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165. 앙숙 10
* * *
쿠쿵
전장 중앙으로 운석처럼 떨어져 내린 둘로 인해 전장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시트라는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은발을 휘날리며 병사들에게 뛰어들었다. 먼지 속에서 시트라의 앞에 나타난 것은 병사 셋. 셋 다 충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한 놈은 멍한 모습으로 어설프게 방패를 안고 서 있었고, 둘이 먼지를 뒤집어쓴 여파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시트라는 왼손의 방패를 들어 멍한 모습으로 서 있던 용병의 안면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떠엉
콰직
머리통을 때린 방패가 북처럼 큰 소리를 내며 전장의 공기를 짜르르 울렸댔다. 그리고 터져 나온 비명.
“크헉”
사람을 머리를 후려쳤는데 들리는 소리는 단단한 무엇이 깨지는 소리. 소리와 함께 원형 방패 너머에서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시트라는 왼손 방패 너머에서 꽃처럼 피어난 핏방울에도 멈추지 않고, 먼지 때문에 눈을 비비고 있는 놈들의 머리에 오른손의 메이스를 스치듯 휘둘렀다.
부웅
둘의 머리에 맞지 않고 스치듯 지나간 메이스.
시트라가 휘두른 메이스 소리에 놀란 두 놈이 눈을 비비던 채로 화들짝 물러났다. 그리고 잠시 후 시야를 회복하고 안심의 미소를 떠올렸지만, 둘은 그대로 썩은 짚단처럼 주저앉았다. 둘의 머리 일부가 이미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부웅 부웅
시트라의 바람을 가르는 메이스 소리가 연달아 전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병사와 용병들의 신체가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다는 듯 사라지고 있었다.
이단 심문관의 메이스는 그 모양이 조금 독특하다. 양손으로 쥐면 양 손안에 가득 찰 둥그런 구를 긴 막대 위에 붙인 형태. 외관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지만 정작 그 살상력은 낮아 보이는데 만약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이단 심문관의 메이스가 날 이나 뿔 하나 없이 동그란 구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유.
신께서 허락한 신성력이지만 축복이나 정형화된 기술이 아닌, 날것의 신성력 자체를 허락받지 못한 무기나 사물에 담거나 머무르게 하려고 무기에 신성력을 집어넣으면, 신성력은 빠른 속도로 마치 증발하듯 하늘로 올라간다.
그 근원을 향해 가는 것.
하지만 구형일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구형의 내부에 신성력이 구의 모양으로 뭉쳐 치고, 구형 내부의 신성력은 구의 표면에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가시 모양으로 솟아나는 것이다.
그렇게 신성력의 가시가 돋아난 메이스로 무엇인가를 타격하면, 신성력의 가시들이 자격을 허락받지 않은 것들을 거부해, 신성력의 가시가 닿은 만큼 무엇이든 지워지듯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부웅
“팔, 내 팔이!”
부웅 부웅
“아악! 내 다리!”
용병들의 비명을 융단처럼 깔아대며 시트라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 나타나는 놈들을 방패로 깨부수거나 용병들의 신체를 메이스로 지워대며 앞으로 나가던 시트라를 막아선 것은 양손에 도끼를 든 제법 강해 보이는 놈.
놈은 시트라의 방패 후려치기를 한 손의 도끼로 막아내더니 실실 웃으며 말했다.
“하급 이단 심문관이 마을에 있었네? 크흐흐… 마을 새끼들 기고만장한 이유가 있었구먼, 그래도 다 죽는 건 변함 없을 건데!”
까강
놈의 도끼와 메이스가 부딪히며 불꽃이 튀어 올랐다. 제법 강력한 힘. 무기가 맞부딪히는 충격에 시트라의 은빛 눈썹이 꿈틀하며 시트라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모습에 양손에 도끼를 든 용병이 기세를 올리며 두 손의 도끼를 번갈아 휘두르며 시트라를 압박했다.
그렇게 용병이 휘두르는 도끼를 피하거나 막아내며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난 시트라가 입을 열었다.
“하급이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 나도 금 등급인데. 하급 이단심문관 따위한테 질까 봐? 크크”
놈이 도끼를 휘두르며 웃었다.
“그럼 중급이면?”
시트라가 놈이 휘두른 도끼를 방패로 받아내며 되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트라의 몸에서 신성력의 빛이 거칠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용병이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가 싶더니. 용병의 몸에서도 붉은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용병도 어떤 존재에게 받은 기운을 뽑아내기 시작하는 듯했다. 놈은 시트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받아내며, 시트라에게 다시 뛰어들어 시트라의 정수리를 도끼로 찍어 내렸다.
그리고 기합을 토하듯 외쳤다.
