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55화 (155/352)

〈 155화 〉 153. 하수공사 4

* * *

“그, 그래 리젤다는 당연히 가르쳐 줘야지. 일단 안톤이랑 이야기 좀 하고 알았지?”

“네!”

앙증맞게 대답하는 리젤다는 달래놓고 안톤에게 나머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데 안톤아 내가 삼 연사 기술도 가르쳐주고 다 할 수 있는데. 너, 그 버릇 고치려면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나는 짐짓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내 아내인 리젤다가 봐도 멋진 기술이라고 생각되나 본데… 다른 여자들이 보면 껌뻑 넘어가겠지? 하… 근데 가르쳐 주고 싶어도 뼈가 깎이고 피가 나야, 자세도 고쳐지고 기술도 배울 수 있을 텐데…”

“혀, 형님! 죽, 죽어도 좋습니다! 제발!”

나는 속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

“너, 진짜 죽어도 좋다고 했다? 다른 소리 하기 없기다?”

“예! 저 안톤! 같은 남자들에게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뭐야? 이 새끼 이거 여자들한테는 구라 막 치고 다닌다는 건가? 그래, 그런 부분까지 내가 다 만져주겠다고 안톤아.

“그래, 안톤 너는 다시 태어나는 거다!”

“네! 형님!”

그리고 잠시 후 여관 홀의 테이블.

발레리가 작성한 문서가 안톤의 앞에 놓였다.

“어 그러니까? 나 안톤은 러셀 형님의 수련을 받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수련 과정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부상과 목숨의 위협에 대한 책임은 안톤 본인에게 있으며, 그리고 수련 방식에 대해 어떠한 의문을 품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성실히 임할 것을 다짐한다.”

안톤은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더니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형님 그 검은 액체도 제가 무료로 구해다 드린다는 내용도 넣으셔야죠!”

안톤은 호쾌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래, 네가 좋다면야…’

잠시 후 안톤은 발레리가 준 깃펜에 잉크를 잔뜩 찍어 수정된 계약서에 신이 난 모습으로 서명했다.

“저, 그럼 훈련은 언제 시작합니까?”

안톤이 아주 의욕에 찬 모습으로 물었다.

“안톤아?”

“네 형님?”

“바지만 입고 밖으로 뛰어나온다. 실시!”

“예?!”

“훈련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뛰어!”

안톤에게 훈련이 다 끝나고 가르침도 하나 내려야겠다. 계약서 아무 대나 서명하는 거 아니라고 말이다.

첫날의 가벼운(?) 체력 테스트 후. 다음날 안톤은 자기 파티원들을 데리고 늪지로 향했다. 제대로 된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필요한 걸 먼저 구하러 다녀와야겠다며 의욕 가득한 모습으로 말이다.

더군다나 어제의 체력단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가뿐한 모습으로 말이다. 은 등급은 딱지치기로 딴 게 아닌 모양. 오기가 솟아올랐다.

‘기다려라 안톤!’

그리고 안톤 외에 다른 친구들을 공짜로 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안톤은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다른 애들까지.

“안톤 형님의 형님이시면 당연히 저희 형님이십니다!”

약간 얘네 파티는 작은 조직 같은 느낌이었다. 파티원도 좀 많고. 나중에 뭐하던 애들인지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친구들 아니겠지?’

안톤이 떠나고 촌장님과 마을 주민들을 동원해 바로 마을에 토목 사업을 시작하고, 한편으로 발레리를 시켜 폐 오크통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 혼자서 하수관 매설계획을 잡다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고인 물은 썩으니 상류 쪽에서 연결한 관으로 물이 들어오게 하고, 그걸 쭉 연결해서 하류 쪽으로 빠져나가게 만들기로 계획을 잡은 것이다. 강에서 흘러든 작은 물줄기가 마을을 거쳐, 보다 하류 쪽으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러면 하수관 청소할 필요도 없고 좋겠지?’

하수관으로 강물이 직접 흘러들면 강물은 유속이 빠르니 하수관 내부도 당연히 유속이 빨라 찌꺼기 같은 것도 쌓이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 사람들은 강에 더러운 것 버리는 걸 꺼리니, 하수관이 강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면 더러운 것도 버리지 않을 테고… 오?

그냥 상하수도가 한 번에 해결될지도?

지하에 있다 뿐이지 마을 사이사이로 하천을 흐리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우기 때는 상류 쪽 구멍을 막아두면 물이 넘칠 염려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나의 야심 찬, 마을의 하수관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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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땅이 파헤쳐지고 안톤의 파티가 자연산 타르를 구하러 간 지 하루가 된 시간. 나는 리젤다에게 구르며 활쏘기를 가르쳐주기 위해 여관 앞마당에 나와 있다.

