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168. 장인과 처형 2
* * *
“또 세 마리예요!”
이실리엘이 물의 정령을 이용해서 물고기 세 마리를 강변으로 건져냈다. 이미 강변 풀숲에는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여기저기 퍼덕거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몇 마리가 더 추가되자 퍼덕거리던 물고기 중 한 마리가 강가로 다시 빠져들려는 기색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발레리가 재빨리 달려가 그 녀석을 바구니에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발레리가 물고기를 양손으로 잡자마자 그 녀석은 감히 어딜 만지냐는 듯, 꼬리지느러미를 휘둘러 발레리의 얼굴을 철썩 후리고는, 화들짝 놀랜 발레리와 같이 무릎 정도 오는 얕은 강변으로 굴러 들어갔다.
첨벙
“으아아…”
역시 우리 발레리는 실내용. 실외에서는 목숨이 위험한 아이였다. 나와 리젤다가 놀라 발레리에게 뛰어갔지만, 물고기는 이미 유유히 강으로 도망쳐 버리고 발레리는 물속에 주저앉아 빨간 한쪽 볼을 매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다 젖어버렸어요.”
‘아니, 그럼 이 사람아 당연히 젖지, 마르겠냐?’
“당연히 물에 빠지면 젖지!”
나는 웃으며 발레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려고 했는데, 무슨 심술이 난 건지 발레리가 나를 잡아당겨 물속으로 빠트렸다.
“아하하하하”
내 모습을 보고 웃는 리젤다. 감히 남편의 불행에 웃다니!
‘오늘 가장의 지엄한 모습을 이 가문에 세우리라!’
그리고 시작된 난장판. 웃고 있는 리젤다에게 덤벼들어 리젤다를 발레리 옆에 물속에 처박고 물가에서 물의 정령이 꺼내오는 물고기에 정신이 팔려있던 이실리엘을 어깨에 메고 물가로 달려가 리젤다 옆으로 던져버렸다.
“으아아 나는 강의 괴물이다!”
“꺄하하하학!”
“꺄악! 러셀 이 바보!”
“하, 하지 마요!”
“우앗! 물의 정령은 반칙이다!”
물의 정령으로 물을 쏘아대며 반격해오는 이실리엘, 등에 매달려 나를 주저앉히려는 리젤다, 다리에 매달려 가슴을 비벼… 아니, 매달려 나를 넘어트리려는 발레리.
하나하나 제압해 물속에 처박은 후.
마지막으로 나를 제일 먼저 빠트린 발레리에게 엄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발레리의 다리를 안아 높이 들어 올렸다.
“꺄아아악 높아요. 높아!”
발레리가 비명을 지르고, 높이 들어 올린 발레리를 물속으로 처박으려는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바, 발레리야?”
강가에는 우리가 물놀이를 빠진 사이에 다가온 것으로 보이는 마차 세 대가 서 있었고, 제일 앞의 마차에서 내린 것으로 보이는 노년의 남자가 발레리를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아빠?”
“그, 그게 무슨 꼴이냐 대체?”
홀딱 젖은 발레리와 아내들은 들러붙은 옷가지에 전신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태였는데, 나는 몰라도 남 보여주기는 민망한 상태였다.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내 등 뒤로 숨고 내가 엉거주춤 발레리를 들어 올린 채 멈춰있을 때. 첫 번째 마차의 뒤 칸에서 발레리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가 한 명 하품하면서 내리더니, 발레리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안녕, 발레리. 오랜만?”
“언니?”
이게 공식적인 내 또 다른 장인, 처형과의 첫 대면이었다.
이실리엘이 바람의 정령을 불러 몸을 재빠르게 말려주어 우리는 자리를 옮겨 여관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관 테이블을 하나 가운데 두고 장인어른과 처형. 나와 세 아내가 서로 양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 그래 발, 발레리야 잘 있었느냐. 자, 자리는 왜 거기에?”
장인어른의 목소리는 왠지 떨리고 있었다. 내 옆에 자리 잡은 발레리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예감한 듯.
“어서 말해보거라. 그, 어 어떻게 된 일인게냐? 아까는 그런 꼴로 남자 품에 안겨서?”
장인이 연거푸 발레리의 대답을 요구하자 옆에서 처형이 나섰다.
“아니, 그걸 물어봐야 알아요? 남자 생긴 거지? 훗…”
장인의 옆에 앉은 처형이 씩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발레리 같은 붉은 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유전인듯한 거대 가슴. 아…. 둘은 자매가 확실했다. 다만 발레리의 인상이 강아지 같은 순한 인상이라면, 이쪽은 고양이 같은 나른한 매력 물씬 풍기는 얼굴.
“반가워요! 발레리의 일곱째 언니 플로라라고 해요. 발레리 남자친구? 아니야, 그냥 봐도 남자친구 이상이지? 결혼 약속이라도 한 건가? 아빠 몰래 결혼이라도 한 것 아냐? 그러면 진짜 막 재미있을 것 같은데? 호호…”
미소를 띠며 엄청나게 신이 난 처형이 마치 족집게같이 상황을 짚어냈다.
