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56화 (156/352)

〈 156화 〉 154. 하수공사 5

* * *

마을은 이틀 만에 하수관 매설을 위한 토목공사의 여파로 여기저기 흙더미가 쌓여있는 모습이 되었다. 강변이라 그런지 땅이 무른 편이고, 벨릭 같은 용병들이 몸을 푼다면서 도와주기도 해서 공사 진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기에 잠시만 눈을 떼면 여기저기 새로운 흙더미가 생겨났다.

나는 공사 기간을 전부 이십일 내외로 예상했는데, 이세계 남자들의 근력과 지구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목표했던 구간의 삼 분의 일 정도를 파헤치는데 이틀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무슨 인간 굴삭기냐고!’

남자들이 땅을 파헤치는 동안, 여자들은 광장 한쪽에는 오크통의 뚜껑과 바닥을 떼어내느라 바쁘게 일했다.

농사일도 남자, 여자 같이하는 이곳에서 마을의 큰 공사에도 여자들이 빠질 수는 없는 법.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와서 거들 일을 물어보기에 편한 일에 편성해 주었는데, 답답하다며 땅을 파는 곳에서 일하고 계신 분도 있다. 호튼 부인 같은 분 말이다.

‘호튼 씨 내가 드린 홍삼은 잘 들고 계시려나?’

그렇게 마을 인원들이 다 달라붙어 바쁘게 하수관 공사를 이어가던 삼 일째, 점심의 태양을 피해 다들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안톤이 자기 파티원들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섰다. 다들 오크통을 두 개씩 끈으로 묶어 등에 짊어진 상태였다.

“수고했어. 위험한 일은 없었고?”

“예, 형님 한번 가본 곳이고 주변은 사냥철에 한 번 정리 했으니까요.”

“그래, 쉬는 동안 숙박비는 안 받을 테니까 가서 푹 쉬어라.”

먼 곳까지 가서 구해왔는데 숙박비라도 무료로 해줘야지 마음이 편했다. 솔직히 말이 먼 곳이지 거기에는 몬스터도 돌아다니니, 조금 심하게 말하면 목숨 걸고 다녀온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아니, 그래도 그게”

“말대꾸? 말대꾸하면 기술이고 뭐고 쫓아낼 테니까 그렇게 알아.”

녀석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내가 건네준 물을 마시며 말했다. 녀석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하지 못한 채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님, 그 세 번 구르며 쏘기 그거 꼭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가르쳐주는 게 뭐가 어렵겠냐 다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힘들 뿐.

안톤과 그 파티원들이 씻으러 간 사이 천연타르를 확인했다. 이미 보낼 때 안톤에게 최대한 점성이 낮고 불순물이 적게 채취해달라 부탁했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용병들 일 처리가 꼼꼼하지 못하고 좀 거친 편이라서 확인은 필수이다. 오크 귀를 잘라 오라면 머리통을 떼어오는 녀석도 있고 말 그대로 잘게 잘라오는 바보도 가끔 나오니까.

오크통 하나의 뚜껑을 망치로 두들겨 뚜껑을 떼어내자 올라오는 독한 냄새.

“우앗! 이거 냄새가 지독하구먼”

“어머, 이상한 냄새가 나요!”

“코가 찢어질 것 같네!”

뭐랄까? 아스팔트와 농축된 원유의 진한 향이랄까? 처음 맡아본 사람들은 다들 냄새에 질색했지만, 나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냄새였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높은 문명의 향이란 말인가. 갓 깔린 아스팔트 도로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전생의 그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향을 깊이 들이켰다.

­스흐읍

“콜록콜록”

역시 높은 문명의 향은 매웠다. 나는 과욕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타르 향에서 빠져나와 바로 나뭇가지로 검게 반짝이는 천연타르를 휘저어 보았다. 나뭇가지를 휘저어 보니 천연타르는 아주 순도나 점도가 훌륭했다. 불순 물도 거의 없는 적당한 점성을 가진 상태.

천연타르가 아니더라도 이런 타르는 내가 살았던 시대에도 방수를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인공타르. 아스팔트 프라이머라고 불렀는데, 방수가 필요한 곳에 발라서 말리면 표면이 아주 반질반질해지고 방수성이 증가해 옥상이나 화장실 방수 같은 데 많이 사용했으니까 말이다.

뭐 지금 내 앞에 있는 것과 성분은 조금 다르겠지만 타르 웅덩이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도 이걸 방수로 사용했다고 했으니.

“자 이제 이걸 통 안팎으로 발라서 말리는 겁니다.”