원래는 안톤이 돌아오면 둘이 같이 천천히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급하게 리젤다의 활쏘기를 봐주고 있는 것은, 이러다가 아내 하나 잡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수관 설치 계획 잡고 공사 준비를 확인하느라 리젤다에게 안톤과의 활쏘기 교육이 시작이 언제 될 것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렇게 나의 바쁨으로 방치된 리젤다는 나 몰래 목책 구석에서, 내가 이틀 전에 보여준 그것을 어제부터 몰래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그녀가 혼자 연습하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어제저녁.

머리를 쓰다듬는데 터져 나온 뾰족한 비명.

“아야…”

머리를 확인했는데 피딱지가!

화들짝 놀라서 리젤다를 방으로 데려가 머리를 확인했는데 머리가 짓물러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리젤다의 옷을 다 벗겨보았는데, 맙소사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어깨 무릎 팔꿈치.

나는 리젤다를 벗겨둔 채 다그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어디서 그랬어! 어디서 다친 거야!”

“러, 러셀… 오, 옷 좀. 먼저 입고요.”

리젤다는 부끄러움에 몸을 떨며 애원했지만, 화난 나는 용서하지 않았다. 아니, 용서할 수 없었다. 내 것에 상처가 나다니!

“안돼! 말하기 전에는 못 입어!”

용서 못해! 나는 정말 걱정되는 마음뿐이었다.

결국 그녀의 입을 통해 그날 온종일 구르며 활 쏘는 연습을 했다는 사실을 자백받을 수 있었다. 낮에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리젤다가 활에만큼은 정말 진심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연결 동작이 잘되지 않는지 몇 번 구르던 리젤다가 일어나 물었다. 뭔가 알아차린 표정으로 물었다.

“러셀 그러니까 구르면서 화살을 걸어서 시위를 당겨야 하는 거군요. 활이 다치지 않게 해야겠어요.”

“그렇지 그래서 짧은 활로 하는 게 좋아 활이 클수록 구르기 힘드니까.”

먼지투성이가 되었어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얼굴. 그렇게 좋을까?

리젤다는 아침부터 가죽 캡을 머리에 쓰고 연신 구르며 시위 당기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가죽 캡 사이로 흘러내린 질끈 묶은 머리에도 먼지가 가득하다.

가죽 캡은 내가 소중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씌웠다. 헤드스핀을 돌 때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헬멧을 쓰는데, 땅바닥에서 구르면서 맨머리로 구르다니 그건 안될 말이었다.

리젤다가 구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녀와 어제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멍투성이인 리젤다의 몸에 약을 발라주다가 활에 매달리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에 물었다.

“리젤다는 활이 왜 좋아?”

“약한 여자도 제 몫을 하게 해주니 좋아요.”

북부에서 여자라서 무시당한 일이 있나? 궁금함만 더 생겨 다시 물었다.

“북부는 여자라도 전사는 존중하잖아? 여자라고 무시당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여자라서 억울한 일이 있었어?”

내 말에 리젤다가 무엇을 떠올렸는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주먹을 말아쥐고, 아주 분한 듯이 말했다. 이렇게 분한 일은 세상천지에 없었다는 목소리로 말이다.

“에반! 그 멍청이 때문에요! 어릴 때는 저한테 꼼짝도 못 했는데. 성인 남자가 되고는 아주 힘 세다고 기고만장해져서, 얼마나 저를 힘으로만 제압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눈꽃 기사가 되고는 아주 저를 자기 아래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꼭! 에반, 그 멍청이 엉덩이에 화살을 꽂아주고 말겠어요!”

한 살 차이 오빠라 그런가? 무엇이 그리 분한지, 말을 끝낸 리젤다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예전에 에반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반이 사방으로 쏘다니는 리젤다를 잡아 집으로 데려오려 수련한 것처럼, 리젤다도 에반을 이기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 그렇지만 에반은 이제 북부에 있고? 리젤다는 나랑 영원히 행복할 건데?”

내 말에 리젤다가 수줍게 미소 지으며 다가와 내 입술에 조용히 키스했다. 그리고 발그레해진 볼로 입을 열어 말했다.

“응, 영원히 행복할 건데, 그래도 제가 이길 때까지 이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에요.”

“어… 어떻게 해야 이기는 건데? 몇 번을 이겨야?”

“제가 만족할 때까지요!”

오우. 에반, 네 녀석 괴물을 길러내고 말았어!

“아니, 그렇지만 그게…”

­츕

내가 다른 말을 하려 하자 입을 막는 키스.

“아니, 리디양 그게 그래도…”

­츕츕

“어, 그러니까…”

­츕츕츕

“그, 그래! 에, 에반 이 녀석 감히 나의 리디에게! 어? 혼나야겠어! 내가 다시 만날 때 아주 그냥 땅바닥에 패대기쳐서, 머리에 발을 올리고 비웃어줄 수 있게. 아주, 그냥 내 모든 걸 전수해 주겠어!”

­츄르릅

‘미안하다 처남!’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이기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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