“중급도 충분히 상대할만하지!”
까강
“그럼 상급이면?”
도끼를 막아낸 시트라의 말과 함께 전신에서 옅게 흐르던 빛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시트라의 전신이 구름처럼, 눈처럼, 백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시트라의 피부도 눈도 머리카락도 시트라의 전신을 덮고 있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백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 모습에 쌍 도끼를 든 놈이 뒤로 재빠르게 물러서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씨, 씨발 사, 상급 이, 이단 심문관이다! 이런 시골 마을에 어, 어떻게….”
하지만 다시금 나직이 들려오는 시트라의 목소리.
“아니, 틀렸어. 그 이상이다.”
백색으로 물들었던 시트라의 전신이 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용병의 도끼를 든 두 손이 도끼 채로 사라졌다.
도끼가 사라진 용병이 그 자리에 주저앉자 시트라는 그놈을 발로 차 수리아 왕녀에게 날려 보내며 소리쳤다.
“선물입니다!”
시트라가 오른쪽으로 달려 나가는 걸 확인하고 수리아는 왼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수리아가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 눈앞의 적들이 이미 다 처절하게 바닥을 구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리아는 천천히 걸으며 오른손의 모닝스타를 어깨에 걸쳐 맸다. 그리고 땅을 구르는 첫 번째 용병이 눈앞에 나타나자 모닝스타를 어깨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다시 공중으로, 퍼 올리듯 휘둘렀다.
퍼석
용병의 머리가 퍼 올리듯 휘두른 모닝스타에 썩은 수박처럼 깨져나갔다. 머리통이 깨져나간 용병이 그 자리에서 개구리처럼 뻗어버리자 수리아는 그것을 발로 차 한쪽으로 쭉 밀어버렸다. 늘어진 용병의 시체는 마치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듯 한참을 한쪽으로 미끄러지고서야 멈춰 섰다.
수리아의 발끝에서 시작된 긴 붉은 핏자국이 시체가 멈춰 선 그곳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 모습에 다른 용병들과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모두 무슨 마법에라도 빠진 듯 연신 바닥으로 미끄러질 뿐이었다.
용병과 병사들이 공포에 휩싸여 허우적대며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아! 이 무슨 개 같은!”
“마, 마녀다!”
“으아악! 주, 죽고 싶지 않아!”
수리아는 발끝으로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녀가 걷지 못하는 몸이 된 후 생긴 버릇. 전장에서 최대한 걸음을 즐기다 보니 생겨난 걸음걸이.
발끝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한걸음, 한 걸음을 소중히 즐기는 것이다. 매일 미끄러지는 고통에서 벗어나 자기 적들이 사방으로 넘어지는 그 가운데 홀로 천천히 걸음을 즐길 수 있는 시간.
이 순간만이 그녀가 살아있는 순간인 것이다.
그렇게 수리아는 남들이 보기에 다소 기묘해 보이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야생의 미쳐 날뛰는 수박들을 하나씩 수확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수박을 수확하는 한 명의 농부.
푸학
그녀가 한 번씩 모닝스타를 퍼 올릴 때마다 잘 익은 수박들이 모닝스타의 뾰족한 가시에 깨져나가며 공중으로 붉은 피 보라를 수놓았다.
붉은 피 보라 아래를 걸으며 수리아는 생각했다.
누군가 수리아에게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수리아는 주저하지 않고 걷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고. 반대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걷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즐거운 걸음으로 비명의 수확 자가 되어 수박을 수확해 나가던 수리아 앞에, 수리아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카이트 실드와 쇼트 소드를 든 용병 하나가 나타나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다.
“더러운 수작이라니! 마녀 같은 년!”
용병은 무슨 특수한 능력이라도 있는지, 수리아의 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 굳건히 서서 방패를 올려 방어를 단단히 하는 자세를 취했다.
선공해오지 않는 것을 보니, 방어가 단단하거나 역공을 즐기는 종류의 용병인 듯했다. 방패를 들어올린 자세를 보니 수리아의 모닝스타를 막은 후 치겠다는 것.
웃음이 흘러나왔다. 북부에서는 저런 생각을 하는 머저리들이 없었으니 말이다. 나파로아 가문은 대대로 혈통의 축복을 받은 가문. 축복으로 받은 것은 엄청난 힘이었다.
“자! 그럼! 막아보세요!”
수리아는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모닝스타를 하늘 높이 쳐들었다가 방패 위로 떨궈주었다.
꽈지직
“커허헉”
용병의 카이트 실드를 든 양손이 부러져 나가고 두 무릎이 기괴한 방향으로 엇갈렸다.
그리고 그때 들리는 시트라의 목소리.
“선물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