안톤이 가져온 천연타르를 큰 통에 따르고 막대기에 긴 털이 붙은 가죽을 묶어 그것으로 뚜껑과 바닥을 떼어낸 오크통을 안팎으로 칠하고, 그리고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말리는 것이다.

이러면 오크통은 코팅된 관으로 훌륭하게 변신하는 것이다.

“옷이나 몸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으니, 다들 조심해서 해주세요.”

옷 한두 벌이 가진 옷 전부인 마을 사람들이니 다들 주의시킬 수밖에….

검게 칠해진 통이 마을 광장 한편에 쌓아 올려져 말라가고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웜 포트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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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유 감사제를 지내던 시트라는 기묘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정신이 자기 몸 구석으로 내몰리는 느낌. 그리고 거대한 무엇인가가 자기 몸을 통제하는 느낌.

환희! 감동! 감격! 영혼이 전율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 엄청난 전율의 파도에 잠겨 떨리는 영혼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귓가를 간질이며 들리는 목소리. 아니, 귀가 아니라 가슴에, 가슴이 아니라 영혼에, 직접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시트라?”

시트라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격에 전율하며 대답했다.

“어, 어머니?”

그리고 시트라는 그때 서야 자신이 백색의 공간에서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몸으로 말이다. 시트라가 부끄러움에 몸을 가리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하지 마세요. 시트라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원래 이렇게 시트라를 직접 만나러 오면 안 되는 것인데, 시트라를 보니 제가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뭔가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 자애와 고결함을 기대했는데 그런 목소리가 아니었다.

시트라는 두 손으로 몸을 가린 채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처음 보는 얼굴, 교단의 성녀나 보았을까? 자신이 신앙하는 대상인 자애와 순결의 여신이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빛나는 관을 쓰고 나이는 이십 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 순진하고 순결하며 고결한 모습이었다. 눈이 부셨다. 하지만 그 모습에 느껴지는 부담은 눈이 아니라 영혼에 느껴지고 있었다.

“어머니!”

시트라는 처음 대하는 감동에 눈물을 쏟으며 바닥에 엎드려 다시 울부짖었다. 성녀를 제외하고는 그 얼굴을 대한 적도 본적도 없을 텐데 자신이 그 영광의 모습을 마주 대했으니 당연히 감동할 수밖에.

“진, 진정하세요!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러면 축복이 끝나자마자 되돌아가야 함에도, 시트라를 보러온 의미가 없습니다.”

처음 본 어머니는 뭔가 다급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시트라의 감동의 시간마저 빼앗은 여신은 시트라에게 허겁지겁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트라는 직접 모습까지 나타내시면 내려주시는 계시에 정신을 바짝 부여잡았다. 어머니께서 뭔가 심각하게 하실 말씀이 있는 모양.

‘마족이라도 쳐들어오는 것인가? 아니면 음란한 서큐버스 무리 들이?’

하지만 시트라의 바짝 차린 정신을 파고든 여신의 음성이 들려주는 내용은 시트라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시트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 시트라가 축제를 주관해서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십니까? 제가 그 너저분한 다른 여신들을 다 젖히고…. 아.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트라 덕분에 직접 강림할 수 있었으니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트라 지금까지는 정말로 잘하고 있습니다. 다만 결단력이 부족해요.”

쏟아지는 말을 다 이해하기도 전에 들려온 것은 책망. 시트라는 여신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뭘 잘하고 무슨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소리지?’

“어, 어머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참, 내 정신 좀 봐 시트라는 좀 당황스럽겠네요. 천천히 설명하겠습니다. 시트라는 러셀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네!?”

시트라는 부끄러웠다. 그래 자신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러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자신은 순결의 이단심문관. 결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시트라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자신을 책망하기 위해 오신 것 같았다. 이단심문관 그것도 순결의 이단 심문관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어머니가 화가 나실 만했다.

성국에서 가장 경계하라고 했던 것. 이렇게 사랑에 빠지다 정욕에 휩쓸려 순결을 버리는 것이 처녀들이 순결을 잃는 전형적인 과정이라고 배웠으니 말이다.

“이런 답답한. 시트라 잘 들으세요. 저는 시트라는 책망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 그럼?”

‘책망이 아니라고?’

시트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들어 여신을 바라보자 들려오는 소리.

“시트라는 처녀인 채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저의 사제가 되어서, 영원히 저의 딸이고만 싶으십니까? 영원히 아주아주 영원히?”

아주아주가 아주 강조된 말이었다.

‘여, 영원히 처녀라고?’

­꿀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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