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65화 (165/352)

〈 165화 〉 163. 앙숙 8

* * *

파멜라는 중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상단의 주인이었다. 중부 세 개의 왕국에 걸쳐 여러 상점과 상회를 소유하고 있고, 그녀의 상단은 어떤 물건이라도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중부에서 이름이 높았다.

주변의 평가는 여자의 몸으로 사십 대에 거부가 된 대단한 여자.

하지만 상인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그녀지만, 사람들은 앞에서는 그녀에게 존경과 존중을 보이고. 뒤에서는 그녀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녀의 비밀 때문이었다.

몸을 팔아가며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자신이 몸을 팔던 매음굴을 사서 거부가 된 여자.

그렇다 그녀는 비루한 매음굴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재산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녀의 출신과 신분은 그녀의 가장 큰 약점이 되었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그녀의 비루한 출신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그녀의 신분에 대한 열망은 높아져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가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녀는 준 남작 작위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출신 성분을 아는 각 나라의 귀족이나 왕족들이 그녀에게 작위를 파는 것을 거부한 것.

그렇게 많은 돈이 있음에도 그녀는 신분에 대한 갈망을 이룰 수 없었는데, 얼마 전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남부의 아베느 왕국에서 파텔 영지와 귀족 작위를 왕국에 기부금을 내는 조건으로 수여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것이다. 말이 좋아 기부금이지 결국은 작위와 영지를 매매하겠다는 것.

아베느의 재정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작위를 매매할 줄이야. 희소식이었다. 파멜라는 자신의 가진 모든 돈을 싸 짊어지고 아베느 왕국의 수도로 향했다.

중부의 유명한 살롱도, 상단도 탈탈 털어 자금을 만들어냈다. 매번 뒷골목 매음굴 출신이라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리고 전 재산의 대부분을 쏟아부어 다른 이들을 제치고 파텔 영지와 작위를 하사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필그린이라는 성을 가질 수 있었다.

파멜라 필그린. 이제부터 그녀는 파멜라 필그린이라는 귀족이 된 것이었다.

돈은 벌면 되는 것. 많은 출혈이 있었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그렇게도 바라마지않던 귀족의 작위를, 그것도 승계가 가능한 작위를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파멜라의 손에 남겨진 것은 제일 처음 만들었던 자신의 상단과 영지뿐이었지만 영지가 있으니 이제 고정적으로 수입이 생긴 것이었다.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이 있으니 돈은 이제부터 다시 벌면 되는 것.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남은 상단을 이끌고 파텔 영지로 향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들인 영지에 도착했을 때 파멜라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남작 영지는 인구가 오천 명 내외의 십여 개의 크고 작은 장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쓰레기 같은 영지는 쓸만한 장원 두 개와 평야에 흩어져 서부 사막의 유목민들처럼 살아가는 나머지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영주의 성은 불에 타 잿더미만 남은 상태였다.

파멜라는 영주의 성 앞에서 주저앉았다.

이것은 사기였다!

“이 새끼들이 나에게 사기를!”

국왕이 자신에게 작위를 내리면서 실실 웃던 것이 생각났다. 아베느 국왕 새끼가 그렇게나 기뻐하면 반긴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돈을 싸 들고 가서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속셈이 있었던 것.

엉망이 된 영지를 복구해야 하는데 영지의 상황을 아는 국내 귀족은 당연히 이 영지를 떠맡지 않으려 할 것이고, 직할지로 운영하려 해도 중앙에 성도 없는 영지를 굴려 먹기도 힘드니.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팔아먹어 영지를 복구하려는 속셈. 거기에 왕국은 큰돈을 만져서 좋고.

남부 촌구석 왕국이라 방심하고 말았다. 좀 더 면밀하게 영지를 살폈어야 했는데.

­뿌드득

완전히 당했다.

파멜라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빈민촌의 매음굴 안에서도 일어선 나인데, 반드시 일어서 국왕 새끼에게 한번 큰 비웃음을 선사해 주겠다고.

하지만 영지를 면밀히 살핀 파멜라는 강가의 큰 두 개의 장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쓰레기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평야에서 염소나 키우며 수도 빈민굴 주민처럼 살아가는 영지 민을 보았을 때 가뭄이나 기근이 들면 돈이 나가면 나갔지,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영주 성이 불타버려 거주지도 올려야 하는데 심각한 상황이었다. 고용한 사병과 용병들에게 돈도 주어야 하는데 영지는 경제 규모가 다른 남작 영지의 반도 안 되는 상황.

