너도 가서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

발레리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었다.

“저는 여관 일은 아침이나 바쁠 때 아니면 안 거들어도 돼요. 그리고 지금은 가족들이 와있어서 같이 식사하라고 배려를 해주셔서요.”

발레리는 이미 높은 엘프의 울타리 안에 들어간 느낌.

발로란은 음식이 뭐가 그렇게 맛있는지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고 음식 먹기에 바쁜 플로라를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원래 저것을 주어야 했는데…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바꾸자고 해볼까?’

하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누가 저것과 발레리를 바꾸겠나. 외모에 혹했다가 속 꽤 썩을 것인데.

발로란은 쓸대없는 생각을 곧 포기하고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이 넘어가진 않겠지만 높은 엘프가 직접 가져다준 식사니,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접시에 있는것은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엘프들의 음식인가?’

“발레리야 이 음식은 뭐라고 하는 것인 게냐?”

접시 위에는 빵과 기름과 식초로 버무린 신선한 채소들과 뭔가 고기와 채소들로 푹 끓인 음식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스튜잖아요. 아빠.”

“스튜라고?”

자기가 스튜를 모를 리 없다. 이곳까지 오면서 제일 많이 먹은 것이, 그 음식이니 말이다. 분명 스튜라면 시커멓고 내용물 모를 재료들이 들어있는 음식일 텐데?

이것은 스튜라고 부르기에는 아주 고급스러운 요리가 아닌가.

“영감님. 그만 보시고 일단 드셔봐요. 나는 우리 발레리가 시집 잘 갔다고 봐요.”

저놈의 말 버르장머리, 술집으로 나돌더니 일곱째의 말버릇은 딱 술집 수준이었다. 다시 두통이 오는 것 같았다. 아까 물놀이하던 발레리와 다른 여자들을 보고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남의 자식을 욕할 때가 아니구나!

발로란은 플로라에게 다시 한번 눈치를 준 후. 조심스레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입 안으로 넣었다. 입안에 느껴지는 진한 국물과 허브 야채들이 어우러진 맛.

그 뛰어난 맛에 자연스럽게 발레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러셀, 그, 그이가 직접 마, 만드는데, 한번 먹으면 떠, 떠나기가 싫다고 하, 할까요?”

아니, 남자의 미래와 패기, 자신감도 아니고 먹을 거에 넘어갔다고? 내 딸이?

“그래! 항상 다른 여관에서 쓰레기 같은 거 먹다가 이거 매일 먹으면 그렇긴 하겠다 그치?”

또다시 끼어든 플로라의 말.

‘진짜 못 바꾸나?’

화로 인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결국 먹는 시늉만 하려던 식사는 접시를 싹싹 비우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여관 직원들에게 안내되어 식사가 끝나고 목욕이라는 것도 했는데. 이런 곳에서 따듯한 물로 목욕한다니, 놀라울 지경.

중년의 부인과 그 딸이 목욕 시중을 들어왔을 때는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때라는 것도 생전 처음 밀어보고 따듯한 물에 몸에 물을 푹 담그고 있으니, 이젠 뭐 될 대로 되라는 기분까지.

그리고 늦은 밤. 아까의 인원이 다시 테이블에서 만났다. 사위의 이름도 듣고 사위의 다른 두 아내도 소개받을 수 있었다. 한 명은 높은 엘프에, 한 명은 북부의 귀족이라. 나쁘지 않았다. 밉살맞은 플로라 말대로 나쁘지 않은 혼처.

아쉽긴 하지만…

“죄송합니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따님과 혼인하게 되어서.”

“아니에요. 아빠 제가 먼저.”

사위는 생각보다 괜찮은 놈인 것 같았다. 귀족은 아니지만, 예의 바르고 발레리를 아껴준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뭐 자기들끼리 이미 다 저지른 거 같은데, 반대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고 발로란은 온탕에서 풀어진 마음처럼 그냥 기분 좋게 허락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들려온 높은 엘프의 목소리.

“혹시 서부에도 지참금이나 신부 집안에 하는 선물이 있나요?”

당연히 있었다. 신부를 데려오려면 지참금은 반드시 지급해야 했으니. 마지막으로 심술이나 한번 부려볼까? 하는 마음에 대답했다.

“예, 이실리엘님 지참금이 있지요. 상대방 부모의 마음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하면 서부에서는 신부를 데려갈 수 없답니다.”

웃으며 이실리엘이라는 높은 엘프에게 대답하자. 그녀 또한 웃으며 대답했다.

“만족이라. 상당히 힘든 조건이군요. 양 천 마리가 훨씬 나았던 것 같아요.”

그녀가 옆의 북부 귀족의 딸이라는 여자를 바라보자 남색 머리의 여자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백단목을 내어드리면 몇 개면 되겠습니까?”

발로란은 웃었다. 자기한테는 백단목 한 개로도 부족할 딸이지만, 상인의 냉혹한 평가로는 그만한 가치가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늙은이를 놀리시면 안 됩니다. 제가 백단목을 원한다면 대체 얼마나 주시려고요.”

­좌르르륵

자기 앞에 쏟아지는 백색의 백단목 조각들.

“원하는 만큼요.”

발로란은 마치 커다란 워 해머로 머리통을 처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기는 사막의 대상인. 자기가 왜 이 거래서 질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상인은 남는, 버리는 상품을 파는 사람이 아닌. 고객이 원하는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상품을 고객에게 파는 사람.

상대방은 이미 발레리가 마음에 들어 무엇이든 내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문제 많은 일곱째를 데려와서 거래하려 하니, 당연히 거래가 성립조차 할 수 없었던 것.

자기는 대상이라 생각했지만, 이번 거래는 초보 상단 주만도 못한 짓을 하려 했던 것이었다.

발로란은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뜨고 백단목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을 하나 고르고 눈앞의 엘프에게 말했다.

“이것 하나만도 충분히 넘치는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실리엘님 부디 사위와 제 딸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사위의 아내들과 발레리가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아무래도 딸은 이곳에서 사랑받고 있는 듯했다. 마음이 놓였다.

“그… 사위?”

“예! 장인어른!”

사위가 기쁜 듯이 대답했다.

“거스름이 좀 남았는데 필요하면 저것도 가져가게, 저건 내가 돈을 도리어 주고 맡겨야 할 처지긴 한데….”

“예에?”

발로란이 가리킨 손끝에는 일곱째 딸 플로라가 자기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서 있었다.

플로라는 마치 표정으로 ‘나?’ 이렇게 물어오는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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