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155. 하수공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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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라는 화들짝 놀라 여신을 바라봤다. 당연히 ‘네’라고 대답해야 했지만, 어떻게 보면 여신이 영원히 거두어 준다는 엄청난 축복의 말이었지만, 왠지 축복으로만은 들리지 않는 소리. 조금 두렵기도 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은 모르겠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태어난다면, 가정도 가져보고 싶고 아이도 낳아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시트라 여인으로 태어났으니 가정도 아이도 가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당연히 이해해요. 그럼요! 아무렴요!”
자신의 부끄러운 마음이 들켜버려 여신 앞에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지만, 역시 자애의 어머니인지라 이해심이 남다르다고 생각할 때, 시트라의 귀에 들려온 소리. 푸념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시트라 처녀로 긴 시간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아십니까? 제가 담당 영역을 나눌 때 다른 여신들에게 밀리지만 않았어도… 다른 남신과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인데! 이렇게 처녀인 몸으로 수천, 수만 년… 희생은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뭔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계신 느낌. 시트라는 조심히 여신의 눈치를 보았다.
“제가 무엇이든 지원할 테니 시트라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그래요. 신성력! 제 마음 같아서는 순결의 신성력을 계속 유지 시켜주고 싶지만, 위대한 법칙은 처녀 이외의 존재가 순결의 신성력을 가지는 걸 용납하지 않으니. 대신에 자애의 신성력으로 두 배 세 배 채워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키스든 그 이상이든 하라 이 말입니다!”
여신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뭔가 천계도 힘든 사정이 있는 모양. 천계도 마냥 행복한 곳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여신의 열변이 끝났을 때. 시트라는 여신의 말에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이고 말았다.
‘키스 이상이라면 설마 그 서큐버스들이 환장하는 그걸 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자신이 여신 앞에서 음란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시트라가 여신을 바라보자 여신이 자신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트라의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 마음의 짐은 다 덜어주었으니 괜찮겠죠? 너무 자신이 저의 이단 심문관이라는 사실에 붙잡혀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올 수밖에 없었어요. 왜 이런 영역을 맡아서는!”
다시 한번 한탄하는 여신의 목소리.
“아 참, 제 지원은 러셀 한정입니다. 자세한 말은 못 하지만, 러셀은 좋은 남자니. 이왕 뭐든지 하고 싶으면 러셀이랑 하세요. 알겠나요? 다른 남자는 제가 그래도 순결의 여신이니, 절대 안 됩니다! 절대!”
단호한 음성.
하지만 다른 남자는 절대 안 된다는 소리는 시트라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시트라의 귀에 들려온 것은 하고 싶으면 러셀과 하라는 소리뿐.
하지만 러셀이랑 뭔가를 하라는 여신의 말에 시트라는 러셀의 부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부남이고 이미 아내가 셋이나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 그렇죠. 혹시 러셀의 아내들이 걱정됩니까? 미모로 밀릴 것 같은 가요?”
여신이 자기 생각을 읽은 듯 러셀의 아내들을 언급했다. 그리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칫. 처녀의 체향으로 조금 부족했나….”
그리고 이어지는 여신이 해준다는 축복들이 여신의 입에서 쏟아져나왔다.
“지금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면 뭘 더 해드릴까요? 그래! 허리를 좀 더 잘록하게? 몸매를 좀 더 아름답게? 아니면 좀 더 순수하고 순결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해드릴까요?”
여신이 쏟아내는 말에 러셀의 아내들을 떠올린 시트라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러셀의 세 번째, 아내인 발레리의 거대한 가슴이었다. 그건 정말 대단한 것이었으니. 첫째, 아내 또한 엘프임에도 남다르고…
시트라의 그 생각을 읽어낸 여신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 그것은 탄생과 풍요 같은 영역에 관련된 여신이 관장하는 영역인데…. 확실히…그건 제가 도와드리기 힘든 부분이군요.”
여신이 자기 가슴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시트라가 본 여신의 가슴은 시트라 보다 조금 더 납작했다.
태양이 셋 다, 하늘 높이 떠오른 정오. 바람도 한점 없어 다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음에도,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모여 목책 안에 판 한 구멍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열어! 열라고!”
촌장님이 목책 너머를 향해 소리치자 다른 사람들의 연달아 열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졸졸졸
첫 번째 맨홀에서 물줄기가 안쪽으로 흘러 들어오는 게 보였다.