‘무슨 사막에서 수정구로 미래 점쳐주는 마녀가 직업인가?’
내가 처형의 족집게 같은 말에 놀라 있을 때, 장인이 부릅뜬 눈으로 처형을 째려보자 처형은 입을 삐쭉 내밀고는 바로 조용해졌다.
그리고 장인이 다그치듯 발레리에게 물었다.
“어서, 어서 말해보거라 발레리야 대체 어찌 된 일인 게야?”
나는 발레리의 손등에 살포시 손을 올리고는 그 손을 꽉 움켜쥐어주었다. 발레리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그래, 발레리도 일을 저지르기는 했고 상단이 도착하면 편지로 상황을 알리려고 했지만. 이렇게 대면하는 상황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상행을 보냈는데 물품 대금 대신 보증을 위해 남아있다가 부인이 둘이나 있는 남자의 셋째 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기는 당연히 힘들겠지.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지만 장인이 발레리에게 직접 듣고 싶어 하는데 나서기도 미안해, 발레리의 손을 꾹 잡아 준 것이다.
용기를 내라며.
‘할 수 있어 발레리야! 장인어른이 쓰러지실지도 모르지만….’
잠시 망설이던 발레리가 내 손을 꾹 움켜쥐더니. 결심했는지, 소리를 빽 지르듯 말했다.
“아, 아빠 저, 겨, 결혼했어요! 죄, 죄송해요!”
“아! 안녕하십니까? 장인어른! 러, 러셀이라고 합니다!”
나도 그에 맞춰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나 장인어른에게 인사를 박았다.
“뭐! 뭣! 꺼허허허억!”
그리고 나의 호기로운 인사를 받은 장인은 나의 예상대로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마셨다.
“장인어른!”
“아, 아빠!”
그때 들리는 생기발랄한 웃음소리. 처형은 장인어른이 걱정도 안 되는지 박장대소하며 외쳤다.
“푸하하핫 진짜야? 얌전한 처녀가 아이를 먼저 밴다더니! 따라오길 잘했잖아? 매제! 이제 한 식구네요? 잘 부탁해요!”
마차가 강가를 따라 마을로 접근하고 있을 때. 발로란의 귀에 남자의 외침과 여자들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 나는 강의 괴물이다!”
“꺄하하하학!”
“꺄악! 러셀 이 바보!”
“하, 하지 마요!”
“우앗! 물의 정령은 반칙이다!”
발로란이 고개를 돌려 강가를 보니 웬 남자와 여자 셋이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다 큰 처녀들이 몸이 홀랑 젖어서는 자기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는지도 모르고, 남자 하나와 아주 신이 나서 물속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어휴 누가 아비인지 대체!’
발로란은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결혼할 나이의 처녀들인 것 같은데 어미, 아비는 대체 뭘 한다고 정숙한 몸가짐을 가르쳐주지 않았단 말인가.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발로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찢어지는 비명.
“꺄아아악 높아요. 높아!”
그런데 그 비명이 뭔가 익숙하게 들려왔다. 뭔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 그리운 목소리.
여자들의 흉한 꼴에 고개를 돌려야 할 것인데, 그, 그리운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흉한 꼴의 여자들 한가운데, 남자에게 다리를 잡혀 여신상처럼 들어 올려진. 새빨간 머리의 흠뻑 젖은 자기의 막내딸이 눈에 들어왔다.
“머, 멈추게!”
마차에서 내려 두세 걸음 강가로 멍하니 걸어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다시금 확인하고자 딸을 불러보았다.
“바, 발레리야?”
“아, 아빠?”
흉한 꼴로 물놀이하고 있던 것이 발레리였다니, 발로란은 충격에 휩싸였다. 부모가 누군지 궁금하던 아가씨 중 하나가 자기의 딸이었던 것이었다.
소중한 막내딸이 저런 꼴로 남자에게 안겨….
‘잠깐. 안겨? 설마? 아니겠지?’
발로란은 부정했다.
‘설마 절대 아니겠지. 그래 아닐 것이야. 아무렴.’
발레리를 안고 있던 남자 옆에 있던 두 명의 여자를 보니, 아내가 두 명이라는 여관주인이라던 남자가 맞는 것 같은데. 왜 그런 남자의 품에 안겨있단 말이냐!
수많은 혼처도 거절하고 후계자로 키우고 있는 아이인데. 설마, 외모도 성격도 이젠 세상을 떠난 제 어미와 똑같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막내딸인데.
결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빠 제가 평생 모시고 살면서, 상단이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저는 루테니아 가문의 후계자니까요!”
상행을 떠나면서 발레리가 자기에게 마지막 인사로 들려주었던 말이 발로란의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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