그래서 일단 평야에 사는 농노들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었다. 농노라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농사도 못 짓는 메마른 평야에서 염소나 키우는 농노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키우는 염소들이 많아 싹싹 긁어 판매하고 돈이 되는 쇠붙이도 싹싹 긁어 팔아치웠다.

그리고 남은 농노들은 전부 다른 영지에 팔아먹기로 했는데.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입 싼 용병 새끼들이 농노를 팔아먹겠다는 계획을 농노들에게 나불대고 만 것.

평야의 농노들이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머저리 같은 새끼들! 다 잡아 와! 잡아 오라고!”

“죄송합니다. 누님. 아 이젠 영주 님인가? 제가 애들 풀어서 다 잡아 올 테니 걱정 마슈.”

자신과 매음굴부터 함께했던 뒷골목 출신 용병 허튼, 지금은 기사가 된 그가 다른 용병들을 끌고 사방으로 흩어진 농노들을 잡기 위해 말을 타고 야영지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농노추격전. 다행히 한동안 굶어 기운이 없던 농노들은 대부분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혔는데, 허튼이 조금 특이한 소식을 가지고 왔다.

“누님, 남부에는 공백지 마을이라는 게 있다는데, 영주가 없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이 새끼야 남작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뭐? 영주가 없는 마을이라고?”

“그렇다고 합디다. 세금도 안 내고 저희끼리 알아서 사는 마을이라던데? 농노들이 대부분 그리로 도망치려고 했다더라고요?”

돈 냄새가 났다. 매음굴에서부터 자신을 여기까지 기어 올라오게 해준 그 지독한 욕망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런 마을이 많아?”

“뭐 몇군데 된다던데?”

“어디에 있다는데?”

“대 늪지 근처에 대부분 있다더라고 거기는 누구 영지도 아니라던데…”

누구의 영지도 아니라고? 도적떼들은 그걸 가만 놔두나?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진 재산은 많을까? 돈이 될만한 건 뭐가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뭔가 정말 구미는 당기는데. 자신을 확 끌어당기는 결정적인 그런 것이 없었다. 잔돈푼 조금 만지자고 허튼에게 다녀오라고 할 수도 없는 일.

그리고 그때 농노들을 잡으러 허튼과 다른 방향으로 떠났던 병사들이 돌아왔다. 용병 출신이긴 하지만 영지의 위엄을 위해서 제법 갖춰 입히느라 돈을 쓴 병사들과 고용한 기사 둘이었다.

“늪지대 하류까지 내려가 강을 건넌 농노들의 흔적이 있기에 그 흔적을 따라갔는데, 웬 마을이 하나 있더군요. 길잡이로 따라갔던 마을 주민이 공백지 마을이라고 해서, 수색해보려고 했는데 무례한 놈들이 활을 겨누고 저항했습니다. 제가 분명 파멜라 님의 정당한 대리인임을 전달했는데 도둑 취급하더군요. 쓰레기 같은 평민 새끼들 같으니!”

기사는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사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았을지는 눈에 선했다. 자신도 이제 귀족이 되었지만, 저 기사 새끼들 가서 또 윽박지르며 협박만 했을 테니… 뒈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겠지.

“그래서, 농노들이 거기 있는 건 맞고?”

“아마 확실할 겁니다. 궁수 출신 병사가 하나 있었는데 흔적이 마을까지 이어진 걸 확인 했으니까요.”

“근데 활을 겨눴다고?”

“예 갑자기 목책 뒤에서 웬 엘프 계집들이 열 마리나 나타나서는…”

“엘프? 계집? 열 명?”

파멜라의 눈앞에 궤짝이 열리고 궤짝 안으로 금화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환상 속에 나타났다. 엘프가 무려 열 마리! 전부 계집.

파멜라가 중부 왕국에 어떠한 물건이라도 구해다 준다는 것은 사람도 포함. 엘프는 없어서 못 파는 물건. 엘프 열 마리면 나무로 이루어진 성 정도야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허튼도 엘프 계집 열 마리라는 말에 자신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파멜라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큰 상단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공격적 상단 운영. 단순히 장사를 공격적으로 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상대 상단에 대한 직접적인 습격과 약탈도 포함된 것이 그들의 공격적 상행이었다.

“허튼, 애들 전부 준비시켜.”

“전부? 아니 나랑 몇 명만 가면 될 일을?”

파멜라의 상단에는 금 등급 용병이 셋이나 있었다. 허튼과 그의 형제들. 셋만 가도 작은 마을 정도야 쓸어버릴 수 있는 것.

“내가 항상 하는 말이 뭐지?”

“생존자가 없으면 귀찮을 일도 없다!”

항상 다른 상단이나 노예로 쓸 상품을 습격하기 전에 이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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