“들어왔어요!”
사람들이 그 모습에 소리를 지르자 두 번째 구멍에서도.
“여기도 들어왔어요!”
세 번째 구멍에서도 연달아 목소리가 이어졌다.
“와요!”
그리고 마을 중앙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가장 큰 구멍에서도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우와와! 나왔어요. 나왔어!”
“이제 물을 뜨러 멀리 다니지 않아도 되겠어요!”
“집 앞에서 물을 뜰 수 있다니, 좋구먼!”
상, 하수관을 계획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상수도관만을 생각한 모양.
솔직히 이번 공사를 하면서 내가 너무 전생의 지식으로만 생각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의 물 사용량이 무척이나 적다는 것. 아침이나 저녁에 씻는 물을 제외하고는 요리하는 것 외에는 별로 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남자들은 강가로 씻으러 가고 말이다.
전생처럼 수도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라 강에서 떠와야 하니까 다들 물을 아껴 쓰는 것이다. 더군다나 씻은 물은 텃밭에 버려 재활용하기까지.
그러니 내가 상, 하수관이라고 말까지 했지만 다들 전혀 물을 버린다는 생각은 안 하는 듯했다. 지금도 물이 들어오니 물을 퍼 올려서 물을 뿌리고 난리가 났다.
‘그래 뭐 어떻게든 잘 사용하면 되지. 그러면 목욕탕 물은 마을 사람들 아무도 안 쓰는 밤에나 버려야 하나?’
한밤중 산업폐기물을 버리는 악덕 사업주가 생각나는 고민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도 제대로 못 뜬 네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나의 앞에 서 있다. 여자는 당연히 리젤다 남자는 벨릭, 안톤 그리고 촌장의 두 아들이었다.
여기 모인 이유는 다들 강해지기. 아니, 강해져지기 위해서. 그래 너희들이 원치 않더라도 내가 강제로 강해지게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리젤다와 안톤에게는 벨릭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있고, 촌장의 아들 둘은 잠결에 끌려 나왔지만 인간 만들어 달라는 촌장님의 강한 요청이 있었기에 강제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
“리젤다?”
“네?”
“리젤다는 기초체력 훈련 안 해도 되는데?”
나는 리젤다를 바라보며 강렬하게 눈으로 말했다.
‘지금 얘들 죽을 때까지 굴릴 건데? 거기 있으면 안 된다고!’
기술이야 아내에게 얼마든지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이놈들이랑 같이 아내까지 굴린 순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건들거리며 서 있는 네 놈의 옆에 자리 잡은 리젤다를 빼내려 했는데, 역시나 나의 예상과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괜찮아요! 저도 잘 할 수 있어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그, 좀 힘든데 괘, 괜찮을까?”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역시나 들려오는 예상과 같은 대답.
“러셀 러셀도 설마 제가 여자라서 힘든 훈련은 못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 절대 아니지 물론 잘하겠지만. 그, 나한테는 소중한 아내니까 혹시나 다치면, 안되니까 말이지.”
나는 리젤다를 달래야 했다. 옆에서 안톤 새끼가 휘파람을 불어대고 벨릭이 리젤다를 놀리다가 정강이를 까이고는 주저앉고 나서야 간신히 사태가 진정되었다.
그렇게 넷을 좀 더 쓸만한 놈을 만들기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자 그럼 가뿐하게 목책 주변을 오십 바퀴만 뛰자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자 다섯이 전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네 엣?”
“리젤다는 힘들면 중간에 빠져도 되 알았지?”
“아, 아니에요…”
리젤다에게서 후회의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듯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 그러니 내 말 들으라니까.
“자 그럼. 뛰어!”
나의 호령과 함께 아침의 간단한 몸풀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참 후 땀을 뻘뻘 흘리며 여관 안으로 들어온 다섯에게 따듯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하지만 다섯 누구도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니, 아침 구보 조금 한 거 가지고 아침을 못 먹다니 아직들 멀었네.’
“아침 안 먹으면, 오후 훈련은 힘들어서 못 할 건데 괜찮겠어?”
다섯이 내가 차려준 음식을 한참을 노려보다 입안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봐도 아침과 같은 훈련이라면 배가 고플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듯했다.
하지만.
“우웨엑…”
“우엑…”
“구에에엑…”
그렇게 식사를 끝낸 다섯은 몸풀기로 다시 오십 바퀴를 뛰고 아침에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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